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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토끼 차상문 - 한 토끼 영장류의 기묘한 이야기
김남일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허, 굉장하이. 그래. 불은 하루 종일 켜놓나?"
"이놈들이 다 암탉인데, 불을 켜놓으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알을 자꾸 낳아요. 광선이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주니까요."
"야, 그거 참 생산적이네. 말하자면 이놈들도 단체로 국민정신교육을 받은 셈일세? 과거의 낡은 정신머리, 어쩌다 생각나면 하나씩 낳아주던 썩어빠진 버르장머리를 '요시, 잇교니(옳아, 단번에)' 고쳐버린 거구? 하하, 그래. 대한민국 땅에서 닭이라고 쉴 틈이 어딨나? 총력 증산 수출 건설인데.... 하하하."
p.59
차상문은 버텼다. 울지 않았다. 신음조차 내지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엄마처럼. 영리한 그는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판도가 바뀐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그토록 패면서 세월을 보낸 아버지도 그 얼마 전부터는 한참 패다가 종당에는 무릎을 꿇고 오히려 엉엉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래도 아팠다. 아프면서 슬펐다.
p.74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죠. 기본적으로. 왜냐하면 모르면 통제가 불가능하니까. 통제하지 못하는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닌 거구요.
p.128
한 개체가 우연히 선택한 길이 때로 역사가 된다.
p.206
김남일, <천재토끼 차상문> 中
+) 인간에게서 태어난 토끼, 차상문. 귀가 길쭉하고 뾰족한 토끼이지만 인간이 아니지도 않은 생물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와 '다른' 존재이나 사실 우리보다 더 영리하고 천재적인 면모를 간직한 존재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존재 토끼 영장류가 바라보는 인간들의 탐욕과 폭력, 그리고 억압까지 두루 제시하고 있는 소설이다.
차상문이 보게 되는 폭력은 가정을 넘어 국가, 즉 이데올로기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작가는 인간과 다른 천재토끼 차상문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시선에서 보게 되는 인간의 면모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차상문이 보기에 오히려 인간들이 더 잔혹하고 냉정하지 않던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역설적인 위치에 선 차상문의 시선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육체적인 교미가 아닌 정신적인 교미를 선택한 그는 탐욕에 대한 경계의 태도를 취한다.
이와 같은 차상문의 현실 대응 방식은 똑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차별받고 있는 인간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차상문을 통해, 진정한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가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