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머스 문학동네 시집 83
윤성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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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바늘

 

 

걸려들었다

울음이 목구멍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풀렸다가 채였다가 한 시절이 가고 있다

 

감기를 앓으면 항상 목부터 아팠다

퉁퉁 부은 목은 물조차 잘 삼키지 못하고

뜨거운 공중으로 훌쩍 당겨졌다

일 년에 한두 번 위태롭게 앓고 나면

거울 속 비친 문양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목 안에 바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

목숨보다 질긴 줄이 당겨지고 있다는 걸

알기까지 얼마나 울음을 상켜야 하나

통곡으로 제 안을 보여주는 건

많이 끌려와 지쳤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앙앙대는 입을 보고 있으면

걸려든 목젖, 바늘이 보인다

일순간 잡아채는 날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살아 있는 내내 빼낼 수는 없는 것이다

 

 

윤성택, <리트머스> 中

 

 

+) 모처럼 시집에서 시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을 보았다. 윤성택의 <리트머스>는 오랜 습작을 통해 더 나은 시를 위해 발돋움하는 작품들의 모음이다. 사물 묘사에 적절히 얽혀 있는 비유적 표현들이 반가웠다고 해야 할까. "옥상 균열은 눕고 싶은 건물의 표정이었다. / 부러진 안테나가 금의 끝점에 꽂혀 있었고 / 입주민 양미간으로도 쉽게 금이 번졌다" ([장안상가] 부분) 그의 시는 사실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그것은 경험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세심한 관찰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 시인은 시적 대상에 자신의 사유를 덧씌워 제법 잘 어울리는 마네킹 같은 시를 선보인다. "폐선에 걸터앉은 노인은 닻처럼 휘었다 / 필생 무게중심이 되어왔다는 듯 / 웅크린 등은 갈고리처럼 앙상하다 / 적막이라는 그물을 투망질하는 건 / 담벼락에 걸쳐진 담쟁이들뿐"([닻] 부분) 매장 전시용으로 움직임없이 서 있는 마네킹 같은 시. 긍정적으로 보자면 작가가 내세운 시의 표준이라 볼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식상하거나 틀에 박힌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작가가 생각하는 시란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눈에서 비롯된다. 그것을 시작으로 작가는 단어들을 조립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 조립이 아니라 중간에 자신이 적절히 제도하는 작업을 거친다는 점이다. 자르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며 때로 새로운 것을 끼워넣기도 한다. 그렇게 윤성택의 시는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을 영감 혹은 feel이라고 치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면 더욱 성실해보이는 시인이니까.

 

아무렇게나 자기만의 생각을 나열해 놓은 것을 '시'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살짝 보여주고 싶다. 적어도 이정도의 성실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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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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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평범한 독자는 "비펴가나 학자와 다르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는 교육이 모자라고, 타고난 재능도 별로 많지 않다. 그는 지식을 나누어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정정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손에 닥치는 이런 저런 잡동사니로부터 자신을 위해 어떤 전체를 창조하고자 하는 본능의 안내를 받는다." 이 책은 선반 가운데가 내려앉은 내 책꽂이들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그 수많은 잡동사니로부터 내가 창조하려고 했던 그 전체이다.

pp.14~15

 

똑같은 판본의 책이 두 권 있어서 둘 가운데 조지 것을 보관하기로 했는데 내가 그것을 까맣게 잊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나의 책과 그의 책은 우리 책이 되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p.26

 

7시간 뒤 리버런 책방에서 나왔을 때 우리는 9킬로그램의 책을 들고 있었다. (집에 와서 무게를 달아 보았다) 이제 내가 왜 조지와 결혼했는지 독자도 알 것이다. 내 관점에서 낡은 책 9킬로그램은 싱싱한 캐비어 1킬로그램보다 적어도 9배는 맛있다. 당신은 뵈브 클라쿠오가 생일 선물로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나한테는 9달러짜리 빈센트 스타렛의 1929년판 <<돈은 지혜롭게 책은 어리석게>>를 달라.(조지가 누구보다 먼저 구해다 줄 것이다.)

p.202

 

앤 패디먼, <서재 결혼 시키기> 中

 

 

+)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절친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적어도 작가가 책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조지'와 같은 남편이 있다면 정말 행복할텐데. 이 책의 저자처럼 나도 언젠가는 서재 결혼 시키기에 직면할 것이고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나는 유난히 책에 대해서만큼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필요한 것은 대부분 소장하는 편이다. (물론 소장한 것보다 더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만 말이다.)

 

작가는 자녀들에게 책을 남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기와 생각이 '다름'을 분명히 강조한다. 그점에도 공감한다. 내게 아이들이 있다면 나는 책을 함께 읽고 공유하고 싶다. 굳이 강조할 생각은 없으나 책 속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처럼 틀린 글자를 찾아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부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음으로서 마음의 평안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믿는 사람이다. 내 생일에 9킬로그램의 헌책을 선물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책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책을 통해 만나게 되다니.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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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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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산 자의 내면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벗어 던진 윗도리에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머리빗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 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

p.189

 

"그 얘기는 저도 들었지만 시이한테 직접 들은 것도 없고, 하도 소문이 많아서 믿지도 않았어요."

"그런 일에 진실이나 증거란 게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소문으로 충분하죠."

p.306

 

"이자카 아저씨는요, 이 세상에는 타인이 하는 일이 전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대요."

p.373

 

 

미야베 미유키, <화차> 中

 

 

+) 이 책은 과를 청산하고 새로운 싦을 꿈꾸는 여성이 또 다른 사람이 되려는 위험한 일을 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니,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테고 그렇기에 마음처럼 쉽게 나를 버릴 수도, 나의 과거를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여자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과거를 버릴 수 있다고 믿고 싶었을 뿐. 과거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나'의 생각이 스스로를 버리기도 살리기도 하는 법이다. 여자에게는 그 점이 필요혰는데 그녀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무모한 만큼 절박했으리라 생각되어 안타깝다.

 

추리소설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두꺼운 편이지만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무더운 여름,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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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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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 굶어 죽겠다, 아름답게. 그게 내 꿈이었다.”

 

 

소설가가 된 것은 대학에 온 뒤 내가 얻은 유일한 성과였다. (중략) 그러고 나선 아무것도 안 했다. 사실 나는 그 짧은 소설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확신했다. 그땐 내게도 야심이라는 게 있었던 것이다.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글을 마음에 들어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손에 돈을 쥐여주며 격려의 박수를 쳐준 거라고 생각했다. 혁명을 일으키라고, 세상을 바꾸어놓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쓴 글은 바닷속 플랑크톤 한 마리만큼의 영향력도 없었다. 나에게 돌아온 것은 몇 푼의 돈과 지하벙커처럼 견고한 침묵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삶을 불확실성 속으로 완전히 밀어넣을 것. 우리 자신조차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것"



김사과, <풀이 눕는다> 中

 

 

+) 운명같은 남자를 만났다고 믿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여자는 남자에게 당당히 말했다. 좋아한다고. 그녀에게는 고백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남자에게 고백해버린 여자는 적극적으로 그에게 구애하고 그를 '풀'이라고 부르며 다가선다. 그런데 그녀의 사랑은 상당히 이기적이다. 상대방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위주로만 행동한다. 화가 지망생인 풀의 그림을 망쳐놓는가 하면,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소설가 지망생인 여자가 등단하면서 세상을 바꿀꺼라고 결심했지만 현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눈앞의 현실에 당황스러웠지만 사실을 처절하게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방황하게 되고 술을 마시고 풀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매순간 그녀 옆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여자는 끝내 풀과 헤어지게 된다.

 

이들은 현재중심 인간형이다. 미래지향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먹고 살다가 또 돈이 떨어지면 일을 하는, 오로지 현순간만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 삶이 나쁜 것은 아닌데 그게 여자의 집착어린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좀 안타깝다. 사랑일까. 풀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였을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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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하실의 애완동물 - 김나정 소설집
김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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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정의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은 총 9편의 단편소설로 엮은 소설집이다. [비틀스의 다섯번째 멤버]에서 버려진 소녀를 키운 사내가 그녀를 함부로 다루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을 소유하려는 또다른 인간을 비판하는 장면이다. 키웠다고 해서 그 생명이 자신의 것은 아니다. 소녀는 돈을 훔쳐 달아나려 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새로운 생명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보다 자기 뱃속의 새로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희망을 꿈꾼다.

 

[<<   >>]에서 주인공 이괄호가 술에 취해 쓰러진 여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그녀를 짓밟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모습 또한 '사내'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변명이 있고 합리화의 근거가 있다. 자신들이 소녀와 여자를 살려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의 합리화일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할 수 없듯이 인간이 인간을 관리할 수 없는 것이다.

 

[주관식 생존문제]에서는 입양한 아들을 다시 버리는 비정한 양부모가 등장한다. 사람 사이의 연분을 함부로 맺고 끊는 인간들, 그들에게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우리 냉혹한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냉혹한 사회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런 냉정한 사람들 때문이니까.

 

[너희들]에 등장하는 부모 역시 어떤 아이를 살리고 어떤 아이를 버려야 할지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람들의 비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건조하고 메마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감정을 절제하고 짧은 문장으로 소설을 이어간다. 그 점이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안타까운 부분이나 현대인에게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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