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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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 굶어 죽겠다, 아름답게. 그게 내 꿈이었다.”

 

 

소설가가 된 것은 대학에 온 뒤 내가 얻은 유일한 성과였다. (중략) 그러고 나선 아무것도 안 했다. 사실 나는 그 짧은 소설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확신했다. 그땐 내게도 야심이라는 게 있었던 것이다.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글을 마음에 들어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손에 돈을 쥐여주며 격려의 박수를 쳐준 거라고 생각했다. 혁명을 일으키라고, 세상을 바꾸어놓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쓴 글은 바닷속 플랑크톤 한 마리만큼의 영향력도 없었다. 나에게 돌아온 것은 몇 푼의 돈과 지하벙커처럼 견고한 침묵뿐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삶을 불확실성 속으로 완전히 밀어넣을 것. 우리 자신조차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할 것"



김사과, <풀이 눕는다> 中

 

 

+) 운명같은 남자를 만났다고 믿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여자는 남자에게 당당히 말했다. 좋아한다고. 그녀에게는 고백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남자에게 고백해버린 여자는 적극적으로 그에게 구애하고 그를 '풀'이라고 부르며 다가선다. 그런데 그녀의 사랑은 상당히 이기적이다. 상대방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위주로만 행동한다. 화가 지망생인 풀의 그림을 망쳐놓는가 하면,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소설가 지망생인 여자가 등단하면서 세상을 바꿀꺼라고 결심했지만 현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눈앞의 현실에 당황스러웠지만 사실을 처절하게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는 방황하게 되고 술을 마시고 풀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매순간 그녀 옆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여자는 끝내 풀과 헤어지게 된다.

 

이들은 현재중심 인간형이다. 미래지향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돈이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먹고 살다가 또 돈이 떨어지면 일을 하는, 오로지 현순간만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 삶이 나쁜 것은 아닌데 그게 여자의 집착어린 사랑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좀 안타깝다. 사랑일까. 풀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였을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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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하실의 애완동물 - 김나정 소설집
김나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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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정의 <내 지하실의 애완동물>은 총 9편의 단편소설로 엮은 소설집이다. [비틀스의 다섯번째 멤버]에서 버려진 소녀를 키운 사내가 그녀를 함부로 다루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을 소유하려는 또다른 인간을 비판하는 장면이다. 키웠다고 해서 그 생명이 자신의 것은 아니다. 소녀는 돈을 훔쳐 달아나려 하는데 그것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새로운 생명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보다 자기 뱃속의 새로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희망을 꿈꾼다.

 

[<<   >>]에서 주인공 이괄호가 술에 취해 쓰러진 여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그녀를 짓밟는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모습 또한 '사내'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변명이 있고 합리화의 근거가 있다. 자신들이 소녀와 여자를 살려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겁하고 비열한 행동의 합리화일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할 수 없듯이 인간이 인간을 관리할 수 없는 것이다.

 

[주관식 생존문제]에서는 입양한 아들을 다시 버리는 비정한 양부모가 등장한다. 사람 사이의 연분을 함부로 맺고 끊는 인간들, 그들에게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우리 냉혹한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냉혹한 사회를 만든 것은 바로 이런 냉정한 사람들 때문이니까.

 

[너희들]에 등장하는 부모 역시 어떤 아이를 살리고 어떤 아이를 버려야 할지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람들의 비정하고 냉혹한 모습을 건조하고 메마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감정을 절제하고 짧은 문장으로 소설을 이어간다. 그 점이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안타까운 부분이나 현대인에게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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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문학.판 시 2
이성복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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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압력의 차이'

 

                                                              우리의 피를 소란케 하는 건

                                                              무덤에 대한 열망일 뿐임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 윌리엄 버들러 예이츠, [流轉(유전)]

 

어떤 식육 식물은 제 속의 공기압을 아주 낮게 해. 지나가는 벌레들이 저절로 빨려들게 한다. 드럼 통 석유를 따라붓는 일도 같은 이치. 처음엔 열심히 펌프질하지만, 나중엔 펌프를 떼지 않고선 멈출 수 없다. 모든 건 압력의 차이. 인생도 따라붓기의 일종이라면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의 구분은 진공 무덤 속으로 빨려드는 순서를 말한다. 늙어 힘 빠지고 동작이 굼뜬 것은 저기압 중심 가까이 왔다는 것, 바야흐로 느긋한 식사가 시작되리라는 것.

 

 

이성복,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中

 

 

+) 이성복의 이번 시집은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고, 거기서 비롯된 것을 글로 엮어낸 점에서 독특하다. 시집에 실린 각 시의 제목 아래 인용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떠오른 단상이 그 시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셈이다. '어떻게든'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외국 시의 구절을 사용했거나, 혹은 내용을 읽고 비롯된 감정들을 시로 썼거나, 시어가 간직한 상징성을 이끌어내서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즉, 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시로 소화했다는 점이다.

 

시인이 그들의 시를 인용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말대로라면 "평소에 좋아하던 다른 나라 시에 말붙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이 시들을 지은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확인하는" 작업, 이성복이 이번 시집에서 다룬 전체적인 틀이다. 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말로 표현되리라 믿지만,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말이나 글로 형상화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가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인용한 것은 잠시나마 그들의 시 구절을 빌려 자기 생각의 일부를 드러낸 것은 아닐까. 시를 읽으면서 너무 인용한 시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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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고득점 N제 언어영역 300제 - 2010
EBS(한국교육방송공사) 편집부 엮음 / EBS(한국교육방송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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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수능 300제의 경우 지문과 문제의 수준이 평이한 것보다 어려운 것이 많다.  

수험생들의 경우 지문에 나오는 용어를 파고들기 보다, 문장 자체와 문맥상 의미를 파악하여 문제를 풀어야 좋다. 

문학과 비문학, 쓰기 등등이 골고루 실려 있어서 모의고사 푸는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언어영역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해설지 또한 지문에 관한 설명과 오답풀이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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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노트 2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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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상해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은 다음이었는데, 이 책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 지점을 상상한다. 작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죽음의 세계는 어디까지이고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책에는 코마 상태를 경험한 대통령에서부터, 죽음에 관한 논문을 쓰다 죽은 철학자의 아들, 사람들을 살리지 못하고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빠진 간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단순한 관심에서 시작한 연구가 확대되면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을 때처럼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경향은 약간 다르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면, 이 작품은 인간들이 사후 세계에 대해 얼마나 큰 과심을 갖는지를 잘 드러낸다. 아니, 현재보다 미래를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판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설명하는 부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좀 식상했지만, 그래도 그런 세계가 있다는게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이 대응하는 태도를 풍자하는 작가의 시선은 제법 날카롭다. 왜 사람들은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할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타나토노트들이 천사를 만나고 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매긴다고 하자,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기부를 하고 누가 아무리 어려운 걸 부탁해도 전부 들어주는 억지 선행이 난무한다. 웃음밖에 안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아마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세상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것 같아서 씁쓸하다.

 

1부와 2부 2권이라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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