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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ㅣ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우르르 쏟아지듯 내려오는 인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할 때면 언젠가 건성으로 읽은 한 연구자의 글이 떠올랐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학문을 하는 비주류의 외로움에 대해 쓴 글이었는데 아마도 그 고독감이란 것이 이런 걸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괜히 고끝이 싸해지곤 했다.
p.40 -하성란, [1968년 만우절]
"질투란 건 말이야, 원래 판이하고 불가능한 쪽을 향하는 거야. 대상이 저질이든 고상하든 중요하지 않아. 나랑 판이하게 다른 년, 내가 죽었다 깨나도 될 수 없는 년, 정글이나 동굴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년, 그런 년들한테는 손도 써볼 수 없지. 이해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돼. 우린 걔네들 눈 깜빡거리는 동작 하나도 흉내 못 내. 걔네들은 어쩐지 늙거나 죽지도 않을 것 같아. 그러니 그저 우리 같은 것들은 평생 질투나 하다 나가떨어지는 수밖에."
p.85 -권여선, [빈 찻잔 놓기]
하성란 외,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中
+) 서울을 테마로 쓰여진 소설집이다. 2000년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중심으로 9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아, 가만히 살펴보니 작가 대부분이 여성이다. 여성 작가들이 바라본 서울은 어떨까. 작가들은 각자의 글쓰기에 앞서 서울에 대한 소박한 편린들을 펼쳐놓았는데, 소설만큼이나 매력적인 글귀였다. 이 사람은 서울을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서울과 거리가 있는 지역들이 그 거리만큼이나 서울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을 떠나서 나란 사람이 느끼는 거리감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서 서울은 친구에게 돈을 꿔주고 돌려받지 못한 인물이 있는 곳이거나(이혜경, [북촌]), 축구 경기가 있던 날 죽었다 깨어난 아버지의 믿지 못할 이야기가 있거나(하성란, [1968년 만우절]), 같은 공간에 허락없이 거주하는 벌레들을 마주선 인간의 공포감이 서려 있는 곳(김애란, [벌레들])이다.
어찌보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 같지만, 복잡한 도시의 대표적 표상인 서울을 간과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다. 비교적 편리한 교통 시스템과 늦은 밤에도 밝은 거리가 좋다면, 짜증섞인 사람들의 표정과 불쾌한 공기, 잡다한 소리가 얽혀서 만들어내는 무수한 소음이 싫다.
소설 속 인물들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들의 삶과 엮이면서 서울이라는 공간은 폐쇄적이거나 혹은 익명성이 담보된 채 지나치게 개방적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악적이기도 하고 혼란스러움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놓기도 한다. 이 소설집은 그런 도시의 일상과 현대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