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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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물론 나의 생각과 결정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행동은 그에 앞서 이미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을 단순히 그대로 수행하지는 않는다. 행동에는 나름대로의 원천이 있으며, 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이고 나의 결정은 나의 결정이듯이 나의 행동 역시 독자적인 방식으로 나의 행동인 것이다.

pp.23~24

 

자신감을 다시 얻는 것은 결코 성공에 따르는 결과가 아니었다. 내가 이룬 것은 나중에 비교해보면 내가 실제로 해낼 수 있다고 기대하거나 남에게 인정을 기대했던 것에 비참할 정도로 못 미쳤으며, 내가 그것을 실패로 느끼느냐 성공으로 느끼느냐는 오로지 나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

p.74

 

그렇지만 내가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면 당시에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이 떠오르고, 내가 죄책감을 느낄 때면 당시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향수를 느낄 때면 당시의 그리움과 향수가 되살아나곤 한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p.232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中

 

 

+) 이 소설에는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죄를 감당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지켜보고 사랑하던 남자가 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알지 못했고, 여자를 만나는 사이 갑작스럽게 그녀가 화를 낸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여자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남자는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던 여자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더 리더>는 한 편의 영화같은 이야기이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자존심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소설이었다. 나라면 어땠을 지 상상해본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다른 한 편으로 이 작품은 여자가 지은 죄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갇힌 공간이 폭발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내버려 두는 행위, 아무리 상대가 포로일지라도 그것은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행위가 아닐까.

 

나는 가끔 사람들이 네 편, 내 편만을 생각하느라고 정말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인간임을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최소한 인간이라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사람이라면 여자는 당장 뛰어가서 그 문을 열어주었어야 했다. 남자의 생각이 전개될수록 생생한 장면들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마지막 장편 또한 파격적이었는데, 과연 그 여자에게 삶의 즐거움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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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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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짜 증명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지. 틀리지는 않아도 너저분하고 짜증나는 증명도 얼마든지 있어. 알겠나? 왜 별이 아름다운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수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곤란한 일이지만 말이야."

p.26

 

"문제를 만든 사람은 답을 알고 있지. 반드시 답이 있다고 보장된 문제를 푸는 것은, 가이드를 따라 저기 보이는 정상을 향해 그저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 더구나 그 장소가 정상이란 보장은 없어. 깎아지른 벼랑과 벼랑 사이일 수도 있고, 골짜기일 수도 있고."

p.51

 

그것은 늘 거기에 있다. 절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소리 없이. 내가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곳에 있다.

p.249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中

 

 

+) 수식을 사랑하는 박사, 그러나 8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80분 이전에 만났던 사람을 80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도 답답하겠으나, 본인은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박사를 볼보는 일을 시작한 파출부는 그의 엉뚱함에 당황할 때도 많지만 차츰 그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파출부의 어린 아들(박사는 그를 '루트'라고 불렀다.)이 박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앞뒤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박사를 인간으로서 믿은 루트의 태도는, 엄마를 반성하게 만들고 더불어 우리들도 반성하게 만든다.

 

순수하게 상대방을 믿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의 이익이나 손해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가능한 것일까. 이 소설은 모든 것을 수와 수식과 수학으로 풀이하는 박사의 모습을 통해 순수하고 진정성이 있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순수한 아름다움까지 소개하고 있다. 독창적인 인물 구도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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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다락방 -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지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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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생생하게(vivid) 꿈꾸면(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

p.14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을 '생생하게 꿈꾸어야' 한다. 그러면 당신에게 운명처럼 기회가 찾아온다.

p.43

 

"해도 해도 안 될 때, 도저히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을 때 느끼는 좌절을 안다. 피할 곳, 숨을 데라고는 없을 때 느끼는 절망감을 안다. 그럴수록 현실에 맞서 싸워라. 희망을 풀어라. 희망은 절망적인 현실을 견뎌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자장면 배달부 시절 나는 아침마다 상상의 '기와집'을 지었다. 나는 그 기와집 안에서, 내가 배달 일을 하던 중국집보다 더 큰 음식점 사장이 되어 있었다. 위기는 기회이며, 벼랑 끝에 선 자가 가장 강한 법이다."

pp.130~131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이는 목표라도, 생생하게 꿈꾸면 그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는 초인적인 내면의 힘이 저절로 생겨나고 그 힘이 멈추지 않게 만든다고.

p.175

 

당신이 진심으로 그렇게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면 진짜로 그렇게 된다.

p.183

 

 

이지성, <꿈꾸는 다락방> 中

 

 

+) 나는 과학적으로 믿을 수 없는 근원적인 힘에 대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것은 온전히 자신에 대한 믿음 뒤에 와야 하는 것이지만. 인간이 꿈꾸고 소망하는 것에 대해, 나는 내 안의 어떤 힘이 그 간절함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나 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좋은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느꼈기에,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꿈꾸는 다락방>은 소망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꿈꿀 것을 충고하는 책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원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사진과 글과 정보를 수집하고 가까이 두고 간절히 원하는 적극성을 요구한다.

 

무조건 상상하는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원하는 것이 있다면, 꿈꾸는 것이 있다면 내 눈에 보이도록 혹은 내 귀에 들리도록 매일매일 접해야 한다. 그런 적극성이 훨씬 더 꿈에 다가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말,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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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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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일기든 뭐든 글을 쓰고 나면 혼자서 읽어 보고 아무도 모르게 불에 태워 없애 버리곤 했는데, 이젠 부끄러워도 내 내밀한 '고백'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보니 아무도 모르게 쓰고 아무도 모르게 읽고 아무도 모르게 없애 버려도 좋았던 어린 날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와 있음을 알겠다. 어린 날이나, 어른이 된 다음에도 부끄러움은 똑같으나, 어른이 된 지금은 부끄러움을 잘 견뎌 내야만 한다. 어린이였을 때가 좋은 것은 그렇듯 부끄러움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을게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잘 견뎌 내야만 한다. 그래서 여기 묶인 글들은 부끄러움의 강을 건너 가기 위한 변명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나의 변명을 세상에 내놓는 부끄러움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이 들어 갈 것이다.

pp.6~7

 

최악의 상황이 오면 늘 최상의 생각하기, 모든 상황을 긍정하자. 긍정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나는 나를 다독였다.

p.74

 

아무리 일이 있다 해도 그 일들을 생각하며 행복해하지 않는다면, 일이 없는 것보다 더 징그러운 나날이 되리라. 그렇다면 나는 날마다 내게 주어지거나, 내가 해야 할 일들 앞에서 진정 한 번이라도 기꺼워하고 행복해했는가.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오늘 밤 가슴 설레 본 적이 있었던가.

p.103

 

그런데 확실히 이즈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글 쓰는 일이나마 잘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 속 오솔길을 날마다 걸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요,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 하루라도 밥이 맛없어지지 않기를, 그러니까 날마다 먹는 밥맛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까 마치 내가 파파 늙은이 같아지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이런 상태가 편안하다. 밥 먹고 집 앞 오솔길을 걷고 글을 쓰고 사는 단순한 삶을 사랑하고 싶다.

p.113

 

공선옥, <마흔살 고백> 中

 

 

+) 나는 마흔살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 깊이 공감한다.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불행한 삶이다. 지금 주어진 일에 감사하게 여기는 것과,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가슴 설레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는 어떨까. 새삼 스스로에게 행복의 잣대를 대어보는 것이 쑥스러운 아침이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글 쓰는 일을 갖고 가끔 뒷산을 거닐며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사는 삶을 소망한다. 간절히 소망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자면 무던히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글을 쓰기 위한 삶에 전념해야 할테니 그게 어디 쉽겠는가. 마흔살은 어떤 기분일까.

 

10년 전 지금의 내 나이대를 상상하며 그때의 나는 무얼하고 있을까 상상하곤 했는데. 그 상상의 일부는 이루어졌으며 또 그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이 시점에서 10년 후를 상상한다. 그때는 어떨까.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 나이다. 무엇을 하든 이 책의 저자처럼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며 하루 하루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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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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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하도 듣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하게 되더라.” 아버지는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언젠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 p.14 [구멍]

 

“브레이크 패달을 만들면서 나는 살면서 중요한 게 뭔지 알게 되었지. 그건 잘 멈추는 일이거든.”

- p.20 [구멍]

 

내 등을 긁어주면서 그가 말했다. “사람은 순간을 무서워해야 해. 자네가 비겁해진 순간이 있었다면 그 한순간이 평생을 따라다닐꺼야.”

- p.70 [등 뒤에]

 

타다 남은 고무장갑, 다리가 부러진 상, 물에 젖어 반쯤 녹아버린 비타민C..... 이런 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했다.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버려진 물건들을 보면, 한겨울에 쇠로 된 난간에 이마를 맞대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그 안에 깃들인 슬픔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 p.212 [무릎]

 

 

윤성희, <감기> 中

 

 

+) 윤성희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그녀의 글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구성이나, 어찌보면 독자와의 소통이 어려운 작품들의 나열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사람을,  꿰뚫어보는 작가의 시선은 여전하다.

 

나는 윤성희가 지닌 촌철살인의 시선이 부럽다. 그것은 사물을 객관화시키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관성이 냉정함을 잃지 않기에 객관화되어 보이는 것이다. 그녀의 글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소설이 지닌 자유, 그러니까 허구와 비논리적이어도 괜찮을 자유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논리적이다.

 

그것마저 작가가 계산하여 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윤성희의 작품에는 신뢰가 간다. 정성껏 썼다고 해야 할까. 정성껏 썼다는 말이 믿어진다고 해야 할까. 나는 가끔 나의 글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이러한 논리성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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