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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어린 날, 일기든 뭐든 글을 쓰고 나면 혼자서 읽어 보고 아무도 모르게 불에 태워 없애 버리곤 했는데, 이젠 부끄러워도 내 내밀한 '고백'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보니 아무도 모르게 쓰고 아무도 모르게 읽고 아무도 모르게 없애 버려도 좋았던 어린 날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와 있음을 알겠다. 어린 날이나, 어른이 된 다음에도 부끄러움은 똑같으나, 어른이 된 지금은 부끄러움을 잘 견뎌 내야만 한다. 어린이였을 때가 좋은 것은 그렇듯 부끄러움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을게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잘 견뎌 내야만 한다. 그래서 여기 묶인 글들은 부끄러움의 강을 건너 가기 위한 변명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나의 변명을 세상에 내놓는 부끄러움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이 들어 갈 것이다.
pp.6~7
최악의 상황이 오면 늘 최상의 생각하기, 모든 상황을 긍정하자. 긍정하는 자에게 복이 온다....... 나는 나를 다독였다.
p.74
아무리 일이 있다 해도 그 일들을 생각하며 행복해하지 않는다면, 일이 없는 것보다 더 징그러운 나날이 되리라. 그렇다면 나는 날마다 내게 주어지거나, 내가 해야 할 일들 앞에서 진정 한 번이라도 기꺼워하고 행복해했는가.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오늘 밤 가슴 설레 본 적이 있었던가.
p.103
그런데 확실히 이즈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글 쓰는 일이나마 잘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 속 오솔길을 날마다 걸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요,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 하루라도 밥이 맛없어지지 않기를, 그러니까 날마다 먹는 밥맛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까 마치 내가 파파 늙은이 같아지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이런 상태가 편안하다. 밥 먹고 집 앞 오솔길을 걷고 글을 쓰고 사는 단순한 삶을 사랑하고 싶다.
p.113
공선옥, <마흔살 고백> 中
+) 나는 마흔살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 깊이 공감한다.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불행한 삶이다. 지금 주어진 일에 감사하게 여기는 것과,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가슴 설레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는 어떨까. 새삼 스스로에게 행복의 잣대를 대어보는 것이 쑥스러운 아침이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글 쓰는 일을 갖고 가끔 뒷산을 거닐며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사는 삶을 소망한다. 간절히 소망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자면 무던히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글을 쓰기 위한 삶에 전념해야 할테니 그게 어디 쉽겠는가. 마흔살은 어떤 기분일까.
10년 전 지금의 내 나이대를 상상하며 그때의 나는 무얼하고 있을까 상상하곤 했는데. 그 상상의 일부는 이루어졌으며 또 그 일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이 시점에서 10년 후를 상상한다. 그때는 어떨까.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 나이다. 무엇을 하든 이 책의 저자처럼 소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며 하루 하루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