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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p.27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히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p.165
“새미 엄마 잘 들어. 나 그 아이들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데 이건, 너무 아니야. 너무 아닌데, 그걸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 가더라도 말하고 가려는 거야. 이건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고.”
p.169
이거 어려운 싸움이야. 진실은 말이야, 그걸 지키려고 누군가 몸을 던질 때 비로서 일어나 제 힘을 내는 거야. 우리가 그걸 하찮게 여기고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힘을 잃어. 연두야. 네가 용기를 주어야 해. 진실에게 그리고 유리에게.... 넌 할 수 있어.
p.211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
p.257
공지영, <도가니> 中
+) 공지영이라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녀를 나의 영혼의 동반자로 생각한다. 그녀가 알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있어서 그녀의 글은 영혼을 꿰뚫을 정도로 공감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위대한 일이다.
<도가니>를 처음 읽으면서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말을 하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 사립학교에 뒷돈을 대고 들어간 남자, 남자는 그곳에서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젊었을 때의 열정으로 그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애썼으나 진실을 가장한 거짓으로 상처입고,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진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진실을 갈망하는 몇몇의 사람들로 인해 노력은 계속된다. 하지만 과연 그 끝은 어땠을까.
세상에 정의는 존재한다. 그러나 정의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아파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을 어찌해야 할까. 세상은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황금만능주의로 인해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관념이 퍼져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될지 모르겠으나, 세상에는 그 무엇으로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진실'과 '정의'라는 것이 있다.
진실을 위한 약자들의 투쟁이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사람들에게 반성을 요하고, 한번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진실을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