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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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집들이 각자알아서 높아진 마을.

좁아진 길만큼 마음도 좁아진다.

잘 살든지 말든지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가고

세금만 제때 내라 한다.

p.30  - [주차 전쟁]

 

바다가 나를 부르기 전에

바다로 등떠미는 풍경이 먼저 다가온다.

p.36  - [대형 할인매장]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들

더 나은 조건의 포장을 위해

사각의 틀에 기약없이 하루하루를 가두는

공공도서관의 아침.

p.46  - [구립도서관]

 

땅밑 세상이 안받쳐주면

땅위 세상도 다 헛거여

그게 세상 이치지....

p.98  - [배관공사]

 

 

최호철, <을지로순환선> 中

 

 

+) 이 책은 이야기그림책이다. 지인에게 선물 받으면서 무척 좋아했는데, 그건 저자의 생각이 나와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낱낱을 세밀하게 파헤치고 싶은 것. 그 한 장면을 포착하는 힘이 그에게는 있다. 스토리를 만화로 엮어내는 것보다 이처럼 삶의 단면을 그림으로 현현하는 방법이 훨씬 매력적이다. 그것은 짧은 순간이 힘이겠지만 그만큼 그 장소를 추억하는 힘이기도 할 것이다.

 

그림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림 속에는 아주 작고 세밀하더라도 인물들의 심리가 살아 있다. 말그대로 사진 보다 더 사진같은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인물들의 표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더랬다. 세상의 가장 낮고 깊은 곳, 그곳은 우리 가슴속의 저 한 자리가 아닐까.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에 반가움과 공감의 쓸쓸함과 희망의 웃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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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알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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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싫어. 내가 조르니까 만나자고 하는 거, 그건 진짜 최악이야. 사정사정해서 겨우 그런 말이나 얻어듣는 나도 진짜 최악이고.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여자 마음이란 걸 도통 모르는 거 같아서 한 가지 가르쳐주겠는데, 앞으로 어떤 여자가 다른 사람하고 자기하고 어느 쪽이 더 예쁘냐고 물어보면 거짓말이라도 좋으니까 그 여자라고 말해줘. 알겠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 한동안 전화 안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네네, 마음 껏, 실컷, 공부하시죠. 자, 그럼."
 나는 느릿느릿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지금 바로 다시 전화를 해줘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츠키는 하나도 나쁠 거 없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나쁜 건 백 퍼센트 내 쪽이었다. 게다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츠키 쪽에서도 지금쯤 내가 사과해오기를 전화기 앞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전화를 하지 않았다.

pp.84~85

 

"아유타, 좀 더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자기 좋을 대로 해봐. 젊은 나이에 너무 그렇게 냉정하고 철 든 사람 노릇은 이제 그만해. 아유타가 지금 보다 좀 더 자기 멋대로, 막무가내로 행동한다고 해도 지금 아유타가 염려하는 것만큼 힘들어질 일은 없어. 어머님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렇고 어느 누구도. 인간이란 아유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인한 존재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p.93

 

인간이란 압력솥과도 같은 것이다. 증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압력솥은 한계에 이르러 폭발하고 만다.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미쳐버리고 만다. 어딘가에서 슬픔이나 고통이라는 이름의 증기를 빼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울음이라는 행위는 인간에게는 그런 구멍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p.132

 

무라야마 유카, <천사의 알> 中

 

 

+) 자주 식사를 했고, 같이 어울려 놀던 여학생을 여자 친구인가보다 하고 지냈던 아유타. 그에게 그녀의 언니(하루히)가 첫사랑으로 다가온다. 우연히 만나서 서서히 마음에 담아두는 관계. 만원 지하철 안에서 어쩐지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었던 아유타. 그렇게 아유타의 첫사랑은 시작된다. 이 소설은 한편의 일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잔잔했는데, 의외의 파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랑을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느끼게 되는 것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아유타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하루히를 보면서,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나이나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마음의 기억으로만 확인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앞서는 사이, 그 두 사람이 모습은 충분히 그러했다. 아름다운 사랑이지만 의외의 결말에 가슴이 아프다. 첫사랑의 추억치고는 너무 아픈 기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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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랜덤 시선 21
장옥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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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툴두툴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달과 뱀과 짦은 이야기> 中

 

 

+) 나는 가끔 내가 생각하는 시가 무엇일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도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시가 무엇일까. 장옥관 시인은 시쓰기에 들어서는 첫 단계를 '관찰'로 선택한다. 일단 시인의 눈에 포착된 것에서 자신의 과거 혹은 그 순간의 감정을 입혀 시로 형상화해낸다. 그렇다면 감정은 또 시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자꾸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시에는 그만의 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어쩌면 사유를 끌어내는, 그러니까 사유를 표현해내는 힘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정형화된 틀을 갖고 있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무언가 파괴하고 깨드려야 할 것 같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 또 이것이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

 

아마도 장옥관 시인이 생각하는 시는 그의 시집에 실린 작품들일 것이고, 나 또한 '걷는다는 것'을 참 좋은 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밖의 다른 작품들에는 관찰의 힘에 덧입혀져야 할 시인만의 상상 혹은 사유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잘 헛갈리는 것은 이 시인이 분명 그것을 모를리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가 생각하는 시와, 내가 생각하는 시의 차이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평생의 고민, 시. 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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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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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그런 날은 미신이나 징크스를 믿지 않더라도, 아니 동그라미가 여섯 개나 찍히고 세금이 감면된 액수의 일거리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차라리 일을 받지 않고 쉬는 게 나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날은 기분이 좋지 않났다.

p.9 -[감상적 킬러의 고백]

 

"당신은 신도, 윤리도, 엘 판타날의 여신도 될 수 없소. 오르넬라 양, 당신 역시 부르주아를 죽도록 증오하는 또 하나의 부르주아일 뿐이니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고 말겠다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은 결정적인 카드 패를 집어들지 않았던 거요. 왜? 이른바 당신 같은 부르주아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 때문이오. 그들은 군불 속의 밤을 꺼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손을 이용한다, 그 말이오. 그것도 아주 철두철미하게. 자, 말하시오. 그 인디오는 어디 있소?"

p.174 -[악어]

 

루이스 세풀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中

 

 

+)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읽은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건 환경보호에 관한 인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이었는데, 이건 마치 추리영화를 보는 것처럼 즐거운 소설이었다. 감상적 킬러가 간직한 목소리는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많았는데, 사람을 죽이는 킬러 답지 않게 감상적이라는 점이 매우 특이한만큼 매력적이었다. 단숨에 두 편의 소설을 읽고 그의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아마도 벌써 만들어지진 않았을까. 흥미로우면서도 귀여운 추리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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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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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정말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일단 선택하면 그에 최선을 다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과감히 엎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앤드리아(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여주인공)처럼 말이다. 괜히 시대를 탓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탓하고, 애매한 사람에게 그 선택의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나에게 최악의 상황을 주었더라도 나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내 선택권이다.

pp.46~47

 

 가끔 누군가는 도망을 시도한다.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의 밧줄을 끊고 어디론가 떠나겠다는 자유를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도망은 회귀를 전제로 한다. 도망친다는 것은 자신의 본거지가 지금 머물고 있는 그곳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택한다고 할 것이지 굳이 도망이란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과 현재의 삶으로부터 도망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물론 도망쳐서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망은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탈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게다가 도망은 불확실한 세계로 자신을 던지는 것과 같다. 도망가서 머무는 그곳은 또 다른 현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pp.53~54

 

뚜렷한 목적지 없이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면 당신은 도망쳐서 자유를 얻는 게 아니라 당신을 더 옭아맬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을 만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망친 낯선 미지의 땅에서 해답을 찾기보다는 지금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할 수 있다.

p.56

 

가끔은 빈둥거릴 수 있는 자유를 자신에게 허락하라. 만일 빈둥거리다 영원히 뒤쳐질 것이 두렵거든 자신을 믿어라. 일중독자인 당신은 어느 정도의 휴식을 취한 후에는 다시 일에 열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고 또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휴식은 일과 마찬가지로 억지로라도 그 기회를 만들어야지 저절로 오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일을 핑계 대지말고 휴가 계획부터 세워라. 휴가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p.190

 

 

김혜남,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中

 

 

+)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작가의 말대로 나는 충분히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의 선택을 믿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거나 신뢰하지 못해서 망설이는 부분이 많다.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행동하자. 그리고 뚜렷한 목적지 없는 뜬구름 같은 자유보다 현실에서의 여유를 찾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의 사춘기인 서른 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신의 생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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