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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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행복, 또 다른 구매리스트 하나

 1. 오두막 한 채.

 2. 우정.

 3. 우월감과 거만함, 내분, 경쟁 등을 피하는 것.

 4. 사색.

 5. 조바니 벨리니의 <성스러운 대화>.

p.116

 

이를테면 발을 밟히는 것에서부터 뜻하지 않은 죽음까지 좌절의 영역은 엄청나게 넓을 수 있지만, 모든 좌절의 핵심에는 우리의 희망과 그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이라는 기본적인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p.129

 

 전통적인 위로의 형태는 당사자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근심하는 사람에게 그가 느끼는 두려움은 지나치게 과장되었으며 문제가 된 일들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풀려나갈 것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p.154

 

 물론 끔찍한 곤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삶은 다 힘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은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희미한 신호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p.353

 

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조망하는 시선이 유지된다. 작가는 이 여섯명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난해하게, 또 때로는 진지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논의한다. 철학 입문서로 분류하자면 너무 딱딱한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교양서적으로 분류하기에는 좀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보면 철학에 대해 어려움을 갖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정답게 다가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책으로 보인다. 또한 독자들이 철학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도록 여러 사진과, 그림, 그리고 철학자들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무엇보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들을 같이 공유하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돈의 결핍, 사랑의 고통, 부당한 대우,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순응에의 압력 등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처방전이 소개된다. 그것을 실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적어도 그런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이들이 있었다는 점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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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출근길
법륜스님 지음 / 김영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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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마음먹으면 후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망설이는 사람일수록 그만두면 괜히 그만뒀다고 곧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의 직장에 그냥 다니면서 이제부터 수행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수행해서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먼저 점검해 보십시오. 직장은 마음이 편안해진 뒤에 그만둬도 됩니다. 그러면 직장을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결혼 문제로 고민하거나 이혼을 망설이고 있을 때에도 먼저 정진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괴로움은 결혼을 안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결혼생활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니며, 자신의 무지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정진을 해서 지혜가 좀 생기면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고, 결혼을 결정한 후에도 함께 살면서 더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항상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 달라고 말합니다. 하고 안하고는 여러분 개인의 선택입니다. 망설여지는 선택은 이렇게 선택해도 후회가 되고 저렇게 선택해도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정진부터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자유로 가는 길입니다.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프면 그냥 놔두십시오. 어리석은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려놓으십시오.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정진을 하면 마음이 밝아지면서 저절로 결정이 나게 됩니다.

pp.19~20

 

제가 아는 분 중에 의사 선생님이 계신데, 늘 환자를 만날때마다 심리적 압박을 받습니다. 환자를 치료할 때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부담이 많았는데, 이분이 법문을 듣고 나서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내 일이고, 낫고 안 낫는 것은 그의 일이다. 또 안 나았다고 누가 항의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이것을 낫게 해줘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난 사실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분은 오히려 더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p.86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만 깨어 있으면 됩니다. 이 순간에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일어나는 겁니다.

p.117

 

법륜 스님, <행복한 출근길> 中

 

 

+) 스님의 법문을 생생하게 들은 것처럼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이다.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해주는 글이 전체 틀이나, 막상 읽으면 지금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의 어느 부분에 끼워넣어도 전혀 다름이 없다. 그만큼 우리 삶은 특별한 분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내가 삶의 어느 지점에 서 있더라도 당당할 수 있다. 또 그 당당함은 바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최선의 대안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정진하는 마음의 자세가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을 수양하는 일, 그것은 정신적인 부분 만이 아니라 운동이나 취미 생활 같은 것으로 스스로 행복함을 가꿔가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다. 그런 소중함이 스스로를 넉넉하게 만들면서 모든 선택에 앞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단단해져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남을 원망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당당해진다면 세상은 훨씬 행복해질텐데. 현대인이 잊어버리고 있는 그 점을 깨우쳐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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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장례 문학과지성 시인선 194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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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靜寺(안정사)'

 

안정사 玉蓮庵(옥련암) 낡은 단청의 추녀 끝

사방지기로 매달린 물고기가

풍경 속을 헤엄치듯

지느러밀 매고 있다

청동바다 섬들은 소릿골 건너 아득히 목메올 테지만

갈 수 없는 곳 풍경 깨어지라 몸 부딪쳐 저 물고기

벌써 수천 대접째의 놋쇠 소릴 바람결에

쏟아 보내고 있다

그 요동으로도 하늘은 금세 눈 올 듯 멍빛이다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않았다가 한다

 

가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

놋대접풍으로 쩔렁거려서

그리운 마음 흘러 넘치게 하는

바다 가까운 절간이다

 

 

김명인, <바닷가의 장례> 中

 

 

+) 얼마전 다녀온 바다의 차가운 해풍이 기억난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오랜만에 경이감을 느꼈다. 가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 만들어낸 꿈, 그 꿈처럼 어딘가를 향해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놋쇠 물고기. 나는 절에 갈 때마다 대웅전 처마 밑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 소리가 마치 나를 반기는 듯 하고 나의 영혼을 깨우는 듯하여 어느 절이라도 늘 풍경을 찾곤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풍경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은 없다.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수천 갈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줄 미처 몰랐다.

 

이 시집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길 위의 여행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곧 삶의 여행이기도 하다. 육체의 동적인 이미지와 정적인 이미지를 아우르는 것. 정신적인 성장까지 포함하여 시인은 길 위를 걷고 있다. "누구의 가담 없이도 우리 중심은 / 어느 틈에 변경된다, 시간을 건너지 않고서 무엇으로 / 우리가 늙는다 하겠느냐"([비오기 전에-인환에게] 부분) 화자의 걸음걸이는 공간의 이동 뿐만 아니라 시간의 이동까지 묘사한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그 여정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너는 희망을 말하지만 / 나는 가정의 한 끝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 길이 닫히고 / 길 밖에서 서성거리던 풍경들 지워진다 / 누구나 고단하게 저의 행로를 끌고 간다면 / 오늘 잡은 물고기들 다 놓아주리라," ([내 물길로 오는 천사고기] 부분) 아, 화자의 여행에서 여정보다 감상이 먼저 와 닿은 이유는 바로 화자의 길이 예정된 것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 길 위의 것들을 '가정'하는 것.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임시로 정하여 길을 걸을 때, 그 사람에게서 우리는 다음 걸음의 풍경을 보게 된다. 내면 풍경이든 길의 흔들림이든.

 

"그러나 돌아가는 것이라면 언제나 죽음은 / 예고된 저녁의 짧은 어스름을 거쳐가야 하는 것이리라"([부활] 부분) 시인에게 삶과 죽음은 예고된 것처럼 다가온다. 놀랍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는 분명 스스로 짐작하던 바였을 터. "내 걸어온 버릇으로 어느새 들길 그 어귀쯤에 닿았습니다"([수레국화 가을로 굴러가고] 부분) 라는 화자의 고백이 그를 증명한다. 물론 그것이 길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발자국마다 그가 살아온 경험과 앞으로 겪계될 일들이 새겨진다. "세상은 경험만큼 확실한 것이다"([겨울비] 부분) 화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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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故 김영갑 선생 2주기 추모 특별 애장판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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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게 우선이다. 나 자신이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고 표현할 때까지는 사진으로 밥벌이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

p.37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를 가나 방황하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사진에만 매달리다 보니 해를 거듭할수록 나를 이해해주던 사람들과도 멀어져갔다. 그래도 바느질에 열중하다 보면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래야 할 때는 바느질감부터 찾는다. 울적한 날에는 바느질이 최고다.

pp.64~65

 

 마라도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다. 물고기는 바다를 떠나 살지 못한다. 사람은 땅을 떠나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보아라.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아라.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를 보아라. 빗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식에 귀 기울이면 삶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p.157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中

 

 

+) 홀로 제주도에서 살아가던 사진작가가 루게릭 병에 걸려 그 생을 마감한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한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평생 그것을 업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사진을 찍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욕심이 없었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사는 스님들처럼, 그는 자신의 인연들과 관계를 끊고 제주도에 거주하며 오로지 사진만 찍으며 살았다.

 

그에게 죽음에 대한 예고는 어떻게 들렸을까. 나는 그가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이 선택한 자연으로의 품이 왜 부끄러운가. 속세의 시선에서 궁핍하게 보는 삶일지라도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게 아닌가. 물론 나라면 그곳에서 좀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족하게 살아도 사진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다. 그 점이 무척이나 존경스럽다.

 

이제 그는 떠나고 '두모악'이라는 갤러리만 남았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으로 제주도에 있는 김영갑 사진 갤러리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는 사진에 이름을 달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름이 사진을 제약하기 때문인데, 어쩌면 그런 시선이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에게 속박, 억압, 제약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물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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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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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좋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톨이로 돌아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란, 외롭지 않았던 적이 있는 자만이 두려워하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놈이 원하는 것도 나의 패인만큼이나 분명했다. 내 삶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 오만 가지 변덕과 의미없는 요구로 끝임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

pp.52~53

 

"미치광이는 미쳐야 사는데, 못 미치게 하니까 미쳐버린 거야."

p.130

 

 "나, 미스 리 선생님 좋아해. 정말로. 주제넘은 말이지만 선생님 볼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짠하고. 그러면서도 참 이상스러웠어. 이런 사람이 이런 데서 왜 이러고 사나. 그래서 원주에 시험 치러 갈 때 최기훈 선생한테 물어봤어. 미스 리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도망치는 병이라고 그러대. 그땐 최 선생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 그저 무식한 놈 소견으로 그러고 말았지. 자꾸 병원에서 도망쳐서 아버지가 이 산골짝에 가둔 거구나. 내가 거꾸로 생각했다는 걸, 이제 확실히 알겠어.“

 우울한 세탁부의 다음 말은 통렬하게 가슴을 찔렀다.

 “세상에서 도망치는 병이야. 자기한테서도 도망치는 병이고. 그렇지?”

pp.290~291

 

"아니, 내가 벼랑에 발끝으로 버티고 서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인정하면 선택해야 할 테니까. 발을 떼버리거나, 그날 밤을 끌어내서 진실과 대면하거나.“

p.324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中

 

 

+)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에 '미침' 혹은 '돌아버림'의 근성이 없는 인간이 있을까. 과격한 용어를 사용해서 좀 그렇지만 사이코나 사이코패스가 늘어가는 현실은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미침의 근성을 키우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미치는 걸까. 작자의 말대로 미쳐야 사는데 그렇게 못하게 하니 미쳐버린 걸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욕망때문이 아닐까 싶다.

 

욕망의 발현이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표출을 자제하는 억제가 문제다. 스스로 억제하는 것이든 타인이 억제하는 것이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것때문에 사람들은 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해도 되는 것일까. 거기서 바로 나와 타인 사이의 이기적인 면모가 발견되는 법인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표가 아닌 것 같다.(이 문제에 대해 그 끝까지 가보기에 늘 근원이 걸린다. 개인과 사회 사이의 선이 말이다.)

 

이 소설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환자들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정상인같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가위 알레르기가 있어서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를 굳이 가위와 바리캉으로 위협하는 사람이 과연 정상일까. 우리 사회에서 정상은 없지 않을까. 정상이라 규정하는 것은 또 어떻게 정해진 것인가. 병자보다 더 미친 것처럼 보이는 정상인을 볼수록 입안이 깔깔해지는 맛을 느꼈다. 오히려 작가는 지독하게 냉소적인 사람은 아닐까.

 

미친 사람과 미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의 차이다. 나는 오히려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 환자들에게서 생에 대한 의지와 삶에 대한 끈기를 보았다. 도박이나 하고 환자를 폭행하는 정상인(의사, 간호사, 보호자 등)에게서 광기를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 의지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 생존본능이 작동하는 법이다. 나를 억압할수록 상대에 대한 저항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그런데 과연 그 상대는 누구일까.

 

초반의 지루함을 견뎌내면 제법 알찬 소설 한 권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의 반전까지 접하면 솔직한 인간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 씁쓸하면서도 시원한 작품이다. 인간의 거대한 고민들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 무게만큼은 묵직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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