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잡상인 - 2009 제3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우승미 지음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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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못 본 척, 들려도 못 들은 척하는 건 쉽다. 그건 대부분 자기애에 기인한 자기방어이기 때문이다. 악취가 나도 못 맡은 척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색하면 안 된다는 의지보다 인상을 찌푸리라는 뇌의 신호가 더 빠르다. 뉴런의 전기신호 시스템에는 타인을 위한 갈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63

 

"동정은 내가 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거잖아. 너는 많이 아프구나, 나는 안 아픈데, 참 안됐다 얘. 그러니까 나쁜 거지. 아무리 같이 아파하는 척해도 고통은 공유할 수 없어. 고통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라고. 사실은, 얘는 정말 불쌍해, 그래도 나는 얘보다는 덜 불쌍해서 다행이야, 그러면서 자기 위안을 느낀다고. 그게 동정의 본질이야."

p.179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 사랑이라는 것, 늘 동정과 연민에서 시작돼.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픈 거잖아. 상대방의 고달픔을 보고, 너도 힘들구나,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 그렇게 생겨나는 감정이 동정이고 연민이야.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랑이든 희생이든 모두 동정과 연민의 바탕 위에 있어. 그러니까, 동정이든 연민이든 사랑이든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다 같은 거야. 철이씨,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위에 설 수 없어. 우리는 모두 다 아래에 있으니까."

p.180

 

"그런데 수치심이라는 게 말이야. 그렇게 나쁜 것만도 아니더라구.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더란 거지. 자기를 낮추어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고, 자기에게 기대는 사람을 받아 줄 수 있게 되는 거, 이게 바로 수치심의 긍정적인 면이야. 자신이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만이 타인에 대해서 배려든 관심이든 사랑이든 쏟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안그래, 동생?"

p.215

 

 

우승미, <날아라, 잡상인> 中

 

 

+) 소설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생각해온 수치심에 대해 새롭게 볼 수 있었어 놀라웠다. 긍정의 면도 있었구나 싶은 놀라움이랄까.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이 있다. 타인이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든 그들에게는 규칙이 있고 자부심도 있으며 그들만의 순위도 정해져 있다. 그것이 룰이다. 바로 삶의 룰이다.

 

타인을 동등하게 보는 시선,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동급이다라는 시선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의식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내가 상대의 우위에 서 있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그의 외양만을 보고 나를 상대에게서 낮추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어땠을까. 어쩜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철저하고 상대를 위, 아래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선에 있다. 그것을 알고 사람들을 본다면 훨씬 편안해질텐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소설 속의 잡상인, 철이는 수지를 만나면서 그것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것이다. 수지가 파는 수치심이라는 것, 물론 긍정의 면보다 부정의 면이 더 많다. 수치심을 팔면 팔수록 상대에게 기대게 될테니까.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그어버릴테니까. 하지만 수지의 말대로 그만큼 누군가의 의지를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아, 저 사람이 내게 기대려 하는구나.' 라는 감정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시선에 편견을 없앨수록 나도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도 훨씬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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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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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오래도록 함께 지낸 탓인지 나와 내 남자는 지금까지 대화라는 것을 별로 하지 않았다. 호기심과 흥분으로 충만했던 좋은 시절은 6, 7년 전에 이미 끝나 버렸다. 남은 것은 그저 집요하기만 한 애정 같은 것뿐, 이 사람밖에 없다는 어떤 신앙 같은 확신. 하지만 믿는 신도 의지할 가족도 없는 내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를 믿고 의지하고, 그리고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저녁나절의 가로수 같은 비가 내리는데도 오가는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알콩달콩 속삭이는 남녀와 몇 번이나 스쳐 지난다. 이 가운데 과연 얼마나,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을 '이 사람밖에 없다'고 믿고 있을까.

pp.10~11

 

"'그것'은, 살인자는, 사회적인 존재인 우리들 속에 숨어 살고 있어. 자신을 위해서 태연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겉보기는 어엿한 인간이지만, 한 껍질 벗겨 내면 돼지 같은 인간이지. 자신을 위해서만 살고, 자신과 자신의 육친만 사랑하는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양심조차 없는 괴물이지. 평소에는 조용하고 아주 선량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래 얼굴을 드러내. 내 눈은 '그것'을 가려낼 수 있어."

p.177

 

 

사쿠라바 가즈키, <내 남자> 中

 

 

+) 과연 '내 것'이라는 소유욕을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나와 다른 가 보다. 작가는 마치 '올드보이'의 한 장면이 연상되듯,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만남을 당차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반사회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까. 파격적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흥미롭게 서술되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올라가는 서술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며 신비감을 더해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작년에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꽤 놀랍다. 어찌보면 인간의 가장 사악하고 섬뜩한 면모를 주목하고 있는 작품인데, 아무리 잘 쓰여졌다하더라도 보수적인 사회에서 납득하기 힘든 작품이었을텐데. 평론가들의 평을 보니 '연애 소설' 혹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고 있었다. 글쎄, 과연 이 소설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작품 속 남녀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광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여주인공 '하나'는 어렸을 때 '준고'를 만났기에 올바른 이성관 형성이 불가능했고, 또한 '준고'는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모성으로 하나를 받아들였다. 그게 어떻게 남녀간의 사랑일까. 오히려 나는 그들의 시작은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그리움에서(이를테면 준고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하나가 아빠에 대한 애정이 있었듯이)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관계가 남녀사이의 애정으로 변모한 것이다. 물론 그것도 주인공들의 착각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고.

 

그러니까 결국 내 남자,라는 말은 남녀만의 애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이라 생각된다. 인간에 대한 소유욕, 그것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꽤 파격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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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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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되면 인생이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p.15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또한 단순해지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줄 안다. 불필요한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기 자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pp.22~26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도 하나의 '정진'일 수 있다.

p.33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그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친구란 주고받는 말이 없어도 마음이 편하고 투명하고 느긋하고 향기로운 사이다. 그 밖에 또 무엇을 찾는다면 그것은 헛된 욕심이고 부질없는 탐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p.176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中

 

 

+) 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보면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말을 참 좋아하는데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이 행복한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없다. 그 말은 곧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곧 아름다운 시작이고 마무리라는 말이다. 수행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지루함을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늘 그 순간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렵겠지만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산에서 혼자 사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것은 고독과 자기와의 싸움이지 않을까. 스님은 이 책에서 혼자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게으름은 큰 적이라고 말씀하셧다. 게으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조차 수행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타인과 경쟁하면서 살아가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라. 실상 가장 큰 적은 내 안의 나가 아니겠는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죽으면서 웃을 수 있을꺼라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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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시작시인선 82
길상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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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의 본능'

 

사과 껍질을, 배의 껍질을 벗기면서

그들 삶의 나사를 풀어놓는 중이라고

나는 기계적인 생각을 돌린 적 있다

속과 겉의 경계를 예리한 칼로 갈라

껍질과 알맹이를 나누려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몇 점씩 달라붙던 과일의 살점들,

한참 후 쟁반 위 벗겨놓은 껍질을 보니

붙어 있는 살점을 중심에 두고

돌돌 자신을 말아가고 있다 알맹이였던

그녀의 빈 자리 끌어안고 잠든 사내처럼

버려지고도 제 본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미 씨앗은 제 속을 떠났지만

과일 빛깔은 살갗에 선명하게 남았다고

그 빛깔 향기로 다 날릴 때까지

안간힘 다하고 있는 껍질들,

너무 쉽게 변색되어 갈라지던 마음을

저 껍질로 멍석말이 해놓고

흠씬 두드려 패고 나면 다시 싱싱해질까

말려진 껍질 속에 드러눕고 싶었다

 

 

길상호, <모르는 척> 中

 

 

+) 젊은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를 이루는 환상적이고 형식파괴적인 시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 우선 좀 새로웠고, 기존의 전통 시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에 좀 당황스러웠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전통시학을 구성하는 젊은 시인 한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게 된 듯 하다. 시인은 "몇 개 상처를 정강이에 새기며 / 오래오래 걸은 후에야 / 집 하나 겨우 얻"은 것처럼 시를 썼고, "불안한, 너의 생을 눕혀놓고서 / 살살 다독이고 싶었"던 간절함으로 시를 썼다.  왜냐하면 "상처는 상처로 치유될" 것 같았기에 그에게 상처는 시를 태어나게 하고 시로 그것을 감싸게 만든다. ([물의 집을 허물 때] 부분)

 

우리는 누구나 "한 마리 이무기였다 / 천년을 기다려야 여의주 물고 / 승천할 수 있다는 불완전의 생"을 살아간다. "온몸으로 부딪히며 저 완고한 바위를 깎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걸어야 할 수많은 고난과 시련의 생이 완전을 꿈꾸는 것은 아니겠으나, 걸으면서 살아가면서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넘어가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강에서 시작된 수 천리 길, / 숱한 상처들 힘이 되어 / 여기 와 꿈틀대는 것이리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그것은 곧 "나의 길이 될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탁족은 뜨거워라] 부분)

 

그렇게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 사람 혹은 사물 그리고 자연까지, 그것이 무엇이든 시인에게는 소중한 것들이다. 아니, 그 인연과의 만남을 만들어가고 지켜가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다. "이제 인연 하나 더 쌓는 일보다 / 사람과 사람 사이 벌어진 틈마다 / 잔돌 괴는 일이 중요함을 안다 / 중심은 사소한 마음들이 받칠 때 / 흔들리지 않는 탑으로 서는 것,"이므로. ([돌탑을 받치는 것] 부분) 흔들리는 않는 생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 그리고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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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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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또 다른 구매리스트 하나

 1. 오두막 한 채.

 2. 우정.

 3. 우월감과 거만함, 내분, 경쟁 등을 피하는 것.

 4. 사색.

 5. 조바니 벨리니의 <성스러운 대화>.

p.116

 

이를테면 발을 밟히는 것에서부터 뜻하지 않은 죽음까지 좌절의 영역은 엄청나게 넓을 수 있지만, 모든 좌절의 핵심에는 우리의 희망과 그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이라는 기본적인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p.129

 

 전통적인 위로의 형태는 당사자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근심하는 사람에게 그가 느끼는 두려움은 지나치게 과장되었으며 문제가 된 일들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풀려나갈 것이라고 설명하면 된다.

p.154

 

 물론 끔찍한 곤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삶은 다 힘겹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은 완성된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모든 고통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희미한 신호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의 정도에 따라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고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한다.

p.353

 

알랭 드 보통,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조망하는 시선이 유지된다. 작가는 이 여섯명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난해하게, 또 때로는 진지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논의한다. 철학 입문서로 분류하자면 너무 딱딱한 생각이 들고, 그렇다고 교양서적으로 분류하기에는 좀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보면 철학에 대해 어려움을 갖고 있는 우리를 위해서 정답게 다가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책으로 보인다. 또한 독자들이 철학에 대해 어려워하지 않도록 여러 사진과, 그림, 그리고 철학자들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무엇보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우리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고민들을 같이 공유하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돈의 결핍, 사랑의 고통, 부당한 대우,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순응에의 압력 등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처방전이 소개된다. 그것을 실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적어도 그런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이들이 있었다는 점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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