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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몸속 어느 통로가 고장 나거나 감염된 걸까? 머릿속의 생각이 입이라는 기관을 통해 시원하게 나오려면 반드시 글자라는 여과기를 거쳐야 하니. 내게 있어 글자는 무기력하게 빠져 게으르게 허우적대는 시냅스를 자극하는 신경전달물질이었다. 그게 없이는 내 생각도 내 것이 아니었다. 생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무엇, 출력해봤자 이면지 낭비밖에 안 되는 오류 메시지. 잇새로 움푹 잘려나가고 군데군데 송송 구멍이 난 불완전한 말마디들.
p.15
배 선생이 내게 사소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얹어주어 무게감과 압박감을 키운 것 못지않게, 그녀 자신에게도 누적되는 고통들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은 쉽게 갔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그러나 마치 원소들이 모여 분자를 이루는 것처럼.
......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p.32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
p.139
-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 거야.
p.176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中
+)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정신적인 성장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드라마보다 신비 혹은 판타지를 선택한 것이 맞다. 처음에는 여느 소설과 다르지 않게 재구성된 가정에서 적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그가 선택한 탈출구 아니, 현실의 도피처는 자주 빵을 사러 갔던 '위저드 베이커리'이다. 자신이 겪기 전에, 그러니까 그곳에서 지내기 전에는 믿지 않았던 마법사의 빵을 차차 믿게 되는 소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법에 중심을 두고 읽기 보다 오히려 현실의 도피에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곳의 빵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타인을 향한 분노, 절망, 사랑, 애증 등의 감정 때문에 현실을 바꾸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의 도피가 아닐까.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시공간을 벗어나길 원한다. 그 간절함을 마법의 빵으로 해결해주는 마법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런 마법의 빵에는 반드시 부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빵을 구입한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것인데,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법사를 원망한다. 현실에서의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속한 현실이 싫어서 도피하는 술책을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책임에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든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제법 구미가 당기는 소설이다. 지루한 서사가 아니라 흥미로운 서사적 장치들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좋다. 그들 자신의 욕망을 풀어낸 소설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