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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서로 너무 다른 것이 신기해 기웃거리다가 자석처럼 딱 붙어버린 걸 보니 진짜로 상극인가 보다. 상극끼리 만나서 치고받고 물고 밀고 하다 보니 그 관계 안에서만 성립되는 묘수를 터득해 이제는 같이 늙어갈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인간관계도 건축 설계와 똑같다.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능성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안을 하나 골라 끈질기게 갈고 닦아 최고의 답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pp.6~7
나는 내가 쓴 글을 즐겨 읽는다. 두고두고 문장을 손보고 다듬는 재미도 재미지만, 마치 남의 내면을 훔쳐보듯이 그 글을 썼던 당시의 내 심리를 엿보는 맛도 새삼스럽다. (.........)
그래서 그런지 가끔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읽으며 남의 글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얘기라는 걸 깜빡 잊고 누군지 참 재밌게도 산다고 선망을 품기도 한다. 그러다가 후딱 제정신이 들면 그 글이 진짜 내가 현재 느끼는 삶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글에서 내 삶을 미화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엄중하게 검토한다.
p.19
젊은 시절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 존중했다. 아디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내가 거기에 맞췄다. 책을 많이 읽어줬지만 아이들이 글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제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알파벳이 세 개 들어가는 이름만 쓸 줄 알았지 성은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인생에 유익한 일이지, 그 나이에 남보다 조금 더 먼저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p.101
하지만 세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의 판단을 부모가 어떻게 믿어 줄 수 있을까? 독일어에 '머리로 하는 결정'과 '배로 하는 결정'이라는 말이 있다. 이성으로 하는 결정과 감정을 앞세운 결정이란 뜻이다. 아이들은 주로 배로 결정을 내린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어른인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 딴에는 머리를 쓴다지만 결국은 느낌이나 감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다. 머리에서 나오는 끝말잇기식 논리는 단편적이어서 당장에 주장하기는 명쾌하지만 두고두고 꺼림칙하기 떄문이다.
p.110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中
+)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오늘 하루 불행하게 사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그건 어디까지나 오늘 하루만 생각한 것에서 나온 사실인데 불행한 사고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늘 그 점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물론 오늘 하루만 살 수는 없다.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듯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을 우려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가족을 보았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당당한만큼 솔직하다. 아니, 솔직한만큼 당당하다고 해야 할까. 그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끝없이 행하는 노력, 그리고 만족이다. 무엇이 주어지든 그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삶. 노력의 대가를 사회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한 선에서 만족하는 것. 글쓴이에게 만족이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다. 손을 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나는 작가를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어머니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존중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을 닮고 싶은지 모르겠다. 절약하는 삶을 실천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챙길 줄 아는 멋진 삶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자녀들에 대한 그녀의 교육관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우리 나라 부모들은 대개 자식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기에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준다. 그러나 주는 만큼 바라기에 아이들은 괴롭다.
하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자신의 삶에서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기에, 아이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틀로 삼고 교육을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 그것만큼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일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공부때문에 걱정하는 학교 선생님들을 '우리 아이들은 인성이 좋으니까 괜찮아요.'라고 위로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강하고 현명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가 본 이 책 속의 글쓴이는 현명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행복한 여자이다. 그 삶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