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발터, 아주 특별한 인생을 만나다
발터 로트실드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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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삶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스티브에게 두 번째 죽음이었습니다. 첫 번째 죽음에서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를 끝냈습니다. 처음에 그는 여기 있는 것들, 여기 모인 사람들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가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여러분이 그를 그리워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그렇겠지요. 하지만 두 번째 죽음을 맞아, 그는 다음에 어떤 삶이 있든간에 그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배운 대로 말입니다.

p.84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우리 유대인에게는 지옥이 필요 없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이 지옥이란 뜻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에겐 천당도 필요 없다. 이 세상이 이미 천당이기 때문이다.

p.142

 

“비결은 누가 뭐라 해도 먼저 주는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먼저 줘야 되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주지, 빼앗지 않습니다. 물론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받는 것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었다는 즐거움, 또 그의 사랑이 기꺼이 받아들여졌다는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p.171

 

발터 로트실드, <랍비 발터, 아주 특별한 인생을 만나다> 中

 

 

+) 저자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저자가 직접 겪었거나 혹은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 근거하여 추측으로 썼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작은 감동을 전해준다. 누구나 처한 상황이 다르듯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겠지만, 이 책에 실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진실하고 현명하게 행동한다.

 

랍비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부분에서 서술자는 솔직하게 글을 풀어간다.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자신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는 그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와 진실이 있는데, 이 책은 그것에 다다르기 위해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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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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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중년이 되면 저렇게 아랫배가 늘어지고 온몸이 부풀어오르는 것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뚱어리에 대해서조차 관대해진다는 것일까. 그러는 새에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해지고 자신 없어질 테지. 때때로 참혹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p.9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 심장을 찌르고 지나가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죽음에 임박한 어머니가 전 생을 통해 얻어낸 결론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을 기억하고 싶었다.

p.33

 

"미련이 많은 여자에요. 당신. 미련이 많으면 인생이 고달퍼지는 법이죠."

p.94

 

"그래도 아주 죽는 것보닷 낫잖아요. 살아 있으면서 잃어버리는 게 낫잖아요. 잃어버리게 된 건 그대로 잊는 거에요. 당신 인생엔 아직 시작도 못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거 말예요......."

p.110

 

조경란, <식빵 굽는 시간> 中

 

 

+) 조경란은 한 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1996년)과 문학동네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가이다. 능력도 있겠지만 운도 좋은 작가이다. 꽤 오랜만에 그녀의 초기작을 읽어보았는데, 침착한 문체는 처음부터 시작되었구나 싶었다.  이렇듯 신인의 문체가 안정적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오랜 시간의 숙련기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을 절제하며 구사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이 글에서도 이모인 줄 알았던 사람이 실제 친어머니이며, 그래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외면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 스토리 외에 빵을 굽는 여자의 일상이 겹쳐지는데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다.

 

빵을 만드는 과정과 각각의 빵이 갖고 있는 속성을 인물과 사건에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점은 소설의 흥미를 더해준다. 서사의 비밀에 출생의 비밀이라는 설정은 참신하진 않지만, 빵과 삶을 대응시키는 것은 당시에 참신했으리라 생각된다. 단순히 가족사의 측면을 벗어나서 나이 서른의 제빵 기술을 배우는 여자의 삶으로 돌아가서 소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밀에 얽힌 가족사는 그녀의 생 일부에 불과하기에, 그녀에게 중심은 그녀 스스로를 알차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그건 불과 주인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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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따라기 감자 외 6편 홍신 한국대표단편선 1
김동인 지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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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시끄럽소. 노망했소? 당신은 당신이 죽겠다고 걱정하지만, 그래 당신만 사람이란 말이오? 이 방 사십여 명이 당신 하나 나가면 그만큼 자리가 넓어지는 건 생각지 않소? 아들 둘 다 총에 맞아 죽은 다음에 뒤상 하나 살아있으면 무얼 해? 여보!"

p.108  - [태형]

 

"말하자면 죄는 '기회'에 있는데, '기회'라는 무형물은 벌을 할 수가 없으니깐 그 신사를 가해자로 인정할 수밖에는 지금 없지요."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 -- 사람의 천재라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기회'가 없으면 영구히 안 나타나고 마는 일이 있는데, 그 '기회'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천재'와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내었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하여야겠습니까, 축복하여야겠습니까?"

p.133  - [광염소나타]

 

자기 설움은 약한 자의 슬픔에 다름없었다. 약한 자기는 누리에게 지고 사회에게 지고 '삶'에게 져서, 열패자의 지위에 이르지 않았느냐? 약한 자는 이환에게 사랑을 고백치 못하고, S와 혜숙에게서 참말을 듣지 못하고, 남작에게 더 저항치를 못하고, 재판석에서 좀더 굳세게 변론치 못하여, 지금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느냐?

p.268  - [약한 자의 슬픔]

 

약한 자의 슬픔! - 그는 생각난 듯이 중얼거렸다. - 전의 나의 설움은 내가 약한 자인 고로 생긴 것밖에는 더 없었다. 나뿐이 아니라, 이 누리의 설움, 아니 설움뿐 아니라 모든 불만족, 불평들이 모두 어디서 나왔는가? 약한 데서! 세상이 나쁜 것도 아니다. 인류가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다만 약한 연고인밖에 또 무엇이 있으리요. 지금 세상을 죄악 세상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이 - 아니, 우리 사라밍 약한 연고이다. 거기는 죄악도 없고 속임도 없다. 다만 약한 것! 약함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 인류에게는 싸움이 안 그치고 죄악이 안 없어진다. 모든 죄악을 없이하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하여야 하고, 지상 낙원을 세우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하여야 한다.

p.274  - [약한 자의 슬픔]

 

 

김동인, <배따라기, 감자 외> 中

 

 

+) 김동인의 작품에는 하층민으로서의 설움이 약한 자의 슬픔으로 드러난다. 어떤 상황에 처했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대한의 행위를 아주 나약한 것으로 드러내는 사람. 목숨 걸고 행한 일도 자신의 목숨을 앗아버리는 결과로 드러내는 사람(복녀). 그런 사람들이 김동인의 작품에는 많이 등장한다. 또한 예술적인 광기가 온몸에 서린 사람들도 있다.(솔거)

 

[광화사]의 솔거는 그림을 통해 사회를 초월한 존재를 그리고 싶어했는데 소경 처녀를 만나 그녀의 순수한 눈빛을 그리고자 했었는데, 자신에 의해 세속적인 욕망을 알게 된 소녀가 그 눈빛을 잃어버린 것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인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미인도의 눈동자가 그려지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아 광인이 된다.

 

김동인의 작품에는 충격적인 반전과 복선이 늘 깔려 있다. 그만큼 일제 강점하 우리 민족의 처절한 생활상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아도 작품의 묘미를 살려주는 충격적인 복선은 훌륭하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받으며 살아가지만 진실한 사람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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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외제니 베글르리 지음, 이소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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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말은 그대를 다른 유일한 존재에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준다. 그들이 놀라도 받아들여라.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대의 행동은 그대에게서 출발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대 안에 시작의 은총이 있으니 지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대의 행동은 결정하자마자 그대에게서 벗어나고 그 결과는 파도처럼 밀려온다.
 

침묵하는 대신에 말하고 실행하거나 감내하는 대신에 행동하라. 이로부터 의미가 솟아날 것이다.

- p.91

 

 고독한 편이 더 좋은가? 그러나 그대의 지혜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으면 메말라 버릴지 모른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남의 마음에 들려고 신경쓰는가? 그러나 남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벗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pp.149~150

 

불안을 아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경험한 적이 없어서, 또는 그 속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길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맞서야 하는 모험이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 올바로 알게 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인간이 천사나 짐승이라면 불안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총합체인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외부에서 그에게 부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 의해 생겨난 불안이 깊을수록 그는 더욱 인간답다. ....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 ... 그리고 가능성은 가장 명백한 범주다.

-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p.175

 

"자유가 가장 어려운 것인 까닭은 매순간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p.198

 

 

외제니베글르리,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中

 

 

+)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과의 관계, 시간, 죽음, 자유, 사랑, 기쁨을 테마로 철학자들의 생각을 필두로 글로 펼쳐낸다. 철학자들의 생각보다 오히려 그것을 쉽게 풀어낸 글쓴이의 사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있지만, 그래도 읽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자신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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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랜덤 시선 7
김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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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사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파헤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을 어제까지 휴지로 덮어두었다는 건 우리 생각이고 내 생각은 또 다르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한편으로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심지어 나한테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모른 척할 때가 더 많다 모른 척하고 넘어갈 때가 더 많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더 용서받지 못할 인간인가 그렇다와 아니다 사이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불충분하다는 증거다 내가 나를 방면하는 것도 우리가 눈감아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모른 척할 때가 더 많다 모른 척하고 넘어 갈 때가 더 많다 나는 끝까지 결백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파헤치고 싶을 때만 파헤친다 그럴 때가 더 많다

 

 

김언, <거인> 中

 

 

+) 나를 쪼개어 본다면 어떻게 나누어질까? 그것이 가능할까? 그의 시에는 유달리 '입술, 이빨, 혀, 코, 입, 눈, 얼굴, 몸'등의 신체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그게 신체의 일부인지, 화자의 전부인지, 화자를 대신하는 대유적 표현인지 구분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건 '나' 혹은 '우리'로 설명하고 있는 위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가 아니라 우리이며 우리는 나이다. 결국 '나'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생성되는 자아와 본래의 자아로 나뉘는데, 그것이 곧 우리이자 나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이러한 경계지음에 대해 조롱하며 경계없음의 실체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마멸하고 없는 순진한 돌덩이가 그의 얼굴이다. /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앞에서 봐도 투명하고 / 뒤에서 봐도 덩어리가 분명한 공기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 / 그 자리의 공기는 그 자리의 공기를 향해서 달려간다"([불멸의 기록]) 공기가 공기에게 달려가는 것, 공기의 일부, 그리고 공기의 실체, 그것은 곧 공기이다.

 

시인은 잘게 부수거나 나누고 혹은 합치거나 섞어도 결국 그 자체의 공기가 되는 성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성질은 추상적인 관념에도 적용되는데 '불안, 공포, 죽음, 침묵' 등이 그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것을 향해 가는 것, 그렇게 무수한 변화와 변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결국 본래로 돌아가는 것. 이 시집에서 시인은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서 본래의 자기를 되찾는 공간으로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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