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따라기 감자 외 6편 홍신 한국대표단편선 1
김동인 지음 / 홍신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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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시끄럽소. 노망했소? 당신은 당신이 죽겠다고 걱정하지만, 그래 당신만 사람이란 말이오? 이 방 사십여 명이 당신 하나 나가면 그만큼 자리가 넓어지는 건 생각지 않소? 아들 둘 다 총에 맞아 죽은 다음에 뒤상 하나 살아있으면 무얼 해? 여보!"

p.108  - [태형]

 

"말하자면 죄는 '기회'에 있는데, '기회'라는 무형물은 벌을 할 수가 없으니깐 그 신사를 가해자로 인정할 수밖에는 지금 없지요."

"그렇습니다."

"또 한 가지 -- 사람의 천재라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기회'가 없으면 영구히 안 나타나고 마는 일이 있는데, 그 '기회'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천재'와 '범죄 본능'을 한꺼번에 끌어내었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저주하여야겠습니까, 축복하여야겠습니까?"

p.133  - [광염소나타]

 

자기 설움은 약한 자의 슬픔에 다름없었다. 약한 자기는 누리에게 지고 사회에게 지고 '삶'에게 져서, 열패자의 지위에 이르지 않았느냐? 약한 자는 이환에게 사랑을 고백치 못하고, S와 혜숙에게서 참말을 듣지 못하고, 남작에게 더 저항치를 못하고, 재판석에서 좀더 굳세게 변론치 못하여, 지금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느냐?

p.268  - [약한 자의 슬픔]

 

약한 자의 슬픔! - 그는 생각난 듯이 중얼거렸다. - 전의 나의 설움은 내가 약한 자인 고로 생긴 것밖에는 더 없었다. 나뿐이 아니라, 이 누리의 설움, 아니 설움뿐 아니라 모든 불만족, 불평들이 모두 어디서 나왔는가? 약한 데서! 세상이 나쁜 것도 아니다. 인류가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다만 약한 연고인밖에 또 무엇이 있으리요. 지금 세상을 죄악 세상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이 - 아니, 우리 사라밍 약한 연고이다. 거기는 죄악도 없고 속임도 없다. 다만 약한 것! 약함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 인류에게는 싸움이 안 그치고 죄악이 안 없어진다. 모든 죄악을 없이하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하여야 하고, 지상 낙원을 세우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하여야 한다.

p.274  - [약한 자의 슬픔]

 

 

김동인, <배따라기, 감자 외> 中

 

 

+) 김동인의 작품에는 하층민으로서의 설움이 약한 자의 슬픔으로 드러난다. 어떤 상황에 처했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대한의 행위를 아주 나약한 것으로 드러내는 사람. 목숨 걸고 행한 일도 자신의 목숨을 앗아버리는 결과로 드러내는 사람(복녀). 그런 사람들이 김동인의 작품에는 많이 등장한다. 또한 예술적인 광기가 온몸에 서린 사람들도 있다.(솔거)

 

[광화사]의 솔거는 그림을 통해 사회를 초월한 존재를 그리고 싶어했는데 소경 처녀를 만나 그녀의 순수한 눈빛을 그리고자 했었는데, 자신에 의해 세속적인 욕망을 알게 된 소녀가 그 눈빛을 잃어버린 것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인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미인도의 눈동자가 그려지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아 광인이 된다.

 

김동인의 작품에는 충격적인 반전과 복선이 늘 깔려 있다. 그만큼 일제 강점하 우리 민족의 처절한 생활상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아도 작품의 묘미를 살려주는 충격적인 복선은 훌륭하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받으며 살아가지만 진실한 사람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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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외제니 베글르리 지음, 이소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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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말은 그대를 다른 유일한 존재에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준다. 그들이 놀라도 받아들여라.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대의 행동은 그대에게서 출발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대 안에 시작의 은총이 있으니 지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대의 행동은 결정하자마자 그대에게서 벗어나고 그 결과는 파도처럼 밀려온다.
 

침묵하는 대신에 말하고 실행하거나 감내하는 대신에 행동하라. 이로부터 의미가 솟아날 것이다.

- p.91

 

 고독한 편이 더 좋은가? 그러나 그대의 지혜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으면 메말라 버릴지 모른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남의 마음에 들려고 신경쓰는가? 그러나 남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벗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pp.149~150

 

불안을 아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경험한 적이 없어서, 또는 그 속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길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맞서야 하는 모험이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 올바로 알게 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인간이 천사나 짐승이라면 불안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총합체인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외부에서 그에게 부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 의해 생겨난 불안이 깊을수록 그는 더욱 인간답다. ....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 ... 그리고 가능성은 가장 명백한 범주다.

-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p.175

 

"자유가 가장 어려운 것인 까닭은 매순간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p.198

 

 

외제니베글르리,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中

 

 

+)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과의 관계, 시간, 죽음, 자유, 사랑, 기쁨을 테마로 철학자들의 생각을 필두로 글로 펼쳐낸다. 철학자들의 생각보다 오히려 그것을 쉽게 풀어낸 글쓴이의 사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있지만, 그래도 읽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자신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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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랜덤 시선 7
김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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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사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파헤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을 어제까지 휴지로 덮어두었다는 건 우리 생각이고 내 생각은 또 다르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한편으로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심지어 나한테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모른 척할 때가 더 많다 모른 척하고 넘어갈 때가 더 많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더 용서받지 못할 인간인가 그렇다와 아니다 사이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불충분하다는 증거다 내가 나를 방면하는 것도 우리가 눈감아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모른 척할 때가 더 많다 모른 척하고 넘어 갈 때가 더 많다 나는 끝까지 결백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파헤치고 싶을 때만 파헤친다 그럴 때가 더 많다

 

 

김언, <거인> 中

 

 

+) 나를 쪼개어 본다면 어떻게 나누어질까? 그것이 가능할까? 그의 시에는 유달리 '입술, 이빨, 혀, 코, 입, 눈, 얼굴, 몸'등의 신체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그게 신체의 일부인지, 화자의 전부인지, 화자를 대신하는 대유적 표현인지 구분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건 '나' 혹은 '우리'로 설명하고 있는 위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가 아니라 우리이며 우리는 나이다. 결국 '나'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생성되는 자아와 본래의 자아로 나뉘는데, 그것이 곧 우리이자 나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이러한 경계지음에 대해 조롱하며 경계없음의 실체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마멸하고 없는 순진한 돌덩이가 그의 얼굴이다. /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앞에서 봐도 투명하고 / 뒤에서 봐도 덩어리가 분명한 공기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 / 그 자리의 공기는 그 자리의 공기를 향해서 달려간다"([불멸의 기록]) 공기가 공기에게 달려가는 것, 공기의 일부, 그리고 공기의 실체, 그것은 곧 공기이다.

 

시인은 잘게 부수거나 나누고 혹은 합치거나 섞어도 결국 그 자체의 공기가 되는 성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성질은 추상적인 관념에도 적용되는데 '불안, 공포, 죽음, 침묵' 등이 그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것을 향해 가는 것, 그렇게 무수한 변화와 변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결국 본래로 돌아가는 것. 이 시집에서 시인은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서 본래의 자기를 되찾는 공간으로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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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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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며 축적이란 말도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것에 몸달아 본 적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분방스럽고 다양해도 사실 그가 취해온 삶의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자기를 사로잡는 여러 개의 충동 중에서 가장 강한 것에 사회적인 통념이나 도덕적 비난에 구애됨이 없이 충실하는 것, 말하자면 그것이 그를 이해하는 실마리이기도 한 그의 행동 양식이었다.

- [금시조]

 

하지만 싸운다는 것도 실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그러했고, 누구와 싸워야 할지가 그러했고, 무엇을 놓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가 그러했다. 뚜렷한 것은 다만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뿐- 다시 한 번 어른들 식으로 표현한다면, 불합리와 폭력에 기초한 어떤 거대한 불의가 존재한다는 확신뿐- 거기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대응은 그때의 내게는 아직 무리였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마흔이 다 된 지금에조차도 그런 일에는 온전한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 둔 왕국을 허물려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실은 그거야말로 굴종이며, 그의 질서와 왕국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전제와 결합되면 그 굴종은 곧 내가 치른 대가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한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이문열 문학상 수상 작품집> 中

 

 

+) 이문열이란 작가의 행적에 대해 말이 많고, 그의 소설에 대한 평자들의 판단도 극과 극을 달리며 논란이 많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재미있는 만큼 치열하게 글을 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어떻게 권력에 순응하여 가는지 철저하게 분석한 소설로서 권력과 순종, 타협과 비굴, 반항과 순응의 논리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초등학생 교실을 배경으로 초등학생인 석대와 병태의 지배 구조는 사회의 지배 구조와 흡사하다.

 

그 속에서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의 힘과 단맛 그리고 쓴맛까지 모두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 어떤 사회학적 이론보다도, 어른들의 사회에서 보게되는 장면보다도 정확하게 우리의 머리에 새겨진다. 학생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가는 작품이다. 이 외에 <금시조>, <시인>, <시인과 도둑> 등의 작품은 당시 작가가 짚어주는 당대의 문제점을 보게 된다. 작가에 대한 여러가지 평들을 떠나서 일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권력자와 그 아래 소시민들의 구도를 잘 제시한 작품으로 수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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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랜덤 시선 9
안현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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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물회'

 

말린 물고기만 씹으며 겨울을 난 사내가

물고기를 물에 말아 알뜰하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다

사랑할 때 애인의 몸을 뜯어 먹는 여자처럼

 

시든 언어만 씹으며 늙어가는 여자가

언어를 언어로 꿰어 멸망한 부족의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

죽을 때 스스로의 몸을 깊은 숲에 두는 족장처럼

 

사위어가는 것들의 모든 우울함으로 꽃은 피고

우울한 물고기의 이름은 우울한 물고기다

그것이 한계다

 

한계와 임계 사이에 언어가 있다

언어는 우울한 물고기 이름이다

이를테면 제대로 실패한 자만이 실패를 싱싱하게 맛볼 수 있다

 

 

안현미, <곰곰> 中

 

 

+) 안현미의 시는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상상의 세계로 꾸며졌다. 그것을 환상의 표상들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 근원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시인은 서정적인 틒 안에서 도발적인 시적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 근접한 것임에도 불구고하고 시인의 작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서정을 끌어들인다. 그것을 이해하느냐 혹은 이해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안현미의 시를 극과 극으로 판단하는 결과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인이 환상적인 표징들보다 좀더 서정에 공들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상상의 세계에서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 시인, 혹은 언어, 인간 등등 뿌리는 그것에서 시작하여 지나치게 많은 가지를 치고 만들어졌다. 시인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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