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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외갓집의 가훈은 '아마 어떻게 잘되겠지'일 것이다. 아니 '무조건 잘 될 것이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쨌든 외갓집 식구들은 다 '잘 되었다.' 외할 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아프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미리 걱정하면 무슨 소용 있겠어. 닥쳐서 걱정해도 늦지 않아. 곰곰히 생각해보고 바꿀 수 있는 일이면 열심히 준비해야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면 얼른 단념하고 재밌게 지내는 거야." 했다.
p.32
"엄마를...... 쉽게 용서하려고 하지 마. 새엄마도........ 아빠도...... 쉽게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구. 그건 미움보다 더 나빠. 진실이 스스로를 드러낼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어서 우리에게 진정한 용서를 빼앗아갈 수 있으니까."
p.57
"어떤 순간에도 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돼. 너도 모자라고 엄마도 모자라고 아빠도 모자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자람 때문에 누구를 멸시하거나 미워할 권리는 없어. 괜찮은 거야. 그담에 또 잘하면 되는 거야. 잘못하면 또 고치면 되는 거야. 그 담에 잘못하면 또 고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 거야.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냈어."
p.85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엄마는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 위녕, 그걸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 때 배가 그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듯이, 마주 서서 가는 거야. 슬퍼해야지.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때까지 슬퍼해야지. 원망해야지, 하늘에다 대고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하고 소리 질러야지. 목이 쉬어 터질 때까지 소리 질러야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실컷 그러고 나서....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말해야 해. 자, 이제 네 차례야, 하고."
p.178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中
+) 누군가 물었다. "공지영의 문학이 좋아?" 그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응" 상대는 의아한 표정으로 같은 소재를 되팔아먹는 작가라고 비난했고, 나는 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인간의 삶에 더 다른 무엇이 있어?" 공지영은 그런 비난을 받아도 웃어 넘겨야 한다. 그녀의 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고 눈물이 된다. 그러니까 기죽거나 속상해할 필요 없이 가볍게 웃어 넘겨야 한다.
운동권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때에도,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쓸 때에도, 끝없는 사랑에 대해 말할 때에도, 여성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토로할 때에도, 작가가 잊지 않고 있는 하나는 '인간'이라는 단어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는 '인간에 대한 예의'는 나 또한 매우 좋아하는 말이다. 그녀의 글에는 사람이 살아 있고 마음이 살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지영이라는 여자는 참 대담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낱낱이 까발리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그리고 또 지금도 상처를 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처를 받을 때마다 스스로 그것과 맞서 싸우고 이겨내려 노력한다. 이 책에서 '위녕'이란 자신의 딸을 주인공으로 세워 줄줄이 읊고 있는 것도 '엄마'로서의 자신보다 훨씬 더 객관적으로 다가서기 위해서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분명히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지만 허구가 더 많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 나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진리, 진실, 진심이라고 생각된다. 공지영이 더 나이가 들어서 쓰는 글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때 그녀는 어떻게 사람과 세상을 둘러볼까. 이 책에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극복기가 잘 드러난다. 어딘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