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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우물에서의 은어낚시 - 1990년대 한국단편소설선
이남호 엮음 / 작가정신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실마리만 풀어주면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기억이 얼마나 많은가.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헝클어지는 것이었다.
p.144 -양귀자, [숨은 꽃]
그녀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글 속으로 그녀 자신이 숨는 일이었다.
p.420 -신경숙, [배드민턴 치는 여자]
진실의 창을 향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는 아직도 사각의 벽 안에 웅크리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창은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는 사각의 벽 속에 온전히 있을 뿐이고, 창은 다만 진실을 향한 허망한 갈망일 뿐이다.
p.490 -박성원, [댈러웨이의 창]
나는 안전할 수도 있었고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런 경계가 좋다. 내가 가장 즐기는 경계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이다. 나는 가끔 현실을 상상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상상을 현실이라 믿고 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그 혼동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적은 없었다. 마치 영화를 보듯, 나는 내가 구성한 그 상상의 세계를 제한된 시간 동안 탐험한다.
p.582 -김영하, [호출]
이남호 엮, <옛 우물에서의 은어낚시 - 1990년대 한국단편소설선> 中
+) 이 책은 1989년부터 2001년 사이에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들 가운데서 22편을 뽑아서 엮은 것이다. 1990년대를 대표할 만한 소설들을 엮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또한 90년대 작품들을 비교할 수 있어서 좋다.
1990년대는 거대한 중심에 가려져 말을 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주체, 대상, 사물들이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한 연대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 시기의 문학은 다양하고 생동감 있는 목소리들이 넘쳐흐르는 혼성적이고 카니발적인 시․공간으로 자리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일상, 개인, 타자, 욕망, 탈주 등 미시적 담론과 관련하여 다원화된 가치들에 주목하는 시기인 1990년대의 문학을 두루 살펴볼 수 있기에 이 책은 유익하다. 또한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알아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