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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절망이 커지면 묵언이 되는가. 그들은 말 없는 가운데 헤어졌다.
p.18
"아니 선생님, 그게 그렇지가 않다니까요.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일생에 그 시대가 얼마나 담겨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p.127
아무리 책을 파고들고, 아무리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공상을 해도 감옥의 시간은 언제나 팔팔한 기세로 버티고 있었다. 지긋지긋하다 못해 넌덜머리가 나는 그 지루함에 지치며 인생이란 어지간히도 길고 길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누구나 인생이 허망하게 짧다고 말하지만 그건 감옥살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넋두리일 뿐이었다.
pp.153~154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
- 작가의 말
조정래, <인간 연습> 中
+) 이 소설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남자가 간첩에서 전향자로 낙인 찍힌 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소련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동료가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핍박때문에 쓰러져 강제로 전향서에 도장을 찍게 되는 걸 바라보며, 주인공은 철저하게 사회 속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고민과 전향자에 대한 남한 사회의 외면적인 시선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 보듯 조정래는 진정한 작가란 시대와 사회를 외면해서는 안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어떤 입장이든 어떤 오류이든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전향자로 독방에서 장기수로 산 인물이 출옥 후 남한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어린 아이들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않고 남한 형사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돌봐주기 시작한다. 작품의 중반에서 전쟁에서 다친 북한 장교가 자신의 부하부터 치료하게 해달라는 일화를 소개하는 간호사의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보자.
인간이란 어려우에 처했을 때 또다른 이를 외면하지 않는 본능을 지닌 사람들이다. 자신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보이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그런 것들은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나 그렇게 용기있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인간만이 용기있는 행동을 하는데, 우리는 모두 인간이 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고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시대나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개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노력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간 이외의 모든 시대나 사상, 상황들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마음이 잔잔하게 울리는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