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최승호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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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의 고비'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최승호, <고비> 中

 

 

+) 시인은 이 시집에서 '적막, 부재, 고요, 바람, 흔적' 들에 대해 노래한다. 사막을 여행하는 입장에서, 난생 처음 사막 한 가운데에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읊고 있다. 그것은 사막의 황량함과 황막함을 드러내는데 화자는 철저하게 사막의 모래 한 알갱이처럼 존재한다.

 

사막에서의 모든 생활은 기존의 시인이 살아온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모래 바람에 목욕을 해야 하며, 화장실은 사막의 모든 곳이 된다.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고 길이라고 칭하는 곳을 무작정 간다. 그곳에서 그는 내면의 고요를 보게 된다.

 

그 적적함이 적막과 부재의 이미지로 되살아 난다. 바람은 그의 고요를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소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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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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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도둑질한 이 순간의 이미지를 끌어 모아, 고독한 저녁마다 결코 실증나지 않는 오래 된 영화를 보듯 되풀이해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 몇 시간일지라도 짜릿한 행복의 광휘는 이따금씩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환멸과 권태의 일상을 충분히 견디게 해준다.

pp.101~102

 

 "언젠가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꼭 저를 찾아오세요. 어떤 여자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죠. 문제란 없다, 해답이 있을 뿐이다."

p.168

 

 "넌 그 때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확신해?"

 신부의 눈에 침울한 빛이 어렸다.

 "옳고 그름은 우리가 판단할 몫이 아니야. 우리는 단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을 뿐이지.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셨으니까."

p.265

 

 

기욤뮈소, <구해줘> 中

 

 

+) 며칠 전 이 책을 몇 시간 동안 단숨에 읽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러브 스토리에 불과할꺼라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이게 혹시 '추리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다음은, 그 다음은, 이들은 뭐지? 끝없이 의문을 자아내어 쫓아가게 만드는 글. 약간의 추리와 약간의 러브 스토리와 또 약간의 삶과 죽음을 노래하는 소설이다.

 

모든 것을 적절히 섞어 놓았는데. 그렇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랑스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프랑스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속도감있는 사건 전개와 인물 사이의 우연성이 흥미롭다. 기존의 프랑스 소설은 한 문장, 한 문장에 사유의 깊이가 있으며 몽환적인 것들도 많았는데. 이 책은 그와 달리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프랑스에서 이 작가는 대중적인 소설가가 아닐까. 대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기존의 프랑스 소설과 다른 분위기가 나를 좀 놀라게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가 책에서 언급하는 것은 사랑, 죽음, 삶의 트라이앵글에서 울리고 있다. 삼각 구도 어느 선을 건드리더라도 세 가지가 같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같은 소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다 읽고 나면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접할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없다. 해답이 있을 뿐이다.

아, 책 장마다 제시하고 있는 짧은 글귀는 소제목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삶과 죽음과 사랑에 대한 구절들인데 좋은 명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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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로세서 1급 기출문제 필기 - 이것만은 알자!, 2009
아주큰선물 수험서개발팀 엮음 / 아주큰선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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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격증 필기시험 문제집은 완벽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아주 자세하게,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경우, 자세한 설명보다 핵심을 짚어주는 문제집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의 '요약'과 기존 시험에 출제된 기출문제 풀이를 통해 시험에 붙었다. 

심지어 2번 이상 출제된 문제풀이까지 실어놓은 이 책은 바쁜 현대인들의 자격증 대비를 위해 매우 유익하다. 

다른 종류의 자격증 필기시험도 이 출판사의 시리즈로 공부할 생각이다. 

부담없이 합격의 길로 인도하는 책. 

권하고 싶다.  

얇고, 공부하기에 부담없으며, 합격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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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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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인가봐요. 불행이든 고통이든 말이지요.


-[고요한 나날]

 

 지치고 힘들 때, 누름돌에 눌린 것처럼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불가하해한 인생의 중압감이 느껴질 때, 자신이 견뎌야 하는 자신 만의 무거운 추를 떼어내지 못할 때, 남자 역시 이 세상에서 흔적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존재를 지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순식간에, 단 한 번의 클릭만으로 완벽하게 삭제하듯이.

 하지만 남자는 또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이다. 무거운 중력만큼 또 그만큼의 부력이 삶에는 항상 내장되어 있는 거라고. 그걸 믿지 못하면 뜰 수 없다는 것을 전직 수영강사인 남자는 몸으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무물고기]

 

웬만큼 살다 보면 자기 인생에 관한 한 '감'이라는 게 생기는 법이다.

-[투우]

 

내 삶은 늘 그랬어. 늘 원하면 사라지게 장치가 돼 있었지. 그래서 나는 늘 덤덤한 척하는지 몰라. 삶이란 놈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말이지. 그건 늘 주체가 되지 못하는 방관자적인 내 기질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마녀]

 

 

권지예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中

 

 

+)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언젠가 어떤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권지예 소설 읽어봤어? 왜 그리 답답하지?" 그때는 아무 말도 못했다. 권지예의 소설을 읽지 않았으니까. 오랜만에, 오래된 책을 집어 들고 읽었다. 그제야 선배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선배가 지적한 '답답함'이란 책 전면에 깔린 운무같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큰숨을 몇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그건 한숨이 아니라 큰숨이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필치에는 색이 보이지 않는다. 투명한 선을 긋고 있다고 해야할까. 여운을 남기는 게 아니라 의문을 남긴다. 찾고 싶으면 찾아보라고 공공연히 던져놓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걸 찾아야 할 이유조차 찾게 만드는 게 문제다.

 

작가가 일부러 새겨넣은 운무의 글자들은 책을 뿌옇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또 한번 큰숨을 쉰다. 나는 이 작가에게 좀 더 강렬한 것을 시도해도 괜찮다고 전해주고 싶다. 총8편의 단편 중에서 나는 맨 마지막 [사라진 마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는 나머지 7편의 색깔이 짙은 회색이었다면 오직 이 한 작품만이 짙은 녹색과 어두운 회색의 조합이었으니까.

 

스토리의 변화를 원한다기 보다 소설의 구성에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말하는게 옳겠다. 뭔가 오르락 내리락, 툭 치고 나오다가도 슬그머니 들어서는, 그런 극적 긴장감이 부족한다. 맨 마지막 한 작품만이 구성의 선이 살짝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뭔가 역동적인 삶을 그려도 충분히 괜찮다. 작가에게 여러가지 색깔을 요구해본다. 어쩐지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보다 소극적인 필치라고 생각된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글을 쓰길 바란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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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 눈 푸른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무량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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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마음이란 '타인의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한 염원'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 게셰 툽텐 룬둡, [모기는 전생에 나의 어머니]

 

한번은 누군가 붓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가장 간단하게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집착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아잔 지틴드리야, [나는 감각세계의 모든 것을 맛보았다]

 

고통이 주는 한 가지 장점은 그것이 우리를 도와 중단하려는 마음을 더 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중단이란 결심을 의미하며,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입니다.

-텐진 데키, [불행은 오래 기다린 친구가 마침내 도착한 것]

 

그 이상은 찾지마십시오. 싫어함이나 욕망도 없어야 합니다. 저는 사물을 그 자체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사물들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걱정도 하지 마시고, 불평도 하지 마십시오. 사물들을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 이상의 것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무진, [나는 죽음 없는 것을 발견했다]

 

 

현각, 무량 외, <공부하다 죽어라> 中

 

 

+) 이 책은 국내외의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대전에 있는 '자광사'에서 매달 영어 법회를 연 자료이다. 수행자들의 강연을 모아 번역하여 책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부처의 말씀을 따르며 삶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동양이나 서양의 차이를 생각하기 보다 그것을 뛰어넘어 한 사람으로, 한 사람의 수행인으로서의 말씀이다. 그렇다고 다가가기 어려운 책은 절대 아니다.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수행하는 사람은 끝없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착을 버리고 자비를 행하는 삶, 스스로를 다지기 위한 수행이 얼마나 어려울까. 수행자들의 말씀대로 집착은 곧 고통인데 우리는 왜 수없이 많은 것들에 집착하며 살고 있을까. 외국인 수행자들의 대부분은 각자의 나라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대부분 대학을 다니면서 불교 강의, 그러니까 그들의 스승들을 만나게 된 인연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나는 무엇인가' 혹은 '내 삶은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여행을 하고 불교를 접하게 되면서 불교에 입문하게 된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그들은 스스로를 찾기 위해, 참된 나를 발견하기 위해 평생을 수행하며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행은 나를 발견하게 되는 첫 걸음이고, 새로운 길은 두려움과 동시에 빛을 따라 나서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누구나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에 불만이 많지만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평온을 찾자. 이들이 강조한 명상을 통해 일상에서 평안을 찾자. 스스로를 찾아가는 공부, 타인을 위한 배려와 자비,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명상, 오늘 하루 걷기 명상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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