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초능력 찾기 저스트YA 7
이진 외 지음 / 책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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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애는 아니었는데......"

담임 선생님의 혼잣말이 밥 먹다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그럴 만한 애'란 어떤 애일까?

"솔직히 그럴 것 같았어."

2교시가 끝나자 반 아이들이 떠들어 댔다. 쟤들은 지난 금요일까지만 해도 그 애 이름이 '주'로 끝나는지 '수'로 끝나는지 몰랐을 애들이다.

그리하여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그 애는 '그럴 만한 애'로 다시 태어났다.

p.10

"걱정되니까 그러지. 너도 진주 친구이면서 걱정이 안 돼?"

"걱정이 뭔데? 저마다 자기 갈 길이 있고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야."

p.39 이진, [동물어 듣기 평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할 수 있어서.

p.76

"내비게이션 찍을 때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야. 위치를 알아야 목적지까지 가는 최단 경로를 안내해 줄 수 있어."

p.114 탁경은, [알고 싶다, 알고 싶지 않다]

"저기, 부탁 하나만 해도 돼?"

꽥이 말했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좀 해 주면 안 될까?"

"내가 왜?"

p.163

내 안 깊은 곳에서 근원과 성분을 알 길 없는 힘이 솟아 나와 손끝으로 몰려들었다. 그 힘이 나에게 대답하라고, 말하기 싫은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했다.

"응, 괜찮아질 거야."

"고마워......"

p.172 하유지, [치유자 심도담과 호랑이 메시아]

정윤채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끄는 힘이 있다고, 그건 사람을 끌어당기고 붙잡아 놓고 가끔은 공상을 현실로 만든다고 말했다.

p.202

"참 재밌죠. 당사자가 하는 소리는 절대 안 믿으면서 자기들이 지어낸 이야기는 철석같이 믿으니까. 그런데 제일 재미있는 건,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누군가의 상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변하고 진실은 꾸며 낸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는 거죠."

p.219 단요, [상상하는 일]

이진, 탁경은, 하유지, 단요, <숨은 초능력 찾기> 中

+) 이 책은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닌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다.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조금만 스쳐도 상대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아픈 곳에 손을 대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무엇이든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초능력이란 유익한 힘이라고 믿고, 막연히 그 힘을 지닌 사람들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과는 다른 힘을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지 알게 되었다.

남과 다르다는 점은 '능력'이나 '개성'이 될 수도 있지만, '차별'이나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이중적 잣대가 잘 드러나 있다.

초능력을 지닌 인물들 스스로 혼란과 내적 갈등을 겪으며 평이해지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 또한 특이하게 보던 시선을 서서히 거두고 그들을 특별하지 않은 친구로 받아들이게 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꼭 초능력이라는 소재에 집중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물론 그 부분에 몰입하면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맞지만 다른 좋은 점도 있다.

이를테면 청소년들이 겪는 고민과 방황, 걱정 등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그와 동시에 헤쳐나갈 방향과 돌파구를 찾아내는 힘 등도 잘 담아냈다. 그렇기에 남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가볍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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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 당신이 몰랐던 반쪽짜리 한국사
최중경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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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추론으로 왜곡의 여지를 탐색하고 추가 사료를 발굴해 승자의 왜곡을 시정하고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건 후세를 사는 우리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지배하는 힘의 논리를 외면하고 선악의 논리를 앞세워 사실과 인과관계를 왜곡함으로써 엄중한 책임을 회피하는 역사 서술 방식도 더 이상 방관하면 안 된다.

p.7

1936년 3월 백성에게 내린 유시에 인조의 복잡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만주족 사신이 '후금국이 청나라로 청제건원하고 홍타이지가 황제로 즉위함'을 알리려고 왔을 때 사신들을 내쫓고 내린 유시다.

"강약과 존망을 헤아리지 않고 의로운 결단을 내려, 서울 사람들은 전쟁의 참화가 눈앞에 박두했음을 알면서도 오히려 오랑캐를 배척하고 거절한 것을 통쾌하게 여기고 있다. 충의로운 선비는 각자의 책략을 다하고 용감한 사람은 종군을 자원해."

국가가 망해도 전쟁을 해야 하고 국민이 처참하게 깨져 나가도 명분을 지키는 게 옳으니 각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pp.49~50

만절필동(萬切必東)으로 대변되는 소중화론의 망령은 조선이 망하는 날까지 조선 조정을 사로잡으며 청나라를 멀리하는 비현실적 형태로 일관했다. '만절필동'은 황하가 굴절이 심해 방향이 바뀌어도 결국 동쪽으로 흐른다는 의미로 '순리대로 된다' '정해진 대로 된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선조가 명나라의 구원을 계기로 명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뜻으로 '만절필동 재조번방'이라고 쓴 이후 조선 사대부에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명나라를 향한 충성심에는 변화가 없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pp.55~56

조선의 해금정책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무역을 일본이 주관하게 해 일본의 국력이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이 동아시아 무역에 적극 참여했더라면 일본이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며 유럽 국가들과 교류할 기회를 활용해 세계사의 흐름을 읽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쌓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p.72

조선은 엔진은 있지만 핸드 브레이크가 걸려 있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자동차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국가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다.

p.265

최중경,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中

+) 이 책은 삼국시대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몇몇 장면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가설을 설정하며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면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예상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역사적 사실을 담아내면서,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이 반영된 설명도 함께 제시했다. 저자는 특히 이 책에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잘못 쓰인 부분과 중요한데도 전혀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세와의 관계에 주목하며 우리나라 지배층들이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보여준다.

또 그 선택의 미흡함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혹은 그 선택의 이유에 대한 숨겨진 의도 등을 짐작해본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 자료, 즉 사료의 가치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료를 해석하고 연구하는 학자의 태도와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이든 한쪽 방향만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에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느꼈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자 노력하고 적합한 해석과 올바른 방향을 찾으며 현재의 삶에 적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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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 한중일 편 - 힘과 욕망이 만들어낸 동아시아의 역사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효기심 지음 / 다산초당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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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나라의 왕실은 왕실과 제후국들을 화(華), 침략을 해오는 이민족을 이(夷)로 분류했죠. 여기서 이라는 글자를 한국에서는 '오랑캐 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화이사상 : 문명수준이 높고 천자를 섬기는 화와 천자를 몰라보는 오랑캐 이를 구분하는 사상

물론 '우리 집단'과 '느그 집단'을 구분 짓는 것은 사실 인간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화이사상에는 선민사상이 강하게 녹아 있다는 거죠.

pp.54~55

이와 같이 고려시대의 중국대륙 국가와 한반도 국가 사이에 있었던 조공책봉관계는 어렵게 꼬아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약소국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강대국에게 머리를 숙여야만 했고, 동아시아에서는 머리를 숙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조공책봉관계를 맺었던 거죠.

p.76

과거 한반도 국가들은 실제로 중국대륙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으며, 이게 자존심을 굽히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힘의 논리로 굴러가는 국제정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죠. 부정할 필요도, 그렇다고 긍정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한반도가 누군가에게 또 고개 숙이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p.92

그러나 효기심은 국가의 전성기를 논할 때 영토 말고도 내부정치의 안정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땅이 넓어도 민심을 잡지 못하면 결국 국가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몹시 크기 때문이죠. 청나라는 그 민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비단 민족문제 때문만도 아니었죠. 민족차별은 청나라가 망하게 된 여러 원인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청나라에는 또 다른 분열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죠. 바로 관료들의 부정부패입니다.

p.262

혁명파의 거물인 쑨원도 중국대륙의 오랜 관념인 화이사상을 이용했습니다. 한족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오랑캐라는 거죠.

p.310

이와 같은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거치며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 중국 민족주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 단어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지만 사실 생각보다 근본도 없고 역사도 짧은 단어죠. 하지만 중국정부 입장에서 그런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56개 민족이 존재하는 중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국뽕도 채워주고, 역사도 왜곡해야만 하니 말이죠.

p.320

야마토 사람들끼리는 자기 나라를 계속 야마토라고 불렀지만 대외적으로는 '해가 뜨는 국가'라는 의미로 '일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천황께서는 태양신의 자손이시며, 신의 자손께서 만들어주신 율령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중국대륙의 권력자들이 자신을 신의 자손이라고 포장하며 천자 드립을 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군주도 자신을 신적 존재로 만들려고 노력했죠.

p.339

그러나 천 년 넘게 권력을 휘둘러본 적이 없는 천황은 갑자기 주어진 권력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일본 국민들의 목숨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해 일본을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군부의 결정들을 승인해주었죠.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수많은 국민들의 개죽음과 원자폭탄으로 인한 참상이었습니다.

p.438

효기심,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 한중일 편> 中

+) 이 책의 저자는 유튜브에서 '효기심'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역사의 사실적인 흐름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콘텐츠로 제작하여 풀어내는 사람이다.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들이 쓴 책이 그것도 450쪽 분량의 꽤 두꺼운 책임에도 이렇게 재미있던 적이 있었나 돌이켜본다.

개인적으로 역사책은 두꺼울수록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또 현대사가 아닌 그 이전의 동아시아 혹은 한국 역사는 학생 때 공부해온 정보의 반복 서술이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책이라고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건 편견이고 좁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와 역사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시 '명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고대 권력자들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천자'와 '천황'의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 국가의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여러 민족들의 통합을 유도하는 사상, 이를테면 '중화사상'을 이용하는 것.

백성들의 안위보다 자기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조공책봉'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 권력자의 기반이 되는 종족을 이용해 내부 분열과 외세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 그 사이 생기는 내외부의 갈등에 칼과 총, 즉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 이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권력욕이 있고 또 그것의 길을 터주는 것이 바로 명분이었다.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했듯이 '지금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늘 명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그 명분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다. 오직 몇 명의 지배자들의 권력과 명예욕 때문에 말이다.

이 책은 과거의 역사만을 돌아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 과거를 살펴보며 현재와 미래의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세우는 방법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도와준 책이었다.

더불어 긴 분량의 역사책을 유익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고 고마웠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읽어볼 용기와, 더불어 다른 역사책도 자주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역사책 읽기에 지루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첫 몇 장만 읽어보아도 술술 읽히며 굉장히 재미있다. 성인이든, 학생이든 상관없이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재미있고 쉽게 접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권해주고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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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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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평생 일하셨는데요, 혹시 명함 있으세요.

아뇨. 뭐 하러. 안 만들었어요.

ㅡ 그러네요. 인생이 명함이시니까요.

눈뜨면 내가 나갈 자리가 있다는 게 참 좋은 거예요. 예전엔 기도도 많이 했는데 이제 안 해요.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13% 손정애님 인터뷰

내 이름도 잘 얘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엄마들 모임 가면 20년 가까이 만나도 본명을 모를 때가 많아요. 누구 엄마라고만 부르니까.

늘 내 인생이 뭐였을까 생각하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는데요. 이렇게 얘기해보니까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네요. 지금까지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25% 장희자님 인터뷰

- 이름은 '필수적' 노동, 대접은 '선택적' 사용

필수노동 전반이 대접받지 못하며, 홀대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35%

어떻게 보면 엄마는 본인이 가진 자갈, 바위, 돌이 섞인 미운 흙들을 온몸으로 고르고 골라 고운 흙만 저에게 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장갑조차 낄 틈 없이 맨손으로 고르고 골라내느라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는데. 저는 엄마의 상처를 보려 하지 않고 내가 물려받은 흙들이 아직도 너무 거칠다고 불평만 했어요.

곱고 예쁜 흙들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자식들에게 쥐여준 흙이 아직도 부끄럽고 미안한, 그게 일하던 엄마들의 마음이 아닐까 감히 가늠해봅니다.

44% 윤순자님, 마혜원님 인터뷰

도미 씨는 "'엄마', '할머니' 등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 노동을 숭고한 것으로 타자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건 숭고한 희생 같은 게 아니라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로 인식해야 해요."

52%

울 시간이 있어야 울지.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있어야 울지. 너무 힘들어서 '나는 못 살겠다' 하고 큰애를 업고 주문진 바닷가까지 나왔어요. 무작정 집을 나왔는데 이게 무슨 돈이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 버스를 탈 거 아니래요.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할 수 없이 도로 걸어서 들어갔어요. 용감하지 않으면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어요.

누구나 목표를 세우고 과한 욕심만 안 부리면 하고자 하는 걸 이룰 수 있어요. '하겠다'는 생각에 빠져서 자꾸자꾸 키워가면 돼요. 지금은 부러운 것도 없고 시골에 살아도 멋있어.

56%~58% 이광월님 인터뷰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中

+) 이 책은 시대를 떠나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하는, '끝없이 일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머니 혹은 엄마로 불리며 희생이 희생인지도 모른 채 당연한 것으로 치부된 삶을 산 사람들이 그들이다.

아마 처음에는 기획 기사로 제작된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추후 더 많은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아 책으로 엮은 듯 보인다.

여성들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에 길들여져 스스로의 이름을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을, 책에서 언급했듯이 '타자화'하기 보다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표현에 공감했다.

'여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혹은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려, 그들이 어렵고 힘들게 해내는 모든 일들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그 일들을 해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주변 여성들이 많이 생각났다. 가정주부이든, 워킹맘이든 가족 울타리 안에 있는 그 어떤 여성도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그들은 두세 배의 일을 더 하면서도 늘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참 모순적이고 아픈 현실이라고 느낀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 지어 하나하나 따져보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금껏 몇 십 년을 당연한 듯 일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의 노력과 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자는 의미이다.

희생이든 배려든 양보든,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그들이 견딘 시간과 노력과 샘솟는 애정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 속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해가 됐다. 사회 구조적인 모순의 개선과 더 많은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드러낸,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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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요, 일단 나부터 행복해지겠습니다 - 나를 응원하고 싶은 날, 쓰고 그린 365일의 이야기
하다하다 지음 / 섬타임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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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삶의 목표는 '선한 사람'이지만 무작정 '착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배려하는 걸 좋아하지만 내 마음에 불행이 얹히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다. 배려, 양보, 나눔 앞에서 나는 일단 마음을 사린다.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해서다.

p.5

"당장 자신을 믿기 어렵다면 시간을 믿으십시오. 열 마리 말이 하루를 갈 길이라면, 한 마리 말로 열흘을 가면 됩니다. 자기를 믿기 어렵다면 자신에게 좀 더 시간을 주십시오.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는 대개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아닙니다."

ㅡ 서천석,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

p.20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자책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더러 있다. 모두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자책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된다.

p.24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p.38

사람은 누구나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이 있다. 멋지게 말하면 프레임이고, 풀어 말하면 어떤 생각을 하든지 결국 생각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생각의 틀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p.65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인생을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p.115

우리가 늘 '최고'에만 감동받는 건 아니다. 감동은 자기만의 '무엇'이 있을 때, 그 열정과 색깔이 자신 있게 드러날 때도 찾아온다.

p.136

"당신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때로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그 단순하고 평온한 말속에서 아무 고통도 없이 편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그 사람의 삶에 고난이 없었다면 그런 위로의 말들을 찾아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ㅡ 라이나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p.137

"인생 후반은 그동안 들인 습관으로 결정된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다. 인생 후반의 행복을 위해 지금부터 할 일은 습관을 잘 들이는 일이다.

p.338

하다하다 글&그림, <됐고요, 일단 나부터 행복해지겠습니다> 中

+) 이 책은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일러스트레이터 저자의 단상을 모은 것이다. 일기 형식으로 구성하였지만, 2년간의 글을 모아 엮은 것이기에 날짜보다 계절에 더 적합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제주에 정착하여 지내면서 계절 별 제주 날씨에 맞는 소재를 찾아 글을 적기도 했고, 일기처럼 그날의 하루 중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여 쓰기도 했으며,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하여 편안하게 살아갈 다짐들에 중심으로 작성하기도 했다.

이 책 한 권을 읽다 보면 제주의 사계절이 스치듯 지나간다. 햇볕 좋은 날, 비가 오던 날, 태풍이 오던 날, 눈이 내리던 날까지 제주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상상된다. 그런 날 저자는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편안하고 따뜻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책 제목을 보면서 자책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부터 행복하자는 표현은 나만 행복하겠다는 이기심이 아닌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을 낸다. 공동체 중심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에 그런 듯하다.

그러나 저자가 설명했듯이 나부터 행복하자는 것은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해서'이다. 나부터 챙기고 아껴야 가족도, 타인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이든 물리적이든, 내가 여유가 없다면 자연스레 타인에게 옹색해질 수밖에 없다.

겸손과 배려의 미덕을 지키려면 그 아래 숨은 희생을 스스로라도 챙겨야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숨 쉴 틈을 주어야 양보와 배려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기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지킬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문장과 힘이 되는 표현을 많이 본 것 같다. 친구의 말처럼 위로를 받은 구절도 많아서 읽는 내내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챙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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