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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걸음 - 낯선 순간이 모여 우리는 어른이 된다
황규한 지음 / 달꽃 / 2022년 1월
평점 :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된다.
p.14
아빠의 성실함, 정직함, 진실함과 집안의 경제지표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허탈했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뭔가 정의롭지 않은 것 같았다.
차라리 아빠가 조금 게을렀다면, 조금 불성실했다면, 조금 정직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저들처럼 조금은 덜 성실하고, 조금은 덜 정직하고, 조금은 덜 근면하고, 조금은 덜 부지런했다면 어땠을까.
세상은 성실해서, 정직해서가 아니었다.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정직하더라도 였다.
pp.59~60
"수술 후에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 당연히 각오는 했지. 그 정도 각오 없이 수술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그런데 세상은 있잖아. 한 개인이 결심한 각오 그 이상을 요구하더라고."
p.77
"내 인생이잖아? 내가 결정할게."
"내가 판단하고 처리할게."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마."
독립하니 나도 모르게 저러한 말들이 툭 튀어나왔다.
"네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넌 영원히 내 아들이고 내 새끼야."
어느 날 갑자기 내뱉은 모친의 말. 그 말을 통해 자식은 부모님에게 독립할 수 있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독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139
당신의 친부를 떠나보내는 일은 하루에 다 태울 수 없는 슬픔이었기에 일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 태울 수 있는 양만큼 태우고, 내일이 되면 내일 태일 수 있는 양만큼 태우고, 모레가 되면 모레 태울 수 있는 양만큼 태우고, 그렇게 그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태우며 견디는 것, 그렇게 시간을 두어야만 했던 어른의 일.
친부의 눈물을 통해 그리고 롯지의 오래된 난로를 통해 알게 됐다. 어른 마음속에는 그 누구에게도 내보일 수 없는 작은 난로 하나와 후미진 창고 하나가 있다는 것을. 그저 살아가기에 쌓이는 슬픔과 고통, 미련과 힘듦. 이것들을 작디작은 난로에 욱여넣고 태우고 또 태운다.
pp.193~195
황규한, <아홉 걸음> 中
+) 이 책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닫고 성찰하는지 고민하는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과 어른이라면 어떤 존재여야하는지를 이 책에서 보여준다.
본인이 겪은 경험담과 그 체험을 통해 느낀 점, 삼십대 중반인 현재 시점에서 그때를 돌아볼 때 다시 생각하게 되는 점 등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견디며 인생길을 걷고 있듯이, 이 책을 읽는 누군가도 어른이라는 길을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어른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한 개인의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만한 내용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IMF라는 사회적, 시대적 상황과 대학생이라면 겪었을 고민들, 군대에서 보게 된 사람들의 모습과 조직의 이면, 그리고 어학연수와 여행 등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성공하고 또 때로는 반성한다.
아직도 성장하는 어른이지만, 누군가 괜찮다고 토닥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른이지만, 그래도 두려운 순간에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가 된 책이었다. 어른이 분명하지만 순간순간 나는 아직도 더 자라야 하는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의 길은 계속 묵묵히 걷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