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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ㅣ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평점 :
이 도시는 살아 숨쉬는 역동적인 유기체다. 도시는 새것을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존재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것들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 그것이 성장하고 강해지도록 돕는다면, 어떤 것들은 도시를 분열시키고 해를 끼친다.
p.72
"넌 좋은 아이야, 아이슬린. 하지만 시티는 좋은 사람들이 갈 곳이 아니란다. 내가 항상 뭐라고 하더냐?"
아이슬린은 한숨을 내쉰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곳에서도 전부 일어나지만 적어도 여기 사람들은 품위를 지키려고 한다고요."
"맞다. 아빠가 또 뭐라고 했지?"
"'네가 행복한 곳에 있으라'고요."
p.137
"도시 전체에 달콤하고 앙증맞은 인간들이 가득해서 전부 다 꼴딱 삼켜 버릴 수 있을 거 같아. 길거리도, 하수구도, 지하철도 전부 다. 그리고 넌 전혀 나이가 많지 않아! 방금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인걸. 하지만 오래 묵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매력 공세는 안 통할 거 같네.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이거라니까. 너희는 하나같이 똑같이 하찮은데, 각각의 하찮음이 다 제각각이란 말이야. 전부 다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야 해! 너무 답답하고 귀찮아."
p.172
"브롱크스는 그냥 브롱크스지. 그리고 브롱크스의 그 모든 면면은 전부 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야.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해도 이 정도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결정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는 거야. 이 도시가 간직한 모든 전설과 거짓말이 하나하나 다 새로운 세계가 돼. 그리고 그 모든 게 합쳐진 게 뉴욕인 거야. 그러다 마침내, 그 육중한 무게에 짓눌려 모든 게 무너지면...... 완전히 새로운 게 되지. 살아 있는 거."
p.235
"설마요. 인간이 하는 일 중에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뭐든 변하는 법이잖아요. 우리도 변할 수 있답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뭐든지 말이죠. 그저 원하기만 하면 돼요."
p.325
"정말이야. 도시는 이 분기의 우주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야. 한 장소에 충분한 숫자의 인간들이 몰리고, 충분한 다양성이 축적되고, 배양할 토대가 충분히 비옥해지면 너히 종족은 일종의...... 잡종강세를 발전시키게 되지."
"나쁘다는 게 아냐. 그냥 너희의 본질이 그렇다는 거지. 난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아. 하지만 너희가 성장하기 때문에, 너희의 도시가 성장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거야. 너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시켜. 도시랑 사람, 사람이랑 도시, 그러면 도시들은 다중우주를 탄생시키기 시작하지. 그렇게 몇 개의 가지가 만들어지면 존재의 구조 전체가 흔들리게 된단 말이야."
pp.469~470
N. K. 제미신, <우리는 도시가 된다> 中
+) 이 작품은 미국 판타지 소설의 하나로,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유기체로 존재하고 그 생명성을 지키려는 인간 화신들이 활약을 담고 있다. 뉴욕은 몇 개의 자치 구역으로 나뉘고 각 구역 별로 도시를 수호하는 화신들이 존재한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고, 또 일부는 자신의 역할을 깨달아간다. 그리고 또 일부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옳은 방향을 선택하고, 또 다른 일부는 적의 달콤한 말에 속아 그들의 편이 된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도시를 무너뜨리려는 외부의 적도 도시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니, 도시가 살아가는 방식에 비슷하게 대응하며, 기존의 도시를 무너뜨리고 자기들만의 새로운 도시를 세우려고 한다.
도시의 본질을 비판하면서도 그 특성을 따라 새로운 도시를 건립하려드는 모순된 모습을 보며, 과연 그들이 외부의 적이 맞는가 우리 내부에 잠재된 적은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또 도시인들은 개인화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뉴욕 시민들은 그 편견과는 달리 주인공들이 아프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꼭 먼저 손을 내민다. 걱정해주거나, 도와주거나, 거짓말 같은 진실을 믿어준다. 개별화된 도시임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유기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도시인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는다.
이는 주인공들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결국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를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자치구의 화신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판타지 소설이라고 선을 긋지 않아도 될 듯 하다. 판타지적 성향과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성향 모두를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판타지적인 면모보다 오히려 도시와 도시인에 대한 통찰이 더 와닿은 소설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