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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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만히 버티면 풀릴 오해는 풀린다고. 오해를 안고 떠나면 남은 애들한테는 죽을 때까지 그런 애로 기억될 거라고 하더라."
 "그냥 말해서 얼른 풀어."

 "아닌 걸 아니라고 어떻게 보여줘? 지나가는 아저씨들 붙잡고 나랑 그런 사이 아니죠, 그래? 맞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아닌 걸 증명하는 게 더 어렵더라."

pp.93~94

 

"너처럼 멋도 없는 새끼가 멋있는 척해도 재수 없어. 솔직히 너도 진짜 가난이 뭔지 모르잖아. 아버님이 너한테 금칠은 못 해줘도, 먹고 자는 데 문제없게 해주셨잖아. 너, 나 욕할 자격 없어, 새끼야. 쪽팔린 줄 아는 가난이 가난이냐? 햇반 하나라도 더 챙겨 가는 걸 기뻐해야 하는 게 진짜 가난이야."

pp.135~136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싸가지 없는 놈들이야 남의 약점 가지고 계속 놀려먹는다만, 그런 놈들은 상대 안 하면 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이 세상이 나만 당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pp.136~137

 

 

김려령, <완득이> 中

 

 

+) 이 소설을 전철에서 읽으면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내 예상과는 달리 꽤 재미있는 소설이라 조용한 전철에서 얼마나 웃어댔나 모른다. 아마 사람들이 좀 이상한 여자로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나의 유머 코드와 작가의 유머가 딱 맞아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완득이>라는 제목에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 싶어서 거들떠도 안봤는데, 정말 우연히 책을 사게 되었다.

 

그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 책에 대한 정보 없이 구입하고 보니 책 표지 또한 꽤 만화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만화적 표지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쩐지 책 속에 담긴 질까지 만화적 상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서.) 어찌되었든 이 책은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작품이다. 주인공 완득이를 중심으로 담임 선생님 똥주, 난쟁이 아버지, 말더듬이 삼촌의 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관계와 완득이의 가난한 처지는 가슴 아픈 부분인데도 이 책을 이끄는 완주의 목소리는 굉장히 무덤덤한 태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똥주 선생님과 완득이의 관계는 뻔뻔하고 괴상하며 끈적끈적하다. 우정,이라는 것을 무덤덤한 남자들끼리, 그것도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주고 받는데 재미있을리 없다 그래도 이 책은 재미있으며 읽는 우리에게 꽤 유쾌하다. 너무 당당해서, 어이없기도 하고, 그럴 듯 하기도 하며, 그랬으면 싶기도 해서. 좀 과한 반응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생각했다. 난쏘공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비애를 처절하고 리얼하게 그린 명작이다. <완득이>는 외국인 노동자와 사회에서 소외받는 장애인(난장이, 정신지체장애자)의 삶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두 작품이 바탕에 깔고 있는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는게 공통적이라 그랬나본데, 그래서인지 <완득이>의 유머는 초반에는 즐거웠고 후반에는 눈물을 머금고 웃을 수 있는 풍자였다. 이 책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기에도 유익한 책이다.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상황을 적절히 묘사하며, 그들의 희망을 꿈꾸는 알찬 소설이다. 작지만 행복한 것에 관심을 보이고 싶다면 오늘은 <완득이>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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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내신 중학 국어.생활국어 1-1 - 2009
두산동아 편집부 엮음 / 두산동아(참고서)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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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학교 국어 공부는 완자, 한끝, 꿈틀에서 나온 책을 사용한다. 그건 학기 중에 자습하며 푸는 문제집으로 좋고, 중간고사 대비를 위해서는 기적내신을 활용하면 좋다. 예를 들어 완자 같은 책으로 학교 수업과 병행하며 공부하고, 시험 대비 한 달 이전에 틈틈히 기적 내신을 활용한다.  

 기적내신은 완자와 달리 본문의 설명이 적다. 그건 철저하게 문제를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완자 같은 자습서를 통해 기적 내신의 본문에 중요한 설명을 적어가며 복습하는 데에도 꽤 효과적이다. 이것으로 부족하면 문제가 더 많은 책을 고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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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내신 중학 국어.생활국어 3-1 - 2009
두산동아 편집부 엮음 / 두산동아(참고서)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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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학교 국어 공부는 완자, 한끝, 꿈틀에서 나온 책을 사용한다. 그건 학기 중에 자습하며 푸는 문제집으로 좋고, 중간고사 대비를 위해서는 기적내신을 활용하면 좋다. 예를 들어 완자 같은 책으로 학교 수업과 병행하며 공부하고, 시험 대비 한 달 이전에 틈틈히 기적 내신을 활용한다.  

 기적내신은 완자와 달리 본문의 설명이 적다. 그건 철저하게 문제를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완자 같은 자습서를 통해 기적 내신의 본문에 중요한 설명을 적어가며 복습하는 데에도 꽤 효과적이다. 이것으로 부족하면 문제가 더 많은 책을 고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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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내신 중학 국어.생활국어 2-1 - 2009
두산동아 편집부 엮음 / 두산동아(참고서)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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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학교 국어 공부는 완자, 한끝, 꿈틀에서 나온 책을 사용한다. 그건 학기 중에 자습하며 푸는 문제집으로 좋고, 중간고사 대비를 위해서는 기적내신을 활용하면 좋다. 예를 들어 완자 같은 책으로 학교 수업과 병행하며 공부하고, 시험 대비 한 달 이전에 틈틈히 기적 내신을 활용한다.  

 기적내신은 완자와 달리 본문의 설명이 적다. 그건 철저하게 문제를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완자 같은 자습서를 통해 기적 내신의 본문에 중요한 설명을 적어가며 복습하는 데에도 꽤 효과적이다. 이것으로 부족하면 문제가 더 많은 책을 고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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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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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나간다. 아니다. 시간은 정지해 있고 내가 그 곁을 지나쳐간다. 아침마다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특급호텔 주변의 건물들을 스쳐지나갔듯이. 그 건물의 수많은 방을 일일이 두드려보지 않고 그냥 무심코 지나쳐 걸었듯이.
 중요한 것은 뒤돌아보지 않는 일이다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그보다는 말야, 내일이 와도 네가 내 곁에 없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일이라는 말을 희망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거꾸로 오늘 다음에 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도 살아 있을 테고. 그리고 또 지나온 시절이 좋았던 건 결코 아니지만, 내가 이미 다 아는 일들이 닥쳐올 테니 적어도 두렵지는 않을 거 아냐.

 

눈물에 젖어 있던 너의 그 눈, 몇시야?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네가 물었고 그걸 듣자 내 입에서는 뜻밖에 의젓한 농담이 튀어나왔지.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아,라고.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는 지금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한다. 어딘가 사계절이 있는 곳에서 달력이 들어왔다. 그 달력에 삶을 맞추면 된다. 그러나 그는 복잡한건 바로 달력이라고 다시 바꿔 생각한다. 해라는 구별은 필요없다.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는 구획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구 반대쪽]

 

 

은희경,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中

 

 

+) 돌이켜보니 내가 은희경이라는 소설가의 글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때 신경숙의 소설에 푹 빠져 신경숙의 문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을 때, 은희경은 그저 손에 닿는 소설가로만 여겼던 것이다. 왜 그저 그런 작가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었을까. 얼마전 은희경의 소설을 읽고, 또 다시 꽤 오랜만에 오래전에 쓰여진 은희경의 소설책을 꺼내들었다.

 

나는 은희경의 소설을 재밌다,라고 평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재미있다라는 말과 흥미롭다라는 말은 별게라고 생각하는데, 은희경의 소설은 흥미로운 쪽에 더 가깝다.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고 애절하다. 격정적인 감정의 흔적으로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애절한 것이 그녀의 작품이다. 지독하게 차분하고 냉기있는 서술자의 어조가 작품마다 독자를 숨죽이게 만든다.

 

때로는 그 무게감이 지나쳐 책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 한켠이 더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손에서 놓기에는 무언가 아쉽다. 은희경은 생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그런 안타까움과 헛헛함을 읊고 있다. 서술자가 인물에게는 제법 가까이 다가가도 독자와의 거리는 좁히지 않는다. 그로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작품의 말미까지 끌고 나가는 것이다. 바로 그 냉정한 거리 두기가 그녀만의 개성이라 생각된다.

 

분노 혹은 고통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구현해내기란 굉장히 어렵다. 부럽게도 작가는 감수성 짙은 용어를 배제하고도 끓어오르는 욕망 혹은 분노의 감정을 착실하게 적을 줄 안다. 그의 글자를 따라 안타까운 삶의 애절한 공간들을 살펴봐도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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