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 겸애와 비공을 통해 이상사회를 추구한 사상가, 국내 최초 완역판
묵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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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었던 논어와 같이, 묵자 역시도 묵적 사후 제자들이 편찬한 책이다. 묵적을 존칭하여 묵자라고 부른다는데 묵자, 아무리해도 밥묵자로 들린다. 요즘은 이런 서민적인 언어 사용이 좋다. 밥묵자, 친숙하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묵가의 기본 텍스트 역시나 그렇다. 친숙하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무제의 '독존유술' (유학을 유일한 관학으로 삼음) 선포로 묵가의 전통은 끊어졌다. 78편 가운데 현재 53편만이 남아있지만, 그마저도 완전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두루 사랑하라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나 다름없다. 또한 불교의 자비와 같다. 묵가의 겸애는 종교와 같은 '사랑'을 뜻하지만 묵자의 겸애가 종교와 다른 것은 겸애의 실천방법을 세속적인 가치에서 찾은 데 있다. 묵가의 기본 사상이 되는 '겸비공은 나와 남을 엄히 구별한 뒤 가까운 사람을 더욱 가까이 하는 유가의 親親(친친)사상을 부인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 천하의 이익을 두루 서로 나눈다는 뜻의 敎理(교리)이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 남의 부모도 사랑하여 자신과 남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 천하무인 사상이다.

 

또한 묵가는 주로 공인과 장인 내지 무사들로 이루어져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며 집단생활을 영위하였다. 이들은 열국의 군주와 백성들을 대상으로 묵가사상을 열심히 설파하면서 강대국의 침략위기에 놓인 약소국을 위해 방어 전술을 전하고 각종 수비용 무기와 설비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기도 했다, 책과 문헌을 정리하는 설서 수공업 기능과 군사 기술을 익혀 몸으로 일하는 종사, 사상의 전파를 위한 논증과 언변을 갈고닦3가지 업무의 전문가를 집중 양성한 배경이다. 역사상 매우 보기 드문 정치결사체에 해당한다. 묵가는 공격성을 띤 전쟁을 극력 반대하였고 방어를 목적으로 한 전쟁만 용인하였고 실용주의에 입각해 자신들의 직업윤리를 가다듬었다. 묵가가 유가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제자백가로 등장한 배경이다. 그, 러, 나

 

묵자는 고대에 너무 일찍 근대를 지향했다. 묵가는 그로 인해 절멸했다. 동시에 그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되는 특이한 학단이다.”

 

공자가 주()나라 문화인 시(), (), (), () 모두를 전폭 수용해 자신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다면, 묵적은 그 일부인 시와 서만을 취해서 사상적 근거로 삼았다. 귀족의 유흥수단으로 전락한 예악을 옹호하고 있는 유가를 비판하자 순자, 맹자, 장자, 한비자, 장자와 같은 제자백가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묵자의 사상은 다른 사상들에 비해 지나치게 실용적이었으며 시대를 앞선 사상이면서 '실학'에 가까웠다. 대신 서민의 편에서 죽을 때까지 우왕의 가장 큰 덕목이었던 겸애와 비공을 쫓았다.

 

묵자는 유가의 가업을 배우고 공자의 도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내심 유가의 예가 번거로워 쉽지 않은데다. 장례를 후하게 하여 재물을 낭비하면서 백성을 가난하게 만들고, 소매가 넓은 의복 등이 생활에 불편하며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주나라의 도를 버리고 하나라의 장사를 받아들인 이유다.”

유가는 사대부, 법가는 신층지주, 도가는 몰락귀족, 묵가는 하층평민을 대표하는 사상이다.“

 

묵자는 하늘의 뜻을 천지와 천의로 표현해 놓고 하늘을 지극히 공평무사하고 인간처럼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마치 유일신 대하듯 하였다. 마치 우리 민족의 기본 사상과도 같은 권선징악의 뿌리로 보여지기도 한다. 겸애가 그렇듯이 비공 역시도 정당성을 담보하는 판단의 기준을 하늘의 뜻인 천지 내지 천의에서 찾고 있다. 묵자의 하늘은 모든 인간을 인종 및 빈부귀천 등에 관계없이 사랑한다는 점에서 동학의 사상과도 같고 겸애에서 도출된 비공은 묵자의 평화주의 이념을 뜻한.

 

인간의 특징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호모 라보란스가 있다. 노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제자백가 가운데 이를 통찰한 인물이 바로 묵자였다. 그는 노동을 인간이 지닌 특이한 품성으로 간주했다. 인간의 노동은 재화의 생산을 위한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에 있다. 노동과 휴식이 그렇듯이 생산과 소비도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사상가들로부터 배척받았던 묵자는 정약용이 연상 되어지기도 한다. 실학과 동학사상, 천주교 사상까지 절묘하게 믹스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적합한 개인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보는 헤겔의 영웅론과도 같이 비록 춘추전국시대의 요구에는 맞지 않았으나, 현대에 묵자 사상이 새롭게 주목받는 것 또한 시대의 요구나 다름없다.고전연구가인 저자 신동준의 말처럼 G2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고전은 현재의 거울이라 하듯이 묵자를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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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미동 입니다 :)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행복의 공식'을 뒤엎는 사색

17명의 대표 인문학자가 꾸려낸 새로운 삶의 프레임!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서평단을 모집합니다.






▶ 도서 소개


헤르만 헤세의 시 「행복해진다는 것」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 그저 행복이라는 한 가지 의무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세에게는 인간의 구원과 행복만큼 중요한 문학적 화두가 없었다. 그가 보기에 우리의 존재의미는 아주 간명하다.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나. 어떻게 행복을 만드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한 권에 모았다. 한 그루의 나무를 알아야 숲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만난 18인의 고수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철학, 문학, 음악, 건축, 종교, 신화, 심리학, 의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자기 나무 한 그루를 그들은 꿰뚫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자기 전공 분야를 넘어 더 큰 세상을 조망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들이 바라본 풍경을 이어 붙인 삶의 지도다. 18장의 지도를 모자이크해 놓은 일종의 길라잡이랄까. 지금 이 지도를 당신의 손에 건네려 한다. 어쩌면 당신은 이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드는 법, 그 비밀스런 오솔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 길은 드러나 있을 수도, 감추어진 길일 수도 있다. 어떤 고수라도 방향만 가리킬 뿐 당신의 길을 알려주진 않는다. 목적지를 향하는 나침반은 온전히 당신에게서 꺼내야 한다. 그것이 또한 길을 찾는 묘미가 되지 않겠는가.


앞서 간 이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괜찮다. 처음 가보는 길을 새로 내는 것도 좋다. 어차피 그 길은 세상 어느 누구의 길과도 같지 않다. 그럼 이제 걸음을 떼 보자.

헤세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서.




▶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해당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7월 23일(수)~2014년 07월 30일(수) 7일간 입니다.


셋, 총 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당첨자 발표일은 2014년 07월 31일 (목) 오후 입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8.04(목)~08.13(일) 10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서평단 발표 페이지에 온라인 서점 블로그와 개인 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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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웜바디스 : 한정판 합본팩 (BD+DVD)
조나단 레빈 감독, 존 말코비치 외 출연 / 데이지 앤 시너지(D&C)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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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 정말 좀비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종말이 올까?

나는 새삼스럽게 요즘 이러한 것들이 궁금하다. 우연히, 내 스타일은 정말 아니지만, 그냥, 순전히 가벼워보여서 보게 된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였는데, 젠장 너무 재밌어서 다 보고 말았다.

 허허허 어째 이런 영화까지도 날 감동시킨단 말이냐.......

세상의 끝,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류가 전멸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좀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높은 장벽을 쌓아 놓고 살아간다. 세상은 이제 좀비와 인간 그리고 해골이라는 세 ()으로 분류된다. 좀비와 해골이 인간을 먹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커다란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 거리를 오늘도 좀비가 걷고 있다. 이름도 모르고 왜 걷는지도 모른다.

죽었기 때문이다. .. ......

나는 죽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다.

지금은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나가는 중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소개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이름이 없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이름이 없다. 우리는 자동차 키를 잃어버리듯이 이름을 잃었고,

기념일들을 잊어버리듯이 그것을 잃었다.

내 것은 아마도 'R'로 시작하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영화의 나레이션을 특이하게도 이 좀비가 한다. 좀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죽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인간의 뇌를 먹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생의 기억이 전이되는 순간이며,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짜릿하게 퍼지는 생명의 맛을 음미할 때 마주친 인간여자 줄리.

왜 그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자신이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다만 그녀를 살려야 한다.

무작정 줄리의 손을 잡고 도망치던 좀비는 줄리에게 죽은 사람처럼 걸으라고 시킨다.

얼떨결에 좀비를 따라가는 줄리.

이때부터 좀비는 R이라 불리운다. 마치 어느 시인이 말하였듯,

인간의 존재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것처럼,

R은 점점 인간화된다. 줄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아지트에 꽁꽁 숨겨두고

자신이 즐겨 듣는 LP판을 같이 듣고 먹을 것을 찾아주기도 한다.

둘은 믿기지도 않게 사람연인들보다 더 잘 논다.

듣기만 하는 R과 그런 R에 의지하는 줄리, 좀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순수한 R, 게다가 줄리를 만난 뒤 처음으로

 잠까지 잔다. 시체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기본 상식을 무시하고서 말이다.

꿈 속에서 다시 또 줄리를 만나는 R.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R은 줄리가 떠난 사실에 가슴 아파하고,

 여기서 더 웃긴 거, 친한 좀비 아저씨가 R을 위로한다면서 하는 말이

나쁜 년~!! 이란다.... !!

R과 줄리는 그렇게 좀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사랑을 키워간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잡아먹지 않고 길을 비켜주고

줄리를 잡아 먹으려 달려오는 해골들을 상대로 싸운다.

R과 줄리의 사랑은 세상의 끝에서 좀비를 인간으로서 자각시키는

도화선이 되어줌과 동시에

인간과 좀비의 공생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사랑이 전에는 어떤 것이었나를 기억한다.

거기에는 복잡한 감정과 생물학적 요소들이 작용했다.

우리는 통과냐 아니냐를 결정할 정교한 실험을 하고, 관계를 구축하고,

기분의 고저를 경험하며 눈물을 흘리고, 정신없이 빠르게 말려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시련이며, 극한의 고통의 경험이지만,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랑은 더 간단하다. 더 쉽다. 하지만 작다.

당신은…… 이렇게 죽은 나도 사랑해 줄 수 있나요?

당신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데.”

다른 좀비 호러물과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다만 좀비로맨스물이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상상하는 세상의 끝에서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대항마로서 더 업그레이드 된 무기나 약품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만 주목하였지만 웜바디스의 작가는 바로 인간그 자체, 에게서 희망을 말하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인간으로서의 자각, 존재로서의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이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머셋 몸이 오직 생각하는 인간만이 인간의 굴레에서 자유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였듯이,

끝까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생각을 놓치지 않는 R에게서 세상 끝의 유토피아를 볼 수 있다.

인간과 좀비의 공생으로 아름다워진 미래라는 결말도 역시나 좋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타인과 함께 공생하면서 일구워내는 삶이라는 밭이 이렇게 희망적이게 느껴진 적은 무척 오랜만인 듯 하다.   머  니콜라스 홀트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 거라면 할말은 없다.....후후훗~!

  그리고 하나 더, OST가 정말 좋더군....

우리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경계조차 없이 덩그러니 우리들과 하늘의 벌어진 허공뿐이라는 것과 같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완전히 죽는 것과 같을 거라고 상상한다. 방대하고 완벽한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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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07-24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런 젠장 저도 이 영화, 너무 재밌게 보았어요~
재미와 이모저모 생각해 볼 여러가지가 있었던 그런,
그런데 드림님의 멋진 리뷰를 읽으니, 한층 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합니다~
R로 나오는 니콜라스 홀트가 예전의 '어바웃 어 보이'의 꼬마 마커스 맞죠~?^^
그리고 R의 친구로 나오는 존 말코비치도 왠지 인상적이었구욤.^^
정말 OST도 수록곡 모두 귀에 쏙쏙~~

드림님! 즐겁게 본 영화에 대해 드림님과 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참 좋네욤!
비 내리는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참, 프로필 사진의 '시원' 공주님의 자태가 무척 예쁩니다!!!^^ )

드림모노로그 2014-07-24 09:2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나무늘보님도 이 영화 재미있게 보셨군요 ㅎㅎㅎ
젠장, 너무 멋지고 재미있고 이쁘고 ㅋㅋㅋ 그랬어요 ㅎㅎ
존 말코비치는 또라이 역도 잘 하더니
자상한 아버지 역할도 참 어울리는 , 배우같아요..
니콜라스 홀트는 ,,, 너무 멋있더라구요... 대성할겨 ~ ㅎㅎ
OST가 거의 올드 팝이라 익숙한 곡들도 많아서
감성어필에 탁월한 선곡들이었어요 ㅎㅎㅎ대박 ...!!

저도 간만에 나무늘보님을 뵈오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하네요 ㅎㅎㅎㅎ
휴가 가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나서 블로그에 들락날락 하고 있어요 ㅎㅎㅎ
오랫동안 떠나 있던 기분이 들어서 ㅎㅎㅎㅎ

울 시원이가 점점 이뻐지고 있어요 ~!!
어렸을 때 증말 못난이였는뎅 ㅋㅋㅋㅋ
언제나 밝은 ,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나무늘보님의 댓글을
이 아침에 보니, 너무 기쁘고 즐거운 하루입니다 ㅎㅎㅎ
나무늘보님도 좋은 하루 ~~ 되세요 ~ !!
 
한글 논어 -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한글 사서 시리즈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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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학이]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근본 문제를 다룬다, 삶의 원칙과 기준, 삶의 방법과 기술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모두 16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편인 [위정]은 유교의 이론으로 연관되며 배움을 바탕으로 정치를 실천한다는 논리이다, 24장으로 되어있다,

세 번째 편은 [팔일] 최고 지도자가 제사 지낼 때 연주하는 무악의 이름

위정에 이어 정치를 잘하는 요건을 기록한 글로 주요 내용은 예악을 활용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이 편은 26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4[리인]은 마을에 착한 풍속이 넘치다. 또는 열린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다라는 의미이다, 참된 사람이 선행을 실천해야 예악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편은 모두 26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5[공야장]은 주로 인물에 대한 평을 담고 있다, 절반 가량은 공자의 제자에 대한 평이고, 나머지는 당시 제후국의 명망가들에 대한 평이다, 나머지는 당시 제후국의 명망가들에 대한 평이다, 인물평을 통해, 인간의 현명함과 어리석음, 삶에서의 얻음과 잃음에 대하 논의하였다, 이 편은 모두 27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6[옹야]도 앞 편의 [공야장]에 이어 인물평이 많다, 앞부분은 인물에 대해 폄하하거나 꾸짖는 평이 많고 뒷부분의 경우, 현명한 사람이나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 편은 모두 28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7[술이] 에는 공자가 지향하는 뜻과 행실에 관해 적은 글이 많다. 공자 자신의 겸손한 태도, 남을 가르치는 연표, 그리고 용모와 일처리에 관한 행적이 담겨 있다, [논어]의 여러 편 가운데 명문장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 편은 모두 37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8[태백] 은 예의를 지키면서 사양하는 일이나 사람을 사랑하고 효도하는 일과 같이 덕행을 실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또한 배움을 권장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 권고하는 글도 많다, 모두 21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9[자한]에는 공자의 덕행을 기술한 문장이 많이 담겨 있다, 따라서 요..우나 문왕, 무왕과 같은 공자 이전의 성현의 덕을 기술한 [태백]편의 다음에 자리매김하였다, 모두 30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0[향당] 에는 공자의 문인들이 스승 공자의 일상생활을 여러 측면에서 기술한 글이 많다. [향당]은 예전에는 전체가 1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여기에서는 내용에 따라 17개의 장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11[선진]은 공자가 제자들의 슬기로운 언행에 대해 평가한 말이 대부분이며, 특히 민자건의 언행을 기술한 곳이 4장이나 되고 민자건을 민자라고 존칭한 것으로 보아, 민자건의 문인이 기록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모두 25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2[안연]에는 올바른 정치의 방법,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 부모와 자식 사이의 도리 등에 대한 학문과 덕행이 언급 되어 있다. 공자는 제자들의 인품이 어떠한지 그 정도에 따라 자신의 평가를 달리한다, 모두 24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3[자로]는 착한 사람이나 정치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정치과 교화의 바탕이 되는 효도와 공경에 관한 글이 주를 이룬다. 전반부에는 정치적 문답이, 후반부에는 정치에 참여하는 관리들이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글이 많다. 모두 30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4[헌문]에는 왕과 제후, 대부들의 역사적 기록과 행벅을 논의한 것이 많으며, 특히 지도자의 기본 원칙인 자기 수양을 통해 국민을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도리를 밝혔다, 모두 46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5[위령공] 은 공자가 겪은 다양한 사건들, 수양과 처세에 관한 글을 수록하였으며, 특히 세상의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정치 사회 질서의 혼란이 심해진 것을 탄식한 글이 대부분이다, 내용상 모두 42개의 장으로 구분하였다,

16[계씨] 는 다른 편에 비해 독특한 부분이 많다. 노나라 [논어]와 차이가 많기 때문에 어떤 학자는 제나라 [논어]라고도 하였다.특히, 세 가지 벗, 세 가지 즐거움 등 세 가지 내용을 들어 논의한 장이 많고 그 내용도 상대적으록 길다. 내용상 모두 14개의 장으로 구분하였다,

17[양화] 편에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하여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부분을 한탄한 내용을 주로 다룬다. [논어]를 편집한 사람들은 당시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흉악한 짓을 저지른 신하들의 난맥상을 밝히기 위해 이 편을 만들었다, 모두 26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8[미자]에는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들에 관한 일화가 많이 담겨 있다. 관직에 나가고 물러나는 일을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사는 은자들을 등장시켜 공자의 현실주의와 개혁 사상을 드러내었다. 모두 11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9[자장] 은 모두 제자들의 말로 채워졌다. 공자 제자 중에서 안연 이후에 총명함은 자공이 최고이고, 중삼을 제외하고 자하가 가장 충실했으므로, 이에 대해 특별히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모두 25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20[요왈] [논어]의 마지막 편으로, 그 체제가 특이하다. 공자나 제자의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논어]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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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고전읽기는 꾸준히 해야 한다. 서양철학이 '앎'에 천착하였던 것과는 달리 동양철학은 수신修身이 기본 가르침이다. 수신이라는 나무에 제가와 치국, 평천하라는 열매가 달린다.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곧 동양철학의 기본 사상이 된다. 그 가운데 수신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고전은 단연코 논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도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고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논어는 진흙투성이에 뿌리를 내리고 피는 연꽃의 청초함처럼, 파란만장한 공자의 삶에서 피어난 진리의 열매이다. 동양고전만 30년을 공부해온 저자 신창호 교수는  공자의 삶을 쉽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감을 위해 한글로 논어를 독해하였다. 저자는 공자사후 공자의 사상을 추종하였던 제자들에 의해 탄생하게 된 논어가 전체 주제와 논리가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문답식으로만 정리되어 있던 것을 주제와 내용별로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일상생활에 관한 공자와 제자 사이의 문답

둘째, 당시의 정치인이나 정치에 대한 공자의 논평

셋째, 공자 자신의 일상생활에 관한 의례나 예절에 관한 문제

넷째, 역사적 인물의 사적에 대한 숭앙이나 찬미

夫仁者(부인자)는 己欲立而立人(기욕립이립인)하며

己欲達而達人(기욕달이달인)이니라.

能近取譬(능근취비)면 可謂仁之方也已(가위인지방야이) 니라.

- 논어 옹야편 28장 박시제중(博施濟衆 )-

어진 사람은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한다.

가까운데서 미루어 빗대 볼 수 있다면 인을 추구하는 방법이라 이를만하다.

-한글논어-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 주고,

자기 앞을 트고 싶으면 남의 앞길도 터 준다.

가까이 있는 자신의 처지를 바탕으로 남의 입장을 알아차릴 때,

그것이 바로 열린 마음을 실천하는 방법이리라.

(인은 한글로 어질다라는 뜻인데 '모질다'의 상대어이다. 이는 열린마음으로 독해할 수 있는데, 열린 마음으로 정치하는 것이 바로 은혜를 베풀어 많은 삶을 구제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각 장마다 저자의 독해법이 실려 있다. 아직 한문으로 읽는 논어가 익숙하여서인지 같은 원문이지만,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한자는 같은 음이라 하여도 음훈과 훈독으로 읽어야 하기에 한 글자가 여러가지 의미로 쓰인다. 반면 한글은 한자의 음훈과 훈독을 표현하기에 매끄러운 단어가 그닥 많지 않다. 조금은 생경하지만, 논어를 한글로 옮기는 작업이 결코 녹녹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비교하기 쉽게 가장 널리 알려진 학이편을 옮겨 보는데, 논어의 직해보다 저자의 독해가 더 찰떡같이 들린다. ↓

 

 

학이제일(學而第一) 1장 16편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자왈, "불환인지불기지 요, 환불지인야 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해야 한다."

한글논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참된 사람은 스스로 쌓아올린 학덕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헤아린다,따라서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사는 일이다. 반대로 남을 바르게 알지 못할 경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치우치고 바른지 분별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내가 남들을 모르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수신은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속도전이 되어 빠르게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느림의 미학은 일견 어리석게 비춰지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성찰하며 느린 걸음으로 걸어 온 이들에 의해 세상은 살만해져 왔다. 공자왈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우리네 인생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논어를 통해 삶의 미학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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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5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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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이런 말은 사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 40이 훌쩍 넘어가고 나니 힘겹게 계속되는 이 삶이 버겁기만 하다. 나를 옥죄는 책임과 의무라든지, 거미줄처럼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 네트워크가 가끔씩 나의 목을 조르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답답함이라는 씨줄과 영겁의 굴레와 같은 날줄이 교차되어 중년이라는 삶의 옷을 짓는 중이다. 날씨도 한 몫 보태 비가 왔다 안왔다  오락가락하니 감정이 들쑥날쑥하며 널뛰기를 한다. 거기에 밥벌이의 지겨움까지 더해 시종일관 우울의 교향곡을 울려댄다.  나이도 먹을만치 먹었으니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 수도 없는 일, 퍼부어대는 빗줄기처럼 돋아나는 고통의 소름도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점점 고독이란 물을 먹고  솜처럼 무거워져만 가는 이 삶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지 당최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삶에 그때마다 끼어드는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고통을 잊고 삶을 매끄러운 꿈으로 봉합하기 위한 매일 매일의 그 힘겨운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삶의 무게라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근면함이 아니라 그것과 대면하는 약간의 용기, 그로인해 문턱을 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자기 스스로 행동하는 것, 거기에 덧붙이면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자유롭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붙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이라는 자유의 역설이 ,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알아야 한다는 역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위해선 자신의 자유의지만이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 몸뚱어리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유롭기 위한 훈련이.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를 넘어설 용기가.

 

    내 인생을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인생의 그래프는 굴곡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삶은 굴곡이 심한 그래프다. 자신의 다리를 먹어치운 고래를 찾아 목숨 걸고 쫓아다닌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처럼,  <타인의 삶>에서 안기부에 일하던 비즐러가 자신의 전부이자 전체였던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유를 위해 권력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그 용기를, 비록 비극이었지만 오대수를 향한 복수만이 목적이었던 삶을 살았던 이우진에게조차, 또는 <창수야>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걸어버린 삶조차 부럽다. 나에게는 무언가에 -그것이 정의라 하더라도 - 열정과 같은 몰입이, 정열이, 사랑이, 용기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유'이다. 삶에서 한 발 내어보는 용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용기, 사랑이던, 그것이 복수이던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용기', 모든 것이 용기의 결여였다.  

    

 

 

저자는 삶에서, 만남에서, 능력에서, 욕망에서 우리가 진정 자유로왔는지를 물어보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심연의 자유를 응시하게 한다. 고통을 겪는다거나, 고통의 크기에 따라서 삶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며, 고통을 통해 삶에 물음을 던지며, 고통을 통해 '자유'로와 지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고통은 지혜로운 안내자로 찾아온다고, 니체가 '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회의의 질병으로부터 돌아오면서 사람은 새로 태어난다. 낡은 껍질을 벗고, 더 민감해지고 좋은 것에 대한 보다 섬세한 혀를 지니게 된다. 더 천진난만한 동시에 이전보다 백배나 더 영리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니체 -즐거운 학문)라고 하였던 것처럼, 우리 심연 안에 잠든 '자유'를 깨우게 하는 것은 '삶이라는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책을 읽기 전의 나와 몇 년동안 책을 가까이 한 지금의 나와 비교를 자주 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았던 시절을 자꾸 떠올리는 것은 책을 읽으니 자꾸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무언의 충돌이 내 안에서 자꾸 일어나는 것만 같아서이다. 삶에 대한 고통도 마찬가지, 단조로왔던 젊은 날의 삶이 그리운 것은 점점 복잡해져가는 중년의 삶이 버겁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통은 모두 과거에서 시작되어 현실로 이어왔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미래, 그 미래에는 유토피아의 미래가 기다릴까? 천만에 틀렸다. 미래역시도 지금과 같다. 방법은 현실의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이다. 그 문턱을 넘게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라는 한 걸음이다. 그만 징징대고 나를 위해서 , 닥치고 자유하리라~~~!!

 

 

유토피아란 부재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고

그런 그리움에 떠밀려 다니며 만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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