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제너레이션 - 스마트 세대와 창조 지능
하워드 가드너 & 케이티 데이비스 지음, 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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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튜닝을 항상 남편이 해주기에 튜닝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 서방이 좀 이상하다. 만사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처럼 전에는 다 해주던 것도 이젠 나보고 하라고 한다. 기껏 인터넷을 뒤지다가 기타 튜닝을 해 놓았더니 기가 막혀 한다. 이것도 튜닝한 거라고 했냐면서 구박을 어찌나 하던지. 그래서 튜닝기나 살까 하다가 기타 튜닝이라는 앱을 다운 받았는데 헐 ^^;;; 대박..... 놀라웠다. ~!!! 앱의 세상은 그야말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몇 달 전에는 갤럭시 핸드폰 터치 한방으로 프린트 할 때마다 신기했었는데 오늘은 앱세상에 입이 쩌억 벌어졌다.  e 편리한 세상이라도 외치고 싶다고나 할까

 

 

X세대, Y세대, Z세대의 바통은 이른바 '앱'세대로 이어진다. 태어나자마자 디지털 세계에 입문하는 아이들의 세대를 하버드대 발달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와 케이티 데이비스는 앱세대라고 명명하고 있다. 두 공저자들은  앱 제너레이션에서 앱 세대들의 인지적·사회적·정서적·윤리적 측면을 짚어 보는 것을 목표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밝히고 있다. 저자들이 말하고 있는 '앱세대', 즉 젊은 세대들에게 디지털이 미치는 삶의 영향을  세 가지로 축약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앱 세대들을 관통하고 있는 세 가지의 키워들은,

 

 

바로 개인의 정체성’, ‘인간관계’, ‘창의성과 상상력 발휘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분명 인간의 근원적 본성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지만, 디지털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최근 수십 년간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관계와 상상력에는 현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p17

 

 

저자들은 앱을 활용해 여러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탐색하는 사람을 앱 주도형인간이라 하고  앱이 자신의 행동과 선택, 목표등을 제한하거나 결정하게 내버려 두는 사람을  앱 의존형인간으로 분류하며 오늘날 앱 세대들이 앱이라는 바다에 빠져 있는 생활 방식이 그들의 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방면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결과적으로 앱세대들이  '앱 의존형 인간'들이  다수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결국 앱 문화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인간관계, 상상력과 관련하여 깊이 없는 행동양식에 젖어들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앱에 휘둘리지 않고 앱 주도형 인간이 만만치 않은 미래의 숙제라고 말하며 젊은이들에게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해답을 탐구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 할 때 멋진 삶이 기다릴 것이라는 당부의 말로 책을 마치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을 무척 재미있게 하고 있다. 심심할 때마다 글을 써서 올리는 행위가 처음에는 영 어색하더니만, 재미가 들리니 이것도 중독성이 짙다. 게다가 앱의 세상~~!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앱의 세상때문에 미치겠다. 피아노 악보부터 기타악보까지 언제 어디서든 콜이다. 이제는 못 배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것이지 배우고자 한다면 '앱'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매일 아침 영어사전을 알림으로 받아놓고 점심에는 우쿨렐레를 저녁에는 피아노를 공부한다. 그러나, 몇 년 전에 읽었던 <디지털 단식 : 와이즈베리> 의 저자 역시도 디지털의 중독이 '알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본성)'에 기인하기 때문에 디지털중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능과 싸우는 매우 힘겨운 싸움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한다.  어쩌면 먼미래 디지털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생각하는 인간'은 사라지고  '터치하는 인간'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될지도 모를 일.  앱의 세상이 아무리 유혹적이라 하더라도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탐구하고 질문하고 사색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앱의 사용을 모색해 봐야겠다.  어차피 디지털시대에 앱의 세상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 앱 의존형이 아닌 앱 주도형 인간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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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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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가장 큰 변화들은 반미치광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독일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가 한 말이다. 세계의 역사는 반미치광이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쓰여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 딱 백년이 흐른 뒤 히틀러라는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잔인한 독재자가 독일에 출현했다. 한 민족에 대해 민족말살의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 질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이다  

 어제 우연히 나는 악마를 보았다라며 떠도는 사진을 페북에서 보게 되었다. 언뜻 보면 평화로와 보이는 사진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그랬을까? 이병헌 주연의 범죄 스릴러영화 <나는 악마를 보았다>를 연상케하는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사진 한장안의 사람들은 마치 휴가를 나온 듯 편안하고 여유로와 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잔인함에는 '악마'라 하여도 전혀 틀린 표현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 퍼붓는 공습을 보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한없이 의구심이 드는 사진이었다. 

 

 

 쇼펜하우어에서 칸트, 헤겔, 니체에 이르기까지 걸출한 철학가들을 배출한 덕에 철학의 본고장이라 불리우는 독일에서 이런 극악무도한 독재자가 출현하였다는 것 역시도 무척이나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만큼이나 히틀러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니체나 헤겔과 같은 거물들의 고장인 독일에서 이러한 집단 학살이 벌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대체 무엇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바로 이 책 히틀러의 철학자들》의 시발점이다. 

히틀러가 민족 우월성을 내세워 유대인 말살 정책을 위해 세운 정교한 이론은 란츠베르크 감옥에 수감되면서 시작되었다. 감옥에서 칸트와 피히테와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에서부터 실러, 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와 같은 19세기 철학자들의 사상을 왜곡과 편집의 과정을 거치면서 히틀러의 사상적 토대이자 교과서나 다름없는 <나의 투쟁>이 완성된다. 

 

  

 

 

나치의 철학적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또 하나는 나치의 새로운 현실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히틀러가 사랑한 철학자들의 명단에는 쇼펜하우어에 이어 니체, 바그너, 호메로스와 플라톤까지 들어있다. 이들 철학자들의 사상은 나치 건설이 목적이었으며 지성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침투가 도착점이었다.  독일인들의 민족 우월성에 입각한 정신 쇠뇌의 핵심설계자 역할은  로젠베르크와 보임러, 크리크에 의해서 완성된다. 히틀러가  대학을 조종하고 오래된 질서를 파괴해 가며 정신적인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대인'이 목적이자 수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33년부터 시작되어 1900년 말까지 이어진 유대인 말살정책은 히틀러를 시대가 낳은 철학자 총통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게 만들었으며 , 독일의 정신은 곧 히틀러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정신적인 면에 물들지 않은 철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테오도어 아도르노, 발터 벤야민과 그리고 하이데거의 제자이면서 연인이였던 한나 아렌트 였다이 세명의 철학자와 인연이 많았던 친나치성향의  철학자 하이데거와의 이야기가 책 후반에 흥미롭게 펼쳐진다. (다큐 형식이라 술술 읽힌다.)

 

  

 저자는 철학이 윤리학에서 탄생했으므로 나치즘의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철학자들에게도 윤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 철학자들의 사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반론으로 갈무리 하고 있다.  2013년 타계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거릿 대처는 같은 바람을 맞으면서, 한 척의 배는 동쪽으로 다른 한 척의 배는 서쪽으로 향한다.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돛을 어떻게 바꿔 다느냐에 달린 것이지 바람의 탓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1900년대는 바다에 비유하자면, 바람과 강물의 유속이 지나치게 빠른 변화의 세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생존'과 '이념'과 싸워야 했던 불행의 세기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듯이) 그런 변화의 세기에 히틀러는 유대인 민족 말살이라는 돛을 내리고 이념과 사상이라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배에 승선한 이들에게는 오로지 배가 신속하게 목표지점까지 도착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나치라는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승선한 사람들에게 '히틀러'는 항해수이자 조타수였다. 바람은 어디에나 불지만, 그 바람을 헤치고 가는 것은 배에 승선한 이들의 몫이 된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이에 두고 이념분쟁으로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하나님의 탓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단장취의(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쓰는 일) 로 역사를 쓰는 일은 시대의 불행을 답습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히틀러와 그의 철학자들을 통해 독일의 철학가들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도덕과 철학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현대철학에  좋은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다.  독자로 하여금 사유케 한다는 것자체가 철학서의 본질일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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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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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살다보면,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할 때가 있다. 이상은의 노랫가사처럼 지나고 나서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딱 그렇다.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뒤통수를 치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의 인생인지도. 어쩌면 인생에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은 오만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여 늘 쫓기듯 살면서 에서 찾아오는 후회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이란 놈 앞에 자유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철학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 항상 현실의 문제가 도드라져 보여 마음이 차분해지게 되는 것 같다. 거리의 철학자라 불리는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에서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라고. 지옥 같은 삶에서 필요한 것이 정말 철학일까?

 

철학자가 하늘의 별만 보고 가다가 우물에 빠졌다. 별을 보느라 바로 앞의 우물을 보지 못한 철학자를 보며 하녀는 비웃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를 가졌을지라도 당장 자기 앞에 있는 우물을 보지 못하는 철학자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안다 할지라도, 눈 앞의 장애물을 보지 못하는 지식은 필요없는 지식 즉, 죽은 지식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하녀의 비웃음과는 달리 철학자는 그런 하녀가 더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먼 하늘의 별이 품고 있는 지식의 원천을 알리 없는 무식한 하녀가 삶의 원대한 뜻을 어찌 알까싶기도 하다. 하녀는 눈 앞의 우물(실존)보다 무한 정신세계(현학적 유희)를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테니까. 이렇게 시작된 철학자와 하녀의 동상이몽으로 '철학' 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현학적 허세와 비현실적 몽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철학이 현실에서 실용가능한 지혜로서 통용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상에서의 철학',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한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난한 이들이 껴안을 수 있는 철학이며, 가난한 이들이 철학자에게 선사하는 철학에 대한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니체가 어지러운 세상에 자발적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것처럼 ,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저자. 저자는 이러한 현실, 이 지옥이라 불리우는 현실에서 도피처로서의 학문이 아닌 지옥같은 세상에서 필요한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한다. 척박한 삶에서 건져올리는 철학 한 줄이야말로 참된 공부이며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 한다.

 

공부란 자신이 가진 미약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앎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고 진리가 가는 길이 진리의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란 그 길을 스스로 내면서 나아가는 일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내면에 고착되어 왔던 프레임의 세계가 너무 강해 '다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저자의 말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라지만, 내면이 견고해지지 않으면, 삶에서 '다름'을 추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인문학이 점차 현학적이 되어버리면서 터져나오기 시작한 인문학의 위기설 가운데 사회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는 현학적 유희나 비현실적인 몽상이 아닌, 삶에서의 리얼리티가 바탕이 되는 '앎'의 철학을 말한다. 철학의 뿌리는 바로 이러한 '현실'의 리얼리티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삶' 그자체이다. 아무리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 한들 당장 먹고 살 빵과 물이 없다면 삶은 영속되지 않을 것이고, 빵과 물이 있다해도 별의 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영혼 없는 삶을 영위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삶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천착하고 관조할 줄 아는 삶을 최고의 삶이라 했듯이 삶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좋은 삶을 향한 철학적 추구이다. 삶의 리얼리티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문학의 정신일테니까...... 아. 이제야 알겠다. 삶에서 깨달음이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라는 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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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정의, 사랑, 자비

삶의 스승 3인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혼란스러운 시기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던 인류의 스승 3인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화를 재조명하며,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정의, 사랑, 자비 등의 메시지가 현재의 우리 삶에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 주는 수작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원이자 철학자, 종교사학자, 잡지 편집장, 소설가, 라디오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박학한 지식과 영적 지혜를 한데 아우르며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 추천사


매력적이고 교훈적이다.

- 《르 피가로》


르누아르의 지속적인 성공의 배경에는 그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 깊이 영향받은 영적인 사람이라는 점이 있다. 그는 철학적이고도 영적인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그의 목표는,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각 인물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그들이 어떻게 오늘날과 관련되는지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 《사이콜로지(Psychologies)》


우리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 개성, 생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이유로 그들을 함께 묶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관련이 있는가? 이 책에서는 저자는 보편적이고도 핵심적인 세 인물의 초상을 그려 낸다.

-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


정말 좋은 읽을거리!

-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성공적이고 풍부한 내용과 의미를 담은 책. 사색을 위한 양식을 제공한다.

- 《르 파리지앵(Le Parisien)》


휴가 기간에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꼭 봐야 할 책.

- 《펠레헨(Pélerin)》



▶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해당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7월 10일(목)~2014년 07월 15일(화) 5일간 입니다.


셋, 총 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당첨자 발표일은 2014년 07월 16일 (수) 오후 입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7.23(월)~07.28(월) 6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서평단 발표 페이지

온라인 서점 블로그와 개인 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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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명, 어느 날
스티븐 에모트 지음, 박영록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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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자초한,

지구 초유의 비상사태에 대한 책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낳고, 낳고... 인류가 존재해 온 방식은 오로지 생명을 이어 오는 행위 곧 출생에 의해서이다. 또한, 이 생명의 이야기는 생명의 기본 속성이 '성장' 에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성장과 팽창은 인류 문명사에 언제나 행복과 미덕으로 인식 되어 왔다.

 

 

 

불과 1만년 전에는 100만명의 인류만이 존재했다.

불과 200년 전인 1800년쯤에는 10억 명의 인류가 살았다.

50년 전인 1960년쯤에는 30억명의 인류가 있었다,

현재 인류는 70억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세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최소한 100억명의 인류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옥스포드대학교 계산과학 전공 객원 교수이자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산하 계산과학 연구소 소장인 스티븐 에모트는 100억명, 어느 날을 통해 100억 지구가 닥친 냉혹한 현실을 가감없이 전해준다. 냉철한 분석과 과학적인 증거 제시를 통해 장차 세계 인구 100억 명에게 닥쳐올 미래에 직면하게 되는 문제-부족한 물과 식량난 뿐만 아닌 기후 변화와 에너지 수요의 급증으로 인한 자원부족 문제,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인한 대기권 변형-에 대한 위기의식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대기권이 변형되기 증가하였고

물 소비가 증가하면서 수권이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대기와 해수면 온도의 상승으로 빙권이 변형되기 시작하였고,

농업,도시 개발, 도로 건설,광업으로 인해 토지 이용이 늘면서 생물권이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위와 같은 전 지구적인 비상사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개발과 인류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제안 역시 희망적이지 않다. 마치 극단적인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애둘러 말하지 않고 직격탄으로 날려주는 단문의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고 명약관화하다. 지구의 환경과 미래에 대해서 안일함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해 주기에는 단연코 최고의 책이다. 과거 탈성장이론의 <성장의 광기>,<낭비사회를 넘어서>와 같은 맥락이지만, 기존의 책들이 그저 경고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책은 마치 도끼로 머리를 내려쳐주는 충격과 함께 한다. 이제 지구도 좀 생각하고 살아야겠다. 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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