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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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앵무새],[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가 진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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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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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난 이야기중독자인 것 같다.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소설책에 환장한다. 아니다. 이야기중독자 맞다. 아침드라마를 시작으로 저녁 월화 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까지 챙겨본다. 요즘은 드라마 보는 재미에 살기도 한다. 참말로 희한한 것이 그 수많은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는 것. 그러고보니 나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확장하여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나 아줌마들은 이야기에 환장하고 살아가고 있다. 넘쳐나는 영화, 넘쳐나는 문학서적들, 넘쳐나는 신화, 인간의 족적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이야기가 남아있다. 인류문명사에 사람이 살았던 모든 곳에 이야기가 태동하는 것을 보면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의 삶 그 자체와 함께 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런거보면 인간을 호모 픽투스 Homo fictus, 이야기하는 인간라 칭하여도 무방하지 않은가.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분은 네버랜드라는 상상 속 나라의 주민이다.

바야흐로 스토리텔링 시대. <이야기의 힘>을 이해한 인간 족속들은 이제 무엇에든 스토리텔링을 갖다붙이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 수학, 스토리텔링 영어, 스토리텔링 마케팅, 스토리텔링 교육, 정치, 외교, 홍보, 사업, 게임, 광고, 육아까지도 ... 왜? 이야기는 감성어필에 최고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은 그 누구도 침범할 없는 영역인 인간 고유의 영역인 '감을 건드린다.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인간이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를 진화생물학과 심리학, 신경과학 등의 연구를 통해 흥미롭게 풀이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저자 특유의 식견이 빛나는 스토리텔링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저자는 픽션에 이끌리거나 이야기에 이끌리는 이유를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로 픽션에서 일어나는 협박, 죽음, 절말, 불안, 질퐁노도 등은 대부분 지독하게 불쾌하지만 그 불쾌감이 스토리텔링의 기본 바탕이 되어 삶을 통찰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인물 + 어려움 + 탈출시도=이야기

이야기의 기본 공식이다.

오직 말썽만이 흥미롭다.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인간 조건에 대해 거대한 곤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섹스와 사랑, 죽음의 공포와 삶의 도전, 그리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예속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같은 권력이 이야기의 주제가 되며 이 거대한 난제를 헤쳐나갔을 때 '쾌감'을 작동케 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다.

 

이야기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고 누구도 침투할 수 없는 깊은 곳의 감성을 흔들어놓기 때문에 이야기 하나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표현이다. 실제로 노예제도 폐지와 20세기의 대참사였던 홀로코스트는 '이야기' 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이미 우리의 모든 삶에 침투하여 스며들어 있으며 삶을 낳고 또 삶은 이야기를 만든다. 저자의 인문학적 고찰로 빚어낸 '네버랜드'의 세계는 상상과 실존을 종횡무진하며 펼쳐진다. 이야기의 기발한 고찰이 반짝거린다. 아, 참 오늘은 월화드라마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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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번역 - 쑨거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읽기와 쓰기 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4
윤여일 지음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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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번역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思想(사상)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러한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 두 번째는 <철학에서> 판단, 추리를 거쳐서 생긴 의식 내용. 세 번째는 <철학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가진 통일된 판단 체계.네 번째로는 <철학에서> 지역, 사회, 인생 따위에 관한 일정한 인식이나 견해. 마지막으로 <문학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지는 견해와 주장이다. 대부분이 사상 하면 첫 번째의 뜻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 <사상의 번역:우리시대 고전읽기 질문 총서 네 번째 책>인 이 책에 해당되는 뜻은 마지막 의미인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지는 견해와 주장의 의미에 다 가깝다. 굳이 이렇게 사상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 책의 구성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란 무엇일까? 바로 쑨거가 쓴 [다케우치 요시미의 물음]을 통해 보는 루쉰의 사상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쑨거의 견해와 주장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다.

 

 

쑨거가 이 책을 통해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을 번역 하는 패턴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역사상 인물로 크게 시사를 받았기에 숭배에 가까운 감정에 빠져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의 말투마저 흉내 내기에 이른다.

둘째. 역사상 인물을 추종하는 분위기에 반감을 폼어 상대의 사생활을 검증하는 등 아우라를 꺠뜨리려고 노력한다.

셋째, 역사상 인물이 범한 사고의 한계를 파고든다.

넷째, 역사상 인물이 지적 전통을 일궜다면 상대를 비판해 새로운 지적 전개를 꾀한다.

 

다케우치의 사상적 원점은 [루쉰]이다. 일본에서 전쟁을 경험한 세대로서 다케우치가 자신과 시대의 불행을 자각하며 전 생을 관통하는 사상은 루쉰을 통해 형성되었다. 쑨거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물음]에서 루쉰을 통해서 일본 사상과 일본 문학에 육박하는 기반을 다지는 것을 살펴본다.

다케우치에게 문학이란 사상이며, 행위이며, 정치이며, 미학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모두를 초월해 그것들을 생산하고 또 지워버린다. 문학은 희망과 아울러 절망마저도 일신에 모아 사상과 정치와 예술을 토해낸다. 그렇듯 다양한 모습으로 자신을 실현하지만 자신은 정해진 틀을 갖지 않는다. 문학은 그것들 모두를 내뿜고 빨아들이는 궁극의 장소다. 그 장소에서 주체는 사상을 정치를 예술을 하며 부단히 자기를 갱신한다. 다케우치가 이런 문학관을 체득하게 된 계기는 바로 루쉰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루쉰]을 작성하면서 문학을 하나의 창작 행위로부터 궁극적이며 본원적인 자기 갱신의 장으로 끌어올렸으며, 동시에 이런 문학관을 세계관에 접목해 세계관이 유동적 양태를 획득하여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끌어내렸다. -P60

 

위와 같이 사상가로서가 아닌 문학가로서 루쉰과의 만남을 다케우치는 쩡짜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자신을 상대에게 투입하고 끄집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갱신하는 사상적 만남을 쩡짜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쩡짜는 사상적 만남에서도 생길 수 있지만, 사상이 살아가는 밥이자, 지식을 일구는 방식이자, 더 나아가면 동양이 자신의 근대를 실현하는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P113

 

이렇게 다케우치의 사상적 토대라 할 수 있는 쩡짜는 깨어난 노예가 자기부정과 자기재건을 거쳐 주체성을 획득하는 길로 동양이 자신의 근대로 나아가는 길로써 달리말해 루쉰적 저항을 함의한다.

 

그것이 깨어난 노예의 숙명이다. 주체는 쩡짜로 타자와의 대립속에서 자신을 씻어낸다. 동시에 부단히 회심의 축을 향해 볼며 자기를 재형성한다. 이로써 주체가 얻는 것은 유동성이다, 다케우치가 말하는 행위란 바로 이런 의미다.-P115

 

 

원문 속에서 이미 번역이 시작된다. 사상이란 번역이다. 작가의 사상이 녹여있는 텍스트는 돇자의 의식 안에서 새롭게 번역이 시작되며 유동한다. 이러한 유동하는 의식을 따라 글을 쓴다는 자체가 무척 대단하게 여겨지는 책이었다. 다케시마 요시미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루쉰을 투영하여 시대를 읽는 것도 아니다. 다만 쑨거는 다케우치라는 문학가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다져가는 '쩡짜' 정신을 승계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루쉰에 이어 다케우치, 다케우치에 이어 쑨거를 잇는 사상의 궤적은 이렇게 유동하는 텍스트가 문학가에게 흘러들어가 그려지는 번역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 안에 시대를 고민하는 사상가가 있고, 그 안에 시대를 깨우는 문학가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쩡짜의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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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물쿤 더위가 계속되는 나날이다. 이렇게 타는 듯한 무더위에 사무실 에어컨이 고장나는 바람에 선풍기 하나로 버티자니

피곤으로 몸이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다.  노곤함에 배춧잎처럼 삭아가던 중 다행이도 오늘 ~! 비가 오니 몸이 녹진녹진, 서서히 생기를 되찾아 가는 기분이 든다. 흐흐흐 ~....그러고보니 세상에 ~! 벌써 7월이다. 와우 ~결국 6월에는 신간추천 페이퍼도 못 쓰고 지나갔고, 서평 독촉 메일을 처음으로 받아보기까지 했다.  @@ 그러던 중 신간추천 페이퍼 작성하라고 문자가 왔다. 헐 ^^;;;;;

며칠 전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문상과 적립금, 알사탕 탈탈 털어서 수십권 구매한지라

신간 추천 페이퍼를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신간 추천을 하려하니

책을 이미 다 산 상태이다. 가끔 이렇게 무개념일 때가......

다음에는 추천 신간들을 염두에 두고 구매를 해야겠다능 ~ ^^

 

 

 

 

 

 

 

 

 

 

 

 

 

 

 

 

 

 이 중에서 [절망에 반항하라],[기억의 정치학]이 가장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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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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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어머님이 신문을 읽으시다가 읽고 싶은 책이라며 메모를 건네시기에 보니 강신주의 신간이다. 선물해드리고 나서 어머님을 뵐 수가 없다. 책에 빠져서 ... 마음에 들어하시니 다행이다. 강신주의 다상담 갱지가 마음에 안들었는데 그래도 이번 책은 그나마 낫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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