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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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에서 '전근대'가 역사에서 지니고 있는 가치와 조선왕조 500년이 우리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살펴보며 기존의 한국사가 가지고 있던 편향과 왜곡이라는 이념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으며 역사를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펴볼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그러한 역사의 인식은 우리나라 민족 특유의 민족주의가 독단이 아닌 세계화 속의 한국의 우수성을 확인시켜 줄  이념적 토대이다. 그런 점에서 민음한국사는 기존에 보아왔던 역사책과는 다른 면들을 부각시키고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른 탁월한 편집력과 기획력을 자랑한다. 무척이나 신선한 인포그래픽과 칼라풀한 구성은 그 어떤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속의 한국의 모습을 다원적이고도 다각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해주고 있다.

 

15세기에 이어 '민음한국사'  2권 《16세기의 조선은 '성리학의 유토피아'》로서 조선에서 성리학이 사상적 주춧돌이 되어가는 과정과 성리학을 바탕으로 지배계급이 어떻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살펴본다.  성리학이 조선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나 다름없기에  '민음한국사' 공저자들은 16세기를 ‘역사적’인 세기라 칭한다.  여기서 역사적이라는 말은 어떤 사건이 발생해 과거와 질적으로 단절된 미래를 열었을 때에만 사용될 수 있는 용어다. 이러한 역사적인 세기는 조선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16세기의 유라시아 전역에 퍼진 '내면의 혁명'의 시대로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함을 볼 수 있다. 상인 계층의 등장과 그에따라 확대되었던 그들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인간의 내면에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전례에 없던 지적인 변화, 내면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 시기인 것이다.

 

 

 

 

 

16세기에 유라시아 대륙 양 끝에서 자본주의를 예감하는 주관주의적 사유 경향이 대두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양명학, 그것은 정착민적 사유에서 유목민적 사유로의 이항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농민적 사유에서 상인적 사유로의 이행이랄 수도 있다.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한 왕조(이씨조선)가 500년을 군림한 것은 조선왕조가 유일무이하다. 15세기 태조, 태종, 세종, 성종까지 , 16세기 조선은 연산군과 중종,인종,명종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적 소요로 점철되는 격화된 갈등 시대를 맞이한다. 15세기 성리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대부 관료들이 새로운 왕조를 수립하였지만, 식자층이 두텁지 못했기에 국왕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관료적 성향이 강할 수 밖에 없었는데 16세기에 실시되는 과거제의 확대는 새로운 지배계층을 형성 하였다. 과거제를 통해 식자층이 확대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사대부 문화가 확산되었고 이들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강하게 다져나갔다.  중·하급 엘리트 관료인 '청요직'들로 이루어진 신문화층은 조정에  공론을 내세우며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해감에 따라 도덕적 권위와 함께 사士의식이 강조하며 성장해 갔다. 이렇게 16세기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통해 도덕적 가치와 권위를 하나의 권력으로 서로 결속력을 다져나가며  결국 국왕과 권신들의 부당한 권력에 맞서 도덕을 지향하는 사士의 정체성을 완성하여 갔다.  

 

이처럼 16세기의 조선 사회는 권력 중심부에 있는 엘리트 관료들의 도덕에 대한 지향이 독서인 층의 확대와 어우러지며, 도덕의 내면화와 사 의식의 강화가 시대적 과제로 추구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 권위와 동급으로 국왕의 권위까지 갖추어야 하는 부담감을 떠안은 왕들은 바로 성종과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으로 이들은 사士와 갈등하며 왕위를 지켜야 했고 결국 이런 정치적 갈등은  네 차례의 사화 - 무오사화, 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로 표출된다.  그러나, 16세기의 사화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리학이 가진 한계를 깨닫게 하였으며 시대의 반성과 새로운 사상적 모색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게다가 문정왕후를 시작으로 지도층이 점점 공공성과 도덕성을 상실해가자 조선사회는 바람앞의 촛불처럼 거세게 흔들리게 되고, 방납의 폐단과 부세 제도의 문란으로 조선 백성들은 생활은 더욱 피폐해진다. 지배층에 대한 반항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의적 임꺽정이 등장하는 등, 16세기 조선은 근대를 향한 체제의 변화가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는 시기였다. 시대적 혼란은 고스란히 한반도를 고통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동아시아판 세계대전'  임진왜란이 17세기를 열고 있다. 16세기의 마지막이자 17세기의 첫 시작은 17세기의 조선의 운명과도 같지 않을까. 

 

조선시대 하면 당쟁으로 점철되어진 부끄러운 역사가 떠올려지곤 하였는데 , 민음한국사로 보는  16세기의 조선은 왕위계승에만 천착하여 벌어진 당쟁이 아닌, 이념의 잉크로 쓴 역사이야기였다. 성리학의 유토피아라 칭해지는 16세기는 이념의 시대라 하여도 틀린 표현이 아닐 듯 하다. 15세기가 조선왕조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기였다면, 16세기는 그 밑그림에 색을 입히는 시기였다. 성리학의 색을 입은 조선은 기존 한국사가 다루었던  '왕과 신하의 권력 싸움' 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서 사상적인 면모가 상호작용하며 나타나는 거시적 관점으로서의 역사를 쓰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권력'의 싸움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조선의 사화들을 다원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으며 조선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색다르면서도 세계 속의 한국이 지닌 유구한 문화유산을 있는 그대로, 편견과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역사 통찰력이 빛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사로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역사책이다.

 

* 방대한 분량임에도 오타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안타깝게도 첫 시작 부분에 오타가 두 군데 있었다. 오타지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옥에 티인 것 같아 수정이 되었으면 하여 ...

-p36 맨위 ,성종의 시신을 묻은 선릉, 사진 글에서  중종의 어머인-중종의 어머니인

-p42 맨위,성조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쓴 [내훈]- 성종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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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1-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읽고 난후 염병할 성리학! 이라고 막 욕했는데...
성리학 자체가 나쁜것은 아니겠지만
오로지 그것 하나때문에 잃은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드림모노로그 2014-01-14 16:47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역사를 단면으로 전체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 역사를 다각적으로 보아야 하는데 기존의 역사책에서
알게 모르게 성리학자들의 단점들만 부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다르게 보아도 우리나라 역사의 자주성을 알 수 있는데 말이죠.
조금은 편견을 거두고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어서 좋은 것 같아요, 민음한국사가요 ~
 
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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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란은 해마다 불거져 나오지만 늘 제자리걸음이다. 교학사에서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가 근현대사를 왜곡된 서술과 편향된 시각으로 작성했다는 비난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듯이 우리나라 역사책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끊임없는 논란 가운데 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도 있어왔지만, 학자들 역시 설왕설래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같은 역사를 배우고 자랐어도 인식에 대한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역사인식의 한계에 있다. 그런 위기 상황에 역사가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심각한 역사불감증에 빠져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아닌게 아니라 작금의 논란은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논란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마치 첫 단추의 구멍을 바로 잡지 않은 채 계속 궤어내려온 역사처럼, 우리에게 역사인식은 바로 이 잘못 궤어진 첫 단추구멍을 찾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역사논란은 못  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지 않은 채 흘러온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나라의 역사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과 진배없다. 20세기에 끊이지 않았던 논쟁들이 매듭을 짓지 못하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정초부터 동북아의 관계가  긴장으로 고조되었고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반성과 위안부 보상 문제는 여전히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극우파들의 교과서 왜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역사 역시도 왜곡과 편향의 시점에 치우쳐 심각한 역사관에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미래를 바로 쓰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부터 바르게 세워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걸음으로 민음한국사 시리즈의 첫 걸음은 <15세기>로 시작된다.  한국사에서 15세기가 지닌 의미는  전통사회가 붕괴되기 전의 근대로서  바로 전근대’인 조선왕조 500년이 지니고 있는 역사의 무한한 가치와 미래로 향하는 희망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 시대이다. 민음사 창립 50주년인 2016년 까지 완간하는 것을 목표로 순차적으로 시리즈를 출간하여 16권을 기획하고 있는 한국민음사는 바른 인식의 출발선을 15세기로 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민음한국사의  첫 권인 15세기-조선의 때이른 절정》의 공저자들은 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비역사학계의 학자들까지 참여하여 한국사를 보다 객관적이고 시각적으로 그리기 위해 인포그래픽을 시도하고 있고, 세계화에 발맞추어 세계속의 한국사에 포커스를 맞추어 다각적이면서 다원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15세기 조선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한반도가 실제보다 큰 사이즈로 그려져 있고, 일본은 비교적 작게 그려져 있다. 15세기 조선의 크기는 바로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문화적 크기나 다름없는데 오래전부터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려 문화적으로 중국과 동등하다는 자존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가장 큰 의의를 짚어주고 있는데 바로 아프리카의 온전한 모습을 그린 최초의 지도라는 점이다. (기존의 역사책에서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세계의 지도들과 비교설명되어 15세기의 세계정세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조선의 건국과 중국의 태종이야기를 통해 군주의 조건을 살펴보며, 조선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를 살펴봄에 있어 다양한 자료와 사진들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역사책이다.

 

 

15세기의 세계는 몽골 세계제국의 유산위에서 전개되고 있었고 개방적이고 다원적이던 14세기 중국 사회는 배타적이고 일원적인 사회로 탈바꿈을 하였다. 이런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은 무역의 이익이 아니라 안정된 농업으로,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삼은 고려에서  성리학을 진리의 절대 원천으로 삼는 조선으로 바뀌었다. 반대로 몽골 제국의 또 다른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와 변두리이던 유럽은 동아시아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유럽과 이슬람 제국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 그들을 들썩이게 했고, 인도와 중국을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하도록 부추겼다. 이러한 변화의 파장은 16세기부터 서서히 나타나 17세기이후 동아시아에도 가져왔다. 15세기 조선은 변화의 조짐과는 무관하게 차분하고 견고한 시작을 하고 있었다. 세종으로부터 성종으로 이어지는 15세기 '조선 문화 개화'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의 건국과 태종 이방원의 왕위쟁탈전과 더불어 당태종의 권력쟁탈전을 통해 보는 권력의 속성과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과 세종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역사평가를, 세조의 집권부터 성종의 치세에 이르는 기간동안 일어난 계유정난과 경국대전의 완성을 통해 보는 왕위계승의 변천사까지, 서서히 왕조의 골격을 완성해가는 조선의 표정이 바로 15세기의 밑그림이다. 이러한 밑그림을 통해 15세기에서 16세기로 변화되는 조선을 이해하도록 하며 왕조 개창이라는 가장 중요한 변화를 시작으로 하여 그 왕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한 주춧돌은 바로 '성리학'이다. 성리학에 따른 유교문화와 성리학을 떠받치던 농업을 근간으로 한 조선의 문화는 《16세기-성리학의 유토피아》로 이어진다. 역사는 과거의 미래, 조선의 15세기에도 우리나라의 현재가 생생히 펼쳐지고 있었다. 신권주의와 왕권주의의 대립, 지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은 오늘내일일이 아닌,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매우 탁월한 편집과 구성이다. 역시 민음사다.<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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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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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질풍론도》가 쌤앤파커스에서 출간되었다. 불황의 여파로 출판사의 입지가 점점 작아지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6년 간, 베스트셀러 1위 목록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린 쌤앤파커스의 문학 임프린트 ‘박하’의 첫 데뷔작이다. 처음부터 굉장한 기대감을 가지고 펼쳐든 책 첫장에서 보여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서명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쓰면서 나 자신도 놀랐다. 라는 한마디에 괜한 웃음이 났고, 한 장 두 장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허언이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즐겁게 읽었다.

 

2001년 미국 9·11 사태 이후  탄저균 포자를 묻힌 편지를 우편으로 받은 사람들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전 세계에는 탄저균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탄저균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고 다이호대학 의과대학 연구소의  '구즈하라'는 탄저균 연구담당이다.

 

연구의 취지는 탄저균을 사용한 생물 테러에 관한 연구와 백신 개발이었지만, 구즈하라는 연구소의 허락없이 생물학무기인 탄저균을 포자인 초미립자로 가공하여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생화학 무기의 이름은 'K-55'. 

인체에 닿기만 하여도 사망에 이르는 살인병기이다. 구즈하라의 K-55 를 알고 나자 다이호 대학의 소장 도고는 그 자리에서 구즈하라를 해고하고  K-55를 안전한 실험실에 옮겨 보관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소장  도고 앞으로 한 통의 협박 메일이 도착한 후에야 K-55가 도난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협박 메일에는 총 열 장의 사진과 함께 3억엔과 K-55를 교환조건으로 명시하고 있었는데 열 장의 사진 중 세 장은  K-55, 나머지 일곱 장에는 테디 베어 사진이 찍혀 있었다. K-55와 현찰 3억엔의 협박 메일이 온 시각, 어이없게도 구즈하라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소장과 만년 선임 연구원 구리바야시는 구즈하라가 보낸 사진의 설산배경만으로 K-55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거기에 단서는 단 한가지, 구즈하라가 교통사고 당시 차 안에 남겨놓은 추적기 뿐이었다. 온도에 민감한 생화학 병기인 K-55가 날이 따뜻해져 기온이 올라가기라도 한다면 한 마을이 초토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K-55를 찾기 위해 구리바야시는 아들 슈토와 사와자키 스키장의 구조요원 '네즈'와 네즈의 연인 '치아키'와 함께  테디 베어를 찾고 , 이들에게서 K-55를 뺏기 위해 미행하고 있는 수상한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의 좇고 쫓는 추격의 레이스가 하얀 설원에서 숨가쁘게 펼쳐진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붉은 손가락'과 '백야행' 그리고 '용의자 X의 헌신'이였다. 나오는 작품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며 대부분의 소설이 영화화 된 사실을 볼 때도 추리 소설에 관하여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작가임은 분명하다.  신작 《질풍론도》는 기존의 작품들 못지 않은 재미와 반전의 감동이 있는 스포츠 드라마다. 은색의 광활한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숨가쁜 레이스와  구조요원 네즈와 치아키의 스키에 대한 열정과 고민들이 서로 직조하며 극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슈토와 아버지 구리바야시간의 불통이  비밀병기를 쫓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나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통해 세대간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네즈와 치아키의 스키점프 추격씬은 최고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스포츠의 짜릿한 스릴과 액션을 만끽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섬세한 플롯과 반전의 감동을 주는 추리소설의 대명사,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풍론도》, 히가시노 말대로,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 ~ ^^ 필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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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
김광석 지음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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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새해 첫 날이 밝은지, 7일째이다. 시간은 내가 느끼는 감각보다 더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그 시간안에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담아낼 수 있을까.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일어나고,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고 거의 본능적으로 어제의 삶을 답습하고 있다. 생각이 사라져버린, 삶에 대한 치열함이 사라져버린 나의 모습에 조금씩 환멸을 느끼는 요즈음, 김광석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광석이 떠나간지  벌써 18년이란 세월동안 나는 그의 존재에 전혀 공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김광석의 노래를 시작으로, 하루를 김광석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마감한다. 내가 김광석을 알게 된 것은 1992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그때 이미 김광석의 팬이었던 남편은 김광석의 노래에 푹 빠져 있었고  반대로 나는 김광석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그땐 어렸으니까. 그러나, 그의 노래에 담겨있는 삶의 무게와 일상의 치열함들이 나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면서 그 안에  삶의 허무가 , 세월의 더께가 , 세월의 무상함이  하나 둘씩 내 앞에 실체를 드러내자  비로소 그의 노래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함정

 

시간은 놀라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안타까울 이유도 없는 것

지난 시간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매어놓지도 않는다.

스치는 바람의 끝이나 시작이 없는 것처럼

인생도 애당초 의미 없는 것

삶의 힘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 애써 만들어놓고

스스로의 행동에 힘겨워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사람, 참 어리석은 동물이다.

스스로 함정을 파놓고 그 안에서 행복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민하는 답답한 생물.

 

《미처 다 하지 못한 : 김광석 에세이》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겼던 김광석의 흔적들로 엮어졌다. 한편의 시집처럼 유려한 글쓰기를 보면서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김광석의 내면의 고독들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삶'이 주는 무게들이 한 층 한 층 쌓여가며 마음에 층위를 이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해가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무게들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안에서 유한한 우리들의 삶의 한계를 인지해 갈때마다 스며드는 쓸쓸함이 , 음악에 대한 갈증과 정체성으로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하였던 고뇌의 흔적들은 슬픔을 머금고 위태롭게 생의 궤적들을 꿰고 있었다. 일상의 삶에서 실존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였던 흔적들은 바로 그의 노래가 되어 김광석만의 오브제를 완성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 노래의 원천은 바로 '삶' 그 자체였다.

 

'인생은 수영장과 같다.이렇게 힘든 일이 자꾸만 날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래 가라앉아 보자. 내려가다 보면 바닥은 나올 것이고, 바닥이 차고 올라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동물원>에서 탈퇴하면서 발표한 <나의노래: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아무도 뵈지않는 암흑속에서/ 조그한 읊조림은 커다란빛 /나의노래는 나의힘/나의노래는 나의삶)>를 통해 자신의 음악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듯 했지만, 이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슬픔의 그림자들,   <이등병의 편지>가 어떤 노래보다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는 이유를 , 사십에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었다던 그의 이야기를 , 환갑에도 로맨스를 꿈꾸던 그의 노래가, 가삿말이 슬퍼서 부르기 싫어했다던 <서른 즈음에>의 애절함이 , 자의적인 사랑노래가 아닌 해피엔드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다는 노래와 얽혀있는 일상의 이면들이 그의 짧은 삶과 어우러져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이리라.  그 말은 달리 말해 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했던 노래들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자 슬픔임을 김광석이라는 이름 하나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떠난 18년 더하기 하루인 오늘도 난 당신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한다.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당신의 노래로 난 이 시절을 견딘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들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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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니, '동물원 탈퇴'가 아닐, 동물원 식구들이 저마다 '취업'을 하여 돈을 버는 자리로 찾아가면서, 김광석 님이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얼결에 '솔로 가수'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저 노래 한길을 걸은 셈이라고 할까요.

즐겁게 읽으셨겠지요? 떠난 님을 그리면서 애틋한 이야기 그득그득 합니다.

드림모노로그 2014-01-07 15:47   좋아요 0 | URL
김광석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찾기 위해 동물원 1집후 탈퇴한 것은 맞습니다.
에세이집은 아무래도 유고집이고 부분부분 발췌한 것이라
각자 생활이 바빠서 헤어지게 된 것처럼 이야기가 남겨졌지만요.
김광석 개인적으로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엄청 치열하고 고민하였던 시기였구요.
한동안,,, 멜랑꼴리에서 헤엄치고 다녔어요 ㅋㅋ
 
천무화영 1 - 애장판
최수선 지음 / 동아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로맨스소설을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인문도서로 독서취향이 바뀌었지만, 바뀌게 된 계기는 로맨스소설의 변질 때문이다 (풉 !!어디까지나 내생각) 장소영이나 한수영의 로맨스소설을 중고서점을 다 뒤져서라도 소장하였었건만,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 나오는 로맨스소설은 시청률제왕처럼 쇼킹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기가 꺼려졌다, 로맨스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요즘의 로맨스소설은 가지고 있던 순수한 사랑의 환상마저도 조각내주는 기분이 들어 한동안 로맨스소설을 기피해왔던 것 같다. 로맨스소설은 어쨌거나 아름답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  그러던 중 오래전 운학님이 보내주신 무협로맨스 <천무화영 애장판>이 비닐옷도 벗기지 않은 채 모셔져 있는 걸 보고는 그냥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때론 아무 생각없이 읽는 책도 필요한 법이다. 장르자체가 딱 좋아하는 무협로맨스였고 과거 장소영이나 한수영의 연록흔과 쌍벽을 이루는 순수와 순정이 그대로 녹아있는 달달한 로맨스이다.  (역시 운학님은 로맨스여왕 !)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천무와 화영의 무협로맨스로  강호 10대 고수중의 하나인 일검(一劍) 진천검에게 우형 유초복이 딸 화영을 위탁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화영의 무술입문기이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들을 본 유초복은 화영이 유초복의 금화전장을 이어받을 생각은 안하고 뜬금없이 무술을 배우러 간다는 말에 화영이를 잘 달래서 보내라는 서신이었지만 편지를 받은 진천검은 아들 천무에게 화영을 소개시켜주고는 내심 북해빙궁의 얼음조각이나 다름없는 천무가 화영으로 인해 인간다워지길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크다. 다행이도 화영이 천무를 보자마자 한눈에 뽕 간 사실을 알고는 더 안도하는데 그러나, 천무는 아버지의 뜬금없는 부탁으로 여제자를 받게 된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을 뿐더러 사제들과 어울려 사고란 사고를 다치고 다니는 화영이 못마땅할 뿐이다. 

 

신검문에는 대사형 방철준과 삐쩍마른 악비군, 동글동글한 얼굴의 조문악, 뚱뚱한 마복삼, 삐쩍 말라서 상처받은 짐승의 눈을 하고 있는 막내 불인까지 천무가 가르치는 다섯제자와 화영으로 인해 조용한 나날이 없으며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천무를 향한 화영의 짝사랑도 어느 덧, 2년이 흘러간다. 그러던 중 화영이 신검문의 맞수이자 호적수인 신도문의 천호와 붙어다니며 천무의 질투심을 자극하자,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았던 천무에게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게다가 화영이 생매장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북해빙궁인 천무의 감정역시도 폭발하게 된다. 천무와는 대조적으로 바람둥이 캐릭터인 신도문의 천호는 화영을 사이에 두고 연적이기보다 둘의 로맨스에 뿌리는 깨소금과 같은 캐릭터로 극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제자  다섯과 천무, 화영, 천호의 천방지축 각축전이 펼쳐지는 《천무화영》은 그야말로 정통 무협로맨스이다. 요즘 흔하디 흔한 판타지 요소도 거의 없는데다가 아주 익숙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있는 무협로맨스였다. 화영의 캐릭터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랄하고 명랑하면서도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이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캐릭터로  과거 로설의 주인공인 연약함의 상징인 순수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천방지축 사고뭉치이지만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이다. 로맨스 소설치고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라 생각했는데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로 순식간에 다 읽었다. 정통무협 로맨스소설을 좋아한다면, 《천무화영》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재밌자나, 즐겁자나, 너무 달달해서 짜증나자나 ~ !!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거니와

그대가 날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어찌 다른 좋은 사람이 없을까 보냐

바보 같은 미친 녀석아! 미친 녀석아!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거니와

그대가 날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어찌 다른 좋은 사람이 없을까 보냐

바보 같은 미친 녀석아! 미친 녀석아!

 

-시경(詩經)정풍(鄭風)건상(蹇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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