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진 교수의 소리로 읽는 세상
배명진.김명숙 지음 / 김영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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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대회 스타킹>에는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나온다. 아니 이들은 전문가들이라기보다 기인에 가까운 것 같다. 며칠 전 일곱 살짜리 꼬마가 첼로 신동이라고 나와 첼로 켜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본 적이 있다. 그 꼬마는 두 살부터 첼로를 켰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두 살에 첼로를 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세상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이들이 ‘스타킹’에서는 많이 볼 수 있다.  ‘소리공학자’ 배명진 교수도 <스타킹>에서 본 적이 있다. 《배명진 교수의 소리로 읽는 세상》은  소리 연구자로서의 삶과 그간의 소리 연구 이야기들을 실어놓은 책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사랑한다는 배명진 교수는 소리를 그저 일반적으로 ‘듣는 것’ 만이 아닌, 세상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로서 소리 즉,  ‘과학 이상의 것이며 우리 삶 자체’로서의 폭넓은 소리 스펙트럼을 펼쳐보이고 있다.  먼저 생소한 소리공학에 대하여 저자의 정의를 살펴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소리를 분석하고 규명해서 실생활에 도움이 될수록 만드는 기술' 을 소리공학이라 한다. 풀어서 설명하면 소리공학은 소리 자체의 물질적인 특성이나 과학적인 분석 방법만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과학적으로 (혹은 공학적으로) 접근하여 다른 분야와 융합하여 실생활에서도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의 소리 학문을 말한다.  

 

 

 

'소리공학’은 내가 처음 만든 말이다. 1992년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전임교수로 자리를 잡으면서 ‘소리공학연구소’를 만들었다. 소리공학을 영어로 하면 ‘sound engineering’이 되는데, 이 용어는 주로 음악을 녹음할 때 최고의 음질이 나올 수 있도록 기계를 조작하는 기술적인 의미가 더 강한 음향공학을 뜻한다. 소리 자체를 연구하는 소리와 공학의 만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 ‘소리’와 과학과 기술을 대표하는 ‘공학’이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소리공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숭실대학교’하면 맨 먼저 소리공학연구소를, ‘소리’하면 소리공학연구소와 배명진 교수를 떠올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_p22

 

 저자는 소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소리로 라면을 끓이거나 소리로 전력을 생산하여 TV를 켜고 램프의 불을 밝히는 것이 가능한 것은 소리가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진동은 힘을 가지고 있다. 진동으로 와인잔을 깨고 바람의 공명으로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또한 시각 대신 청각을 활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뇌 기능을 밝혀주기도 한다. 우리의 모든 감각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통합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청각을 통해 보는  벤 언더우드 라는 소년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장은  '소리' 자체에 담긴 무수한 정보력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실제로 미궁에 빠진 사건들을 단 1,2초의 소리로 해결한 '보성 어부 살인사건' 이라든지, 북한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비밀을 소리를 통해 파헤치고,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의 총격에 관한 전말을 당시 중계방송 녹음소리를 통해 밝히기까지 한다. 호신용기구의 소리는 오히려 상대에게 위험성을 느끼게 하며 세계 3대 바이올린인 스트라바리우스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명품악기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 또한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소리의 스펙트럼은 장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한대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또한 저자는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전류가 흐를 수 있는 소재는 모두 악기로 만들수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저자가 몸 담고 있는 '소리공학연구소'에서  만든 채소와 과일 악기를 통해서 소리의 새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를 늙지 않게 만드는 소리'라는 뜻의 불로톤(never-old-tone)을 개발하여 무병장생의 실현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저자가 전립선과 가슴 통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소리'로서 해결한 사실이 있고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소리를 통해 건강을 찾아 새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소리공학연구소 홈페이지에 많이 실려있다고 한다. 자연에서 나는 소리(백색소음)는 집중력 향상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줄 뿐만 아니라 치유의 힘이 있다. 소리의 무한 스펙트럼이 실려 있는 《배명진 교수의 소리로 읽는 세상》은 소리로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환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히려  소리를 향한 저자의 아름다운 열정이 더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아울러 저자의 꿈인 '노벨상' 의 결실을 맺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으리라. 우리의 미래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사람들로 인한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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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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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바다에 사는 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 바다는 태곳적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느껴지곤 하였다. 그러나, 만약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면, 바다를 한없이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죽지세로 몰아치는 바다의 무서움은 모르고 그저 아름답고 잔잔한 바다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바다를 동경할 수 있는 것이다. 일년중에서도 여름에나 바다를 찾아가기에 바다는 항상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물異物 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구글지도의 대한민국은 바다가 이물이 아닌, 너무도 친숙하다는 사실은 은연중에 깨달았다. 위성 상의 한국과 일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 가까운 거리였었고, 대한민국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섬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라워 했다. 게다가 일본과 한국사이를 잇는 작은 점인 제주도의 시계視界는 더욱 작게 느껴졌었다. 이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 이유는  바로 이 책 《검은 모래》를 읽으면서 바다를 떠올리면서 였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제주 잠녀들의 억척스러운 삶의 굴레가 한국과 일본에서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  마치 우리 역사책 한귀퉁이에 쓰여 있었으나 지워졌던 글씨를 복원한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바다가 아무리 험악하고 모질게 굴어도 절대로 원망하지도 말고 탓하지도 말아라. 바다는 말이다. 우리 잠녀들의 목숨 줄을 쥐고 있으니까. 우리네 인생이 바다에 달렸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물질로 하루 벌어 먹고 살고 , 물질로 생명을 이어나가는 잠녀의 운명은 바다에 달려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섬속의 섬인 우도에서 태어난 잠녀 구월의 운명도 그러하였다. 제주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자체가  바다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을 천형으로 삼고 살아야 하였지만, 구월의 삶의 추가 더욱 무거운 것은 현대사의 굴곡진 흐름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나라를 잃은 구월의 운명은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업嶪을 잇는데 개인의 삶이라는 씨줄과 현대사의 날줄이 서로 촘촘하게 엮이며 비운의 삶을 직조해간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어민들의 잦은 침탈로 바다에서 나는 양식이 씨가 마르게 되자, 일본의 침탈로 조각나는 조선을 뒤로 한채, 굶어죽지 않기 위해 타게 된 일본의 기미가요마루 연락선은 구월에게 새 출발을 기대하게 하지만, 일본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식민지 국민의 설움과 차별, 고된 노동뿐이었다.

 

일본의 연이은 침략은 멈출줄 모르고 만주에 이어 중국, 한반도, 나아가 태평양까지 뻗어가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고 그 희생자 가운데에는 구월의 남편 박상지도 있었다. 일본의 패전소식과 더불어 36년만에 광복한 한국의 기쁨은 잠시 남북분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생떼 같은예비 사위 한태주를 전쟁터에 떠나보낸 구월은 처녀몸으로 임신한 해금을 오래 전부터 짝사랑하던 청각장애인 후쿠오에게 시집보내는 것으로 아이에게 성姓을 만들어준다. 태평양전쟁의 후유증과 전쟁의 상흔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 버렸지만, 한태주와 해금의 핏줄인 건일은 이름도 모르는 한국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살뜰한 정으로 키워준 일본인 양아버지 후쿠오만을 핏줄로 인정하며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 해금과 갈등을 빚고, 일본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철저히 일본인이 되고자 하며  딸 미유에게조차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까지 한다. 일본 극우파와의 사랑으로 한국인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된 미유는 아버지 건일과는 다르게 오히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다. 한국인 할머니 해금에게서 한국인의 음식과 전통을 배우며 한국어 공부를 새로 시작한 미유의 모습에서 한국과 일본사이에 존재하던 거대한 장벽을 허무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구월에 이어 해금, 건일, 미유에 이르기까지 잠녀 가족의 장장 4대에 걸친 디아스포라의 삶은 시간이라는 연고로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      

 

하나는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이는 시간이다.  

 

 제주4.3 사건은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제주사건은 단순히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인 전체의 역사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디아스포라로서 그리고 있는 재일조선인의 삶은 우리 역사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인권문제나 다름없다. 흐르는 시간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고여있는 시간이란, 시대의 흐름 속에 간직되어 있는 우리의 역사를 말한다. 흐르는 시간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앞에서는 아주 개인적이고 추상적이지만, 그 시간을 지배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흐르는 시간과 고여있는 시간 사이에 존재하며 '삶'을 꾸려가는 인간의 시간은 한시적이다.  주도 잠녀의 4대에 걸쳐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은 전쟁의 상흔들조차 아물게 하고 아들 건일의 상처또한 치유하게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희생자들의 인권은 여전히 시간 속에 고여있는 중이다. 그러나, 작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제주도 잠녀들의 삶에 국한하지 않고, 흐르는 시간과 고여있는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 자체를 '디아스포라'의 삶으로 그리고 있다. 흐르는 시간 안에서는 우리의 삶 자체가 디아스포라가 아닐까. 개인의 굴곡진 삶과 교차하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저자의 역사인식은 대한민국사에 잊혀져간 인권문제를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고 있다.  저자는 《검은 모래》에서 제주도의 굴곡진 현대사 역시도  생생히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감싸안아야 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듯했다.  오랜 세월 멀게만 생각했던 바다가 이렇게 지정학적으로 가깝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만들어주듯이 제주와 재일조선인은 우리모두가 끌어안아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안식이 없는 자의 이름, 디아스포라 그것은 우리들의 이름인 것을,,,,

 

디아스포라는 정착을 꿈꾸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들의 삶에는 늘 결핍이라는 물이끼가 습진처럼 끼여 있다, 아무리 먹고 살만 해도 그들의 가슴은 허기지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어도 늘 춥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설명한들 알 수 있을까.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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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도 사람도 모두 아름답지요.
숲도 들도 꽃도 아름답고요.

드림모노로그 2013-12-12 16:43   좋아요 0 | URL
그만큼 삶도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 ^^
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시는 함께살기님의 시선이 참 부럽기만 합니다.. ^^
저도 그러고 싶지만, 살면서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늘 부족하니 책을 읽겠지만요 ㅎㅎ

2013-12-13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3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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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지성과 따뜻한 감성이라는 만찬에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에피타이저로 곁들여 낸 박경철 의사의 맛있는 책식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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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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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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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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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 산과 열두 개 봉우리 안에 들어앉은 가상의 분지 도시 '화양'에 빨간 눈의 괴질이 돌기 시작한다. . 이유도, 원인도, 근원도 알수 없는 이 괴질은 전염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과 인수 공동전염병이라는  사실만이 알려졌을 뿐이다.  평화로웠던 이 작은 도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여 파멸에 이르는 순간은 산불이 삽시간에 번지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이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유정 작가의 신작  《28》은 7년의 밤보다 더 강렬하고 더 빠르며 더 커다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담고 있다. 7년의 밤이 인간의 파멸을 그리고 있다면 이 책은 더욱 진보한 인류의 파멸이라는 주제로 현실의 디스토피아를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내고 있다.

 

 

화양이라는 도시에 '빨간 눈의 괴질'로 많은 사람과 동물이 죽어가게 되자  정부에서는 화양시 전체를 봉쇄한다.  폐쇄된 도시에 거주하는 119대원 기준과 신문 기자 윤주, 드림랜드의 수의사 재형, 사이코패스를 능가하는 동해, 아름다운 잿빛 털을 가진 늑대개 링고와 재형에게 가족이나 진배 없는 스타와 쿠키의 운명이 마치 서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 되어 삶을 향한 질주본능을 자극한다.

 

 

#재형

오래 전 친구 마야가 사랑한 썰매개 쉬차를 데리고 아이디타로드(최후의 위대한 레이스 경주)에 참가한 재형은 경주중 화이트아웃에 갇히게 되면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순간 늑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썰매개 중 가장 뛰어났던 쉬차는 이미 늑대와 싸우고 있었고 재형은 오로지 살려고 하는 본능에 의해 질주하게 된다. 이때  재형은 쉬차가 사냥꾼을 끌고 달아나주기를, 자신이 삶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생각은 친구 마야를 마주하게 되자, 자신이 살고자 쉬차를 늑대에게 먹이로 내준것이나 다름없다는 괴로움을 남기며 재형의 삶에 깊은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게다가 친구 마야가 쉬차를 잃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뒤 쉬차와 마야는 재형의 심장에 고통을 깊이 새긴다. (아마 이때부터 재형은 동물을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쉬차가 자신을 위해서 죽었듯이 자신의 삶 역시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해 

병원과장 박남철에게는 이남 1녀가 있었다. 그 중 가장 골치가 둘째'동해'이다. 공부 잘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형과 동생에게 한참 못미치는 데다가 늘 말썽만 피우는 동해와 부모님의 깊은 골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채 동해를 미성숙하고 비뚤어진 인격장애를 가진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부모님께 받지 못한 애정결핍은 동물학대로 이어지고 해가 갈수록 더 가혹해지고 잔인하게 학대하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그중에서 동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의 개를 학대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개가 없어지면 즉시 새 개를 데려왔기 때문에 동해의 취미는 나날이 발전해갔다. 어느 날, 아버지의 개 '쿠키'를 공원에서 학대하다가 우연히 재형이 목격하게 되면서 거의 죽어가던 '쿠키'를 구하게 되면서 동해와 재형의 악연이 시작된다. 졸지에 자신의 재물을 빼앗긴 동해는 재형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재형의 과거를 조사하여  과거 쉬차의 사건을 악의적으로 해석하여 한진일보 김윤주 기자에게 익명으로 제보한다.

 

#윤주

 제보된 기사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드림랜드의 서재형 수의사를 찾아간 윤주는 기사와는 달리 선한 인상과 부드러운 이미지의 재형을 본 순간 알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게 되고 취재를 핑계삼아 드림랜드에 머물게 된다. 윤주를 따라다니는 '시골출신' 기자라는 꼬리표는 윤주의 생을 치열함으로 내몰고 그런 치열함은 전염병의 창궐지라는 사지에서도 발휘된다. 재형을 만나면서 삶의 이면들을 포착하려 애쓰던  그녀의 몸부림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처연함을 남긴다.

 

 

#기준

119대원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갓난 아이와 화목과 행복이 넘쳐나던 가정에도 재앙은 비껴가지 않는다. 정의롭고 책임감 강한 기준은 아내와 아이가 개떼들의 습격으로 처참하게 살해당하자, 개를 향해 증오심을 불태운다. 인간들의 사리사욕에 의해 싸움을 강요당하며 거친 투기견으로 살아온 링고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자라온데다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인 스타를 납치한 동해와 , 기준이 휘두르는 복수의 도끼에 스타가 살해당하자 기준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수진   

화양의 아비규환을 가장 먼저 목격한 주인공이기도 한 응급실 4년차 간호사 노수진은  눈이 갑자기 빨개져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들이 모두 화양맨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쌍둥이 동생 현진의 생존여부와 트럭운전을 하시던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동료간호사들이 하나둘 떠나가자 수진도 견뎌내지 못하고 병원을 나오게 되는데 이 때 수진을 도와주는 사람은 119대원 기준이다.  화양맨션에 출동하였던 119의 팀장인 기준은 화양맨션에 출동한 이후에 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빨간 눈 괴질의 창궐로 하나 둘 운명을 달리하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를 향한  생의 잔인함은 수진을 벼랑끝에 내몬다.

 

사람은, 사람 목숨은 지상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궁극의 가치니까.

 개 따위는 세상에 쌔고 널렸으니까. 안그래?

 

인간의 지성이나 감성은 극한 상황에서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니체가 말하는 '고귀한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오로지 '본능'에 의해서 움직인다. 디스토피아 문학이나 영화의 목적은 주로 인간에게 본능만이 남았을 때의 궁극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정유정 작가의 28은 디스토피아 문학에 충실하면서도 삶의 본질에 더 가깝게 접근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이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은 나쁜 것일까? 물론 인간의 본능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삶에는 선과 악 사이에 너무도 많은 모럴moral들이 있다. 작가가 전염병으로 인해 개들을 살처분한다고 해서 인간을 악하게만 그리지는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분법이 아닌, 살기 위해서 죽여야하는 정당방위가 극한 상황에서 속출하는 상황은 우리의 삶 안에는 수많은 물음들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남을 구원하는 일을 업으로 가지고 있는 기준 역시도 개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개떼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자 분노하여 도끼를 드는 것처럼 이렇듯 삶은 옳고 그른 이분법의 정의가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모럴들에 대한 질문을 '재앙(전염병)'이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문의 전염병으로 도시가 아비규환이 되고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졌다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는 것처럼  , 가상의 도시 화양의 아비규환은 바로 우리 삶의 치열함을 응집해 놓은 집약체로서 남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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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본능을 따르고,
삶이 늘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어느 곳 어느 때이든 즐거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모습 되리라 믿어요

드림모노로그 2013-12-12 10:2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느 곳 어느 때이든 즐겁고 착할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인내와 노력으로 다져지는 것을요...

2013-12-11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2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