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민음사 모던 클래식 64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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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맥 매카시의 《카운슬러》,  11월 헐리우드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의 원작이다. 영화예고편을 보면서 무척 기대했던 작품이고, 난해하다는 평이 많아 우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  흠,,,,, 생각보다 너무 잔인하고 소재가 폭력, 강간, 살해, 섹스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대화들이 난무한다.  이런 자극적인 책들은 잘 읽지 않지만, 이런 책의 장점은 몰입된다는 거,,흡입력 짱이라는 거,,, ㅎㅎㅎ 게다가 소설의 배경도시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세계 범죄 1위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가진 멕시코 후아레스는 멕시코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마약 밀매 조직이 기승을 부리면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도시이다. 무섭고 잔인한 세상의 표상으로서 폭력이 난무하고, 잔인한 살인이 초당 간격으로 일어나는 소설속의 멕시코 후아레스는 싱크로율 100%의 현실이다.   

 

 

깔끔하고 젠틀한 이미지의 변호사는 마이클 패스벤더가 , 변호사의 아름답고 우아하고 순수한 약혼녀 로라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 젊고 섹시한 마약밀매상 웨스트레이는 브래드피트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유일한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타락한 사업가 라이너역을, 가장 기이하고 비열하고 비정한 카리스마의 말키나 역에는 카메론 디아즈가 분하였다.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카메론 디아즈인 듯,

 

 

아주 작은 부스러기가 우리를 삼켜 버릴 수 있다 .

 

다이아몬드로 아리따운 로라에게 청혼하며 미래를 약속하는 변호사. 그러나 ,변호사는 둘의 핑크빛 미래를 위해 돈이 필요했다. 로라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라이너와 말키나 커플과 손잡고 처음이자 마지막 한탕(마약밀수)를 꿈꾸고 바람둥이 마약밀매상인 웨이트레이도 가담하게 된다. 변호사가 만만하게 생각하는 마약밀수에 대해서, 마약밀매 경험이 많았던 웨이트레이는 실제 살인장면을 찍는 '스너프 영화'와 마약전쟁 이야기를 통해 변호사에게 끊임없이 경고성 멘트를 날리지만, 일확천금을 꿈꾸는 변호사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스너프 영화는 로라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순조로와 보였던 마약밀매는 분뇨차에 실려 서부 사막을 달려 순조롭게 달려가지만, 무장강도들에게 탈취당하고 , 졸지에 마약을 빼돌린 배신자가 된 변호사는 마약 전쟁의 한복판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후, 마약밀매상들에 의해 로라와 변호사,라이너, 웨이트레이의 삶은 잘근잘근 씹히고 갈기갈기 조각나버린다.그 가운데 기이하고 기괴한 여자 말키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비정함의 캐릭터로 가장 잔인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음모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부황야에 펼쳐지는 거대한 음모는 말키나의 임신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예고편을 보니, 리들리 스콧 감독이 소설에서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완벽하게 실현해 낸 작품이라는 찬사를 들을만한 영화다.예고편만 보아도 소설속 배경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펼쳐지는 듯했다. 구성은 대화체로 단순하게 진행됨에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소설이 주는 탐욕의 공포에 서서히 잠식되어 들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주 사소하게 시작된 탐욕과 욕망의 콜라주가 서서히 퍼져가며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압도적인 서스펜스는 우리의 삶이 탐욕과 욕망이라는 올가미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툼스톤뿐이라는 공포를 마주하게 한다. 책을 덮는 순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전율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다.

 

맞아. 하지만 볼리토는 일종의 기계 장치를 의미하지.믿기지 않을 만큼 복잡한 톱니 장치가 부착된  자그마한 전기 모터인데, 강철 철사를  되감는 기능을 하지. 배터리로 작동하고. 철사는 어떤 위험천만한 합금으로 만든 거라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어. 그리고 철사 끝을 장치에 걸면 올가미가 되지. 그래서 어떤 남자의 뒤로 살짝 가서 목에다 올가미를 걸고는 유유히 가 버리면  아무도 자네를 보지 못해. 모터 장치가 알아서 철사를 끌어당기지. 느슨했던 올가미가 점점 조여 오다.결국 끝장에 이르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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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6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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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1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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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7 18: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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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 : 통합로드맵 잠수네 아이들
이신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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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이가 내년에는 초등학생이 된다. 학습지 바우처 지원으로 다섯 살부터 꾸준히 독서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11월로 종료되었다. 작은 아이는 유치원에서 특별활동으로 영어를 배웠고 학원은 한번도 다닌 적이 없다.  주변 친구들은 영어라는 과목에만 기백만원을 들여 가르치고 있는데 나만 너무 무사태평한 것 같아 풍문으로만 듣고 있던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을 처음으로 접해보았다. 영어책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글밥에 당황하였고, 첫 시작부터 잠수네 아이들의 찬양이 담긴 경험담이 눈에 슬슬 거슬릴 즈음, 눈에 띈 학습법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몰입하며 읽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큰 아이는 다행히 공부를 좋아한다. 큰아이도 마찬가지로 학습지 바우처를 지원받아  국어, 한자를 다섯 살부터 시작하였다. 이제까지 영어 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지만, 3학년부터 시작된 영어수업에서 우수한 편에 속한다. 나는 그 이유를 항상 국어와 한자를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한 덕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국어와 한자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는 한자의 뜻풀이로 이해하는 한글이해에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언어에 대한 이해력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저자가 말하는 ‘일단 모국어가 한국어이기 때문에 국어를 확실하게 다져 놓아야 영어도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말에 신뢰가 저절로 들었다. 국어와 한자의 시너지처럼  한글책과 영어책의 시너지 효과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사실을 대부분의 부모들이 모른 채 영어만을 강요하고 있다.

 

' 영어로 과학/수학/사회를 배워도 한글책 배경지식이 우선입니다.' 이 문장을 보며 그동안 아이의 영어 공부에 대한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금은 수학 문제 역시 스토리텔링으로 바뀌어 국어가 약한 아이들은 문제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여 수학을 못 푸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보니 국어가 약한 아이들은 영어 테스트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문학 지문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실정에서 영어만 강조한다는 것은 아이의 공부를 되려 망치는 일이다.  

 

 

책은 총4부로 구성되어져  1부 '왜 잠수네 영어인가' 에서는 잠수네 회원들의 경험담과 잠수네 영어공부의 체크포인트들이 실려있다. 2부는 영어 입문편으로 영어 수업의 기초적인 이론을 딱 세가지 -흘려듣기, 집중듣기,책읽기-를 짚어준다. 이는 아이가 말을 배우는 원리에서 출발하는 이치와 같으며, 흘려듣기와 집중듣기를 병행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영어를 재미있게 즐기며 할 수 있는 잠수네 영어교육법의 노하우로 책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3부는 잠수네 영어의 실천편으로 흘려듣기, 집중듣기, 책읽기를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4부는 위의 모든 것을 합한, 잠수네 영어공부법을 할 수 있는 베스트교재들을 수준별, 주제별로 분류하였고 아이들이 열광하는 주제의 DVD와 영어책을 선별하여 칼라판으로 실어놓았다.

 

작은 아이의 영어공부를 괜시리 걱정했나 싶을 정도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왠지 나도 아이에게 자기주도 학습을 유도할 수 있는 굉장한 팁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이 좋은 영어학원을 보낼 때 내 아이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무척 갈등하고 있던 상황이라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은 내게 무척 많은 용기를 주었다. 처음 초등자녀 수준에  맞지 않을까 걱정하였던 것과는 달리 미취학아동과 초등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딱 안성맞춤의 책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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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 그들은 왜 나를 수집하는가?
김주완.이승우.임원기 지음 / 거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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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이 책을 읽으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과 후의 생활패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시간 날때마다 무언가를 끄적거리거나, 심심하면 책을 읽곤 하였는데 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조금만 생겨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블로그를 시작하여 페이스북, 트윗, 카카오톡과 최근 시작한 카카오스토리까지 개인사를 시도때도 없이 공개하다 보니, 나의 사생활에 대한 고민은커녕 오히려 사생활 공개를 당연시 생각하고 있더랬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나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때도 사전보다는 스마트폰을 애용하고 있고 ,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조차 문자나 카톡을 한다. 매일 저녁 가족을 위한 요리정보까지도 모두 스마트폰에 의지하고 있다. 점점 생활의 모든 부분을 스마트폰에 의지하다보니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이 다른 이를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게 아니라 바로 나였다. 하지만,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은 스마트폰의 어마어마한 정보력과 생활의 편리에 이미 잠식되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현대사회를 통제(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관리사회에서는 감금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리와 실시간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움직여진다. 정보 통신의 눈부신 발달 이면에는 이러한 '관리사회'라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이면들을 낱낱이 고발하는 영화들이 부쩍 늘었다.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는 국가안보국이 한 개인을 첨단 도청장치와 위성추적기로 쫓는 장면이 나온다. 신용카드는 말할 것도 없고, CCTV, 휴대폰, 인공위성까지 총동원하여 윌스미스를 쫓는데 정보통신의 위력과 동시에 국가안보 앞에서 개인의 사생활침해는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기술 발달이 개인에게는 얼마나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일인지를 깨닫게 하였다. 국가의 안보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희생은 헌신짝처럼 버려지며, 개인의 정보를 유린하는 정보통신앞에 개인의 자유란 존중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데자뷰>역시도 7개의 인공위성 ‘시간의 창’으로 시간을 조정하며 개인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사회를 재현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안보나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개인의 사생활은 이제 '보호‘가 아닌 ’관리‘ 체제에 놓여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도 최첨단 치안 시스템으로 범죄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사생활은 여지없이 침해된다. 전형적인 관리사회의 표상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연적으로 관리사회가 되면서 더욱 큰 문제는 우리들이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관리사회의 실체는 추상적 파놉티콘(모두 다 본다)을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갇혀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당신에 관한 수많은 정보가 영원히 남게 돼 후세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빅데이터를 유용하게 활용하려면 원형 감옥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남자가, 휴대폰을 개통하는 조건으로 현금을 받았다. 몇 개월 후 이 남자는 자살을 했다. 남자의 명의로 수천만원이 대출되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덩이처럼 커져버린 빚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개인 정보의 피해는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름하여 빅데이터 시대, 누군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개인의 신상 정보파악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 세상에 피해자는 나나 내 이웃이 될 수 도 있는 일이다.  하루에 수도 없이 보험상담 전화를 받는 나로서도 도대체 내 신상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알아내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이미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파놉티콘이 현대에 와서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으며 더욱 큰 문제는 과거에 국가만이 이런 사생활의 침해자였다면, 현재는 돈이나 기술있는 개인이나 기업까지 확대가 되어 ‘현대판 파놉티콘의 설계자’ 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만인 대 만인의 사생활 침해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이 책《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공저자들의 판단이다. 또한 저자들은 자신의 사생활의 노출에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고 SNS의 발달로 사생활을 드러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사생활의 자유의 비밀에 대한 보호’가 전혀 보장되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사고를 강요당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자유는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파놉티콘’에 사생활은 없다!

 

나는 우리의 사회적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는 네트워크가  삶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시점에 인터넷 사용은 불가피하다고 보며, 빅데이터의 위험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디지털문맹을 자초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스스로가 정보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보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달이 주는 폐해에 그 어느때보다도 지혜가 필요한 시대임을 공감한다. 그리고 그것은 '관리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숙제임을 인지하여야 한다. 그 어느때보다도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와 똑같이 쓰레기 정보도 넘쳐난다. 그 안에서 네트워크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이용자 개개인에게 다른 어느 때보다 변별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디지털의 피해는 고스란히 사용자 개인에게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과 네트워크의 강화속에 기술의 발달이 우리를 잠식하기 전에 우리의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사회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부분이 저자들이 주장하는 골자이다. 디지털 발달의 어두운 이면들을 통하여 사생활의 침해에 대한 명암을 구분할 수 있는 변별력을 길러줄 책이라 확신한다. 나 역시도 내가 너무도 무감각하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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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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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09: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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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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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내내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지’는 벚꽃엔딩에 빠져 지냈는데 이제는 눈내리던 겨울밤을 추억하는 계절이 왔다. 언제나 계절은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한 템포 더 빠르게 다가온다. 아직도 봄날과 함께 하였던 감정의 덩어리들을 다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만 간다. 그 안에서 내가 막연히 기억하고 있는 삶의 희로애락 喜怒愛樂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감정들의 실체를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성은 시간을 기억하지만 감정은 시간을 담아내지 못한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빠져 나가 버리는 감정을 센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랬다. 나는 사실 감정을 담아두지도 감정을 잘 느끼지도 못하는 그저 삶의 쳇바퀴에 끼여 늘 같은 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안에서  습관처럼 감정을 지우고 버리는 것에만 익숙하였을 뿐, 감정안에 담긴 무수한 삶의 의미를 반추해본 기억이 언제인지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강신주(편의상 존칭생략)의 책을 《김수영을 위하여》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 감정의 웅숭깊은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는 《감정수업》은 철학자로서의 강신주가 늘 강조하듯이 진짜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 즉, 타인으로부터 씌워진 화려함의 페르소나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민낯의 ‘나’를 찾기 위한 인문정신을 이번에는 ‘감정’에서 찾고 있다. 김수영이라는 거울을 통해 삶의 맨얼굴을 드러내보였던 그가 <감정수업>에서는 우리의 감정을 마주하고, 감정의 날 것을 통하여 '나'를 만나도록 이끌고 있었다.

 

 감정에 적대적인, 감정을 억압하라고 충고하였던 칸트의 이성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성 , 억압이 아닌 감정을 긍정하고 감정의 실체를 깨닫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이른 바 ‘스피노자의 이성’ 을 말이다.

 

 

우리를 형성하는 감정이라는 것은 길게 보면 내 삶을, 짧게 보면 나 자신을 이루고 있다. '나'를 이루는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감정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란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이성만을 강조하다보니 감정표현에 서투른 어른아이가 부쩍 많아졌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감정수업 ’ 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신주는 <감정수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삶의 맨얼굴을 마주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강신주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한 전대미문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감정 정의들을 세계 대문호의 문학작품 속에서 찾았다. 작품구분은 가스통 바슐라르를 따라 ‘땅, 물, 불, 바람’ 의 이야기들로 나누어지며 각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를 실어 철학이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을 덤으로 제공하고 있다.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무무]-이반 투르게네프 에서는 스피노자의 비루함의 정의 '비루함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가 무무의 주인공 게라심이 사랑하는 무무의 목숨을 거두면서 느껴지는 감정으로 분하고, 이 비루함이라는 감정이 지닌 실체가 다름아닌 습관화된 슬픔이기에 지속적인 애정과 칭찬이 있다면, 비루함도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봄 햇살이 겨울 내내 쌓였던 눈을 녹이는 것처럼, 비루함이라는 고질적인 슬픔은 천천히 스며드는 따뜻함이 필요한 감정이다.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에서 주는 '자긍심(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스피노자)'이라는 감정또한 주인공 샹탈이 자긍심을 잃었을 때 겪는 감정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기적같은 감정을 일으키는지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박애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스피노자)'가 장발장에게서 발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삶이 비참하였기 때문에, 비참한 사람이 겪어내는 사람은 박애라는 숭고한 정신을 배울 수 있지만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박애는 막연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철학자 강신주는 우리에게 막연한 '감정'들을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의 감정과 함께 깨닫고 느끼며 감정에 대한 정의를 되새겨준다.

 

 

바로 이것이다. 억압이란 본질적으로 감정의 억압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억압이 작동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감정의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분출이 가능하냐의 여부에 달린 것 아닌가.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슬픔을, 쏟아지는 은하수에서 환희를, 친구의 행복에 기쁨을, 말러의 5번 교향곡 4악장에서 비애를, 멋진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시부모의 무례한 행동에 분노를, 주변 사람들의 평판에 치욕을,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면서 불안을, 이 모든 감정들의 분출로 우리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원하는 감정일 수도 있고, 결코 원하지 않던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감정이든지 간에 그것이 내 안에서 발생하고, 또 나 자신을 감정들의 고유한 색깔로 물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확실히 철학자 강신주가 전달하여 주는 철학과 문학의 웅숭깊은 시선은 달랐다. 워낙 대문호들의 문학작품을 좋아하여 48가지의 감정과 선보이는 문학작품들을 대부분 만나보았다. 강신주의 돋보기로 보게 된 문학들은 한층더 문학의 감동을 물밀듯 밀려오게 하였다. 내가 문학작품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부분을 되새겨주며 잊었던 감동을 다시 일깨워주며 , 스피노자의 철학을 어렵지 않게 각인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좋았던 책이다. 더군다나 48가지의 감정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그림들은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더 빛나게 해주고 있다. 그림과 글이 한몸이 되어 말을 걸어오는 듯, 유려하다. 강신주의 철학은 민낯의 '나'를 찾는 철학이다. 화려한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의 나를 찾을 때 우리는 진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제껏  감정을 억압이라는 페르소나를 씌워 살아왔다면, 그 페르소나를 벗고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한 후, 그 감정에 대한 외연外延을 넓힐 때,  우리는 우리의 진짜 삶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강신주와 함께 한 감정수업은 맨얼굴의 나를 연결해주는 가교架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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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3 1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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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3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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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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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09: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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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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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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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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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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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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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예약주문하고 이제서야 받아보네. 앨리스 먼로의 마지막 작품, 삶의 심연 속에서 생의 비밀과 불안과 충동과 결핍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진실의 빛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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