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예언 - 결단의 시간 천상 시리즈
제임스 레드펠드 지음, 주혜경 옮김 / 판미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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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상의 예언》에서 아홉 가지의 통찰에 이어 《열두 번째 예언》은 열 번째 통찰과 열 한번째, 열두 번째 통찰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들에 감탄을 하면서 읽게 된 것은 이 모든 예언들이 지나온 인류가 지나온 발자취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주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요동치는 이유를 명료하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이 영적이라는 사실임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의식 변화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면 조금이나마 삶에 관한 통찰을,  첫 번째 통찰은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의 통찰로 가려면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이 명시해주는 영적 통찰력을 받아 들인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삶이 보일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 영적인 이야기에는 그 이야기 자체에 에너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의 통찰은 과학과 철학, 수많은 종교들이 다다르고자 했던 궁극의 삶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는 자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안에서 영적인 통찰이 시작되었다. 

영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추상적으로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로지 영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차원을 발견하는 것이다. 일단 그것을 발견하고 나면 우주는 온갖 종류의 뜻밖의 만남과 직감, 신비스러운 우연의 일치로 가득하며 우리의 삶 이면에는 더 높은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니 실은 이 모든 것이 인류 전체 역사의 이면에 더 높은 목적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p12

 

페루에서 필사본을 찾아 다니며 모험을 하였던 주인공은 이집트에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세도나의 시크릿 산으로 떠난다. 주인공이 시크릿 산에 도착하자, 종교적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증폭되고 있는 증오와 양극화의 위험성을 서서히 깨닫게 되는 동시에 본보기 그룹을 결성한 레이철(기독교)과 아자르(이슬람교), 히라(유대교), 토미(원주민 신앙) 등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들은 고문서를 하나씩 발견하면서 자신들의 소명을 깨달아가게 되며 종말주의의 봉인을 풀 수 있는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전편 천상의 예언에서 아홉 가지의 통찰을 통해 의식 변화의 흐름을 짚어주었다면, 열 두 번째의 예언에서는 통찰 보다 높은 정신세계의 의식 수준에 들어서고 있다. (그래서 다소 어려웠음) 첫 번째 통합은 동시성의 흐름을 유지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각각의 동시성은 또 다른 동시성(물리학에서 서로 다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으로 인도된다는 것으로 영적 본성의 첫 포문을 열고 있다. 동시성이 나에게 지속된다면 속도를 늦추고 그 동시성의 흐름에 들어가 운명을 펼쳐보이듯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고 믿는다.

 

이 첫 번째 동시성에 대한 깨달음은 두 번째 통합으로 이어져 남들에게 전달해주는 진실에 이르게 되고 우리가 중심에 머무는 진실을 지킬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에게 곧 닥쳐올 사고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직관과 예감을 감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세 번째 통합이다. 우리가 진실에 입각해 활동할 때 우리는 진실의 법칙과 나란히 줄을 맞추게 되고, 이 흐름을 뒷받침해 주는 연결의 법칙이나 카르마의 법칙, 봉사의 법칙 등 다른 법칙들에서도 이러한 진실을 찾아볼 수 있다. 네 번째 통합은 이 심원한 영적 연결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탐구에 관련된 이해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세속적인 집착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도리어 허위의 시스템을 더 키워 나가면서 양극단으로 쏠리고 있는데, 서로에 대한 인간성 말살에서 더욱 극단화해 모든 것을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통합은 우리가 얼마나 신과 깊이 연결 될 수 있는지를 언뜻 일별하게 해주고 있고 우리는 그 연결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호와 사명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들을 만나는 동안, 놀라운 책을 발견하였다며 지인들에게 조금 호들갑 아닌 호들갑을 떨고 다녔다. 나에게는 놀라운 책이었고, 수천년을 되풀이 되고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 우리 존재가 이렇게 불확실하게 된 현대라는 시간안에서, 유장하게 계속되고 있는 현재성에서, 삶이라는 거대한 물음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소명疏明을 꺠닫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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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가 아닌 '마음'을 읽고 '넋'을 살리는 길을 찾는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이 지구에서 저마다 스스로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빛을
잘 헤아리면서 밝히는구나 하고 느껴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9 09:58   좋아요 0 | URL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해답이 이 안에 있더군요.
결말이 오래 전 읽었던 [신의 흔적을 찾아서]에서 말하는 과학자들의 종교체험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 무척 놀라웠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공부해봐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책을 그만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 하하 ~
이런 책들 보면 제가 세상을 , 1퍼센트 밖에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주네요 ㅠㅠ
앞으로도 열심히 책 읽어야 겠어요 ㅠㅠ

오늘 새벽, 550만년만에 돌아오는 아이숀 혜성을 떠올려보며 ^^
우주의 무한성을 상기시켜 보며,
지구별에서의 이 찰나의 순간을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빛을 떠올려봅니다...
함께살기님의 변함없는 모습들에서 그러한 빛을 느낀답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2013-11-29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9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상의 예언 - 그리고 모험 천상 시리즈
제임스 레드펠드 지음, 주혜경 옮김 / 판미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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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끼친다. 이 책의 첫 소감이다. 최근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 버림>을 읽으면서 인간 의식에 대한 통찰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것들이 종교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인간'이란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란 사실에 충격받았다. 그랬다. 인간이란, 물질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여지는 것으로 측량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 《천상의 예언》으로 다시 똑같은 충격을 경험하게 되었다. 왜냐고? 의식이라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내면 의식의 변화를 소설로 썼다고 별로 놀라울 것은 없지만, 나를 포함하여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인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의 답을 이렇게 명료하게 쓰여질 수 있다는 것에 소름끼치는 감동을 받았다.  

 

어느 날,  여자친구 샬린이 페루에서 발견된 고대의 필사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주인공의 내면의식의 모험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샬린이 전해주는 필사본의 아홉가지 변화의 흐름을 듣고는 운명처럼 필사본을 찾아 떠난다. 이에 주인공은 필사본을 빼앗으려는 세력과 필사본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홉가지 통찰을 꺠달아가는 여정이 펼쳐진다. 고대 필사본에는 인간 사회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언하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데 21세기에는 의식변화가 서시히 시작되며 인간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해 새로운 지식의 발견으로 의식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그러한 '의식의 변화'는 인간 문화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상대가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와 살길 바라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주길 기대하면 필연적으로 자의식, 즉 에고의 싸움이 되고 만다. 삶 속에서 겹쳐서 일어나는 우연들을 의식하면 그때 첫 번째 통찰이 일어난다

 

 

 

우선, 첫 번째 통찰은 삶속에서 겹쳐서 일어나는 우연들을 의식하는 것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인식은 철학이나 종교, 인문서등에서 독려하고 있던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인식을 자각하는 개인의 숫자가 21세기에 극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의식 변화의 첫 시작이다. 이 숫자가 임계질량에 다다르면 많은 사람이 ' 행성에 사는 인간의 삶이 어떤 불가사의한 과정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증을 느끼게 되고 이 궁금증의 증가는 결국 똑같은 의문을 제기할 때 통찰들이 의식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두 번째 통찰은 개인의 자각이 확장되어  현재 우리의 의식을 더 긴 역사적 관점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일어난다. 즉,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며 얻게 되는 통찰을 말한다. 우리가 어디에 와 있으며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이해하려면 지난 천 년동안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과거 인지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존재가 더욱 안락하게 살기 위한 노력으로  삶의 양태가 변하며 차츰 안락하게 사는 것만이 완전하며 그것만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된 현대인의 삶은 우리 인류가 조직적으로 품어 왔던 의문 자체를 조금씩 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왜 살아가고 있는지 자체를 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 번째 통찰을 통해 이 지구별에서 살게 된 참 목적과 우주의 본성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

 

세 번째 통찰은 위의 두 통찰을 깨닫고 나면 자연히 따라오는 통찰이다. 이 단계에서는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우선 과학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데 모든 만물이 성스러운 에너지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번째 통찰은 이러한 사물의 아름다움의 본성을 느끼게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에너지 장을 보는 법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리고 일단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물리적인 우주에 대한 이해가 빠르게 바뀐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세 번째 통찰을 깨닫게 되면 바로 네번째 통찰로 이어지는데 우주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반응하는 에너지,사람들역시 그 에너지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가 질문을 가지면 답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대로 우리가 에너지를 단절시키면 , 부족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으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에너지에 대한 통찰이 없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반목하고 전쟁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통찰이 아홉번째 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하나의 통찰은 시야를 확장하여 두번째의 통찰로 이어진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우연의 일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첫번째 통찰이 일어나고 이 우연한 일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이면에 존재하는 그 이상의 것(영적)인 것을 느끼게 한다.  두번째 통찰인 역사적 관점의 확장은 우리의 인식을 조금 더  구체적인 현실적 인식으로 만들고, 우주안의 지구를 떠올리게 되면서 우리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인식하게 하는 과정이다. 이 것은  세 번째 통찰로 이어져  '생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시작된다. 우리안에 있는 에너지를 이해하게 되면 다시 네 번째 통찰로 이어져 인간에게 있는 에너지의 파동을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우리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게 하려면  더 높은 에너지의 원천과 연결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고 이 통찰은 다섯 번째 통찰 -우리가 그저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주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준다-로 연결된다. 아홉 번째 까지의 통찰은 이렇게 하나의 통찰을 깨달아야만 다음 단계의 통찰이 가능해지도록 연결 되어 있다.

 

아홉번째 통찰까지 리뷰로 남겨놓으려다가 나머지는 비밀에 부치는 것이 나을 듯 하여 다섯 번째 통찰까지만 정리해 놓았다. 책에는 우리가 잘못 인지하고 있는 종교적인 관습의 이면들과 사랑에 대한 관념들에 대하여, 부모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존재하는 것인지를 알려주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인공이 한 단계씩 통찰해가는 과정으로 그려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의식 변화는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이론이나 설이 아닌, 여러 인문서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물음과 맞닿아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 철학. 생태학, 역사 등의 많은 분야에 접근하여 삶에 대한 통찰을 《천상의 예언》을 통해 보여주고 있고, 입소문만으로 34개국에 출간된 이례적인 책이다. 영적인 체험을 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의 답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이란 내면의 깨달음, 곧 더 높은 의식에 이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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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8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수의 고독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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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삶이 그 균열을 통해 굳게 닫힌 자물쇠를 열어젖힐 것이다. -p268

 

그렇다. 어느 날 찾아온 작은 균열은 그동안 봉합되어 있던 생生을 조각조각 갈라놓는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커다란 토네이도로 변신하는 것처럼  삶의 작은 균열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시작되어 서서히 뻗어나간다. 어린 소녀에 불과하였던 알리체에게 불어닥친 삶의 바람은 작은 균열로 시작하여 틈새를 벌리고 그 틈새 사이로 빨려 들어가 더욱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삶을 산산조각 내었다. 삶은 그렇게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소녀 알리체의 삶의 첫 균열은  어이없게도 우유 한 잔으로 시작되었고 우유 한잔의 균열은 그녀의 한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거식증'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였으며 그 옆에 덤으로 고독이 남겨졌다. 

 

쌍둥이로 태어난 마티아에게 불어온 삶의 첫 균열은 쌍둥이 여동생을 공원에서 잃어버리게 되면서부터이다. 동생을 잃어버린 후, 무표정하고 마티아를 끔찍히 여기는 부모님에게서 마티아가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칼로 피부를 뚫을 때뿐이다. 날카롭게 죄어오는 아픔은 동생을 잃은 죄책감을 상쇄시켜 주었고 점점 자해에 길들여지며 상처투성이의 나날들을 견뎌내는 것이 전부인 삶.  그런 마티아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성소수자 小數 데니스에게도 상처투성이의 시절임은 같았다. 이렇게 서로 상처를 간직한채,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있던 이들은 학교의 유명인사 비올라의 생일파티에서 만나게 되면서 서로의 운명을 알아본다. 세상을 거부하는 알리체와 세상에서 거부당한  마티아에게 풍기는 극한의 외로움과 진한 고독의 향은 쌍둥이 소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삶의 향기였기에...

알리체와 마티아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을 다른 아이들은 첫눈에 알아보았다, 손을 잡고 주방에 들어선 두 사람은 웃음기 없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지만, 맞닿은 팔과 손가락을 통해 하나의 몸이 다른 몸으로 이어져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소수素數는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진다. 수학 천재 마티아는 소수의 성질인 의심 많고 고독한 숫자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수많은 소수 가운데 존재하는 쌍둥이 소수는 마티아에게 더욱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서로 붙어있는 한쌍의 소수이면서 가깝지만 서로 닿지 못하는 소수. 소수에 관한 논문으로 유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에게 북유럽 유명대학에서 초청장이 날라오자, 마티아는 이별 한마디 없이 알리체를 떠나간다. 떠난 마티아 자리를 의사 파비오가 함께 하지만, 마티아를 사랑하는 알리체에게 파비오의 공간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거식증에 점점 야위어가는 알리체를 보던 파비오는 지쳐 떠나가고 남겨진 알리체는 9년동안 침묵하던 마티아에게 편지 한장 띄우는 것이 전부였지만, 편지 한 장으로 수천킬로를 날라온 마티아는 의심할 여지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소수중의 ‘쌍둥이 소수’에게서 근접한, 거의  근접한 두 수가 한 쌍을 이루고 그 사이엔 항상 둘의 만남을 방해하는 짝수가 있다. 11과 13이라든가 17과 19, 또는 41과 43 같은 수들이 그렇다. 인내심 있게 계속 세어나가면, 이 쌍둥이 소수들이 점점 희소해지는 걸 발견하게 된다. 오직 기호로만 이루어진 고요하고 규칙적인 세계에서 길을 잃은 채 더욱 고립된 소수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 그때까지 만난 쌍둥이 소수들은 우연의 산물이며, 결국 그들의 진정한 운명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더 세어볼 마음이 들지 않아 그만두려는 찰나 서로 꼭 붙어있는 한 쌍의 소수를 만나게 된다.

 

 

마티아는 자신과 알리체가 꼭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이 방황하는 두 소수, 가깝지만 실제로 서로 닿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쌍둥이 소수.

 

알리체와 마티아 , 이 쌍둥이 소수의 사랑은 평행선을 달리며 닿지 않는 사랑의 모습이다. 이들이 닿지 않음에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외면으로 발산되는 욕망의 일부가 아닌 내면에 침잠하여 쌓여가는 고독의 본질과도 같기 때문이다. 내면의 고독이 쌓이고 쌓여 한 층위를 만들어가며 서로에게 삶의 일부가 흘러가는 것처럼 이들은 서로를 향한 침묵과 고독을  내면안에서  묵히고 삭히며 서로의 사랑을 완성해가고 있다. 서서히 수면위에 퍼지는 잔물결들이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며 그리는 파문처럼 적요하고 잔잔하다. 사랑이 소유와 욕망의 모습에 익숙한 우리의 삶에서 이들의 사랑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소유와 욕망이 아닌, 이들은 서로의 공간을 절대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존중해주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는 평행선 사랑이다. 한편으로는 마티아가 끝까지 알리체를 사랑한다는 것을 머릿속에서 이해하면서도 세면대에 튀긴 자신의 물방울마저 닦아버리는 모습을 보며 소수素數 자 -1과 자기자신-의 사랑이란, 끊임없이 무거운 바위를 들고 산을 오르는 시시프스의 절대고독과도 같은 처절함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하였다. 마티아에게는 미켈라가 무거운 바위였고, 알리체에게는 아버지가 준 우유 한잔이 바위였고, 데니스에게는 성정체성이 무거운 바위가 되었다. 그러나,  알리체와 마티아, 데니스 그 누구도 자신의 짐을 다른 누구에게도 떠넘기지 않는다. 쌍둥이 소수素數와 성소수小數자 데니스의 사랑은 평행선을 그리지만, 언제나 한 공간안에 머문다. 이들은 오히려 세상에 자신의 흔적이 남길까봐 두려워 하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마치 마티아가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소리내지 않고 걷는 방법을 터득한 것처럼, 알리체가 세상의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것처럼, 이들은 모두가 철저하게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것은 강물이 역류하여 흐르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운명 또한 그러하다.  소수자라는 궁극의 고독을 나타내는 숫자와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지면위에 유려하게, 수면위의 잔물결처럼 흔들리지만 은은하게, 느리지만 묵직하게, 슬프지만 아프지 않게,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소설이었다. 이 짧은 소설안에 이 모든 것을 담아낸 작가에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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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 역사 속 억압된 책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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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書(금서)’  금지된 것들은 아름답다. 그래서 금단의 열매는 어떤 열매보다도 더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금지된 것이 매혹적인 것은 그 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밀고 당기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욕망과 금지는 서로 상충하며 작용한다. 금지된 것의 욕망은 거대한 인류문명사의 흐름의 축을 이루고 있는 책의 역사 가운데  각 시대마다  ‘금지’되었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인류 사상사의 흐름을 읽는 것과 같다. 시대를 밝게 비추는 혁명의 불꽃은 '책'으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무함마드의 코란 혁명이 프랑스민중들의 자유주의 혁명의 태동은 책에서 시작되었다. 책 안에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담게 되면 금서禁書가 되었다. 나심 탈레브는 [안티프래질]에서 세상의 안티프래질한 속성-무질서와 불확실성,가변성-을 말하며 '앎'은 알리려고 할 때보다 덮으려 할수록 널리 전파되기 때문에 책은 금서로 지정될수록 더욱 많이 읽히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책과 사상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오히려 자양분을 얻는 안티프래질적인 특성이 가장 많다. 

 

이 책 《금서의 역사》는 책의 그러한 안티프래질적인 특성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역사 속에서 금지당한 책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금서로 지정당한 책들은 아주 복합적이고도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작가 자신의 엄격한 ‘자기검열’의 이유로 작가 스스로가 검열자가 되어 스스로 자신의 책을 세상과 단절시킨 경우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와 마거릿 미첼, 니보코프, 찰스 디킨스. 괴테등은 서로 다른 이유로 자기 자신의 작품을 불사르거나, 없애거나, 지우거나 하며 한 가지의 작품을 남기곤 하였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역사에 자신의 상像을 만들어놓길 원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글은 곧 자기자신이었다. 이와 반해 개인의 믿음과 생각의 자유가 목적이 아니라, 미래를 독점하는 것이 목적인 경우도 있었다. 독재와 전체주의 국가(아우구스투스 황제, 스탈린, 앙리 3세)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미래를 결정하는 일조차도 독점을 요구하였으며 이들은 백성(시민,국민)들이 단테나 조지오웰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독재자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 공포정치와 끊임없는 감시와 검열로 도서관을 파괴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앎’을 차단하였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과거를 조종하는 사람은 미래를 조종한다.” 라는 말처럼 미래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과거와 현재의 점유에 있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책 처형焚書이라는 전통을 세워 영혼의 구제와 권력유지를 위해 금서하였고,

절대왕정 시대에는 민중들이 평등의 깃발아래 분서를 하였다. 이와 반대로 책을 사랑한 한 사서에 의해 도서관양 정도의 도서가 보존되기도 하였다. 그는 세상에 가치 없는 문헌은 존재하지 않으며 출판물은 어떠한 형태든지 가치가 있는 시대정신의 증인이라는 말을 남겼다. 가톨릭 교회는 수백 년 동안 비판적인 서적을 모두 금지하고 분서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성스러움을 주장하려 하였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나 헝가리, 네덜란드와 같은 가틀릭계 군주 왕조들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며 권력유지를 위해 분서를 하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역시도 권력과 왕권강화가 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배계층의 독점수단으로서의 분서는 21세기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이슬람정권유지를 위해 고전주의 작가 아부 누외스의 시전집을 모두 분서하였고, 2005년 터키의 한 지방정치가가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책을 모두 분서하였다. 권력자들에게는 책은 존재 그자체로 위험천만한 것이었고 책은 역사속에서 존재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며칠 전 뉴스에  한국 성인 월평균 독서량 0.8권으로 OECD 국가중 '꼴찌'라는 발표가 나왔다.  역사속에서 책이 어떻게 사용되어졌고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모름지기 책을 멀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책은 읽지 않아도 삶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서 자유는 영원히 박탈당한채 권력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역사에서 권력자들이 지배를 위해서 가장 먼저 탄압한 것이 책이었다는 사실이 책이 미치는 영향을 확인 시켜주고 있다. 또한 과거 수많은 권력자들의 전유물로 일반인과 여성들에게 금기시 되었던 책이 이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제는 누구도 책을 읽지 않으려 한다는 현실은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게 한다. 《금서의 역사》는 인류문명사에 책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조감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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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1-2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궁금하게 여기던 책 중 하나인데.. 저는 아무래도 역사, 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풋.

드림모노로그 2013-11-27 14:46   좋아요 0 | URL
역사 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신다는 말씀에 역시 가연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
가연님의 역사리뷰는 거의 논문수준이시더라구요 하하 ~ ^^
이 책은 역사속에서 금지된 서책들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서술 방식이 다소 딱딱한 감이 있습니다 ^^ 가연님께는 어느 책인들 ~ 재미있지 않겠습니까마는 ㅋㅋ

저 앞으로 역사책만 읽어야겠어요
가연님 자주 뵈려면 ^^
여기는 비가 많이 오는 수요일인데 ㅎㅎ 사시는 곳에도 눈이든 비든 내리겠지요 ~
우짜던 간에 행복한 수요일 ~~!!

숲노래 2013-11-2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평균 독서량 통계를 누구한테 내는지도 알 길이 없지만,
뭐 그런 게 따진들 독서량은 늘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저, 읽는 이들이 즐겁게 읽으며 아름다운 이야기
나누면 되리라 생각해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7 14:49   좋아요 0 | URL
ㅎㅎ 역사 속에서 금지된 책들이 어떤 작용을 하였는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책마다 품고 있는 주제의식이 있으니까요 ㅎㅎ
함께살기님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
그런 시선을 배워야 하는데 ㅎㅎ
언젠가 알랭드 보통이 책을 많이 읽는 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이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책을 안읽어서 점점 불행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책 많이 읽으면 좋지요, 함께 살기님이 소망하시듯 ~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행복한 수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13-11-2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하긴 하지만, 시공사 책이네요.
오래전부터 절대 읽지 않겠다고 맹세한 출판사라서 안타깝네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7 15:00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반갑습니다 ~
하지만 ,시공사에서 출간되는 교양인문서는
대표자와는 상관없이 양질의 인문도서가 아주 많습니다 .....^^
방문 감사드리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감은빛 2013-11-27 17:14   좋아요 0 | URL
네,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참 안타깝다고 여기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출판사가 망하기 전에 걔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답니다.

2013-11-28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이 질문은 예일대 교수 셀리 케이건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죽음의 본질을 논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질문이라고 합니다. 이 질문은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원초적인 질문이기도 하죠. 그 책에서  셀리 케이건 교수는 단순하게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이라는 진화론적 세계관은 과학자들에게서 많이 보여지는 세계관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비물질적인 요소를 삶에서 철저히 배제합니다. 신무신론자들인 샘 해리스[종교의 종말],[신이 절대로 답할수 없는 몇가지],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도 대표적인 물질주의자이죠.  반대로 인간이  비물질적 존재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 또한 많습니다. 정신과 육체, 이러한 것이 서로 상충하며 인간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인간이 비물질적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과학적으로 증명해가고 있는 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학자는 '의식'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인간의 의식을 영적으로 진화한 상태와 의식 연구 및 참나로서의 신의 현존에 대한 각성이라는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하였습니다. [의식혁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2000년 방한하였을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

 

"물질주의자들은 이러한 사랑과 잠재력, 종교와 영성의 세계는 측정할 수 없는 세계라며 실재로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대상화할 수 있는 것만 다루는 것이 과학입니다. 그러나 모든 실재는 주체적이며, 대상이란 마음이 만들어내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가상적인 것입니다. 세계는 움직이지 않으나 우리의 지각 때문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최근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에서는 오랫동안  물질주의자이자, 과학자였던 저자가 임사체험을 본인이 경험하게 되면서 비물질주의자가 되었고, 자신이 오랫동안 물질주의였던 부분에 대해서 잘못 알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입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의지가 없다’를 믿었었지만, 죽음 상태에서 천국에 간 순간 너무도 확실하게 내면의 자아의식을  생생히 느꼈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우리가 ‘생각한다’ 라는 것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무의식의 자아로 ‘경험’하였던 행동 메커니즘이라는 결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생각한다’의 자아는, 우리안에 진정한 내면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회복하게 될 진정한 영적 자아라는 것이죠. 내 안의 또 다른 나, 이것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일반 시민을 동굴에 갇힌 포로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보는 것이라고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움직임, 그러니까 이들로서는 결코 파악하지 못할 실체의 투영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직 철학자만이 빛이 비치는 바깥으로 나가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마이클 샌델은 일반시민들은 실체를 보기 위해 철학과 정의를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바로 이븐 알렉산더가 보게 된 '영적 자아' 가 되겠죠. 이러한 '영적자아'는 데이비드 호킨스의 '큰나'라든지 '참나' , '깨달음의 나' 와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의 삶은 형상을 넘어선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행위는 정직 사랑 영감 등 비과학적인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린 한 곡의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한 순간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은 무한의 존재감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진화하는 영적 신인류를 뜻하며 “내재와 초월을 넘어 신성의 빛으로 가득한 깨달음의 나, 무한한 나”에 이르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깨달음의 가능성은 과거 천년의 인간 진화에 비해 천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 인류의 의식 수준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생명의 원시적 출현에서 시작해 인간 에고로서의 진화를 거쳐, 영적 깨달음의 실상과 에고의 초월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해 온 의식의 토대 및 본질을 되짚어 간다. 진실의 수준이 1에서 1,000까지로 측정되는 ‘의식 지도’상에서 최고 수준인 999.8로 측정된 이 책은 호모 스피리투스의 시대인 21세기의 고전이 될 만한 뛰어난 영적 분석과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제가 읽지 못하여 출판서 서평을 발췌한 것입니다.

 

 

 

 

 

데이비드 호킨스박사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의식수준을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한 지표인 '의식 지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체운동학kinesiology'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의식 지도의 탄생 과정과 그 의의를 담고 있는 [의식 혁명]은 '의식 연구의 과학화'라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출발점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책입니다. 

 

 

 

 

 

 

이 전의 책들에서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 의 진보된 자각 상태와 깨달음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놓아버림》에서는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일상의 장애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봄과 동시에 실천전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존의 책들이 이론편이라면 이 책은 실천편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매순간 마주하는 죽음이나 좌절, 스트레스,  위기,  고통과 같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생에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을 거두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는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놓아버림'을 권고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영적 자아'와  '참나'또는 '큰나','실존의 나'와 멀어지게 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감정에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고통과 괴로움과 불행을 겪고 나서야 '큰나(실존의 나)'를 만나게 되지만, 데이비드 호킨스는 '놓아버림'이라는 기법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겪지 않고도 우리가 각자 떠안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짐을 초월하게 되는 비법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놓아버림'의 과정은 의식의 가장 높은 깨달음의 과정이며  결국 의식의 가장 높은 깨달음의 도달점은 우리의 내면의 자아, 즉 영적자아를 되 찾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놓아버림'기법은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영적인 서적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들입니다. 

 

우리가  물질주의자든  비물질주의자이든  사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점점 곤궁해지고 비참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이 물질과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이외수님은 <마음에서 마음으로>에서 그 영적인 감각들을 '감(感)'이라고 하시더군요. 타고난 초감각적이고 초자연적인 '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하였습니다. 내 안의 나, 만나보고 싶지 않으세요? ^^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를 통해 '내 안의 나'를 깨워보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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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 있는 나를 이야기는 '아나스타시아'나 '람타'도 함께 읽어 보시면서
양자물리학도 공부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1-26 11:44   좋아요 0 | URL
아나스타시아는 함께 살기님의 리뷰로 보았구요.(카트에 담아놓았습니다 . 6권 짜리더라구요. 전 한권씩은 못보고 세트는 1권부터 6권을 다 보아야 하는지라^^;; 6권까지 구매를 해야 할 듯 합니다 ㅎㅎ)
람타는 절판이더군요 ^^
아나스타시아 함께 살기님의 리뷰를 읽고는 꼭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자체가 양자이지요 ^^ ~ 람타도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