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 아니 무서워하는 독서 인증샷~ 이 이번 나쓰메 소세키의 11월 미션입니다. 홍홍홍 ~ 제 독서스타일은 시도때도 없이 읽는 것이라,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습니다 ㅎㅎ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1권 [도련님]을 시작으로 2권은 [태풍] 을 읽었답니다.

도련님은 정말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고, 태풍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해진 도련님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작은 아이 [학부모 참여수업]에 가족이 모두 참여하였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제가 읽는 책이 궁금하였는지 , 수업이 지루하였는지 제 가방에서 [태풍]을 꺼내 열심히 독서하는 큰아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설정모드 아닙니당) 표지가 이뻐서 마음에 든다고 나중에 자기가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다 가질거라나요...ㅎㅎㅎ

 긴머리를 봄까지 고수하다가 여름에 단발로 자르고, 가을에 커트로 잘랐는데..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를 계속 놔둘걸 그랬습니다 ㅋㅋㅋ 우짜던간에, 틈날때마다 열공하였습니다. 어제는 오랜 아카데미 수업 마지막이라 ,  교육시간 틈틈히 몰래몰래 읽고, 저 혼자 인증샷 찍고 그러는데 같이 간 짝꿍이 제 사진을 찍어주어 용기내어 올리네요 ㅎㅎ 역시, 사진공개는 부담백배 ~

 

      제가 [태풍]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원대한 이상이 있는 사람은 큰길을 걸어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과는 달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걸어냅니다.

방황하고 싶어도 방황할 수 없습니다.

혼이 이쪽, 이쪽 하고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제게 [태풍]은 재미있고 없고를 따질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이상과 신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어서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뿐만 아니라 문학이라는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해주는 둔중한 울림들이 가슴에 두고두고 남을 듯 합니다. 

 [태풍]의 도야선생은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로워져야 하고(다카야나기의 삶을 통해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 물질적인 면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합니다(도야선생이 정신과 물질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는 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가는 '원대한 이상'을 품어야 하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도야선생은 그 원대한 이상을 이렇게 말하죠.

속세의 사람들보다 인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끌어올려줄 책임이 문학가들에게 있다고요.  문학가들이 지닌  문학적 높은 경지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문학'이라는 고매한 정신세계 또는 존재가 우리 사는 세상에 아무 쓸모없어진다고요. 문학이 지닌 이상과 신념이 바로 이 [태풍]안에 모두 들어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최고의 소설이었습니다. 백년전의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이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 또한 문학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희 태풍 독서기는 인증샷으로 방점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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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서재를 서성이다가 문학동네 전집 사이에서 한국인 이름을 발견했다. 한국계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순교자》라는 작품을 향한 펄벅과 필립 로스의 찬사는 순교자를 읽는데 주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낯선 이름의 작가 김은국의 약력을 보니 <태백산맥>에서 평등주의사상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 김범우의 운명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이대위와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범우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이전에 봉건주의 타파와 민족평등이 먼저였던 것처럼 김은국 작가는 《순교자》를 통해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대립 앞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1950년 서울에서 인류문명사를 공부하던 박군과 이군은 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지원하게 된다. 박군은 해병대로 이군은 육군본부 평양 파견대에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평양에서 목사들이 북한 공산당에 의해 집단 처형된 사건 때문이다. 발견된 열 두구의 시체에는 박군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박군이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기 보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평소의 ‘광신자의 오만한 얼굴, 자기가 옳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자길 패배시킬 수 없다는 신념에 잔뜩 도취된 자의 얼굴’이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발굴된 열 두구의 시신을 둘러싸고 육본 파견대 정치정보국장 장대령은 북한 괴뢰 정권에 희생당한 순결하고 성스러운 희생자로서의 <순교자>라는 상징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는 위원회를 만든다. 이름하여 ‘합동추도예배’인데 이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군의 홍보와 공산주의의 부정한 이미지를 심겨주기 위한 것이 군의 목적이다. 장대령에 의해 임시 책임자가 된 이대위는 목사들의 집단 처형 가운데 두 명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살아 돌아온 두 목사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면서 사건이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집단 처형 당일 있었던 진실, 모두 총살당하고 두 명만 살아남은 진실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 목사와 신 목사가 살아남은 이유를 둘러싸고 교회와 신도들 사이에는 온갖 억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살아남은 이들은 침묵할 뿐이었다. 이들이 살아남은 이유를 장대령은 국가 이익의 보호와 군의 선전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 신 목사에게 이대위를 보낸 것이고 이대위는 그저 순수하게 신 목사라는 인간미에 이끌려서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데 신목사의 친구 고군목의 등장으로 신목사의 입지는 다시 좁아지게 된다.

 

 

 

첫째는 그가 거짓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심은 깨끗할 대로 깨끗하다는 거고,

둘째는 그의 양심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거야.

 

 

합동추도예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각종 신문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성스러움과 순교자들을 찬양하는 선전이 도배를 하고 합동추도예배에서 설교를 하게 된 신목사는 처형 당일에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는 열 두명을 배신하였기 때문이며 그 열 두명의 목사들은 모두 자신의 배신을 용서하고 거룩하게 죽었다는 설교를 함으로써 스스로 십자가를 진다. 이로 인해 신도들은 분노하여 신 목사를 ‘유다’라 부르며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신 목사를 타도하기 위해 합심하는데 , 허나 진실은 그 반대였다. 처형을 주도하였던 정소좌가 포로로 잡혀오면서 사건당일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 정소좌가 두 사람을 살려 준 이유는 열 두명의 목사들이 죽음 앞에서 모두 신을 부정하였으나, 한 사람은 이미 미쳤고(미친사람은 쏘지 않는다는 불문율 때문에), 오로지 한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인 유일한 신앙인이었다는 이유로 살려두었다는 말을 남긴다.

“난 평생 신을 찾아 헤매었소. 그러나, 내가 찾아낸 것은 고통받는 인간......

무정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뿐이었소.”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난으로 가득 찬 이 삶이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린 그 절망을 때려 부수어 그것이 인간의 삶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단순한 겁쟁이로 쪼그라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전쟁은 민족상잔의 비극만 낳았을 뿐 아니라, 절망도 낳았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가운데 종교조차도 그 빛을 잃었다. 동료 목사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신의 부재에 절망한 한 목사의 미친 울분의 소리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는 신 목사의 절규는 시대의 아픔과 인간에 대한 동정이 묻어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전에 , 종교이전에 전쟁이 만들어낸 포화속에서 인간실존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순교자》안에서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형상화 된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하였듯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비극 앞에서 희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만들어주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신 목사에게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참된 신앙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려 보게 되었던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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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1-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주인공 이대위가 신목사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신앙은 가지고 싶지만 종교에는 거부감이 많은 저로써는 마치 제가 하늘에 외치는 물음 같더라구요.

오랫만에 댓글이네요. 드림님 책 읽으시는 속도가 정말 엄청 나더군요.
리뷰 쓰시는거 보면 전 경이롭게까지 느껴집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1-22 15:15   좋아요 0 | URL
크크~ 책이 살아가는 재미이죠 ㅎㅎ리뷰는 부수적인 것이고 ㅎㅎㅎ
반갑습니다 아무개님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ㅎㅎ
순교자 감동이었습니다.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읽었구요 ㅎ~
알라딘에 올리지 않은 리뷰가 많아서 예전 리뷰를 쉬엄쉬엄 올리는 것도 있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에고 ... 저도 저보다 더 많이 읽으시는 분들 보면 부러운걸요...
몇몇분 따라가려고 했다가 가랑이 찢어질 뻔 하였답니다 ㅋㅋㅋ
요즘들어 책 읽는 속도가 점점 더디어져가서 무척 슬퍼하고 있는 걸요 ㅎㅎㅎ

아무개님도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 행복한 겨울 보내시기를*^^*

숲노래 2013-11-23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에 새옷 입고 나오기도 했군요. 다시 나오기 앞서는 사람들이 으레 헌책방에서 이 책을 찾아서 읽곤 했지요. 김은국 님이 중국을 여행하며 손수 사진도 찍고 글도 써서 낸 책이 있는데, 이 책도 무척 뜻있고 재미있어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6 11:48   좋아요 0 | URL
전 김은국님처럼 쓰는 글이 좋아요. 미사여구가 많은 문장이 아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담백한..^^

노이에자이트 2013-11-2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영문본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되었습니다(감독 유현목).영화도 걸작으로 꼽히는데 정작 상영 당시엔 이 대위의 신앙관이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정서를 거슬렸죠.유현목이 사탄이다 등 등 욕도 먹었고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6 11:55   좋아요 0 | URL
종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교회도 열린 사고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던데 아마도 이 책이 출간하였을 당시에는 기독교인들의 정서에는 반하였을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교회에 어긋나면 사탄이라는 말을 주저없이 하던 시대였으니까요 ㅋㅋㅋ 책 읽으면서 무성영화의 한 장면이랑 오버랩 되던 장면이 기억나긴 하는데, 정확히 순교자인지는 모르겠어요.
노이에자이트님 오랜 만의 방문 감사드리구요~ 좋은 하루 되세요 ^^
 
침대위의 신 -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성을 왜곡하는가
대럴 W. 레이 지음, 김승욱 옮김 / 어마마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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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TV프로그램《자기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에 하는 프로였고 모두 중년을 훨씬 넘어선 분들이 출연자였었는데 이날의 주제가 바로 '부부의 성'이었습니다. 모두 손주 손녀를 보고도 남는 나이들이라 그런지 공중파임에도 너무 솔직히 性(성)에 대한 담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많이 놀라웠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들어 성에 대한 과감한 접근을 본의아니게 많이 접하고 있긴 합니다. 새삼스럽게 '성'이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더라구요. 그만큼 성에 대한 사고가 자유로와 졌다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한편으로는 은밀한 성욕이 이제는 본능의 일부라는 것을 사회구성원들이 자각해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근본주의자로 자랐지만, 지금은 근본주의가 싫어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근본주의라 하면 사람들이 어렵게 받아들이거나 뜻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쉽게 말해 교리 중심주의를 근본주의라 합니다. 오로지 교리, 성경중심이라는 것이죠. 교회사람들은 교리중심이 왜 나쁘냐고 하지만, 교리중심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교리만 강조한 나머지 성경외의 다른 것은 모두 나쁜 것으로 배척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를 향한 수많은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는 이 뿌리깊은 근본주의가 있습니다.  

 

이 책 《침대위의 신》의 저자 대럴 W. 레이는 이 책을 통해 종교가 억압하는 성性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째 성보다는 종교비판의 목소리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는 것을 운명으로 알았다는 저자가 이러한 연구를 하게 된 경위는 다름아닌  교회 지도자들의 수많은 성적 비행을 보게 되면서라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성적기행'이  교회지도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가진 사람’들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었답니다.  이후 저자는 무신론자로 커밍아웃하면서 종교가 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부제 ‘종교는 어떻게 인간의 성을 왜곡하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중요한 논조는 종교가 ‘인간의 성‘을 어떻게 억압하고 통제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심 논조이고 부차적으로는 종교와 성(섹스)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입니다. 가장 첫 번째로 저자는 종교가 사람들의 성행동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믿음의 요인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이 세 가지  '내세에 대한 믿음과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신이 내세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으로 모든 성행동을 배제한다'믿음은 모두 함께 공존할 때 성이 주는 쾌락보다 종교가 주는 믿음이 더 강해지게 한다고 하는데요. 이 믿음은 '섹스는 훌륭하지만 천국은 그보다 더 훌륭하다'는 믿음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믿음들-내세,신,성행동-의 조합이야말로 이슬람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들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 됩니다. 이 요인을 통해 저자는 종교를 널리 퍼뜨리는데 성적인 억압이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죠. 저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종교가 주는 억압적인 성이 아닌, 성 자체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거듭 강조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생물학, 심리학, 역사, 인류학에서 말하는 성을 알아야 하며 여러 시대와 다양한 문화속의 성도 살펴보아야 하고  인간의 성性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그려주고 있는 성지도처럼요.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허나,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시종일관 불편함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예수의 정체성 역시도 어불성설 같구요. 성경이 주장하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박논리 또한 성경의 팩트가 아닌 추측으로 일부분만을 발췌하여 반박하는 것에 불과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종교가 성을 억압하는 경우의 예는 극단적인 예일뿐 통념이라 받아들이기에는 힘든 이야기들이 다수였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에 억압적인 성향을 띠며 죄책감과 수치심 가운데 살아간다고 하지만, 저희 집안을 보더라도 아니 저를 보더라도 전혀 그런 부분, 성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이 공동담론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성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성에 대한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에 대한 저항과 스트레스가 강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우리나라를 보아도  참여정부 시절에 성매매특별법으로 집장촌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성범죄가 가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은 억압하면 할수록 저항이 강렬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공교롭게도 최근 불거진 유명 목사의 불륜으로 또 한번 교회지도자들의 성적기행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종교가 결코 성욕을 누르지는 못하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터부시 되었던 성性을 조금은 자유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접근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종교에 대한 관점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시대 착오적이지 않나하는 부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부일처제가 종교의 왜곡된 성이 고착되어진 사회적 제도라는 주장은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과 싸우며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합니다. 그것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종교에 왜곡되어져 그릇된 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 누군가가 바른 길로 가게 인도해줄 수 있는 것도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과정중의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사라 해서 억압된 성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목사이기 전 인간이기 때문에 성에 대한 억압을 지닌 것이라는 것이죠. 저자가 무신론자의 시각으로 유신론자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협적이라는 비판은 면치 못할 듯 합니다.  접근법이 종교에 국한되어 있고 비판적인 시각이 불편함으로 남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성지도性指導를 그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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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1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밈없이 바라본다면 비틀리지 않지만,
꾸미고 덧씌울 때에는 모두 비틀리겠지요.

아름다울 때에는 어떤 이름이나 껍데기가 없지만,
아름답지 않을 때에는 자꾸 이름이나 껍데기를 뒤집어쓰지 싶어요.

드림모노로그 2013-11-22 10: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꾸밈없이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떠올려봅니다.
살면서 편견과 자의식은 점점 강해지게 되는 것이 사람이니까요 .
편견이라는 것을 좀 거두어내고 삶을 바라보아야 할텐데
어떤 구분, 무신론,유신론이라는 구분자체가 인간이라는 영장앞에서는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함께 살기님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리구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
 
아웃사이드 인 전략 - 와튼 스쿨 최고의 마케팅 명강의
조지 데이 & 크리스틴 무어먼 지음, 김현정 옮김, 이명우 감수 / 와이즈베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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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불황의 그림자에 드리워져 있다고 하여도 여전히 건재한 기업들이 있다. 반면에 과거 최고의 기업들이 역사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최고의 기업이었음에도 지금은 명목상 이름만 유지되고 있는 기업도 있다. 기업의 경영방침에 따라 기업의 생존여부가 결정된다. 기업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의 경영방침에 따라 고객에게 어필하는 마케팅의 목표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마케팅 분야 최고의 구루인 조지 데이 교수는 성공하는 기업과 성공하지 못한 기업의 차이점을 '마케팅의 차이' 즉, '경영전략'에 있음을 이 책 《아웃사이드 인 전략》에서 밝히고 있다.

 

간략하게 말해 아웃사이드 인이란 고객의 입장에 서서 기업이 하는 모든 활동을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뜻하고 인사이드 아웃은 기존 자산에서 최대 이익을 뽑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웃사이드 인 전략은 고객의 가치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인사이드 인은 기업 내 효율성 개선이 목적이 된다. 고객 가치 추구란 어찌보면 정답일 수 있지만, 기업들이 고객 가치 추구 보다 효율성을 중시하게 되는 이유를 저자들은 기업이 지니고 있는 자기 보호 본능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기업을 구성하는 요소는 사람이다. 사업부와 부서, 팀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모든 조직은 생존을 가장 중요시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이런 본능으로인해 기업은 자연스럽게 인사이드 아웃관점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아웃사이드 관점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고객 가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내에서 창의적인 파괴를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등 기업의 쇄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드 인

인사이드 아웃

모든 결정은 시장과 우위를 얻기 위한 기회에서 출발한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구매 의향을 갖고 있는 모든 대상에게 판매할 것이다

뛰어난 가치 제안, 브랜드 및 고객 자산 활용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개선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

고객 지식은 가치 있는 자산이며 유통 경로는 부가가치 창출을 돕는 파트너다.

고객 데이터는 일종의 통제 메커니즘이며 유통 경로는 기업과 고객을 잇는 연결 통로다.

우리는 경쟁 업체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경쟁 업체가 하고 있는 활동은 틀림없이 좋은 것이다.

신성불가침의 존재는 없다. 신제품 출시를 통해 신구 교대를 꾀해야 한다.

기존의 현금 흐름을 보호해야 한다.

뛰어난 품질이란 고객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품질은 내부 기준에 따른 것이다.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고객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을 받더라도 답을 할 수 없다.

고객 충성심이 수익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고객층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웃사이드 인 전략은 최고의 기업과 그럭저럭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일반 기업들과 차별짓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며 차별화되는 요건은 바로  4대 고객 가치 요건이다. 4대 고객 가치 요건으로  지속적인 고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기업으로 아마존은  네트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편리한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킨들을 통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또한 , 옐로 테일 와인 브랜드의 타기업과의 차별점과  캥거루 브랜드의 친근함을 내세워 미국 대중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록스의 앤 멀케이 회장은 고위급 관리자들에게 500명의 최우수 고객을 제록스 실험실로 데려와 고객의 요구를 즉각 시정함으로써 고객 가치 경영을 실현하였다. 

 

일반 기업과 최고의 기업을 구분짓는 4대 고객 가치 요건은

첫 번째 요건은 고객 가치 리더가 돼라.

두 번째 요건은 고객을 위해 새로운 가치를 혁신하라.

세 번째 요건은 고객을 자산으로 활용하라.

네 번째 요건은 브랜드를 자산으로 활용하라.

 

 

위의 4대 고객 가치 요건은 최고 경영진 전체의 책임이며 조직 내 모든 부문의 참여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위의 4대 고객 가치 요건을 실행에 옮기려면 상당한 수준의 사업 감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객 가치 리더십, 가치혁신, 효과적인 고객 자산 관리는 결국 기업의  최적의 수익성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조직과 리더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저자는 아웃사이더 인 사고방식을 지닌 리더의 강력한 지휘가 없으면 어떤 조직도 지속적으로 아웃사이드 인 결정을 내릴 수 없으며  리더는 꾸준히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아웃사이드 인 전략을 지지하기 위해 자원을 제공하며,폐쇄적인 조직 구조를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최근들어 기업 중심의 경영보다  '고객만족경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고객만족경영은 시장점유율 확대나 원가절감이라는 '단기적인 목표'보다 '고객만족'을 궁극적 경영목표로 추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고객만족이 최고인 경영이다. 그러나, 아웃사이드 인 전략에서 말하는 고객 가치와는 차별화 된다. 고객 만족은 무조건 고객만 만족시키면 되지만, 고객 가치는 고객과 함께 브랜드를 소유하면서 느껴지는 가치, 기업과 고객 서로 일치감을 느낄수 있는 만족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기업은 말그대로 마케팅이 생명이다. 고객과의 일치감을 느낄 수 있는 고객 가치만족의 실질적인 실용서로서 기업의 향후 경영방침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해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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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 -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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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리뷰를 쓸 필요가 없는 책을 만난다. 오래 전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란 책 리뷰에도 난 쓸 말이 없어서 책의 내용만을 발췌해 놓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고매한 정신에 다다를 수 없는 어떤 높은 경지를 이외수의 책들에게서 보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난과 배고픔이 씨앗이 되어 그 안에서 잉태된 숭고한 열매는 바로 그의 고매한 정신이자 문학이다. 그렇기에 그의 책은 리뷰가 필요없다. 그냥 읽기만 해도 감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엔 충분하니까.

 

 이 책은 말그대로 이외수의 감성읽기이다.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외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팔딱거리는 감성과 쫄깃한 이성의 조합과 세상과의 소통뿐 아니라 범우주적인 소통까지도 이외수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읽을 수 있다. 이외수 문학의 중심은 단연코 '감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감성을 네 가지의 주제(예술,인생, 세상, 우주)로 분류하여 대담하는 형식으로 소설가 하창수가 묻고 이외수가 답한 대담을 엮은 책이 《마음에서 마음으로》이다. 마지막 <어디로 가십니까>에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로 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문답집의 장점은 한 가지의 주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한 가지의 주제로 축약되며 문학과 삶과 인간에 대한 외연外延이 저절로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예술>에서는 작가 이외수의 문학과 예술을 이루고 있는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이다. 이외수 문학의 중심이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예술이나 종교나 우주의 본질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예술은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드려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행위가 된다.  예술로서 인간은 본성인 사랑과 원초적이고도 생래적인 감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서 감성마을은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된다. 

 

육안肉眼의 범주에만 머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안靈眼의 범주에까지 닿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움,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인생>에서는 이외수 작가의 배고픔과 가난으로 점철 되어진 유년시절을 들을 수 있다.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 로 인생의 참뜻은 배우는 것에 있다는 말로 들렸다. 이번 장에서는 인생에서의 '조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데 인생에서의 조화란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본성과 같고, 그게 곧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다' 라는 말처럼 세상은 아름답고자 하는 본성, 조화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들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만큼 인생에서 조화란 가장 중요한 섭리이다. 또한, 우리가 삶의 아름다움에 감화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코드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순수해져야함을 강조한다.

 

세번째 이야기 <세상>에서는 트위터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별명에 대해 그는 글밥의 연장선일 뿐이며 세상과 연결해주는 창이라는 표현을 보며 문득 그의 사상이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태풍>등장하는 도야선생과 무척이나 닮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야 선생은 '속세의 사람들보다 인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끌어올려줄 책임이 있다'라며 자신의 문학적으로 높은 경지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문학이라는 고매한 정신이 아무 쓸모없다고 하였다. 그가 트위터를 하는 이유,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을 듯 하다. 자신의 도道를 전해주는 것이 문학이 지닌 궁극의 경지일 테니까.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도야선생(나쓰메 소세키)의 전신을 보는 듯 하였다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한 사람의 깨달음은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의 깨달음의 힘은 전파처럼 퍼져나가고, 누군가의 깨달음에 도움을 주게 된다. 깨달은 자의 수가 늘어나면 상층계의 상태가 변한다. 공자가 말한 홍도弘道와 같다. 도道가 인간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수행함으로 도가 넓어진다

 

네번째의 장 <우주>에서도 역시 이외수만의 철학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림과 음악 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조예가 상당한 것을 보고는 이외수의 또다른 진면목을 보게 된 듯하였다.  질문하는 소설가 한창수의 날카롭고 심도깊은 질문이 이외수의 그런 정신적인 부분들을 잘 끄집어내고 있어 무엇보다 이 책은 이외수의 고매한 정신세계를 잘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베란다에 심어놓은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것을 한동안 가족 모두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죽어가던 꽃나무에서 꽃 한송이가 핀 것을 보고 가족들이 모두 탄성을 지른 적이 있다. 분명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핀 꽃 한송이는 우리에게 생명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감성感性이란, 이런 것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도 삶의 위대함과 풍요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감성, 이성, 오성-중 감성이 유일하다. 과학의 발달로 이성에만 치우치다 보니 원초적이고 생래적인 감성은 점점 퇴화하며 세상은 점점 비정하고 메말라가고 있지만, 우리에게 감성이 있는 한, 메마른 이성에서도 꽃은 필 수 있다. 이외수의 감성마을은 잠들어있는 우리의 본성, 즉 감성을 두드리고 깨워주는 날 선 감각을 선사하고 있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가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참 잔인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굶어 죽은 예술가들에게는 눈물 한방울 흘려주지만 , 소위 잘나가는 예술가들에게는 도덕이라는 잣대로 단죄하고 싶어 안달이다. 책을 다 읽고는 문득 세상과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해오고 있는 문학가들을 위해서라도 감성마을은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고매한 정신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예술가들이 짊어지고 있는 그 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문학의 진정성을 알게 해준 감성마을 이외수 작가에게도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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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8 23: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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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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