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 라캉과 함께 한 헤겔
슬라보예 지젝 지음, 주형일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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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제목의 의미가 가장 궁금하였지만, 책을 다 읽어가도록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이도 책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역자 후기에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는  지젝이 파리 8대학교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 보완한 책이고 첫 출간(1988년) 당시보다 유명세를 타게 된 2011년 인기에 힘입어 다시 재 출판된 책이다.  라캉은 헤겔을 항상 ‘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히스테리라는 병은 라캉이 프로이트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신분석학 이론을 만드는데 결정적 자료를 제공한 정신병을 말한다. 라캉은 히스테리 환자의 증후를 분석함으로써 주체 형성 과정에서 '실재'가 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라캉이 말하는 히스테리환자의 특징은 알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히스테리 환자가 알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앎이다. 히스테리 환자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모르기 때문에 결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게 된다. 그는 단지 욕망의 대체물들을 찾아다니며 절망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히스테리 환자가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하고 결코 충족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욕망이 바로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대타자가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대타자가 충만한 것이 아니라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욕망을 말한다.  대타자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히스테리환자는 결국 자신도 대타자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뭔가를 잃어버린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텅 빔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라캉이 헤겔을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라고 부른 이유는 철학적 담론 안에서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절대적 앎을 추구하는 헤겔의 모습이 자신의 담론 안에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찾아가는 히스테리환자의 그것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 있다. 실제로 라캉은 또 다른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완벽한 히스테리 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라캉이 헤겔주의자가 아니고 과거에도 절대 아니었다고 하는 비판에 대해 지젝은 이 책을 통하여 라캉이 '완전한 헤겔주의자' 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지젝이 말하는 헤겔주의는 일반적인 의미의 헤겔주의자가 아닌 헤겔에 대한 참조를 하였다는 점에서의 전혀 다른 헤겔주의라는 점을 강조한다. 라캉이 ‘인간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정의한 이 한 문장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욕망의 주체가 타자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라캉의 욕망에는  ‘타자’의 결여라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 본래적 결여는 ‘주체가 갈망하는 것’으로서 실재의 텅 빔이라는 환상이다.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살펴봄에 있어 헤겔의 변증법 체계가 바로 라캉의 대타자의 결여라는 실재의 텅 빔을 중심으로 주체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라캉의 체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헤겔주의자라는 것이다.

 

 

책에는 칸트와 헤겔, 맑스의 자본론과 같은 철학전문 용어가 사정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칸트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진리를 탐험하는 과정을 조금 흥미롭게 읽었다. 칸트의 숭고론에서는  숭고는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주체의 내면에 있음을 강조한다.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였던 헤겔은 내면 주체안에 결여 되어 있는 텅빔, 라캉의 타자를 향한 욕망 한 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이해했던 것일까. 칸트의 숭고가 인간의 감각을 거스르는, 고통스럽고 불편하며 경이로운 쾌감으로서의 한계치를 말한다면,  라캉의 빛으로 읽는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헤겔은 온 감각을 열어두어도 다다르기 힘든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였고....  그동안 인간사랑에서 나온 철학서들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그 이유가 우프게도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독서 지도사 이지성님이 자신의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책을 읽어야 독해력이 는다는 권고대로 어려운 책과 씨름하고 난후의 뿌듯함으로  부러  어려운 책을 찾아 읽곤 하였는데 ,  이 책은 고백하건데 어렵기도 하지만, 읽는 동안 머리가 지근거렸다. 정말 힘들게 읽은 책이다.  중간 정도까지 읽다가 도저히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어 다시 앞장으로 가기도 여러 번 ,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필사하기도 하였지만, 머리가 녹이 슬었는지 이해불가능이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가 싶어 조금은 낭패감에 젖어 리뷰를 쓰지만, 조금 독해력을 길러 다시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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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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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전집 첫 번째 책 《도련님》에 이어 읽게 된 책은 《태풍》이다. 태풍의 집필 시기가 궁금하여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연보를 찾아보다가 태풍이 빠져 있길래 해설 부분을 먼저 읽게 되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따르면 태풍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중 가장 덜 읽히는 소설이고 초기의 성공작이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 도련님,1906>의 인기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작품연보에도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태풍1907>은  네 번째 장편소설로 나쓰메 소세키가 교직에서 떠나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한 해에 집필한 소설이다. 태풍의 주인공 도야 선생은 천방지축 도련님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주인공이다.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태풍의 주인공은 오히려 <그후> 의 게으른 지식인 다이스케와 더 많이 닮아있다. 도련님이 확실히 재미가 있는 작품이지만, 태풍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소설이다. 재미있고 없고를 따질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이상과 신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태풍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나쓰메 소세키가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본 듯하여 전보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에 더한 애정이 샘솟는다. 도련님에서 웃음으로 승화하였던 사상가의 면모가  태풍의 주인공 도야에게서 더 진지해졌다고 할까. 

 

 

1,도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구도는 주로 삼각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에서도 세 명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태풍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1900년을 지나고 있는 사회적 격변기이다.  ‘수억의 돈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실업가들이 내놓는 티끌 같은 돈 부스러기로 연명해가는 사람이 바로 문학사이다’ 라는 도야의 독백에서 보여지듯 소설은 신구파간의 갈등과 충돌로 혼란한 사회상 뿐만 아니라 돈이 만능인 시대가 되면서 문학이라는 정신적인 의미가 퇴색해져 가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융통성 없고 학자로서의 권리만을 주장하다가 중학교에서  퇴학과 전학을 여러번 하게 되자 도야 선생의 집안 형편은 순식간에 빈곤해져만 가게 되고 돈에는 관심이 없고 도道에만 관심이 있는 백면서생 도야를 바라보는 아내의 가슴은 쪼그라드는 살림 앞에서 더욱 싸늘해져만 간다.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게 목적이다.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가벼운과 무거움의 차이를 인식한다. 또 좋고 그름을 판별한다. 선과 악의 경계를 이해하고 현명함과 어리석음, 참과 거짓, 바름과 사악함을 제대로 판별해내는 것이 바로 학문의 목적이다.

 

 

2, 나카노와 다카야나기

 나카노 기이치는 잘 생긴데다 현명하고, 인정을 베풀 줄 알 뿐만 아니라 사리분별이 분명한 수재다. 다카야나기 군은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비아냥거리기 좋아해 염세가라 불리는 남자였다. 반면 나카노군은 대범하고 원만한 성격에 다양한 취미를 가진 수재다.(p32) 학교를 졸업한 후 나카노는 부잣집 도련님이라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가난한 집안의 아들인 다카야나기는 먹고 살기 위해 문학사 즉,  글을 쓰는 일에 이제 막 한 발을 내딛는 중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외톨이였고 내성적이며 예민한 성격탓에 세상으로부터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고 타인의 시선에 늘 두려워하며 불안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폐병이 점점 다카야나기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아무런 꿈과 희망이 남아있지 않았을 때 도야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죽어가던 다카야나기는 문학사로서의 이상과 신념을 되찾아 간다. 

 

문학은 인생 그 자체입니다. 고통이 있고, 궁핍이 있고, 고독이 있고, 무릇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이 곧 문학이고, 이런 것들을 맛본 사람이 문학자입니다.

 

문학사인 도야와 다카야나기의 삶은 가난하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러나, 똑같은 가난에도 도야선생이 바라보는 세상과 다카야나기의 세상은 전혀 달랐다. 도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었고, 자신이 깨달은 이상과 진리를 문학으로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고자 하는 희망을 지녔지만, 다카야나기가 바라본 세상은 자신이 중심인 세상만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보았고 자신의 기준에서의 문학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길은 시작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하는 신념과 이상에 대한 연설을 하는 도야 선생의 모습은 마치 빙의된 나쓰메 소세키의 연설을 보는 것처럼 장렬함이 전해진다.  문학사라는 , 인간의 삶을 대변하는 외로운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같은 이야기였다. 삶에서 불어닥치는 태풍과 같은 강렬한 고독과 외로움은 '이상' 이 있는 이들에게는 한낱 그치는 빗방울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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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15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삶이듯, 예술도 삶이고, 모든 일과 놀이가 삶이 되리라 느껴요.
찬찬히 즐기고 누릴 적에 아름답게 빛나는 문학도 되고 예술도 되겠지요.

드림모노로그 2013-11-15 17:18   좋아요 0 | URL
ㅎㅎ 참 멋진 표현이죠 ~ ^^나쓰메 소세키의 정신이 살아있는 책이라고 할까요? ^^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하잖아요 ~
도야 선생이 자신의 문학을 그리 생각하더라구요.
즐기고 누리는. ^^

2013-11-15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5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15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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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가족의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 존재하는 수많은 물음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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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고독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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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素數)의 고독은 그냥 그럴 것 같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느낌과 똑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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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공부법 : 통합로드맵 잠수네 아이들
이신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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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잠수네 콘텐츠에서 영어교육입문과 실천편이다. 아이에게 도움이 얼마나 될란지 우선 내가 읽어보려고 구매. 책 구성,편집은 잘 된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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