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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 버림 - 내 안의 위대함을 되찾는 항복의 기술 ㅣ 데이비드 호킨스 시리즈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박찬준 옮김 / 판미동 / 2013년 10월
평점 :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혁명》을 읽을 당시만 해도, 반만 이해하고 넘겼던 기억이 있다. 사람에게 ‘의식’이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의식이란, 내가 인지하는 부분에 대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데이비드 호킨스가 말하는 의식과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의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존 로크는 ‘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정신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는 것’으로 정의하였고,(사전의 의미와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본다.)데이비드 호킨스가 말하는 의식은 ‘실제의 나가 아닌 나와 분리된 또 다른 나’이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한다면 실제의 나 즉, '큰나'가 바로 '참나'이며,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나는 ‘나’의 참모습이 아닌 것이다. (기존의 의식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것을 쉽게 비유하면 플라톤의 《국가》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동굴이론을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워질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들과 일반인을 나누어 일반인들은 동굴에 갇힌 포로로 비유하고 철학자는 동굴 밖에서 유일하게 실존을 보는 사람이라 하였다. 일반인은 동굴안에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흐릿한 사물만을 볼 수 있으나, 철학자들만이 사물의 실존을 볼 수 있다. 이에 플라톤은 실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동굴밖에 존재하는 궁극의 실재를 추구하기 위해 철학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혁명에서 ‘인간 에고는 실제로 내가 아니다. 이 환상을 꿰뚫어 볼 때 내 안의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라며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나는 내 안의 또다른 나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바로 동굴안의 '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 경험의 아이러니는 분리된 개별적인 '나'와 환상을 보존하기 위해 '에고'인 나가 얼마나 지독하게 싸우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괴로움의 원천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은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되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빛난다》의 공저자들은 이러한 실존의 상황이라는 극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통과 슬픔을 관통하는 삶에 천착하여야만 가능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그러한 인간의 의식(실제의 나가 아닌 나와 분리된 나) 을 《의식혁명》에서 1부터 1000까지의 척도로 수치화하여 의식 지도를 제시하였다. 이 전의 책들에서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 의 진보된 자각 상태와 깨달음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놓아버림》에서는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일상의 장애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봄과 동시에 실천전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쉽게 말해 기존의 책들이 이론편이라면 이 책은 실천편에 속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매순간 마주하는 죽음이나 좌절, 스트레스, 위기, 고통과 같은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생에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을 거두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자는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놓아버림'을 권고한다.
그것은 인간이 타고난 자유, 그러나 잊고 있었던 자유라는 의미와도 같은 것인데 항상 우리에게 있었지만 잊고 있던 우리의 본성인 자유를 일깨운다는 의미의 '놓아버림'이다.
놓아버림은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듯 마음속 압박을 갑작스레 끝내는 일이다.
저자의 놓아버림은 마음만 먹으면 의식적으로 몇 번이든 놓아버리는 것인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 내가 어떻게 느낄지는 내게 달린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반응의 피해자가 아니다.' 라고 되뇌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저자는 오늘날 사회가 자신의 감정을 적극 표출하라고 권하는 것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저작과 정신분석을 오해한 결과라고 하며, 감정 표출하는 것 자체로 감정이 증식되면서 더 큰 감정에너지가 생기고 감정을 표출한 까닭에 나머지 감정들이 억제되는 역반응을 가져오게 된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충동이나 감정을 중화하고 승화시켜 사회화해 사랑과 일, 창조성 같은 건설적 욕구로 돌리라'는 뜻이었으며 부정적 감정 표출은 관계를 악화시키고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고 한다. '놓아버림'을 연습하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게 되고 중화시키게 되며 , 내면안에 남아있던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으로 변화하여 남게 되어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을 수신하며 내면이 무결해지면 질수록 무의식에 의해 삶의 여건이 자동적으로 마련되어 풍요가 삶에 흘러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놓아버릴 때는 모든 생각을 무시한다.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생각에는 신경을 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며 스스로 강해져 다른 생각을 더 많이 일으킬 뿐이다.
생각이란 감정이 생긴 까닭을 설명하려는 마음의 합리화에 불과하다
현대인들은 감정과 생각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위에 플라톤의 동굴이론에서는 철학자와 일반인을 나누었지만, 나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철학자였다고 생각한다. 태양이라는 실존을 누구나 볼 수 있었지만, 스스로 멀어지게 된 것 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감정에 있다고 본다. 감정은 우리의 생각과 신념 체계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의식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신경체계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감정은 '가짜'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의식' 또한 '참나'가 아니듯이 '큰나' '참나''실존의 나'와 멀어지게 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감정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고통과 괴로움과 불행을 겪고 나서야 '큰나(실존의 나)'를 만나게 되지만, 데이비드 호킨스는 '놓아버림'이라는 기법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겪지 않고도 우리가 각자 떠안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짐을 초월하게 되는 비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우울해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저자가 말하는 '놓아버림'의 과정은 의식의 가장 높은 깨달음의 과정이다. 그리고 결국 의식의 가장 높은 깨달음은 우리의 본성을 되찾는 과정이다. 저자가 말하는 '놓아버림'기법은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영적인 서적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다. 이제까지 읽었던 데이비드 호킨스의 빛나는 역작이라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책이었다. 누군가의 삶이 괴로움 한 가운데에 있다면, 나는 반드시 놓아버림을 권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