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여행하다 -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전연재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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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하루 일과에 지친 몸을 이끌고, 딸들의 재잘거림이 아파트 계단에 울려 퍼질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한다. 그 순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자, 오직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안락함과 늘 나를 기다려주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자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유일무이한 곳이 바로 집이 주는 의미가 아닐까. 가족과 함께라면 나는 칼바람이 부는 시베리아 벌판의 비닐 집이라 해도 좋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라 하여도 좋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캠핑족이 되었다.  캠핑의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그 곳이 바로 집이 된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캠핑은 최고의 레저이다. 나 역시도  젊었을 때 집을 사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고 한푼이라도 아껴 살았다.  그 당시에는 집을 사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자, 로망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집이라는 목적만 생각했지 정작 집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새삼 부끄러워졌다. 한편으로는 유독 (물질적으로) 집에 대한 애착만 생각했지 ,  정작 그 집에 담을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는 떠올려보지 않은채 그저 바쁘게만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 역시도 불혹이 넘어서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그곳이 바로 집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으니, 삶은 여전히 배울 것 투성이인 것 같다.  

 

오래 전부터 페쇄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많은 사람을 사귀지 못하였다. 최근 여행을 다니면서 근 몇년 사이에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을 합쳐도 될 만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제껏 내가 알고 있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이  여행의 종착역은 결국 사람의 마음 , 자신이라고 하였던가. 수많은 여행과 수많은 만남으로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빈 자리가 이렇게 많았던가를 깨닫곤 하였다. 늘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나의 잣대로만 타인을 바라보았던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다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저마다가 가진 삶의 방식이라는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

  

 

 

같은 사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경험과 지식의 다름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는 보다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가능하게 했고,

 이런 다양성은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근원이 되었다.

 

 나에게 집이 소중한 의미가 되듯이 집은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이다. 그 공간안에 누구나 사랑을 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집들을 여행한 삶의 궤적들을 담은 곳이 바로 《집을.여행하다》이다. 건축을 전공한 저자는  집을 건물이 아닌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공간으로서의 집을 보는 심미안을 가졌다. 여행자로서 '좋은 집'을 여행하게 되면서 길 위에서 만난 가족들의 또 한 명의 가족이 되어 일상을 함께 하며 단순한 여행이 아닌 그들의  삶 일부가  되어 쓴 글들이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보낸 데이비드와의 이야기와 함께 건축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공간이 지닌 의미들을 실었고, 시라쿠사에 사는 리암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닮은 삶의 이야기들을, 포르투갈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리스본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테레사와 함께 공연을 보며 느꼈던 소소한 삶의 단면들을 통해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삶의 다양성의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의 다른 취향과 생활 방식을 살아보는 것이 여행의 한 방식이며, '옳고 그름,좋고 나쁨의 채에 거르지 않고 그저 다름'을 살아보면서  삶의 지혜들을 배우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여행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동안 수많은 만남에서 나의 주관적인 채에 걸러 오히려 타인을 나의 틀에 맞추려고 하였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 절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또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삶을 대하는 자세였다. 시칠리아인들의 자유분방함에서 보여지는 여유와 자연이 주는 감각들을  있는 그대로 삶에 적용하며 순응하며 사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배우고픈 자세였다. 그러한 기질들은 고스란히 집에 반향하여 이들은 모두 소박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집으로서의 건축을 완성하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한 몫하는 책이었다. 건축과 예술, 그 가운데 사람이 중심이 되어 아름다운 삶의 무늬를 완성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A good home must be made, not bought. (Joyce Maynard)

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삶은 여행이다. 여행은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만나는 이들의 삶을 응축해서 이야기로 담았고 집과 집을 여행하는 동안의 여정을  '삶의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웠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다른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하였듯이  삶에서 다른 눈을 가진다는 것은 한쪽 면으로만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으로 세상을 살 때보다  삶의 다양성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다움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삶에서 다른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삶이 한가지의 얼굴이 아닌 희로애락의 씨줄과 날실이 서로 교차하여 무늬를 완성해가는 것과 같이 삶의 다양성 시각은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평생을 살아온 궤적들은 단 몇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밀도는 그 어떤 삶보다도 더 값진 생의 궤적들이다. 저자와 함께  집과 집으로의 여행을 통해서 '다른 눈'을 갖는다는 의미를 떠올려보며 나도 늘 한쪽 면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집과 집이라는 여행과 동행하며 삶의 다양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준 저자의 멋진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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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배에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실어둡시다.

될 수 있으면 당신의 배를 가볍게 만듭시다. 아주 편안한 가정과 간단한 오락,

한두 명의 소중한 친구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한 마리의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한두 개 정도의 담배 파이프.

넉넉한 음식과 옷, 그리고 갈증은 위험하므로 아주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의 물을 갖추어.

-제롬 클라프카 제모

사람들의 다른 취향과 생활 방식을 살아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방식이다. 나는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채에 거르지 않고 그 다름을 그저 살아보았다. 그러다 보면 한두 가지쯤은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 것을 만나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나는 삶의 지혜들을, 색채들을, 맛을 내 안에 담아나갔다.

 

 

여행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는 법이다. 진리는 하나뿐이라고 배우는 좁은 사회에 갇혀 살다 길을 나서면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조금은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갖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갈 힘을 얻기도 한다. 길에서 배운 또 하나의 사실은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다 싫다라는 선택이 있을 뿐이며, 진리라는 것이 반드시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깨달음은 나의 잣대로 쉽사리 타인을 판단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 역시 분명 그만의 진실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일 테니까.

 

모든 선실에는 엄격한 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선원들은 -내가 기숙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것처럼-

자기 자신과 가장 내적인 감정을 위해서는 단지 몇 세제곱미터밖에 주어지지 않으며,

이 사적인 공간은 사방팔방에서 생겨나는 부패와 파괴, 압력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혹독한 규율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

배 위에서는 자신의 궤적과 끊임없이 마주치게 된다. 인생에서 그런 것처럼.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향기가 나곤 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이름 없는 농부일지라도, 그는 어떤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보다 아름다웠다. 여행을 하면서 종종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노인들이었다.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내어 비치는 나이의 그들. 고비 없는 삶이란 없는지라 아마도 다들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어렵사리 고결한 마음을 지켜낸 이들은 잠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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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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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쿱트인의 문답형이라는 형식이 칼릴 지브란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책은 조용한 곳에서 명상하며 읽어야 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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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훗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39
이사라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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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님의 추천으로 구매한 시집, 마음에 쏙 든다. 시간의 결을 만지는 , 매력적인 시집이다.. 나이들어가는 슬픔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를 위해 지어 준 시 같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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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무 창비시선 368
정희성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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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갑자기 차가워진 가을바람에 쓸쓸함이 묻어있듯이 시가 외롭다. 어려운 시가 아니라서 다행이다.(요즘은 시들도 어려워지는 기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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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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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그후> 와 <마음>밖에 읽어보질 못했다. 솔직히 그후와 마음을 조금 지루한 듯 읽어서 <도련님> 역시도 같은 풍이라 생각했었다. 집필 순서상으로도 38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39세 <도련님>, 42세 <그후>, 47세 <마음> 순이었으니,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집필순서대로 읽는 것이 나을 듯하다. 도련님은 초기작품이라 그런지  <마음>과 <그후>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도련님을 읽으면서 나쓰메 소세키가 이렇게 유머가 있는 작가였나 싶을 정도로 풍자와 해학이 깨알같이 넘쳐나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깔깔 거리곤 하였다. 아 정말 도련님은......최고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6년 뒤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다지 밝은 가족사는 아닌데 이상하게 도련님만은 해맑다. 세상에서 유일한 혈육인 형과 의지하며 살아야 함에도  형은 부모님의 유산에서  6백엔만을 떼주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갔다. 홀로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도련님에게 유산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의 놀림에 오기로 2층에서 뛰어내려 허리를 삐끗한 것도, 친구에게 외제 칼을 선물 받자마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비스듬히 벤 것도, 부엌에서 공중제비를 넘다가 부뚜막 모서리에 갈비뼈를 부딪힌 일도, 이게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 뒤 가리지 않는 성격’때문이었다. 이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 물리의 물자도 모르는 도련님은 물리학교를 지나다가 학생 모집광고를 보고 입학수속을 하였고 졸업후에도 교장선생의 수학교사 제의에 ‘앞 뒤 가리지 않고’ 시코쿠 중학교의 수학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때부터 도련님의 파란만장한 사회초년생의 인생수업은 시작된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언제나 도련님의 편에서 하녀 '기요' 할멈만은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넘치는 사랑을 준다. 부모가 자식에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을 기요에게서 받으며, 좌충우돌 사회생활에서도 기요는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준다. 기요는 자신의 몫이었던 유산 50엔조차 도련님을 위해 저축해두었을 정도로 혈육보다 더 진한 정으로 도련님을 모신다.

 

 ‘앞 뒤 가리지 않는’ 성격의 도련님이 부임한  ‘지도에 바닷가옆 바늘 끝만큼 작게 표시된 곳’은  성냥갑만한 기차가 있고 하나같이 수상해보이는 시골 사람들로 득시글하다. 녹록치 않은 첫발을 뗀 도련님의 시작은 부임 첫 날부터 순조롭지 않다. 덴푸라를 먹어도, 욕탕에서 헤엄을 쳐도, 경단을 먹어도 마치 '러일전쟁'처럼 떠들고 다니는 시골 사람들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도련님은 ‘  잠깐 기분이 좋지 않지만 30분만 지나면 깨끗이 잊어버린다. 나는 무슨 일이든 오랫동안 걱정하려고 해도 걱정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럭저럭 무난히 지낸다. 그러나, 복병은 따로 있었으니 의리없이 죽고 못사는 김보성도 아니고 이 도련님, ‘정의’와 ‘의리’ 빼면 시체다. 학생들이 숙직실에 메뚜기 세례를 퍼부어도 견디어냈던 도련님의 선생생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은  ‘끝물호박(영어선생)의 여자 '마돈나'를 빼앗으려 하는 빨간 셔츠(문학사)와 알랑쇠 (미술 선생)의 간계였다.  끝물호박을 전임하는 대신 자신의 월급을 올려준다는 빨간 셔츠의 사탕발림에 '왜 월급을 올려주냐?'고 따지질 않나, 유명한 서예가 선생의 글씨를 보고 '저렇게 못쓴 글씨를 왜 걸어두냐'며 지식인들을 타박하기도 하며 순진과 솔직을 무기로 선생님들을 당황케 한다. 사회 초년생이면서도 입바른 소리는 못할망정 듣기 좋으라고 하는 거짓말조차 못한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인망이 두텁고 바른 말을 잘하는 산미치광이까지 빨간 셔츠와 알랑쇠의 마수가 뻗치자,  정의의 사도 도련님은 산미치광이와 함께 알랑쇠와 빨간 셔츠를 응징하려 한다.  

 

시코쿠 중학교에서 도련님이 만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다. 대학을 졸업한 , 지식인이자 문학사 빨간셔츠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간질과 모함을 일삼으며 얼굴에는 '친절'이라는 페르소나를 쓴 것과는 달리, 도련님은 사회에서 주어지는 가식과 위선이라는 '페르소나'를 쓰지 않은 정직하고 의리의 사나이다.  불행한 가족사로 어린 나이에 운명에 순응하는 법을 일찍부터 깨우쳤던 도련님은 삶과 타협하기 보다는 관조하며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대신 피한방울 안 섞인 기요의  아낌없는 사랑덕에 성인이 되어서도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련님의 좌충우돌 사회생활을 보면서 등장하는 인물들 '빨간 셔츠','알랑쇠','끝물호박',''너구리'와 같은 인물들은 사회에 적응하며 순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실과 타협한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적응하게 되면서 누구나 알게 모르게 현실과 타협하며 순수성을 잃어가는 페르소나를 쓴다.  '빨간 셔츠'나 '알랑쇠'처럼 친절과 아부라는 페르소나에 숨어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사회라는 네트워크에 합류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참된 삶의 가치를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순수한 도련님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반추하게 된다. 점점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에 경도되어 인간적인 가치들이 하찮게 되어가는 시대에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의 인간적인 면모들에 반해 읽는 내내 미소를 입에 물고 읽었다.  도련님이 떠날 때나 돌아올 때나 같은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기요할멈의 넉넉함과 사람냄새가 무척이나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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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요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완전히 사랑에 빠져 있음에 틀림없다. 원래 지체 있는 가문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육을 받지 못한 할멈이라 어쩔 수가 없다. 단지 이것만이 아니다.호의적인 눈은 무서운 것이다. 기요는 내가 장래에 출세하여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 굳게 믿고 있다.이런 할멈이고 보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떤 곳이고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통 아는 바가 없다. 몰라도 난처하지 않다. 걱정도 되지 않는다. 그저 갈 뿐이다. 그렇지만 다소 성가시기는 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하마터면 울 뻔했다. 기차가 어느 정도 움직이고 나서, 이젠 괜찮겠지,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쩐지 무척 작아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이 남자는  일 년 내내 빨간색 셔츠를 입고 있다. 묘한 병도 다 있다. 본인 설명에 따르면 빨간색은 몸에 좋아 건강을 위해 일부러 맞춰 입는다고 한다. 쓸데없는 걱정이다.(문학사선생)

 

그 뒤로 창백하고 오동통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끝물호박을 먹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어 선생도 분명 끝물호박만 먹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끝물호박이라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뭐가 아하하하냐. 예의도 모르는 이런 작자한테 누가 놀러 간단 말이냐. 나는 이때부터 이 밤송이에게 산미치광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수학선생)

 

쉴 새 없이 이렇게 늘어놓는 걸 보면 꽤나 붙임성 좋은 노인네다. 미술 선생은 완전히 광대풍이다. 하늘하늘한 비단 하오리를 입고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알랑쇠)

 

앞에서 말한 대로 나는 그다지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아니지만 단념은 굉장히 빠른 사람이다. 이 학교에서 잘 안 되면 곧바로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갈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너구리도 빨간 셔츠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런 마당이니 교실의 코흘리개들에게 아양을 떨거나 입발림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나빠지는 일을 장려하고 있는 것 같다. 나빠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간혹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는 둥 애송이라는 둥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

 

사람은 대나무처럼 곧지 않으면 미덥지 못하다. 올곧은 사람과는 싸움을 해도 기분이 좋다.

 

빨간 셔츠는 등불을 앞으로 내밀며 안쪽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순간적으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세상에 월급을 올려준다는데 거절하는 놈이 다 있나 싶어 의아한 것인지, 설사 그렇더라도 이렇게 금방 다시 돌아와 싫다고 할 것까지 있나 싶어 기가 막혔는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아무튼 이상한 입 모양을 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빨간셔츠, 묘한 걸 붙잡고 추근추근 몰아붙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빨간 셔츠는 어쩐지 주는 것 없이 미웠다. 한때는 친절하고 여자 같은 남자라고 고쳐 생각했지만, 그게 친절도 뭐도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싫어졌다.

 

가이오쿠라는 유명한 서예가가 쓴 글씨를 보고 "왜 저렇게 못쓴 글씨를 요란하게 걸어두었을까요?"

 

이런 거짓말로 송별회를 열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저도 사표를 내겠습니다. 훗타 선생 혼자만 사직하게 만들면 제가 편안하게 머물러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몰인정한 짓은 할 수 없습니다."

"이력 같은 거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력보다 의리가 더 중요합니다."

 

"그 녀석도 바보 같은 놈과 닮았어요. 그 바보 같은 놈은 의협심 있는 도련님이라 귀염성은 있더라구요,"

 

나는 계란을 먹으려고 샀지 내던지려고 소매 안에 넣어 온 게 아니었다. 단지 홧김에 나도 모르게 그만 던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알랑쇠가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한 행동이 성공한 것을 알았다.

 

"도련님, 제가 죽거든 제발 도련님네 묘가 있는 절에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이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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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7 11: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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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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