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 사유의 스승이 된 철학자들의 이야기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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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없는 인간은, 가능한 모든 친구들 중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하고 가장 메마른 친구다.”

                                                                                                     -윌리엄 제임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는 내 안의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갈증,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열정이 강풍처럼 나를 고뇌의 대양 위로 이리저리 몰고 다녔고, 그 대양을 통해 나는 절망의 벼랑 끝을 경험했다.”-러셀

 

 

“유럽의 위기는 두 가지 결말이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자신의 합리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유럽의 쇠락, 정신적 증오속으로의 추락, 그리고 야만이 그 하나이고, 자연주의를 확실하게 극복한 영웅적 이성 덕분에 철학의 정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 또 하나의 결말이다. 유럽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권태이다. ‘훌륭한 유럽인’으로서 투쟁의 영원함을 두려워 않는 용기로 이 최악의 위험과 맞서 싸우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니할리즘이라는 화염과, 인간에 대한 서구의 과업을 의심하는 절망의 속사포, 그리고 도저한 권태의 잿더미 속에서, 내부의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정신적 숨결로 되살아나는 불사신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위대하고 장구한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다. 오로지 정신만이 불멸이기 때문이다.”-후설

 

“적절한 순간에 발현되는 정당한 말은 행동이다.”-한나 아렌트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저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저는 하나의 체계를 신뢰해야 하는 근거를 별로 믿지 않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알베르 카뮈

 

 

“철학은 스스로를 버리고, 스스로를 떠날 각오를 하고 늘 자기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자크 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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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은 《처음 시작하는 철학》의 속편이다. 전편에서 서양 철학사의 흐름을 짚어주며 현대 철학에서 이미 진리는 사유의 수단이 아닌 ‘극단적 모험들’속에 던져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끝맺었었다. 고대의 철학을 진리에 이르는 사유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20세기의 철학은 과학의 합류로 인해 진리의 사유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아니 20세기 철학의 극심한 진리변화는 과학 때문이라기보다 전대미문의 전쟁과 대량학살과 전체주의, 기술혁명등 혼돈의 역사를 쓰고 있는 시대였으며 아비규환 그 자체였기 때문에 몰아치는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철학은 기존의 (고대)철학이 사유하였던 ‘진리’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본질’이라는 개념 자체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 20세기 철학은 진리를 가운데 두고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한 갈래는 진리추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다른 갈래에서는 진리 추구에 대한 포기나 회의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

 

 

20세기 철학의 변화를 시작하는 첫 사상가들은 앙리 베르그송과 윌리엄 제임스,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누구나 본질이나 핵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확신이다. 사상가의 직무는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낯익은 이 ‘경험’ 속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핵심, 즉 전혀 예상치 못해 당혹스러운 부분들에 대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 또 집요하게 주목하는 것이다. 이 세 사상가들이 현대 사상을 출범시키는 한 가지 움직임은 과학적 방법론이 부분적으로 과학 자체에 대한 반론으로 돌아서고, 이성은 합리성의 한계와 과도함을 비판함으로써, 가장 익숙한 세계 속에 자리한 미지의 영역들을 발견하는 것은 이제 경험의 몫이 되었다는 점이다.

 

20세기에 등장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과학과 철학의 관계이다. 과학과 철학의 문제는 철학자들 간의 극단적 분열을 가져왔고, 사상의 흐름을 관통하며, 여러 학파를 만들어냈다.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고, 그 관계가 이토록 결정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은 20세기에 와서의 일이다. 20세기에는 서로 다른 관점의 논쟁은 20세기를 관통하는 충돌이었고 , 하나의 논쟁은 러셀, 후설, 하이데거로 시작되어 과학과 철학을 논쟁하였고 또 다른 논쟁의 축은 ‘언어’였다. 말의 실재, 말과 사고의 상응, 언어의 구조, 언어의 기원 등이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테마였고 20세기에는 과학과 더불어 기본 쟁점이 되어간다. 이렇게 언어는 철학자들의 사유와 연결되어 현대의 철학으로 자리 잡아 갔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적 언어 표현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해석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만들어내는 잘못된 문제들을 폐기하기 위해 우리와 말의 관계를 탐색하였고, 한나 아렌트는 핵심적 정치 용어들이 어떻게 그 의미를 박탈당하게 되는지, 그 의미들의 재구성은 어떤 방향에서 시작될 수 있을지 탐구한다.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과학 언어의 한계와, 번역 및 의미의 개념들이 갖는 기만적 복합성을 강조한다. 이때부터 진리에 대한 사유, 진리의 의미와 그 위상에 대한 모든 사유는 ‘언어유희’분석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강화되고 있는 철학의 한 가지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세기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전쟁은 철학자들을 시대의 고통에 동참하게 하였고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공통적으로 의미와 무의미, 유연성과 자유, 행동과 부조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이들은 사유는 똑같은 혼란과 무질서 위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서로의 공통투쟁을 통해 뭉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각자의 길을 가기도 하였다, 이들은 부조리한 인간사에서 의미의 재구성과 끈질긴 노력을 추구하였다.

 

또 하나 20세기 특징은 그동안 대립관계로만 보아왔던, 진리의 두 갈래 여정이 점차 하나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마하트마 간디, 완고한 순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루이 알튀세르,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 와서는 서구의 위상, 이성의 역할, 인류의 해방에 초점을 맞춘 각자의 영역에 매진했다.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로 수렴되는 방식을 통해 이 세 사람이 해체해버린 것은 머릿속 생각으로만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의 유희다. 이들이 차이와 공통점을 넘나들며 예고한 것은 바로 새롭게 등장하는 현대라는 세계에 대한 아우트라인이다.

  이렇게 형태는 여러 가지지만 본질은 동일한 어떤 위기가 20세기를 관통했다. 바로 인간 개념의 위기이다. 제1,2차 세계대전에 의해서 철저하게 파괴된 휴머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현대의 주요 사상들의 공통점이었다. 위기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은 사상가는 니체와 미셀 푸코, 에마뉘엘 레비나스로 충돌과 대립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 개념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시도한 사상가들이다.

 

 《처음 시작하는 철학》은 현대철학 보다 조금은 단순한 느낌이었다. 하긴 철학을 진리와 동일시하던 고대철학의 의미가 현대에 이르러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삶 자체도 그러하듯 말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대한 철학의 흐름을 간략하게 풀어주는 작업을 시도하였다는 자체에 프랑스 철학자 로제 폴 드르와의 위대한 업적이라 여겨진다. 20세기 철학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유의 체계에 대하여 기본 프레임을 짜주는 작업과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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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4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24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09-26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궁금하네요.

드림모노로그 2013-09-29 17:37   좋아요 0 | URL
오호 ~가연님 , 오랜만입니다 ^^ 잘 지내시지요 ㅎㅎ
추석도 잘 보내셨구요? *^^*
이 책 저자의 책은 모두 좋습니다 ^^
철학의 대중화를 추구하시는 분이라 어렵지 않은 것이 장점입니다.
다른 책은 가연님께 너무 쉬울 듯 하고, 조금 어려운 듯한 현대철학이
가연님과 잘 어울리지 싶습니다(제 생각에요 ^^ ㅎㅎㅎ ~)
언제나 그렇듯 늘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듣지 않는 의사, 믿지 않는 환자
제롬 그루프먼 & 패멀라 하츠밴드 지음, 박상곤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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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나 건강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병에 대하여 인지가 좀 늦은 편이다. 그나마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여러 가지의 병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큰 아이가 병치레가 잦았는데 그 중, 가장 심하게 앓았던 병이 중이염이었다. 고열이 일주일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다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만 더 심하게 오르고 아이는 더 괴로워했다. 밤마다 고통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딸을 업고 며칠이 지나서야 처방받은 약이 전혀 효능이 없음을 알았다. 아이가 병이 깊어지자, 다니던 소아과 선생님은 유명한 대학의 소아과 선생님을 추천하며 친절하게 소견서를 써주셨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세 시간을 운전하고 두 시간을 대기한 후에야 진료를 받게 되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진료시간은 겨우 십분, 처방전을 받아들고 집에 오는 동안 아이가 나을 거라는 희망과 바꾼 시간이기에 가슴 한 켠으로는 허무했지만, 그래도 참을만 했다. 그러나, 아이는 약을 먹고 상태가 더 나빠졌다. 열은 더 올랐고 아이는 울 기운도 없는지 기력이 없어보였다. 일주일 후, 다시 세 시간을 운전하여 세 시간을 대기한 후 의사선생님께 아이가 병이 더 심해져 약을 안 먹였다고 하였더니, 선생님은 그 약이 몸에 안 맞았나보네 , 하며 이번에는 다른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하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약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서, 게다가 아이의 체질이나 기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약처방만 해 준 것도 화가 났지만, 아파하는 아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무심함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가 낫기만을 바라며 달려 온 수천 키로 위에 버린 시간들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남편과 나는 처방전을 받아들고 쓰레기통에 버린 후,혹시나하여 근처 유명한 아동병원에 들렸는데 아동 병원의 의사선생님은 아픈 아이를 너무 거칠게 대하고 다른 의사들과 다를 것 없이 처방만 해주었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치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하나같이 약만 처방해주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실망감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는 결국 이에게 약이 아닌 자연치유책을 찾아보기로 하였고 인터넷에서 여러 정보를 수집하며 부모들이 권하는, 경험담에 근거한 민간 치료로 아이의 병을 치료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의사라면 무조건 옳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깨주었고, 병원에 가게 될때는 일단 증상과 상태를 검색한 후에 병원에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많은 과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은, 많은 치료약이 여전히 회색 지대 안에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명백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치료에도 여러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이 있으며 치료법마다 위험성과 효과도 다르다, 아마도 개인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는 간단하거나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한 때 TV광고에서 ‘유병장수’시대라는 말을 듣고는 혼자 박장대소했다. 유병장수란 말이 듣기에나 좋지  골골골하며 100세 까지 사는 시대라니 ^^;;....죽을 때까지 병을 달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슬픈 운명은 결국 과학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싶어 웃음 끝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과학의 범주의 의학은 너무도 불확실하며 효과나 부작용이 증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의 약이 누군가에게는 만병통치약이 되는 확률게임에서 가장 최선의 치료를 찾는 것은 의사의 몫이나, 환자의 몫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아닌, 의사와 환자 모두가 치료라는 교집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실제 사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와 의사에게 ‘스타틴’을 처방받은 수전이 스타틴 복용으로 인해 고생하는 많은 이웃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발에 심각한 통증으로 고생하던 리사가 치료에 대한 확실한 신념없이 수술한 뒤 , 수술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된 이야기에서도  전립선암 수술이후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면서도 의사에게 상태를 좋게 말할 수 밖에 없었던 맷의 이야기에서도, 쉽게  환자와 의사가 생각하는 치료에 대한 선명한 가치관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병에 대한 인지가 없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결국 선택은 항상 당신 자신이 해야 한다. 당신은 치료 효과와 부작용이 각각 자신의 삶의 가치와 목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치료 효과를 보거나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제롬 그루프먼과 패멀라 하츠밴드는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며 이스라엘 디커너스 의료 센터의 교수진들이다. 이들은 듣지 않는 의사 믿지 않는 환자에서 각각 유형의 사람들을 20명가량 선정해 인터뷰하고, 그들의 성향별 치료 결정 사례를 꼼꼼히 분석하며 의사에게는 환자의 입장을, 환자에게는 의사의 입장을 통하여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짚어주며 분석하여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는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저자들은 치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신념이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개인의 태도및 가치관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이런 신념은 자신이 의사에 대한 믿음의 수치에 따라 치료결과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의 경계, 나에게 맞는 치료인지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후회 없는 치료뿐 아니라 각종 질병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안하며 병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에 대한 새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환자들은 저절로 의사에게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들은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옳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환자는 '여러 질병 치료'에 대한 생각이 전문가 사이에서조차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바야흐로 유병장수시대, 《듣지 않는 의사 믿지 않는 환자》는 단언컨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

 

 가장 최고의 치료 선택 과정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선택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치료법 가각의 위험과 효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치료에 대한 환자의 생각과 경향을 존중하면, 의사와 호나자가 함께 가장 적절한 티료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선호도를 이해하는 의사와 치료 선택을 같이 한다는 것은 선택의 부담을 덜고 그 결과를 후회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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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8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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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1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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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열일곱 살이 되던 겨울이었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말을 잃었습니다. 말을 잊는다는 것은, 존재를 잃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돋을새김처럼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던 그녀는 스스로를 음각 intaglio 하여 존재하지 않길 원했습니다. 그녀가 보는 것은 내면에 흘러들어가 고여만 있습니다. 번역되지 않는 말, 소통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던 그녀, 그렇게 세상에서 움푹 패여 침묵과 함께 침잠해 들어가던 그녀를 깨운 언어가 있었습니다. 모국어는 그녀에게 ‘그것은 선명하고 완전한 고통,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여’ 고통이었지만, 희랍어는 고통없이  ‘주어도 없이 어순을 지킬 필요 없이 간명하게 의사전달이 가능한 언어’ 라는 점이 잠든 그녀를 깨웁니다.  침묵과 상실과 고독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을 희랍어로 가득 채우고 싶었던 그녀,  희랍어는 그녀에게 ‘인간의 모든 언어가 압축된 하나의 단어’ 이상의 구원의 언어가 됩니다.  말을 잃고, 사랑을 잃고, 사랑하는 아이조차 떠나보내야 했던 그녀는 그녀와 똑같은 모습의 '죽어가는','소통되지 않는' 언어였던 '희랍어 시간'이라는 가느다란 실만이 생명줄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남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눈을 감는 것과 뜨는 것이 거의 다르지 않은, 먹보다 진한 ’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 남자는 세상을 찬란한 것, 어슴푸레하게 밝은 것, 그늘진 것으로만 식별이 가능합니다.  색채가 없는 음양만이 볼 수 있던 이 남자는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희랍어를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플라톤의 희랍어 원전읽기를 강의합니다.  희랍어와 플라톤, 그리고 이 남자에게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바로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소멸되어가는 희랍어로 구사한 것처럼 희랍국가 역시 언어와 함께 쇠망하였듯이 남자도 소멸되어 가고 있었으니까요.  희랍어가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오래 전 죽은 말’이 되어 ‘소통되지 않는 말’이 되었듯이 남자의 희랍어시간은 소통하기 위한 시간이 아닌, 소멸해가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플라톤과 이 남자는 덤덤히 자신에게 주어진 소멸과 몰락이라는 삶의 수순을 조용히 밟고 있는 중입니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가 ‘희랍어 시간’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만납니다. 남자는 오랫동안 여자를 사랑해왔습니다. 밝음과 어두움만을 구별할 수 있기에 남자는 당연히 여자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자는 남자를 알지만, 말해줄 수 없습니다. 말을 잃었기에.... 둘 사이에는 오로지 오래 전 죽은 언어 , 희랍어 문자만 떠돌아다닙니다.  생生을 타오르는 불꽃이라 한다면, 그 불꽃들 사이로 고통과 집착, 슬픔과 후회가 명멸해 가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끓어오르는 사랑을 보며  전 이제까지 소멸은 끝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소멸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거기에 소멸과 생명의 이야기를 번복하는 신산스러운 우리의 삶에서 유일하게 반짝이는 하나의 명제는 사랑이라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도 하나 덤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는 것만이 존재한다는 통념을 깨고 ‘그 너머’의 것을 보게 해주는 아름다운 사랑이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와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몸짓으로 쓰여 있습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랑은 소멸된 빛과 존재의 결핍이라는 대지大地에서만 자랄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요.  삶에 불어오는 바람이  데시벨을 높이기 전에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소멸안에서 반짝이는 생의 불꽃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죠.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그 꿈이 이렇게 이토록 생생한가.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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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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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의 진실,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사랑이야기,이런 사랑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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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1
고든 리빙스턴 지음, 노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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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리빙스턴과 만난 첫 책은 『두려움은 서둘러 찾아오고 용기는 더디게 힘을 낸다』입니다. 그 책에는  죽음이라는 '생명의 유한성'이 갖는 근원적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고든 리빙스턴이 삶의 혜안이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삶에서 뛰어난 능력자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고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과 슬픔,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것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금은 힘들더라도 주어진 시련을 견뎌내고 나면 고통과 슬픔은 삶을 더 성숙하게 하는 최고의 자양분입니다. 고든 리빙스턴의 이야기를 통해 저는 삶에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터널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이 책은 삶과 마주하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진실, 그것은 너무 끈질겨 바지자락을 물고 매달려 결국은 마주하게 만드는 집요함의 결정체이지요. 고든 리빙스턴은 자신이 버려진 사생아이자, 입양아란 진실을 서른 네 살에 마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아들이 스물 두 살에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였구요. 말하자면,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그야말로 고든 리빙스턴의 삶에 정신차릴 틈도 없이 쏟아져 내린 거죠. 이후 심리 상담가 였던 고든 리빙스턴은 자신의 고통의 순간들을 마주한 후에야 진실의 조각들이 우리의 삶 곳곳에 뿌려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삶의  트레져 헌터 treasure hunter로 변모합니다. 그의 수많은 에세이들이 그 결과물이죠.

 

저희 어머님은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시는데 그것이 하나의 책임이 되어 강박의 기제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 경로당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면, 어머님이 집에만 계실 것이 아니라 경로당에 나오셔서 친구도 사귀시고 여행도 같이 다니시면 더 즐거운 삶을 보내실 수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당신의  생활패턴을 바꾸실 마음이 전혀 없으시더군요.  매일 아파하고 우울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 자식으로서 마음 아프지만, 우울증은 사실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절대 낫지 않는 병입니다. 고든 리빙스턴도 우울증으로 자식을 먼저 보냈지만, 같은 말을 하더군요.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을 이겨내겠다고 하는 ‘스스로의 의지’ 라고요. 그러나, 자신이 많은 상담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우울증이나, 염세주의자들을 각성 시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염세주의자들은 세상을 향해 쌓은 바리게이트를 무너뜨릴 용기나 의지가 전무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고든은 말합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무섭게 채찍질 하라고요.

때로는 불가항력의 거대한 힘이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읽을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행복해지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슬픔 속에 자신을 그냥 놓아두지 마십시오. 절망에 빠져 있는 자신을 무섭게 채찍질하십시오. 희망을 껴안고 그 팔을 결코 풀어주지 마십시오.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고든 리빙스턴의 빛나는 삶의 혜안과 주옥같은 명문장들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삶의 혜안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식견이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품고 그 문장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끔찍한 고통을 마주한 후에 마주할 수 있는 이 진실들이, 굳이 그 고통을 겪지 않고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분들은 이미 행운아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고든 리빙스턴에게 이런 애칭을 붙여주고 싶더라구요, 삶의 트레져 헌터라고요...

 

이 세상에 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때로는 피하고 싶은 진실과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다. 그냥 모른 채 살면 좋겠지만 진실은 너무나 끈질겨서 우리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비상한 용기 없이는

불행의 늪을 건널 수 없다.

누구나 불행을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겨내지 못할 불행도 없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기연민을 이겨낼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나쁜 일에 빠져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좋은 것일수록 그것을 얻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주도권은 무심한 사람이 쥐고 있다.

어떤 인간관계든 깨어질 때는 어느 한쪽이 먼저 마음이 떠나게 마련이며, 그 사람이 오히려 강자가 되어 원상회복을 위한 약자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아프다는 핑계로

책임을 회피한다.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법이다.그래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몸져 눕는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열 번의 변명을 하느니

한 번의 모험을 하는 것이 낫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왜 그 일을 할 수 없는가에 대한 변명거리만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슷로 그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모험심으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여기에서 좋은 것이 영원히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

뛰어난 두뇌, 유머감각, 완벽주의 등 어떤 사람을 돋보이게 해주던 요소들이 그 사람을 불리한 처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인생에 절대적 가치가 없듯이 절대적 장점이란 것도 없다.

불필요한 두려움은 진정한 기쁨을

방해할 뿐이다.

이 사회는 온갖 다양한 것들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전쟁과 테러, 가난, 질병,사업실패... 그것들은 단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한다.

인생의 마지막 의무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외로운 노년을 자식에게 기대려는 것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노년의 상실감을 품위와 의지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용감해질 수 있는 기회다.

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

온갖 부조리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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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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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