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전망 - 민주화, 세계화, 탈안보화
장훈 외 지음 / 인간사랑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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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이제 삼십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작금의 상황은 진보와 보수의 극한대립과 불통이라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거기에 세계화라는 거센 물결과 탈안보화라는 과제가 더해져 마치 거친 바다에 떠올라있는 부표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더우기 최근 여야의 극한대립이 빚어낸 파행정국으로 국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과 현직 국회의원의 내란음모죄는 작금의 정치혼란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극심한 혼란 가운데 읽으면서도 심각함에  미간을 지푸릴 수 밖에 없었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전망》은 그래도 현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시의적절한 책이 아닐까 한다.  지난 대선에서 이른바 ‘민주주의의 상실’을, 그리고 ‘진보의 상실’을 더 극적 표명하는 사태는 통합진보당 내에서 부정경선 시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였다. 진보의 와해를 불러 온 폭력사태의 아수라장속에서 통합진보당은 진보의 정체성을 지키기보다는 자기당파의 이익을 지키는 데 몰두했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투명성과 민주성을 벗어던졌다. <정치가 떠난 자리>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한 원인이 진보세력이 여전히 운동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운동세력이라면 장점이 되었을 수도 있는 구성원 간의 강력한 결속력과 깊고 넓은 감성적인 유대는, 정치세력으로 도약하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운동보다 더 큰 틀이 필요하고 신념이 다른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자기 당파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화, 세계와, 탈안보화라는 새로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론적·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하여 현대 국가가 전통적인 의미의 국가에서 예기치 못하였던 낯선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기존의 전통 민주적 정당성에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시대가 되었다. 예를 들어, 재생 불가 에너지의 사용이나 핵폐기물처리, 대량 살상 무기의 판매 및 유통, 에이즈 문제와 같은 문제들은 초국가적, 지구적 이슈들이다. 이러한 글로벌한 문제들은  한나라의 국민 구성원을 넘어선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들이다. 따라서, 기존의 전통적인 의미의 민주적 정당성은 수정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따라서,  빠른 세계화로 인한 전지구적 인구 인동의 증가로 인해 각 국가마다 문화적 삶의 형태, 종족집단, 종교, 세계관 등에 있어 기하급수적으로 '다양성'이 증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민족은 더 이상 이전처럼 사회통합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구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이념 속에 녹아 있었던 근본 가치들을 다시 불러 낼 수 있게 되었고, 어떻게 다시 이 가치들이 민주주의 틀 속에서 조화롭게 유지될 것인가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1장 한국 민주주의론의 반성과 전망 : 민주주의론의 세 가지 패러독스를 중심으로_장훈

2장 지구화와 민주적 정당성의 위기 : 새로운 민주주의 담론을 위한 이론 탐색_박성우

3장 9·11의 (탈)안보화와 미국 패권 : 대테러전쟁의 구성과 해체_이혜정

4장 세계화 시대 한반도 안보위기 : 북미관계를 중심으로_박인휘

5장 한국 경제개혁의 양면성 : 세계화와 민주화의 정치적 동학_이승주

6장 한국 사회 거버넌스의 위기 : 발전 모델과 정치체제의 부조응성의 측면에서_유현석

7장 글로벌화와 일자리, 그리고 민주주의_강석훈

8장 세계화와 한국 외교정책 거버넌스_유웅조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현재의 위기에 대하여 다방면으로 진단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작동하여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은 참여와 통합이다. 그러나, 여야의 극한대립은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만을 남겨주고 있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인  ‘탈안보화’와 ‘세계화’,‘민주와’의 현주소를 되짚어주는 동시에 실질적인 대안들도 제안하고 있어 우리나라에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초기에 문제의 신호를 포착하면 해결책을 찾기는 쉽다. 하지만 문제가 커지도록 방치해두면 처방이 너무 늦을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현실에 학자들이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어쩌면 우리에게 ‘신호’의 포착을 알려주는 '알림시계' 인지도 ....

 

“참다운 애국주의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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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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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교롭게도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교회들의 잇단 비리사건들을 보면서 한때 교회 다니던 사람으로서 불쾌한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난다. 그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그런 것에 휘둘릴 것이 빤한 무신론자에게도 똑같은 불편함이다.  그래서인지 잠시 쉬고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생활이 어째 불이 타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내 상태는 불신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고 냉담자라는 말도 썩 잘 들어맞지를 않는다. 나는 지금도 내 안에 계신 그분을 느낄 수 있다. 단지, 과거의 맹신과는 다른 무언가가 나와 연결되어져 무한한 우주의 수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우스울까? 어쨌든 과거 지나치게 맹목적인 믿음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신무신론자들처럼 ‘신은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라는 칼날을 들이밀 정도로 강팍하진 않다. 어차피 종교는, 우리 세상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무궁무진하지 않은가?

 

 

 

이 책의 저자의 약력은 이렇다. ‘25년 경력의 탐사 전문 작가’ 참 재미있는 수식어라 생각했는데 작가로서 소개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문장이 유려하다. 작가다운 필체라고 할까. 단어선택과 비유의 표현들이 제법 문학적 깊이와 정취를 느끼게 한다. 게다가 상당히 이론적이다. 문과 스타일의 글쓰기와 이과 스타일의 글쓰기가 잘 조화된 문장들이라 읽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대체적으로 이런 글은 지루하지 않다. ^^) 저자는 모태 신앙으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Christian Science ] -<그리스도교 과학>이라는 뜻. 『과학과 건강』(1875)의 저자 에디(Mary Baker Eddy, 1821~1910)에 의해서 1879년에 창립된 그리스도교의 신앙치료주의의 일파. 그녀에 의하면 정신만이 실재이며 물질은 환상이고, 병은 정신적인 망상이다. 따라서 신앙에 의해서 그 망상을 끊어내면 병은 낫는다. (네이버 지식에서 발췌)- 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뜻밖의 순간에 불쑥 찾아온 영적 체험을 하게 된 이후 크리스천 사이언스교를 떠났다고 한다. 저자는 《신의 흔적을 찾아서》에서 ‘영성의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에 이끌려 ’신‘을 탐사하는 전대미문의 시도에 이르게 되었고 이어 자신과 비슷한 경험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신을 탐구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저자와 신비주의자들, 그들의 경험담에는 서로 다른 영적 체험들을 관통하는 중심 요소, 공통요소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만물과의 일체감,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짐, ‘신’과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정의, 심오한 개인적 변화였다.(이것은 신과 현실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다시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저자는 탐사를 시작한 몇 주 만에 ‘다른 존재’에 대해서 세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장인의 신, 화학자로서의 신, 전기기술자로서의 신으로 구분되어진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들, ‘영적 체험’을 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종교만이 진리라는 배타적인 생각을 버렸다는 공통된 패턴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마치 서로 다른 각도에서 똑같은 신을 목격한 사람들 같았다. 신을 다국적기업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는 여러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각 자회사마다 사장을 두었다.'

 위의  표현이 나는 재미있었다. 쉽게 말하면 각 종교마다 신이 있지만, 부처나 예수나 각 종교의 우두머리의 존재가 하나이고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그 위에, 만물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존재는 유일하다는 것이다. 이 유일한 존재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첨언하면 신비로운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 평균적인 종교인이 주장하는 그런 신보다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나 다른 위대한 과학자들이 묘사한 그런 신과 더 유사해 보인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나는 신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지만, 다시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종교와 과학이 서로 분리가 아닌 화해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과학의 발달은 더 이상 신비와 이상주의에 편승한 종교보다는 보다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종교로서의 새 패러다임의 요구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기에 과거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보다는 과학과 이성이 잘 어우러진 종교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서로의 편견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과학과 종교가 우리의 삶에서 가지는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 서로 고민하는 시대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게 하는 저자의 과학적 탐구와 삶의 통찰이 잘 어우러진 '신'의 이야기였다.

 

‘신’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의 수학을 통해 내려진 결론일지 모른다. 행성으로 하여금 궤도를 돌게 하고 우리가 숨 쉬는데 적합한 분자들로 공기를 구성한, 무한하고 지적인 존재. 이 지적인 존재는 편협한 근본주의자들의 상상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과학적 두뇌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러한 신이 내게 설득력 있는 신이자 새로운 과학실험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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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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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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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미술관 산책 - 파리, 런던, 뉴욕을 잇는 최고의 예술 여행 미술관 산책 시리즈
최경화 지음 / 시공아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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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 이번엔 스페인이다. 여러 미술 작품과 관련한 책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굳이 가보지 않아도 책을 통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하면 빨강, 빨강하면 정열, 정열하면 백만볼트의 마성이 흐르는 버커니어 해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만 같은 곳,   물론 나는 스페인을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아름답다고 , 가지 못하였기에 더 간절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축구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이 책 《스페인 미술관 산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란 것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미술관도 많지만 불세출의 화가 피카소를 배출한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페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들은 피카소처럼  매우 친숙하고  한번쯤은 보았던 유명한 예술작품들이었다. 

 

 

 

 

저자는 미술사학을 전공하였고 스페인 어학연수와 산티아고 순례길과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 스페인에 매료되어 미술관에서 한국 관광객을 위한 전문 가이드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유럽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에는 단일 미술관 중에서 보스의 대작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며 스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던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다수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이유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으로 사물을 그리던 당시 사물을 보는 방식대로 표현하였기 때문인데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방식은 베네치아의 화가뿐 아니라 엘그레코, 고야 그리고 인상주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엘그레코와 고야, 디에고 벨라스케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티센 보르네미사(Thyssen-Bornemisza) 미술관은 티센 보르네미사 귀족이 수집한 미술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하여 적정 장소를 찾던 중, 미국의 게티 재단, 영국, 독일 , 스페인 정부가 유치경쟁을 벌였는데 결국 스페인과 계약하게 되었다. 이때 티센의 계약 조건은 ‘티센보르네미사 컬렉션’이름을 그대로 유지할 것, 작품을 한곳에 모아 놓을 것, 작품을 되팔지 말 것, 늘 대중이 다가오기 쉽게 할 것, 이었다고 한다.  귀족가문의 소장품들이라 그런지 조금은 생소한 현대 미술 화가들의 그림들이 많다.( 두초 디부오닌세냐, 얀 반 에이크,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한스 홀바인, 빌엠 칼프, 카날레토,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와 빈센트 반 고흐의 [레 베스노 마을] , 앙드레 드랭 등이 있다.)

 

프라도,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과 함께 마드리드의 ‘빅3’로 불리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묶어 ‘파세오 델 아르테’라는 카드를 사면 각각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레이나 소피아에는 이름이 꽤 알려진 천재화가들의 그림들이 많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마드리안, 로이 릭턴스타인의 붓자루 (가장 스페인다운 색감을 느낄 수 있다, 빨강과 검정의 조합^^) 이외에 미술관들과 더불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함께 하는 건축물 투어도 매우 흥미로운 장이다. 관광명소 사진을 보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건축물들과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며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이 다시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스페인은 역시 정열의 도시인 만큼 매혹적인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나라이다. 미술품과 관련하여 화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미술사의 흐름도 놓치지 않고 친절한 설명을 깃들인 저자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을 읽으며 눈과 마음이 절로 즐거워졌다. 스페인과 함께 하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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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1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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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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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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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가족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사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기분이 든다. 존속 살인 사건과 영아 살해가 잊을 만하면 전파를 타는 것을 보며 가족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오죽하면,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살해되면 1차 용의자는 무조건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정의가 내려지겠는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가족’은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가장 위험한 異物(이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일본 작가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름을 알고 있는 몇몇의 작가중에 기억되는 미나코 가나에는 고백을 통해 만나보았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겼던 《고백》에 이어 읽게 된 《모성》의 첫 문장은 ‘저는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이 무슨 욕이될까 싶었지만, 이 고백은 어쩌면 처절한 후회와 자식에 대한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 금지옥엽의 딸이 자살을 시도했으니까...... 스물 네 살, 회화 교실에서 릴케의 시를 좋아했던 다도로코를 만나게 되면서 결혼하기까지 그저 보통이었던 삶의 무늬를 써가던 ‘엄마’의 삶은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가 손녀를 구하기 위해 불이 난 곳에서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면서 조금씩 이지러지기 시작한다. 엄마와 행복하게 살던 고지대에 세운 꿈의 집은 산사태로 인해 사라졌고 ‘엄마’(할머니)의 생명을 대신하여 남게 된 '딸의 생명'은  엄마에게 목구멍에 걸린 생선 잔가시처럼 남겨지게 되고, 형체가 없던 잔가시는 엄마의 가슴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서서히 곪아 가고 있었다. 이후, 시어머니와 살게 된 엄마의 가족. 소중한 피와 살을 나눈 친엄마의 죽음이후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던 엄마는 시어머니와 딸, 남편을 모두 자신과는 다른 타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자신을 점점 고립시킨다. 소설은 엄마와 딸의 회상과 고백을 교차하여 같은 사건의 다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곳에 진실이 있다.

 

친엄마와 맞바꾼 딸의 생명. 그것이 잔가시로 남겨져 엄마를 괴롭게 한다는 것이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시월드의 세상에서 혼자 마음 졸여가면서 딸을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지나쳐 딸과 높은 벽을 쌓은  엄마와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의 모습에서 母性(모성)이란 이름으로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선은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치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사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자식이기에 엄마와 딸의 교차된 생각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양쪽 모두에게 같지만 다른 묘한 감정의 차이에 공감을 하면서도 서로 진실의  이면에 다가가지 못하고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며 좁혀지지 않는  두 모녀사이에  안타까움이 든다. 나의  엄마는 항상 어렸을 때의 ‘나’를 기억하시고는 여전히 한참 어린 아이처럼 대하시곤 하는데 실제로  엄마가 되면 나역시 엄마처럼 무엇이든지 척척 잘할 줄 알았다. 허나, 엄마처럼 자식에게 희생하고 인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을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크기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커져간다.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시기도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인지는 몰라도 현재의 가족에게는 새로운 이해로서의 탈출구가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인이 코와 입매가 닮은 사람들이 된장 한 뚝배기에 반찬 한두 가지, 밥 한공기로도 풍족함을 느끼는 것이 가족이라 했듯이 가족의 사랑은 함께 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소설의 화자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하는 , 소통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비극은 피했을 텐데 하는 안쓰러움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남겨진다.  점점 팍팍해지는 가족의 현주소를 마주한  기분에 씁쓸함이 많이 남지만, 이 책으로 인해 가족관계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다. 나역시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의무만을 강요하며 그것을 모성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반성과 고민을 남긴 소설이다.

 

“모성은 인간이라면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이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모성애가 없다고 지탄받으면 그 엄마는 학습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하는 착각에 빠져서, 자기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틀림없이 모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말로 위장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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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 중국근대사 인간사랑 중국사 1
호승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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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동양3국의 학계 내에서 근대의 시점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대영제국과 처음으로 맞붙은 1840년의 제1차 아편전쟁, 일본은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1853년의 흑선黑船 내항, 한국은 일본에 의해 강압적으로 맺게 된 1876년의 강화도조약을 근대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나 동아3국을 휩쓴 서구 열강의 충격에 시간적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 대략 역사적 흐름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인물로 읽는 중국 현대사 , 첫 머리에서-

 

 

한중일 아시아의 근대사는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시작된다.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열강‘의 침략에 아무런 보호막이 없었다.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이라면 서구 열강의 침략에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폐쇄 된 사회성을 지닌 봉건주의 국가였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근대는 침략의 소용돌이 앞에서 가장 굴곡진 역사를 쓰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미래 역사를 결정짓게 되는 가장 중요한 시대라 할 수 있다. 똑같이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지만, 서로 다른 역사를 쓰게 되는 결정적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 봉건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초입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요동치던 시대의 ’중국‘은 중국공산당 이념의 사상적 토대를 만들고 있던 시대라 명명할 수 있는 시기인 셈이다.  이 책 《중국 근대사》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중국공산당 이념의 원조격인 호승의 저서로 중국 공산당의 사상적 토대가 된 ’인민‘ 또는 ’서발턴‘인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중국 근대사에 일어난 ‘아래로부터의 혁명’- 노동 혁명의 시기를 세 차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차 혁명 고조기 1854~1864년의 태평천국 농민혁명과 두 차례의 아편전쟁

19세기 이전, 중국인들은 서방 자본주의 각국이 세계 각처에서 벌이고 있는 행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모든 나라보다 우월한 ‘天朝(천조)’ 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시기,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열강의 침략에 차례로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인민대중들 사이에는 반침략 정서가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고 이런 정서는 아편전쟁 이후 대중적 반영투쟁으로 폭발하게 된다. 이 투쟁(태평천국 농민혁명)은 내외의 계급관계가 변화하고 발전하게 되며 빈농과 빈곤한 중농이 주도권을 장악한 혁명이었다. 이때의 혁명은 이상사회와 이상국가의 밑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을 해준다. 이들은 ‘최저 생활에 필요한 양 이외의 식량과 재산은 모두 ‘국고’ 에 귀속시킨다는 구상‘을 하고 있었고 이것은 사실상 실행불가능한 사회의 이념이었지만, 봉건 사회의 낡은 이념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태평천국 농민 혁명은 외국 자본주의 침략자들에게 중국의 광대한 노동인민들이 품고 있던 헤아릴 수 없는 강대한 혁명역량을 보여주었고 중국의 식민지화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혁명적 농민대중은 봉건주의 착취제도와 통치제도를 무너뜨릴 수 없었지만 봉건주의 통치자들도 그들이 지배하던 옛 통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없었지만 봉건주의 통치자들도 그들이 지배하던 옛 통치 질서를 회복할 수 없었다. 농민혁명으로부터 심각한 타격을 받은 봉건주의의 기초 위에 자본주의적 요소는 불가항력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2차 혁명 고조기 1864~1894 (중일전쟁 후의 몇 년이며, 무술유신운동과 의화단 운동)

서방 자본주의 침략세력과 연합하여 농민대중의 저항을 진압하는 정책이 시작된다. 대외 관계의 모든 일, 서양에서 들어온 사물과 관련된 모든 일을 ‘양무’라 하며 지배계급 사이에서 일어난 ‘양무운동’은 노동 혁명가들의 반감을 더욱 부추기면서 인민들의 반봉건 참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봉건경제가 외국 자본주의 세력 때문에 나날이 파괴되어 가는 상황에서 인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되어 갔고 저항세력들은 대를 이어 투쟁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가한 청왕조의 가혹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점점 확대되어 반침략 투쟁에 참가하자 혁명 운동은 위세를 떨쳤고 이 시기의 투쟁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정치운동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 시기의 혁명은 ‘지주계급이 이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드러난 부정적인 영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아울러 외국 침략자들에 적대적인 일체의 사회 역량을 어떻게 동원하고 조직할 것인지, 중화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는 투쟁과 중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쟁취하려는 투쟁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였다. 중국의 봉건 통치자와 외국 제국주의자, 중국의 광대한 인민 사이에 팽팽한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을 때 등장하게 된 대중의 투쟁을 두려워하고 반대했던 자산계급 개량주의자들과 유민을 주요 구성분자로 하는 ’민족 자산 계급‘의 등장은 혁명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민족자산계급

제국주의보다는 봉건주의와 더 돈독한 관계이며 주요 구성원은 봉건 통치계급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왔기 때문에 정치·경제·사상 면에서 짙은 봉건주의적 흔적을 지니고 있고 봉건경제 봉건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민족자본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산관계로서 봉건적 생산관계, 봉건적 통치 질서와는 대립하면서 한편으로는 낡은 생산과계와 낡은 통치 질서의 힘을 빌려 자신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했다. 새로운 사회계급을 형성하면서 원래의 계급적 신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모택동은 ‘민족자산계급은 지주계급처럼 봉건성이 강하지 않고 매판계급처럼 매판성이 강하지도 않다. 민족자산계급 내부에는 외국 자본주의와 본국 토지와 비교적 관계가 많은 일부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민족자산계급의 우익이다.’

 

 

3차 혁명 고조기 (1905년의 동맹회 설립에서 1911~1912년의 신해혁명까지의 시기)

3차 혁명의 특징은 ‘중국 민족이 강한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국민독립의 씨앗을 부린 공적’을 확인하는 과정의 혁명이다. 장기간의 봉건 시대에서 수많은 농민혁명을 경험해 온 자산계급 입헌파는 대다수가 지주계급에서 변신한 인물들로 지주계급의 정치경험을 계승하는 동시에 서방 자산계급에게 배워 온 몇몇 수법과 결합하여 혁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들은 신해혁명 중에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기존의 풋내기 같았던 자산계급이 아닌, 구시대 사회세력과 함께 신해혁명과 5.4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5·4 운동이 남겨주는 혁명의 특징은 기존 자산계급 개인주의의 관점을 견지하던 사람들이 운동이 고조되어감에 따라 투쟁의 대열에서 물러갔고 마르크스주의 사상이념을 추앙하던 사람들이 강인하게 투쟁을 주도해 나간 점이다. 5·4 운동이전에는 ‘신문화운동’이 내건 깃발은 자산계급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였으나, 5·4 운동을 거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소개, 연구, 선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가게 되어 가면서 신문화운동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운동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만들어진 단체는 사회주의,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으며 2년 후 중국 공산당이 정식으로 창립된다.

 

5·4 운동은 자산계급이 영도라는 구 민주주의 혁명의 종결과 무산계급이 영도하는 신민주주의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부터 중국 근대사는 새로운 장을 열어가게 된다.

 

사실 이렇게 중국근대사를 다룬 책중에서도 '인민'에 관한, '계급역량의 배치와 관계'순으로 서술된 역사서는 처음 읽는다. 서술방법도 독특하였지만, 아래로부터의 혁명사라라는 점이 역사서로는 대단한 시도가 아닐까 한다. 책의 중간중간에 기존의 역사서와 다른 평이 실려 있어, 중국내 사학자들과의 평가가 엇갈리는 점들은 짧은 식견으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부분이었고 (이후 다른 관점의 중국근대사를 읽어보아야 겠다.)  중국 공산당의 창립이 있기까지의 인민의 역사흐름이라는 그림을 그리기에는 무척 탁월한 책이었다. 허나, 중간중간 마르크스와 모택동의 인용문구를 통해서  저자의 역사 시각이 마르크스주의 사관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점과  중국공산당의 사상적이념자라는 점은 책을 읽으면서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서양속담에 커피는 누구나 쏟을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치우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서구 열강의 침략은 그야말로 '쏟아진 커피'와 같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치우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는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역사이다.  같은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으나 중국은 현재 세계를 제패하느냐 마느냐의 여유로운 승자로서의 새역사를 쓰고 있다. 승자의 역사를 쓰고 있는 동력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인민'이라는 사실은 자본이 주인이 된 작금의  다른 나라와는 많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역사의 근원적인 힘은 아래로부터 태동한다.  그것은 오랜 역사를 거쳐 수많은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이미 커피는 쏟아졌다. 그것을 어떻게 치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사《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우리에게 쏟아진 커피를 현명하게 치우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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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9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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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30 1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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