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와 함께한 인생여행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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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의 육체로 상징되는 거품, 바로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될 때 시간은 결코 우리를 절멸시키지 못하리니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불임이니 시간에 의해 절멸될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게 되고, 그 사랑을 이어감으로써 우리는 시간에 대항할 수 있게 된다. 육체가 죽어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남는 존재들이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에서 -

 

 

판도라 상자에서 튀어나온 세상의 모든 재앙중의 가장 먼저는 ‘시간’이다. 생각할수록 의아함이 드는 부분이다. 인간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만든 판도라 상자에서 시간이 먼저라는 사실은 어쩌면 그만큼 시간이란 가장 잊기 쉬우면서도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닐까. 사실 나 역시도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그다지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요즘처럼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보면 우리는 점점 더 시간에 예속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 《도르와 함께 한 인생여행》에서 도르는 타임키퍼이다. 시간여행자라는 테마는 문학에서 매우 친숙한 소재이다. 그러나, 기존의 시간여행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 도르는 신의 영역인 ‘시간’을 인간의 삶에 가져온 형벌의 ‘타임키퍼’라는 점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추방된 이브처럼 인류 최초로 시간을 측정하였다는 죄로 인류 최초로 ‘시간의 아버지’가 된 도르. 소설에서는 신의 영역 즉 , 인간이 닿지 못하는 것을 욕망한 두 가지 산물이 있다. 첫째는 바벨탑이고 두 번째는 시간이다. 바벨탑은 도르의 어렸을 적 친구 ‘님’이 신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탑을 쌓는다. 고대에 시간은 '신의 영역‘이었으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인류 최초로 시간을 측정할 줄 알았고 분석을 할 줄 알았던 도르는 사랑하는 아내 앨리가 병에 걸려 죽음이 눈앞에 찾아오자, 시간을 멈추게 하기 위하여 가장 높은 탑인 바벨탑에 오른다. 바벨탑에 오른 순간에  인간들은 파멸하고 도르는 시간의 동굴에 봉인 될 줄은 모른채... 

 

 

 

 

“신이 사람의 수명을 정해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도록.”

 

최초로 시간을 센 형벌로 동굴에서 6천년을 보내며 도르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살았다. 나이도 먹지 않고 만나는 이도 없이 영혼이 메말라가는 가운데 기억하는 단 하나의 얼굴은 오로지 사랑하는 앨리였다. 동굴 벽에 새긴 앨리의 얼굴을 기억하며 천장과 바닥이 눈물로 이어지게 되었을 때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으로 도르는 현대로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서 부와 권력을 가졌지만 병에 걸려 죽을 운명에 처한 갑부 빅토르와 부모의 이혼이후 불행한 시간들을 보내며 남자 친구에게 버림 받은 뒤 자살을 시도한 세라를 만나게 된다.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 시간에 의해서 절멸 될 것이다.‘ 시간의 신이 남긴 말이다. 도르가 앨리의 죽음을 멈추고 싶어 하는 것처럼 빅토르 역시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영원불멸의 삶에 천착한다. 고등학교 3학년인 세라의 희망 없는 삶에서도 현재의 시간은 덧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이들에게 시간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현재라는 시간의 모습에서 도르가 떠난 뒤 남겨진 앨리의 고통의 모습이나 빅토르가 불멸을 위해 냉동을 선택한 후 남겨진 그레이스의 슬픔, 세라가 떠난 후의 엄마의 아픔들은 이들에게 현재 삶이라는 시간이 주는 의미를 깨닫기에는 충분하다. 시간이 ’잃어버린 것을 갈망하게 되며 현재 가진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판도라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류의 첫 재앙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게 주어진 현재라는 삶의 시간들에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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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아포리아 - 뻔한 도덕을 이기는 사유의 정거장
사토 야스쿠니 & 미조구치 고헤이 엮음, 김일방.이승연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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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워낙 복잡다단해지고 있기에 요즘 들어서는 참된 도덕의 가치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오래 전 일이지만, 시골길을 운전하다보면 종종 짐승들이 내려와 차에 치이곤 한다. 그때 남편은 짐승을 피하려다가는 오히려 큰 사고가 일어나니 차라리 짐승을 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때 느꼈던 도덕적 딜레마는 이후로 나를 괴롭히곤 하였다. 우리의 삶에서 ‘도덕’이란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가가기에는 너무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저자의 서문에 나와있는 부분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도덕이란 테마를 가지고 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면 '엉뚱한 답변‘만 듣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공부만 한 윤리학자가 윤리학적으로 맞딱드리는 생생한 삶의 문제들에 대면하는 일들이 사실 일반인들보다 적기 때문이다. 윤리학자들은  ’참 인생의 문제에 대한 대처 측면에 관해선 어린애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세상통념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매우 동감하며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솔직히 이 책에 대해서도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자는 학문으로서의 윤리학이라는 공통의 틀을 지키면서, 그 위에 다양한 사상, 다양한 입장의 내용을 담고자 이 책을 기획하였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우선 기본 테제와 안티테제로 논제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데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이 관용의 아포리아다.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의 기본 테제와 안티테제인 관용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관용을 베풀 필요는 없는가를 살펴보면 관용을 베푸는 것은 도덕적이고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을 우리는 대부분 ‘악’하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관용이라는 아포리아는 오늘날 사회에서 도덕이나 정의가 복합화 되어 있고, 사회의 구조를 해부하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사회 이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윤리학의 길이라는 것을 말한다.

 

‘도덕’이란 선을 지향하는 양심의 내적 명령이고, 법이란 불법적 행위를 금하는 주권자의 외적 명령이다. 이런 도덕과 법의 일치에 대하여 항상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어디선가 일반화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일단 판단을 거듭해가는 것과 규범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따르면서 계속 대화하는 것이 법과 도덕이라는  포럼의 첫 무대 설정을 삼는다. 이어 영리 행위는 악인가?와  윤리적 상황에서 하나의 중요한 논점이 되는 책임의 아포리아에 대해서도 인류라는 공공성 안에서의 도덕적 의미를 논의한다. 이어 생명과 도덕적 행위에 대한 보상,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등 좋은 삶이 주고 있는 아포리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낸다.  윤리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자기실현과 헌신이란 자신의 생명과 다른 모든 생명에게 똑같은 경외심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각자가 그러한 차원에 도달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며 거기에도 또한 각각의 그때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으로 모럴 아포리아들에 대한 19가지의 테제와 19명의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최근 읽은 니체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은 호사스러운 착각이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 자신 스스로를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역시도 도덕적일 수 없다. 왜? 이제 현대의 도덕은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커너먼이 말하듯이 인간의 비이성적인,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그 사람들에게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모럴 아포리아》를 통해 도덕이라는 지평을 넓혀 사유해보는 것도 새로운 윤리학의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삶에서 항상 마주하는 도덕적 양심에 대해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절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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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 발칙하고 에로틱한 그리스 로마 신화편 말과 글이 풍성해지는 어원 이야기 1
권표 지음 / 돋을새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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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보다 더 진실한 것이 무어라 생각하나? 그것은 바로 전설이라네. 전설은 덧없는 진실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하지.”

 

<문명의 배꼽 그리스>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키가 말하는 그리스 신화란  덧없는 인간의 생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인지 때론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미덕과 삶에 대한 통찰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그리스 신화를 통해 예술과 문학의 기원을 찾아내기도 한다. 또한 그리스는 인문학의 시초이자 언어의 보고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그리스 신화를 통해 언어의 기원을 찾는 색다른 시도를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 신화는 영어권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으로 배운다. 영어의 어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의 습득은 필수이다. 책을 읽다보니 그리스 신화를 모르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대부분이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의 특성에서 파생된 언어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즐겁게 읽은 책이다.

 

 

 

예를 들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새로운 문명의 기원'을 뜻하고 불행의 씨앗을 의미하는 판도라상자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표현들이다.  계속 써도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뜻하는 코르누코피아의 '풍요의 뿔'이라든지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아틀라스의 어깨',  불굴의 군인 정신을 뜻하는 '마샬 정신',  98개의 눈을 감을 뿐 나머지 2개는 늘 뜨고 있어 '감시가 엄격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르고스의 눈', 머리 한 개가 떨어지면 두개가 새로 생기는 자르고 잘라도 끝이 없는 '히드라의 머리' 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계속해서 생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자웅동체 'hermaphrodite'라는 단어가 헤르메스에서 파생된 어원이며, 헤르메스의 로마식 이름 메르쿠리우스에서 비롯된 'mercurial' '활달하다', '변덕스럽다', 의 어원이 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헤르메스는 로마인들이 가장 사랑한 영웅이자, 능력자로 헤르메스에게서 파생된 언어도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부분은 섹스 심벌 아프로디테에서 파생된 언어들이었는데 여성의 치명적 매력을 뜻하는 '아프로디테의 허리띠'라든지 최음제 또한 아프로디테의 어원으로 'aphrodisiac' 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에로스에서 파생된 언어인 육체적인 사랑을 뜻하는  '에로티시즘'이라든지 성적 흥분을 위해 만든 그림이나 책을 뜻하는 '에로티카', 전쟁의 신 아테나의 로마식 표기인 '미네르바의 이야기' 등은 신화의 이야기를 사회와 접목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게다가 회사명이나 단체명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 이지스(egis)는 제우스의 방패인 아이기스에서 파생된 언어로 이 방패는 그 어떤 창과 칼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메두사의 머리를 이용해 공격하는 자를 돌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이기도 하다. 미사일 탑재 순양함인 '이지스 함' 은 이렇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말하는 '니오베의 슬픔'이라든지  열광적이거나 '질탕한', '제 맘대로의' 뜻을 나타내는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표현과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뜻의 '헤라클레스의 임무'라는 관용구등은 알아두면 유익한 표현들이다.

 

이 책은 어원을 이해하는 데에도 무척 유익하지만, 두 번째의 재미는 그리스 신화의 재미있는 설명들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두서없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부분적인 신화의 그림만 알고 있다면 그리스 신화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오르페우스의 애닲은 사랑이야기와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이야기, 파이드라에서 파생되어진 파이드라 콤플렉스와 헬레니즘 문화이야기와 접목된 영화이야기등의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흥미를 제공해주고 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으면서 재미있게 기억된 부분은 그리스에 직접 가본 저자 박경철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실제 사용했다는 숙박지와 사용했던 배를 묶었다던 쇠막대가 실존해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쩌면 니코스 카잔차스키가 말하듯 인간의 덧없는 생에 부여된 영원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군다나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의 어원이 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파생되었다면 더욱더 신화가 진리보다 더 진실하다는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표현은 피그말리온의 효과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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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니체 땐 시리즈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김부용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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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에 모대학이 철학과를 폐지한다고 하여 학생들과 논란을 빚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이라는 곳이 이제는 교육이 목적이 아닌, 기업적 영리추구가 목적이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이야기다. 철학은 우리 삶의 珍景진경을 깨닫게 해주는 학문이다. 그러나, 물질의 가치가 정신의 가치를 넘어서게 되면서 이미 삶에서 아름다움이나 가치를 되새기기에는 세상은 지나치게 핑핑 돌아가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 쇼크》에서 가족 구조의 빠른 해체와 매스미디어는 탈대량화,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다변화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였다. 변화의 과도기사이에 낀 우리 세대는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인 허무와 우울, 공허와 회의가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는 《우울할 땐 니체》에서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로 읽게 된 책이다. 저자 발타자르 토마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질병(우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니체의 위대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경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대한 점검이 먼저이다. 이 책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과 몇 가지의 이론을 숙고해보는 식의 철학을 권고한다. 진단과 이해, 적용과  내다보기의  네 단계 과정을 통해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에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목적인 철학서이다. 

 

 

삶의 목적은 세계와 그 안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총체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망 없이는 규정할 수 없다.

 

삶은 추와 같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직시해야 하고 삶에 의미가 없는 것을 그럭저럭 견뎌야 하며 삶에서 ‘무의미함’을 감추기 위해 종교나 과학뒤로 숨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며  회의주의자처럼 생각하고, ‘노동을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길’이라며 두려움을 갖는 것에 대해 ‘잠시라도 삶에 해를 끼치는 것은 금지하거나 단념시키라’고 한다. 뿐만아니라, 삶에서 항상 맞딱뜨리는 도덕적 양심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지길 권고하고 있다. 니체는 진정한 도덕은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고유한 도덕적 의무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의 특권으로 여겼다. 반대로 타자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우리가 현재 소유하면서 다른 사람과 구별해주는 독특한 재능으로 보고 있다. 또한 도덕(선)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도덕적 미덕은 호사스러운 착각일 뿐이라고 한다. 가장 근거 없고 정예화된 정교한 이기주의의 발로로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다. 타인은 여기서 그리 쉽게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미래의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과 일치하기를 원하는 이런 나쁜 취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은 이웃의 입에 회자될 때 더 이상 선이 아니다. 어떻게 ’공동선‘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자체 모순을 범하고 있다. 공동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가치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또한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아니오를 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창조하면서 긍정할 수 있기 전에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낡은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자유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 안에 살고 싶고 자신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하고 부정해야 한다.’ 강한부정은 강한긍정이라는 말처럼 내면에 있는 무지와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이해함으로써 긍정 안에서 진화하는 부정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긍정의 가능성과 의심스러운 삶의 관점이 확고해지는 부식토가 되어야한다고 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의 목적 중 하나는 허무주의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 우리가 이론상으로 삶을 거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불가피한 결과가 허무주의를 부정하는 효과적인 방식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니체는 모든 일에 성마르게 반응하지 말며 사물을 세부적으로 상세히 관찰하는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니체의 허무주의와 영원회귀 사상은 세상에서 우리가 떠안고 있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고 있음을 말한다. 니체는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 초인을 열망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으로의 도피, 현실에 대한 부정의 의미가 아닌, 인간은 자신을 더욱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존재 즉, 자신의 책임의 짐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로소 초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를 괴롭히고 있던  존재들 가령, 종교나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집단주의, 도덕적 양심, 행복에 대한 환상,  우리를 얽매이고 있던 관념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의 짐을 내려놓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테리 이글턴이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는 말처럼 삶의 무의미함이 곧 삶의 珍景진경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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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이상적인 인간형인 초인은 자신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고양하고 긍정하는 어린 아이같은 인간이죠. 쇼펜하우어의 맹목적인 의지를 뛰어넘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극복의 초월적 의지를 힘에의 의지라고 하지요. 아뭏든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니체의 긍정의 긍정의 철학이 좋은 텍스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로스트 인 서울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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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연상케 한다. 현대에 넘쳐나고 있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우울과 공허의 은유가 넘쳐나는 책이다.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파리를 매춘부라 묘사하였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사회라 표현한 것과 같은 표현이다. 성적으로 몸을 판다는 의미가 아닌, 스스로의 노동력이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의 은유인 셈이다. 책에 실려 있는 총 7편의 단편이 주는 은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속성인 ‘보편적인 매춘’을 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암울한 자화상이다.

 

 

<로스트 인 서울>은 그렉 안나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대생의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추락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한국에서 성공의 바탕은 첫째도 외모, 둘째도 외모이다. 그렉안나의 외모는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그러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국 남성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린다. 외국인이었던 그녀는 케이블 방송업체를 운영하는 강이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강과의 동거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아파트, 수입자동차, 높은 출연료가 당연한 듯 보장되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삶은 강의 집착과 폭행으로 얼룩지게 되고 그 모든 것을 그렉 안나의 집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서 ‘비밀의 방’을 만들어 준 ‘나’가 엿보게 된다. 그렉 안나를 엿 보게 되면서 사랑이라 생각했던 ‘나’는 ‘사랑은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확언한다. ‘나’의 사랑은 강과 그렉안나의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모른 채 ‘나’는 점점 ‘안나’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그렉안나가 한국인 사회를 폄하하는 발언을 방송 중에 하게 되면서부터 안나의 인기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결국 강에게서 이별 통보의 문자를 받은 그렉 안나를 두고 ‘나’는 그렉 안나와의 사랑을 ‘내 사랑이 과장되었던 것은 아닌지’하는 비겁함으로 무장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주인공은 아내와 여행을 간 곳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삶의 기억을 기억한다. 형의 죽음에 대한 기억, 환상인지 상상인지 모를 기억이 뒤엉켜 혼미함을 남긴다. 도망다니던 형과 형의 친구 홍아저씨, 이어 남겨진 홍아저씨의 여자와의 만남까지도, 단지.

 

 

이 거리에 가득한 아무것도 없는 공기를 봐. 무언가 숨기고 무언가를 드러내고 있어. 우리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것을 숨기고 있을 거야. 기억 속의 내가 유령인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유령인지 당신은 혹시 알아?

 

 

<탈옥> 감옥에서 주인공이 탈옥을 하기 위해 편도선을 떼내고 위궤양으로 위를 반쯤 떼어내고 맹장을 떼어냈음에도 탈옥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도망이다. 나의 내장은 나를 위해서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다.’ 빈 내장 안에는 주식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으로 가득 채운다. 다시 한번의 내장을 비워내고 타게 된 앰뷸런스 안에서 그는 과연 탈옥에 성공하였을까? <그 남자의 손목시계>의 주인공도 모호함이 가득하다. 아버지를 ‘그자’라고 할 정도로 가족 연대감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해체 된 가족의 모습. 늘 반듯하고 예의바른, 시계를 보는 모습의 ‘그자’의 어머니를 향한 학대와 폭행을 보며 ‘그자’가 애지중지하는 시계를 때려 부수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하며 성장한 한 남자가 성장하고 나서는 시계를 죽이는 것이 아닌 ‘그자’를 죽이는 실제적인 목표를 가지게 되는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도시에서 느끼는 원천적인 두려움이 바로 가정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누군가는 죽을 것이고 죽은 누군가는 이처럼 가벼운 영혼이 되어 퐁퐁 날아다닐 것이다.’

 

 

<후쿠오카 스토리>는 8년을 사랑했던 남녀, 두 쌍의 연인이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요크 여행을 떠나 좌초될 위기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커플들을 통해 피상적인 사랑이 주는 파국을 보여주고 있다. <로라, 네 이름은 미조> 영국에 시집간 미조가 로라로 살기 위한 이야기. 그녀의 삶은 “서울에서 스코틀랜드로, 세계를 돌아 다시 영국으로, 파리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다시 서울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녀의 위장에는 영국 왕실의 전용 찾잔인 유리조각과 영국 버버리 금장 단추만 남아있었다.

 

 

7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다. 이들의 욕망과 불안의 원천적인 것은 바로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도시에서의 사랑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며, 가족과의 관계 또한 ‘친부 살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 도덕적인 양심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보다도 ‘가문'이나, ’왕실의 찾잔‘이 더욱 소중한 영국 문화에 물들기 위해 깨진 왕실 찾잔 유리조각을 삼키는 한국인’미조‘의 행위도 자본주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스스로 병들어가고 있는 현대 문명속의 현대인들의 모습과 진배없다. 이 소설이 특이한 것은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리지만, 현대인들의 아픔이나 상처를 전혀 치유하려 들지 않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과정을 따라감에도 작가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비정함의 속살을 과감히 벗기고 있을 뿐 상처를 감싸거나 섣불리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에서 “나는 삶이다. 견디기 힘든 , 냉혹한 삶!” 이라고 외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잔혹성을 마주하란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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