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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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놀라우리만치 짧다. 이제 기억 속에서 삶은 내게 다름과 같은 정도로 응축된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삶이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건 하나 없이 행복하게 흘러간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나는 어떻게 한 젊은이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거라는 염려 없이 말을 타고 이웃마을로 가겠노라 결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삶은 왜 이렇게 끔찍하단 말인가? 삶이란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수프와 같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그 수프를 마셔야 한다.’                                                                                                              -플로베르의 앵무새 중에서-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픈 짐승 중에서-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대 내면이 아픔으로 꽉 차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선 사람이여!'                                                                                                                  -시인 이시영의 <비밀>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글들이다. 이 글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이 글에서 삶의 얼굴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삶의 이중성,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라는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면에 아픔이 가득 찼을 때 비로소 바람을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기듯이 삶의 맨얼굴의 이름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를 읽으면서 역시나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비혼모,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게이, 이주자, 이민자, 장애인 등 세상에서 차별이라는 잣대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했다. 차별이라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나는 다른 관점에서 차별을 말해주고 싶다.

 

비혼모 승민의 이야기에서도 여전히 비혼모에 대한 인식의 벽이 높으며 사회적 보장제도도 턱없이 낮다는 것은 인정한다.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트랜스젠더 혜숙의 지난한 삶을 마주하는 기분은 더욱 그렇다. 부모에게도 버림 받고 사회에서도 언제나 아웃사이더로 주변을 맴돌다가 감옥에서 자살시도까지 하게 되는 삶의 모습은 연민보다 더한 동정이 가슴에 남는다. 이주자 한나 엄마 역시 한국인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한국 남자와 결혼을 감행하지만, 베트남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학대를 견뎌가며 어린 한나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여느 한국어머니보다 강하다. 그러나, 이주민 인권을 위한 보호는 미약하기만 한 현실이다. 게이인 정현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정현은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희망적인, 소수자였다.

‘문제는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결핍만이 사회적 낙인과 연관되고 그래서 차별과 배제가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이주민 타파의 이야기는 더욱 가슴 아픈 우리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과 차별에 따른 빈곤의 생활을 전전하다가 쓸쓸히 죽어가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이숙의 삶에서도 차별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중 가장 밝고 명랑한 캐릭터의 민우는 소수자 중에서 정말 보기 힘든 캐릭터인지도 모르겠다. 시종일관 수다스러운 에이즈환자라니, 게다가 민우는 차별이라는 시선에 두려움이나 자격지심조차 보이지 않아 너무 평범해 보이기 까지 했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이라는 기준이 매우 모호함을 알았다. 솔직히 나는 이들이 말하는 ‘차별’이라고 느끼는 부분들을 일종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와 같은 것이라 여겼다. 이들의 삶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과 매우 같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삶이 힘들지 않을까? 오죽하면 줄리언 반스는 ‘삶을 머리카락이 둥둥 떠다니는 스프라고’ 했겠는가 말이다. 소위 일반인 범주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삶의 무게를 지고 산다. 다만, 어떤 특정한 결핍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차별받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삶이란 모두에게 힘들다. 삶은 모두에게 똑같은 크기로 배분 된다. 단지 소수자, 특정한 결핍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거나 타인에게 의지하려 하는 사람들을 나는 동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은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구조들이 서로 긴요하게 연결되어 있어 삶의 궤적들에 녹아들어 우리들의 삶을 불행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추천사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의 ‘차별을 철폐하려면 소수자들의 집단적 연대’ 이전에 소수자들이 ‘개별적 주체’로서 다시 등장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굉장한 희망적인 연대의 의미로 들렸다.

 

한때 구족 화가 '앨리슨 래퍼'의 다큐를 보면서 그녀의 삶이 내게 선물처럼 느낀 적이 있었다. 정상적인 범주에서 그녀는 절대 아름다울 수 없었다. 생각해보라. 팔도 없고 가진 거라곤 기형적인 다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녀가 아름다울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차이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비장애인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을 그만두고 나서야 자신이 비너스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수자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다름의 차이’를 먼저 인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써가길 바란다. 소수자들이 ‘개별적 주체’로 존재하게 될 때 사회적 연대도 가능하다. 그리고 모두 아름다운 삶을 쓰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들이 아웃사이더이자, 소수자이자 소외된 이들이라 눈물이 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슴 아팠다. 비혼모, 에이즈환자, 게이, 레즈비언이나 이주민이나 이민자들에게 드리워진 '다름의 차이'를 자신 스스로가 이겨내기 시작할 때 인권의 평등은 시작된다. 이들을 보는 시선 역시  ‘너무 붙이지도 않고 너무 떨어트리지도 않게’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 붙이지도 않고 너무 떨어트리지도 않게’라는 전략은 정체성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면서도 삶 자체를 정체성의 문제로 환원시키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단지 생존해 있는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정당하고 평등한 방법과 다른 사람 혹은 집단과의 관계, 사회적 구조 차원에서의 차별을 고민한다면, 어떤 사람의 목소리와 권리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한정하고 그것을 통해서만 인정하려고 하는 것 또한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소수자와의 '소통'이라는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주신 인권운동사랑방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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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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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콘에 새로 등장한 코너 시청률의 제왕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개그맨 박성광은 시청률의 제왕으로 저조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투입된 시청률제왕이다. 진지한 내용이 나오면 어김없이 재미없어를 외치며 패륜으로 가자!’를 외치자마자 시청률이 마구 올라간다. 거기에 PPL광고를 위해서는 죽어가는 아버지가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끼워넣으며 시청률만 나오면 돼 !를 외치는 모습에 무한공감을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한국드라마의 현실에 이렇게 시원하게 돌직구를 날리는 유머를 보는 기분은 빵 터진 웃음의 크기만큼이나 공허함을 남겨주기도 하였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각종 포털 사이트의 메인화면에는 낚시문구가 거의 도배되다 시피 선정적인 문구들로 넘쳐난다. 인터넷에 무분별한 황색언론이 넘쳐난 것은 비단 작금의 현실만은 아니다.

 

이 책 타블로이드 전쟁은 그런 황색언론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는 르포형식의 소설이다. 부제 <황색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의 큰 축은 18976월에 일어난 토막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벌어지고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타블로이드들의 황색언론이 또 다른 축으로 전개되는 형식이다.

 

 

어떤 사람은 끔찍하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기회라고 봤다.

 

더운 여름 무더위에 지쳐갈 즈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의 무료함처럼 커다란 기사거리 없이 보내던 기자들에게 하늘이 내려 준 기회라는 선물은 화려한 붉은 색과 금색 방수천으로 꽁꽁 사매져 있는 꾸러미였다. 꾸러미 안에는 사람의 팔 두 개가 근육질의 가슴에 연결되어 있는 시체였다. 근처 시체 공시소 건물이 있고 의대생들의 실습용 시체가 종종 떠내려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끔찍한 시체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보이지 않았다. 의대생들의 실습용 시체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가시덤불 사이에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과 잇달아 발견되는 시체토막으로 예사롭지 않은 사건임을 감지하게 되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사건을 다루게 된다. 발견된 시체토막은 결국 한 사람의 것으로 조각이 맞춰지고 이때부터 언론들은 최대의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보도경쟁에 열을 올린다. 그중 독보적인 황색언론의 선두주자로는 퓰리처가 이끄는 <월드>신문사와 허스트가 야심차게 이끌고 있는 <저널>신문사이다. 특종을 잡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퓰리처와 허스트는 서로 누가 선정적인지 대결이라도 하는 양 살인사건을 보도한다. 심지어 <월드>의 허스트는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공모전을 열고 500달러 포상금을 내걸기까지 한다. 독자들은 누구라도 셜록 홈즈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열광했다.

 

점점 밝혀지게 되는 사건의 전말은 허먼 낵과 오거스터 낵으로 좁혀지는데 허먼 낵과 오거스터 낵이 부부로 살고 있을 때, 터키탕 마사지사 굴든수프가 하숙하게 되면서 오거스터 낵과 바람이 난다. 허먼 낵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오거스터 낵은 굴든수프와 도망가 16개월을 동거하며 지냈는데 그 사이 이발사 마틴 손과 사랑에 빠졌다. 오거스터 낵은 조산사로 일하며서 생계를 꾸려갔는데 어느 날 굴든수프와 낵부인이 심하게 싸운 뒤로 굴든수프가 사라졌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이들의 관계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경찰과 기자들은 마틴 손을 굴든수프의 살해용의자로 지목하고 사건의 정황 또한 마틴 손의 동료이발사 친구 존 고사에 의해 밝혀지게 되면서 마틴손과 낵부인은 굴든수프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이 과정에서 황색언론들은 앞다투어 선정적인 문구들로 1면 기사를 도배했고 살해현장과 살해동기를 밝히는 과정에서 돈을 뿌린 저널의 허스트가 장악하는 모습은 드라마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잔인하고도 선정적인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마는 개콘의 시청률제왕 코너와 흡사하다. 또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독자들이 혹할 수 있는 머릿기사는 포털사이트에 넘쳐나고 있는 낚시기사와 판박이였다. 마틴 손과 낵부인이 체포된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마틴 손과 낵부인의 재판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재판과정에서도 황색언론의 장악은 상상초월한 방법으로 마틴손과 오거스터 낵을 보도했으며 오거스터 낵은 오히려 언론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저널의 허스트는 범죄현장을 통째로 사기도 하고 월드지의 퓰리처의 전화선을 끊기도 하며 기자들은 변장하여 범인을 잡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폴콜린스는 서문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덧붙인 단어는 하나도 없다는 말을 일러두고 있다. 타블로이드전쟁은 오로지 팩트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1987년 열 개가 넘는 신문사에서 세기의 살인사건으로 굴든수프의 살해사건을 다루며 보도된 신문기사와 관련자들의 사후수기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 책은 절대적으로 논픽션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간결체와 건조체로 쓰여 져 사건에 더욱 진실성을 느끼게 하고 신문기사를 읽는 기분마저 들게한다. 무려 백 년이라는 텀을 두고 있음에도 작금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는 황색언론을 통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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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나이트 - 이란을 사랑한 여자
정제희 지음 / 하다(HadA)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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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시쳇말로 짐승남이라 불리는 남자들이 페르시아의 침략에 맞서 거의 벗다? 시피 한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며 장렬하게 전사하는 내용의 영화를 보며 남자들의 세계가 멋지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 사상을 드러내는 영화라 생각했다.이런 영화들에 익숙해지다보니 알게 모르게 미국 중심 사회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있곤 하였다.  이 영화에서 페르시아인들을 묘사하는 부분은 더욱 그렇다. 300의 영화에 등장하는 페르시아인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체구를 가지고 있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기이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미치지 않는 페르시아인들에 대한 미국의 반감 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그 영화로 인해 나 역시도 페르시아인들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페르시안인들은 평범하지 않으며 어딘지 모를 거부감을 느껴왔던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이란이라는 나라와 연상되어지는 검은 색 차도르는 신비스럽기도 하지만, 늘 억압되어 있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이란에 대해서는 차도르를 쓰는 나라라는 것과  유일하게 자기들의 고유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석유와 이슬람의 시아파이며 과거 페르시아제국으로서 최강의 국가였다는 것 외에 이란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테헤란이라는 도시에 내가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철저한 타인들 속에서 '내 사람'이라는 씨앗을 뿌린다는 일이, 이국적이다 못해 낯설고 신기한 이 나라에서 혼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날씨 좋은 날이면 공원에 자리 잡고 앉아 루싸리를 예쁘게 쓴 채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게 ......."

 

정제희 작가의 《테헤란 나이트》를 읽으며 이란의 다채로운 표정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란어를 전공한 저자가 운명처럼 이끌려 떠난 곳 이란에서 공부하며 느꼈던 일들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친구처럼 다정하고 친근하다. 저자는 이란의 문화와 민족성향,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애착, 차도르의 다양함, 이란 여성들의 의외로 ? 자유로운 사고방식, 이란의 음식, 이란의 교통, 이란의 사랑등 많은 부분들을 체험하며 느꼈던 것들을 매우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어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피어나고는 하였다. 어떠한 것을 사랑할 때, 사랑하면 알고 싶어진다. 그래서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라는 멋진 말을 남겨주었다. 저자가 이란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란을 알게 되고 이란의 민낯 그대로를 생생하게 르포해주고 있는 모습에서 깊은 애정을 느낀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역사를 알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아마도 이 책의 매력은 그런 사랑하는 대상에 매우 충실하다는 점이 아닐까한다.  저자가 이란을 사랑하는 눈길에서, 그리고 이란이 낯선 한국에 이란의 생생한 민낯을 전해주기 위해 솔직하게 써내간 글에서 저절로 이란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 기분을 느끼곤 하였다.

   그곳에 가서 이란의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느끼며 택시를 타보고 싶고, 날라리들이 모인다는 니여바런 공원에도 가보고 싶고,  바리스타 다섯 명이 만들어내는 비싼 커피맛 조차도 맛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하였다.  그만큼 이란의 모든 것들이 생소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마도 작가의 눈에 비친 이란의 사랑때문이리라. 저자의 창으로 보는 이란 여행은  영화나 소설에서 접해왔던 신비로운 이미지의 이란을 한꺼풀 벗겨주었으며 이란은 어느새 우리의 삶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그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기도 하였다. 이란도 우리와 똑같은 삶의 문화를 써나가고 있는 그저 보통의 나라라는 것, 이란이 성큼 가슴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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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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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의 책을 내가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처음이다 배수아 작가의 책이 이렇게 독특할 줄은 몰랐다. 배수아 작가의 책을 처음 읽지만 이렇게 독특한 책은 또한 처음 읽는다. 좀 얼떨떨하다가 매력적이다 못해 다시 매혹스럽다. 이런 느낌은  작년 노벨상 수상자였던 모옌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몽환과 환상이라는 환상적 리얼리즘 문학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배수아 작품은 모옌과 같은 환상적 리얼리즘처럼 이야기에 꼬리를 무는 하이브리드 같은 장르문학은 아니다.  오히려 초현실주의 문학에 가깝다.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안내하는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토끼처럼 알려지지 않는 비밀의 도시에 초대하는 배수아만의 초대이다. 그저 그 비밀의 도시를 배회하는 방랑자로 참여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의식할 수 있는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의 경계가 전혀 없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전혀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대체적으로 모호하다. 이런 패턴들은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조각처럼 난해함과 모호함의 조각들로 가득하다. 비밀스러운 도시의 주인공들조차도  이런 난해함의 조각덩어리이다.  전직 여배우로  오디오극장에서 일하는 아야미와  오디오 극장의 극장장과 시인 여자이며 아야미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기도 하며 오디오극장에서  <눈먼 부엉이>를 낭독해주는 낭독자인 여자 여느는  정체불명의 여인이다. 여느는 안와가 동굴처럼 푹 꺼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부하에게 텔레폰서비스를 해 주는 여자이기도 하고 가끔 소설가의 비서를 한 적도 있고 부하에게 약을 받기도 하는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이다. 여느 만큼이나 존재의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  추리소설가 볼피피까지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다른 듯 하지만 같은 인물이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감각만이 필요하다. 오디오 극장이 눈으로 볼 수 없고 오감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곳인 것처럼 이 소설은 눈으로 보아서는, 보여지는 것만으로 읽는다면, 주인공들이 그리고 있는 '비밀의 도시'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감각으로만 존재하는 세상, 비밀의 도시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이다 소설가 김사과가 배수아 글쓰기 경향에 대해서 그녀가 향하는 곳은 우리가 한 번도 닿아 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표현을 한 것을 보며 배수아가 소설에서 창조해 낸 세계는 우리가 한 번도 닿아본 적이 없는 이데아의 세계를 뜻함을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영원하고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 예컨대 절대적인 정의나 선,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만 존재하는 한다고 하였던 것처럼, 여느가 부하에게 말한 '동굴'은 배수아 작가가 창조해낸  '이데아'의 세계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존재가 모호한 형태의 '여느'와 '부하'와의 사랑은 현실이나  물질적인  보여지는 실체에서의 사랑이 아닌 이데아적인 사랑이다. ‘세개의 동굴은 나에게 속한 육신의 세 개의 구멍에 해당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곧 당신에게 속한 장소예요. 열락의 거울상이 없다면 우리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세 개의 동굴은 세 개의 거울이에요. 사랑은 알려지지 않은 행위지요. 지상 어딘가에 있는, 깊고, 어둡고 ....(중략)’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해 들어가는 상처가 있다.....”

 

안와가 동굴처럼 움푹 패인 얼굴을 가진 부하. 부하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야미, 부하가 사랑하는 시인 여자 여느는 부하의 꿈과 맞닿아 있다. 꿈은 바로 시인 여자였고 시인은 바로 부하의 꿈이었다. ‘원래 부하가 시인 여자를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순간은 누군가로부터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 때라고 하듯이 꿈과 같은 선상에 시인 여자가 있다. 여느는 아야미가 되었다가 아야미는 여느가 되었다. 꿈에서 여느는 아야미인 동시에 시인 여자였다.  

 

그 두명의 여자들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그림자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들이 동시에 책을 읽을 때 그것은 구별할 수 없는 하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를 잃어버리게 되어요. 모든 것은 너무 빠르게 세워지고, 너무 빠르게 사라져버린답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예요. 집을 나와 열 발자국을 걸은 다음 뒤를 돌아보면, 거기 항상 서 있던 집이 보이지 않는 일도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면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 영영 알지 못하는 거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이 도시의 숨겨진 이름은 비밀이랍니다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안내하는 회중시계를 꺼내보는 토끼처럼 알려지지 않는 비밀의 도시에 초대하는 배수아만의 초대이다. 그저 그 비밀의 도시를 배회하는 방랑자로 참여하는 것만이 독자로서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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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경 - 동양 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자오촨둥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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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말 잘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시대이다. 언변의 뛰어남이 성공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만큼 말 잘하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이다. 만약 오바마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말에는 역사를 바꿀 힘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말은 잘 쓰면 득이지만, 반대로 독이 되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우수한 논변의 사례를 담은 이 책에는 매우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논쟁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춘추전국시대를 시작으로 원.명.청나라까지 100명이 넘는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1부는 사회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에 제자백가들(관중, 공자, 손자, 오자, 묵자, 양주, 상앙, 맹자, 노자, 장자, 혜시, 공손룡, 순자, 한비자..)의 논변을 살펴본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논변가는 중국 최초의 직업 변호사라 할 수 있는 등석이다. 등석의 논변은 양가론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두고 서로 대립되는 각도로 그것을 고찰하여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결론을 얻는 것으로 '부잣집 시체를 둘러싼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통해 양가론의 논변이 펼쳐진다. ‘모든 싸움을 버리고 절성(絶聖)과 기지(棄智)와 절학(絶學)을 하자 부르짖던 노자에 이어 묵자의 논변은 좋고 나쁨과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세 가지의 표준을 제기했다. 이른바 삼표이다.

 

“근본을 마련하는 게 있어여 하고 , 근원을 따지는 게 있어야 하고, 실용하는 게 있어야 한다.”

 

묵자는 논변은 반드시 옛 사람들의 경험과 일을 근거로 삼아야 하고, 또한 반드시 광대한 뭇 백성들의 귀와 눈으로 듣고 본 사실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며, 역시 나라와 백성의 이익에 어울리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광범위한 비유 대상을 자유자재로 선택하여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논변을 구사한 맹자 논변의 세 번째 특징은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다. 노자의 사상을 이어 받은 장자도 논변에는 꽤나 탁월한 듯하다.

 

 

“개는 잘 짖는다고 좋다 하지 않고 사람은 말을 잘한다고 현명하다고 하지 않는다.”-장자

 

 

혜시는 비유법 사용을 잘 하였는데 위기 때마다 절묘한 비유로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는 하였다. 귀곡자 비겸술은 상대의 지혜를 세심하게 헤아리고, 상대의 재간과 능력을 달아 보며, 상대의 기개와 성세를 추측해서 통제 수단을 만들어 이것으로 상대에 맞서기도 하고 상대를 따르기도 하면서 유혹하는 말로 화합하고, 뜻을 헤아림으로써 융화한 연후에 상대를 옭아매는 기술이고 췌마술은 상대의 발언을 통해 그가 드러내지 않은 감춰진 정황을 이해하는 기술이다. 순자는 일찍이 논변의 작용을 매우 중요시했기에 군자필변‘君子必辯’ 즉 군자는 반드시 변론을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2부는 백가쟁명이 끝나고 진한시대에서 남북조 시대까지 약 팔백여 년간의 ‘궁정 논변’을 다룬다. 이 시대에 해당하는 논변가로 역이기, 괴통, 동중서, 소무, 염철 회의, 유향, 곡영, 왕충, 진번, 제갈량, 등지, 진복 유총, 범진 등이 있다.

3부는 당나라와 송나라, 두 왕조의 긴 통치기간 동안 잦은 외적의 침입으로 군주와 신하 사이, 신하와 신하사이의 논쟁이 치열하게 오갔던 시기로 궁정 논변의 황금기를 이룬 시기이다. 논변가로서는 당태종과 위징, 적인걸, 요숭, 한유, 손석, 범중엄, 구양수, 왕안석, 정호, 주희 이강 등이 있다.

4부는 원,명,청 시대에 이르러 원나라의 통치는 가혹해지고 청나라 시대에는 문자옥이 크게 일어나 살벌한 전제 정치가 펼쳐지게 되자 논변이 점차적으로 쇠락해가는 시기이다. 논변가로는 개묘, 장양호, 주원장, 유근, 해서, 동림당, 이지 등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논변사화(論辯史話)'이다. 책을 다 읽고 논변사화가 더 적확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자가 '쟁경(爭經)' 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우 탁월한 제목이라 여겨진다. 논증적 의사(논변)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을 살펴보면 더욱 의미가 확실해진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문답식 대화법으로 진리(최고의 선)에 이르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는 하나의 논변이나 궤변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진리를 추론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이 책은 철학가들의 '논변'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더욱 무릎을 치게 하는 뜻이었다.  이 책에 쓰여진 經(경)은 불교에서 사용하는 경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불교에서 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철학의 어원 필로소피 역시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불교의 ’經(경)‘과 같은 의미이다. 쟁경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논변을 통해 지혜 (진리)에 이르게 하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들이 펼치는 논변의  향연은 각기 다른 사유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논변이 각 시대마다 어떠한 역할을 해 왔는지를 거시적인 흐름으로 맥을 짚어주기도 하는 역사서로도 읽을 수 있다. 《쟁경》을 통해 말을 잘하기보다는 무엇이 진정 이기는 삶인지를 되새겨 보게 하는 삶의 웅숭깊은 철학서로도 최고인 책이다.

 

"예로부터 말은 많음을 좇지 않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좇았다. 걸음은 꼭 멀리 가는 것만을 좇지 않고 왜 가는가를 좇았다. 말은 마음속으로 도리에 맞으면 말재주가 비록 눌변일지라도 변론은 남의 마음에 들어찬다. 때문에 사람은 심변을 좇고, 굽변을 좇지 않았다. 심변은 말이 어눌할지라도 사실을 배반하지 않고, 구변은 말이 듣기 좋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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