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의 거짓말》에서는 국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사회를 통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막강한 권력체라며 이 서슬 퍼런 ‘국가’라는 검을 누가 이용하느냐에 따라 민중들의 삶은 달라진다라고 하였다. 박노자 교수 역시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국가는 계급권력의 중심이고 생살여탈권은 국가관계의 핵심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 ‘일정한 영토가 있고, 그 영토에 살고 있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공동체라는 의미와는 한참 동떨어진 정의이다. 원래의 정의대로 한다면 국민이 갑이고 국가가 을이어야 하지만, 이제는 국가가 갑이고 국민이 을이 된 거꾸로의 역사를 쓰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는 그렇기에 어쩌면 매우 유토피아적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국가가 수 세기동안 읽혀온 것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이상국가를 꿈꾸고 있다는 증거이다.  철학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도덕적 사고가 점점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현 사회에 우리가 플라톤의 국가를 사유한다는 것은 몹시도 희망적인 일이다. 특히 도덕적 사고나 공적 담론의 형성은 여러 사람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형식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적 질문과 대답으로  '정의‘를 추론하는 과정이 바로 ’옳음 또는 정의 (善선)‘에 이르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가장 훌륭하게 경영되는 국가는 최대 다수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표현을 같은 사물들에 대해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국가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대화편으로 플라톤이 아카데메이아 학원에서 정계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이후 국가는 이상 국가 문헌의 원조라 불리 우며 수 세기동안 인문사회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해 왔다. 40여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그리스 라틴 문학을 연구해 온 천병희 교수의 원전으로 읽는 플라톤의 국가는 기존의 어렵기만 한 《국가》가 아닌 쉬우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의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더 많은 독자에게 국가를 소개하기 위해 난해한 직역과 지나친 의역을 피하고, 원전의 의미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실이다. 그래서인지 2천년이라는 오랜 시차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전 같지 않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독자들이 이 대화편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 방대한 대화의 주요 주제들

이를테면 정의란 무엇인가, 이상 국가에서는 왜 哲人(철인)이 治者(치자)가 되어야 하는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모방적인 詩(시)는 왜 이상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가 등등이 어떻게 논의되는지 스테파누스 표기를 붙여 권별로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

 

 

 

1권은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로 ‘올바른 삶’에 대하여 토론하며, 2권은 정의에 대하여, 3권은 수호자들의 교육에 관하여, 4권은 ‘국가의 정의’에 대하여 토론한다. 제 5권에서는 국가 경영에 있어서 이상 국가의 본보기를 말하며 이상 국가는 철인이 왕이 되거나 왕이 철인이 되기 전에는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6권에서는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실무 교육에 대해서 7권은 ‘교육’의 참된 의미를, 8권에서는 불의한 정체의 네 가지 유형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국가와 개인 간의 유사성을 말한다. 9권에서 소트라테스는 국가와 개인의 유사성을 통해 참주제적인 인간의 불행을 설명한다. 제 10권에서는 시詩와 정의가 받게 되는 보답을 끝으로 논의를 마친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상 국가는 哲人(철인)이 왕이 되거나 왕이 철인이 되기 전에는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5권에서 철학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인 또는 철학자만이 다양한 현상이면의 실재 또는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으며 이들의 지식은 대중의 단순한 의견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국가에서 보여지는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적 설명은 이후 제자인 플라톤에게 이어져 완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리수는 아니다. 플라톤이 상정한 이데아에 대해서도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끝없이 변화하는 현실세계 저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참지식을 가진 철인만이 가능하다. 소크라테스는 지도자가 철학해야 하는 이유를 혼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동굴 안의 그림자들을 뒤로하고 햇빛 비치는 위쪽 세계로 나와서 그 세계를 이해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어 소크라테스는 변화하는 지식은 참지식이 아니며 참 지식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세계가 아닌 '이데아의 세계'를 관조할 수 있는 지식이 참 지식이기에 이상적인 국가의 수호자는 철인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철인 또는 철학자는 이런 참 지식을 가진 ’善선‘의 완성'을 이룬다. 그렇기에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바로 철인이 다스리는 나라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매우 방대한 분량이라 오래 걸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쉬운 대화체 형식이라 술술 읽힌다. 한편으로 플라톤의 국가를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었다는 데에 놀라운? 책이다.  어려운 철학용어를 가감없이 배제하며 한 편의 에세이 형식으로 꾸며져 오랜 시차 또한 느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의 매우 인간적인 , 소탈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는데  ‘여성’에 대해 기술하는 부분에서는는 여성에 대해 편견과 차별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점은 의외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지위가 이 천년이라는 오랜 시차를 두었음에도  차별적인 시각이 아닌 남성과  동등한 지위로서의 여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평등과 열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상국가란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 한, 혹은 통치자들이 철학을 공부해 국가를 다스리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다.” 라고 하였듯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국가는 양날의 검으로 남아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공동체, 즉 국민이 갑이 되고 국가가 을이 되기 위해서 플라톤의 국가는 영원히 국민의 필독서로 남아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하여 손에 들었다.놨다를 여러 번 하였다. 남편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요즘들어 부쩍 힘에 부쳐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는 하소연을 종종 하곤 한다. 이유는 가정에서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데다가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는 부모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부모이기에 청소년 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청소년 교육에 대한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청소년 문제가 상상 했던 것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학교 바로 옆이 아빠의 학원이라 돈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아이가 학교에 천원을 가져가야 한다고 떼를 썼다. 준비물도 아니고, 군것질도 아닌 ‘그냥’이라고 얼버무리는 아이가 이상하여 꼬치꼬치 캐묻자, 반의 한 아이가 천원을 매일 자기에게 갖다 바치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의 부모를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의 엄마에게 아들이 학교에서 그러고 다니는 걸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상대 엄마는 ‘우리 아들 같이 착한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그래도 상처를 줄 수 없으니 일이 커지기 전에 선생님께 주의를 주는 것이 좋겠다며 학부모들이 아닌 선생님께 지도를 부탁하였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자신의 아이들에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 한 여중생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하였다. 그 학생은 중학교 3년간을 성적 조작을 해 왔다. 부모는 항상 그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날이 다가오자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 평상시에 부모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우리 아이는 절대 그렇지 않다’ 는 근거 없는 믿음과 아이들에게 사랑보다는 물질적 욕망만을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는 부모들의 그릇된 판단력이 현 사회 청소년들의 일탈과 방황에 동조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읽으면서 나 역시도 너무도 많은 부끄러움과 반성을 해야 했다. 좋은 어른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청소년들에게 관심과 사랑정도는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SBS 스페샬 다큐 ‘학교의 눈물’로 소년법정에서 소년재판을 담당하고 있던 천종호 판사가 써내려간 글에는 청소년들의 방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아픔과 눈물로 얼룩져있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들이 일진에서 주먹싸움을 하다가 법정에 왔어도 아들과 친구들은 일진이 아니라고 두둔하는 아버지, 공부 잘하는 딸이 남의 돈을 빼앗아도 감싸주는 어머니를 향해 일침과 호통으로 일관하는 판사의 모습에서는 그래서 아픈 절규가 묻어나온다. 아들이 학교에서 폭력으로 빼앗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버지, 아들의 참회 어린 외침에도 냉랭함을 보이는 어머니의 서늘함, 아들의 폭행에 상대학생이 자퇴를 하였는데도 뉘우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피해자의 아버지,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비행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어른들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공경하지 않는 모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보인다. 노인을 폭행한 청소년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전파를 타고 상상초월의 흉포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뿐만아니라, 청소년 성폭행문제도 위험수위를 넘은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청소년을 향한 소통과 화해의 벽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책을 통해 만나 본 청소년들은 정말 너무도 아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에 굶주린 아이들은 천종호 판사의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로 순식간에 마음의 빗장을 허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가슴과 가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한 마디라는 것을 다시한번 뼈져리게 느낀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들에게 사랑의 한 마디도 해주지 못하는 어른이 된 것일까? 정말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축을 위한 철학]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원제는 'Philosophy for Architects'이다. 책을 다 읽고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드는 책이다.  제목 건축을 위한 철학과 원제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이다. 원제 그대로를 직역하면 건축을 위한 철학이 되지만, 책 내용과 연결지어 보면  ‘Architects'를 굳이 건축이라고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Architect는 건축이라는 뜻도 있지만, 설계의 뜻도 있다. 설계는 사전적 의미로 건축토목기계 제작 따위에서, 그 목적에 따라 실제적인 계획을 세워 도면 따위로 명시하는 일이라고 나와있는데 이 책은 철학을 설계하는 하나의 구조적인 접근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 플라톤 (Platon)

2.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3. 근대성의 부상 (The Rise of Modernity)

4.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6. 현상학과 해석학 (Phenomenology and Hermeneutic)

7. 필로소프와 필로서퍼 (Philosophers and Philosophers)

8. 분석철학 (Analytic Philosophy)

9. 결론

 

목차만 보더라도 책이 철학의 구조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표제가 부적절하다.  Architects를 건축으로 오역하였기에 실제로 건축이라는 이미지와는 간극이 있다고 보여진다. 비록 건축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건축이론에 철학의 구조적인 이론을 설계하는 과정으로 구조를 위한 철학이 맞는 의미라 보여진다.

한가지 예를 들면 플라톤은 존재론을 통해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이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이야기한다. 비록 건축 이론가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철학자들은 건축 이론 중 특정 문제들을 존재론적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건축 이론에서 존재론적 문제는 건축 작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것을 건축이라는 말을 빼고 구조를 집어넣으면 <철학의 구조적 이론에서 존재론적 문제는 구조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왜냐 ,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의 구조' 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넘어가면 Architects가 건축가가 아니라는 것은 더 명확해진다.

설계 과정에서는 시각적 상상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인간 영혼의 기능에 대한 아르스토텔레스의 논의는 건축가에게 흥미롭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영혼의 기능과 그 인지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최초의 사람이다. ’공통 감각이라 부르는 중앙 기관이 이를 통합하여 사물의 심상을 만든다고 했다. 심상은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사물의 작은 모형과 비슷하며, 그 속성을 비슷하게 나타낸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건축가라는 의미와 아무 상관이 없다. 철학의 구조적인 토대로서 아르스토텔레스는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잘못 번역한 탓이다. 오히려 위에 말한 것처럼  건축가에 구조라는 말을 대신 넣어보면 '구조'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는 것을 보게 된다.  목차에서도 보다시피 이 책은 건축을 위한 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구조적 설명이고  Architects를 모든 부분을 건축가로 번역하는 바람에 내용이해에 어려움이 따른다.

 

17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 데카르트와 데이비드 흄, 존 로크,스피노자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역사주의와 헤르더,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러 20세기 초반의 역사주의,모더니즘, 하이데거 가다머와 해석학, 니체, 푸코,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철학에 대한 관심은 인문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넓혀주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더욱  건축이 삶을 표현하고 일상에 파고들어 친숙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삶을 표현한다는 맥락에서는 건축과 철학이 매우 닮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책의 서문에 저자는 건축가, 건축 실무자,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 설계 작업에서 맞닥뜨리는 광범위한 철학적 문제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에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건축학의 문제를 더 광범위한 철학적 맥락 안에서 다루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하고, 그런 문제에 대한 논의를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이해하는 것을 도우고 있다. 다시 말해 철학이라는 뼈대위에 건축의 이론을 세우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의 구조적인 설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건축이론에 철학의 구조를 입히는 흥미로운 과정의 책이었으나, 표제와는 매우 다른 형식의 철학책임을 밝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천국을 보았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과 관련된 책들을 접하면서 알게 된 하나의 사실이 있다. 과학은 항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조차 과학자들에게는 증명의 단계를 거쳐야만 실존하게 된다. 이런 과학자들의 사고는 과학지상주의와 진화론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기에 항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며칠 전에 읽었던 신무신론자인 샘 해리스의 주장 역시도 과학자로서의 끊임없는 시도와 문제의식은 좋았지만, 결국은 진화론적 세계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사람을 하나의 물건이라는 가치밖에 가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면보다는 물질적인 면들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사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절대 물건과 동일선상에 놓여 질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지금처럼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게 된데에는 이런 진화론적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학박사이자, 뇌과학자인 저자 이븐 알렉산더 역시 임사체험을 하기 전에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진 여느 과학자들과 같았다.  수많은 임사체험 사례를 보면서도 과학적인 검증 과정으로 설명되지 않았기에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희귀한 박테리아성 뇌막염에 걸려 7일 동안의 사후체험은 저자의 사고전체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매일 죽음을 목격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현실 세계를 끊임없이 증명해주는 과학의 증거들을 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가 뇌 과학을 선택하게 된 동기도 신경세포를 통해 ‘ 추상적인 앎의 요소와 순전히 물질적인 요소가 조합’ 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두개골을 덮고 있는 여러 피부 층과 조직을 떼어놓고 마이다스 렉스 드릴이라고 하는 고속 압축공기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뇌의 뉴런이 작동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저자는 과학이 주는 절대적 정직성과 깨끗함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과학은 하나의 사실이 확실하고 신뢰 할 만하면 수용되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졌다. 과학이 주는 정직성과 성실함, 정확성, 이런 접근법으로 보면 영혼이나 심령적인 일들, 또는 인격의 토대가 되는 뇌가 기능을 멈춘 후에도 삶이 지속된다는 이야기들은 과학자이자 의사인 저자의 머릿속에는 자리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뇌사상태에 빠진 저자가 말하는 우주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사고를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나는 그 7일간의 경험이, 내가 40여 년간 인간의 두뇌에 대해, 우주에 대해, 무엇이 실제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배워왔던 모든 내용들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씨름해야만 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우주에 대해서 그동안 과학자들이 말하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잘못 인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말하지만 죽음 상태에서 너무도 확실히 내면의 자아의식을 생생히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한다’ 라는 것은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무의식의 자아로 ‘경험’하였던 행동 메커니즘이라는 결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생각한다’의 자아는, 우리안에 진정한 내면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회복하게 될 진정한 영적 자아이다. 그리고 저자는 ‘영적자아’를 체험한 것이다.

 

또한 저자가 경험한 우주는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복합적이라는 것과, 의식이야말로 모든 것의 토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의식과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끼며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세상이 거의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었다며 우주에 대한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한다.

첫째로, 당장 우주의 가시적인 부분만을 보더라도 우주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

둘째로, 우린 모두는 각자 더 큰 우주 속에 복잡하게,빠져나올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셋째로, ‘정신력의 문제’를 뒷받침 해주는 데 있어서 믿음의 힘이 지극히 중요하다.

 

우주생물학자이자 천문학과 교수인 크리스 임피의《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서는 우리의 몸은 별의 중심에서 만들어져 수 세대의 별들을 거쳐 온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우리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은 무한히 작은 곳에서 다른 모든 원자들과 함께 있었고, 이 창조의 순간은 우주와 인간을 이어주는 구심점이다. 우리는 독특한 감각기관들로 둘러싸여, 원자 내의 양자에서부터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지각에 비례해서 축소된,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과 공간의 차원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차원들은 그 안에 많은 해당 내용들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차원들로부터 우리를 차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저자가 경험한 우주는 크리스 임피가 주장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그 속의 어떤 차원이나 수준을 정말로 이해하려면 그 차원의 일부가 되어야만 이해가 가능하게끔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주에 속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한다.

 

당신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자기 안의 한 부분이 이미 우주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과학과, 내가 저 너머에서 배운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이 모순된다고 믿고 있다. 유물론적 세계관에 고착된 과학계의 일부 구성원들은 과학과 영성이 양립될 수 없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뇌사 상태에 빠진 7일 동안 지상에서 올라오는 기도가 자신을 감싸는 순간들을 느끼고 우주를 창조한 창조자의 존재를 너무도 생생히 느꼈다고 한다. 말로서는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우주의 일원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매우 독특한 책이다. 내가 독특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답답하게 느껴왔던 과학자들의 사고와 현재 팽배해 있는 진화론적 세계관에 직접적인 반기를 든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과학자가 말이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는 초현실적인 종교관도 아니고 비현실적인 사고도 아니다. 죽음을 겪은 한 과학자의 사고변화를 통해 우리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이제까지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과학적 세계관에서  범세계적인 시야로 넓혀주고 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라는 개성 넘치는  과학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사회와 그 적들 - 콤플렉스 덩어리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
이나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가끔씩 나는 헷갈린다. 나를 기준으로 하여 윗세대와 신세대의 차이가 극명해지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는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많다. 그분들의 노력과 끈기, 성실함, 몸에 밴 근검 절약을 보며 배우는 자세를 자연적으로 익히게 해주기 때문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반면 나를 포함한 신세대들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인지 어른들 앞에서 할 말 다한다. 쉬는 날 일 때문에 좀 나오라하면 입부터 대빨나온다. 손해 보기 싫어하고 인내심 없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전화외의 기능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른들에게 있는 노력, 끈기, 성실, 절약 정신, 찾아 볼 수 없다.

 

며칠 전 군청 자유게시판에 60 대 노인이 아들과 싸운 이야기를 올렸다. 순식간에 게시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노인의 사연인즉, 아침에 아들이 유산을 미리 땡겨 달라 했다는 것이다. 45세 아들은 전세아파트에 월 300만원의 월급을 받고 두 아이의 가장이다. 아들은 두 아이 모두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며 피아노,미술, 영어학원을 보낸다. 아들은 자신의 월급으로는 생활비와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되니 유산을 줄 거면 미리 땡겨 달라고 했다. 아들의 말에 속이 상한 아버지는 게시판에 하소연을 올린 것이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평소에도 서운한 것이 많았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겨울에도 기름 값을 아끼려고 전기장판을 사용하며 춥게 사는 반면, 아들은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산다고 한다. 게다가 아버지는 핸드폰도 여전히 똑딱이 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모두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차가 한 대밖에 없는데 아들은 차가 두 대나 있다. 구구절절히 써내려간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으나, 누군가가 노인을  아들 잘못 키운 아버지로 비난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다른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느껴진 이유는 실제로 이런 가족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 한국 사회와 적들에서 보여주고 있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콤플렉스의  집합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들은 지나치게 물질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는 소비문화의 자화상이다. 소비에 길들여지면 정작 중요한 사랑, 영혼 같은 것에 최소한의 관심도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들의 그런 사고를 부추겼던 것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돈 나올 곳이 있다고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탓이다. 심리학 용어로 힘든 것을 하지 않으려는 영원한 아이 증후군이다.

  인터넷에 아버지가 쓴 글을 보고 집단 공격하는 행동 또한 문제가 있다.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몰래 숨어서 관찰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영어에서는 이런 마음을 피핑톰이라고 한다. 그런 본능에 무리를 짓게 되면 더욱 폭력성이 두드러진다. 분석심리학자 융은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든 서로에게 늑대로 돌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집단 전체가 한 명을 목표로 공격하면 그 잔인함이 도를 넘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다듬어지지 않은 본능이다. 저자는 다수를 위해 한두 명 정도는 희생될 수 있다는 생각은 , 지구촌이 보다 쾌적해지기 위해 유대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나치즘과 엄밀한 의미에서 다르지 않다고 한다.

 

융 심리학에서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내면의 참 자기를 찾는 개성화라고 한다. 개성화란 주변 상황이나 집단적은 흐름 또는 대세에 동조하기보다는 참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자기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가치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융은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작업해야 개성화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심리전문가 이나미박사는 한국 사회가 병들어있는 모습을 그대로 직시할 수 있도록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이슈와 트렌드에 심리학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콤플렉스의 면면들을 파헤친다. 저자는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문제들이 현재 한국을 위협하는 거대한 암적인 존재가 되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제까지 들춰내기 부끄러웠던 한국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애써 외면해 왔던 문제들인 물질만능주의, 허례허식, 교육문제, 집단행위, 불신, 극심한 세대차, 분노의 얼굴들, 폭력, 어디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는 어른들, 가족해체, 중독된 사람들, 약한 자아와 같은 콤플렉스 덩어리들에 심리학이라는 메스로 예리한 분석을 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일말의 미화도 덧붙임도 없기에  곪아 터져 있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기분은 편치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다 보면 오히려 그러한 걱정이 현사회를 더 정확히 직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심리학의 궁극적인 목적인 한국인의 저변에 깔려있는 진정한 참 모습을 찾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분노와 콤플렉스 덩어리로 변해 버렸지만, 한국인 저변에 깔려 있는 참모습을 찾는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너무도 통렬하게 비틀어주고 있어 오히려 속시원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문제가 많다고 떠들고, 함께 고민하고, 서로를 원망하고, 자책하고,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역동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