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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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는  위태로운 부부생활을 목격하게 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부부처럼 성스러운 맺어짐은 없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맺어지면 서로가 불행할 뿐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의 격한 이혼소송을 두고 한 기자가 그래도 한때 서로 사랑했던 사이일텐데 지나친 이혼소송은  보기 안 좋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남이 님이 되는 것은 쉬워도 님이 남이 되는 것은 더 힘든 일이라고...이 책 나를 찾아줘는 실종소녀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얼핏 들춰본 실종 1,2,3일 이라는 카운트다운을 보았을 때 실종 소녀를 찾는 부모의 이야기라고 어림짐작을 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설마 부인의 실종일 줄이야 ......

 

 

그럼 한 가지 질문. 너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쓴 책의 모델 어메이징 에이미의 주인공으로 인형같은 미모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항상 주목받았고 그런 특별함을 즐겼다. 자뻑보다 심한 증세를 뭐라 하더라, ~ 공주병. 그녀는 심각한 공주병을 앓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인이나 난장이로 만들어버리는 심한 백설공주병을 앓고 있다. 그런 그녀가 첫 눈에 반한 남자, 닉은 행운의 남자일까? 불행의 남자일까? (답은 책을 읽고 판단을 ^^)

  어메이징한 에이미를 만난 행운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닉은 에이미의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 성격에 질려버린다. 기자였던 닉이 실직하자, 에이미도 실직하고 두 백수는 돈 많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고가의 주택에 살지만, 경제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동시에 둘 사이에도 브레이크가 작동된다. 닉은 점점 무너져가는 결혼생활의 위태로움 속에서도 선뜻 헤어지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에이미의 돈으로 바를 차렸기 때문이다. 실직 상태였던 닉은 쌍둥이 동생 고 역시 실직되자, 바를 차렸는데 그것이 모두 부인 에이미의 전 재산이라는 것. 그러던 어느 7월의 아침, 결혼5주년을 맞이한 날, 에이미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에이미가 실종된 이후, 모든 것이 계획된 범죄라는 듯, 닉이 에이미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인양 흘러간다. 에이미가 실종되기 전 갑자기 증액된 아내의 생명보험금과 닉의 노트북에 검색된 미시시피 강을 떠내려가는 시체라든지 창고에 가득 쌓인 고가의 취미 용품등은 졸지에 닉을 아내의 실종 신고자가 아닌 아내의 살해범으로 둔갑해 놓는다. 게다가 발견된 에이미의 일기장에는 닉과의 불행한 결혼생활의 기록이었으니... 게다가 결혼하기전부터 유명했던 그녀로 인해 닉은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메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닉은 나를 사랑했다. ‘가 여섯 개쯤 들어가는 사랑. 그는 나를 사아아아아아아랑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것은 진짜 내가 아니었다. 닉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다.

 

1부에서 에이미는 사랑에 빠진 완벽한 결혼생활을 자랑한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에이미의 완벽한 결혼생활에는 붕괴의 조짐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동화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모델로 살아가야 했던 그녀는 만들어진 하나의 제품으로 살았다.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친절하고 사려 깊은데다가 재치 있고 쿨한 여자가 바로 에이미였다. 게다가 만들어진 제품과도 같은 부부이미지의 장인장모 틈에서 닉은 이방인과 같은 낯선 느낌을 항상 느껴야했고 에이미의 평범하지 않은 성격은 닉을 벼랑끝으로 내몬다. 닉의 생각과 교차되어 진행되는 에이미의 이야기는 결혼에 관한 남녀의 동상이몽처럼 서로 다른 생각의 평행선을 그린다.

 

 이어 2부에서는 서서히 에이미의 정체가 드러난다. 남들과는 다른 성장기를 보냈던 에이미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 소시오패스로 자란다. 마치 오래 전 보았던 요람을 흔드는 손의 악녀-미소를 머금고 눈빛하나로 사람 하나 거뜬히 죽이는 여자-와 같은 모습이다. 드러나는 에이미의 정체에 경악한 닉은 에이미의 죄를 밝히기 위해 쌍둥이 동생과 의기투합하지만, 글쎄 악녀를 이긴 남자는 아직까지 들어 본 적이 ^^;;

 

정신없이 빠져 들어 읽었던 것 같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지만, 이 점 찍기가 또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 불타오르는 사랑의 유통기한을 백일이라고 했던가 .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만나는 남과여의 결말을 보는 듯 했다. 뭐 닉과 에이미의 애증으로 점철된 결혼의 역사도 사랑하기 때문이라면 할말은 없지만, 나름 결혼생활을 설명하자면 아마도  잔잔한 호숫가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는 완벽해보이고 우아해보일지라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발을 경박스러울 정도로 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경박스러울 정도의 발놀림의 힘은 사랑일 것이다. 너무도 완벽해보였던 닉과 에이미의 모습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멈춘 순간, 완벽하고 우아해보이는 모습대신  서로에게 증오의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느낀 생각이다. 처음에는 한 편의 스릴러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으나, 점점 접입가경의 치정극은 싸이코 드라마로 변해간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만 존재하는 말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 ^^ 

 이렇게 《나를 찾아줘》는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듯 섬세한 심리 묘사와 극적 긴장감을 잠시도 늦추지 않는다.  거기에 남녀간 사랑의 면면들을 길리언 플린만의 여성적인 필체로 그려내고 있어  스릴러이지만 스릴러라 느낄 새 없이, 현실의 한 페이지처럼 책 속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잔잔하게 퍼지는 소름과 같은 심리극이라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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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포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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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 이십 년 전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가. 배우자를 일찍 만났다는 것은 사회생활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중 가장 좋은 점은 적어도 배우자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새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난 가끔 연애세포가 궁금할 때가 있다. 이성을 만날 때 느끼는 흥분이나 열정과도 같은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잊은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남편을 만날 때도 이십대에는 집까지 찾아오는 남자들도 있었는데 삼십대가 되니 쫓아오기는커녕 아줌마 소리 안들으면 다행이다. 지금은 애엄마라고 하면 놀라는 시늉해주는 사람이 가장 반갑다

 

솔직히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사실 일본 작가들에 대해서는 편견이 심한 편이다. 서른 넘어 함박눈도 지나치게 통속적이라는 생각에 머물게 한다. 읽으면서 역시 일본의 여자들을 자유분방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나는 고지식한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지금 몇 시예요?> 에 나오는 여자도 그렇다.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항상 지금 몇 시예요라며 시간을 묻는 그녀, 그리고는 그 남자와 공상의 순간을 즐기는 여자, 그러면서 공상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고 하는 서른의 여자를 만났을 때, 나는 순간 이 여자 미쳤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화가 나서 미쳤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웃겨서의 미쳤구나이다. 엉뚱하고 발랄한 그래서 용서가 되는 여자? 이긴 하지만, 서른이란 나이는 이렇게 외로운 나이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여자 이야기는 더 쌩뚱맞다. 청결에 집착하는 서른 여자의 지저분한 룸메이트 루미코의 이야기. 어느 날 루미코의 방을 청소하다가 집안 구석에 쳐 박혀 있는 하얀 특대 면 팬티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이 여자도 사실 정상이 아니다. 주인공이 여전히 싱글로 게다가 인기 없는 싱글로 남아 있는 이유는 지나치게 청결에 집착한다는 이유라나, 그래서인지 하얀 면 팬티를 본 순간 하양과 청결이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듯 했나보다. 하얀 특대 면 팬티의 주인공에 대해서 물어보자 루미코는 고릴라같이 생긴 다정한 사람이 웃으면 어린애 같다라고 한다. 주인공은 사랑이란 고릴라도 다정하게 느끼게 한다며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하며 청소를 한다. 대체 이 여자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주인공은 <바람구멍>의 서른 한 살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나쁘진 않지만 불타오르지도 않는 , 서로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오가지 않지만 없으면 외롭고 허전하기에 찾게 되는 사랑이다. 아마도 그것이 서른의 사랑?

 

그래도 낭만이 영 없지만은 않다. <깜짝 우동>의 서른의 주인공은 엄마와 결혼문제로 싸우던 중 대부분의 딸들이 그러하듯 엄마 가슴에 대 못 여러 번 박다가 결국은 엄마가 가출하게 된다. 엄마가 자주 가던 곳을 둘러보던 중 깜짝 우동집에서 마주친 한 남자와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된다. 집나간 엄마가 매개체가 되어서 만나게 된 이 남자와의 시작은 그래도 나름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아해>의 주인공 야스에와 유지의 이야기는 아마도 여자들이 가장 피해야 할 결혼이 아닐까 한다. 유부남인지 모르고 좋아했던 남자의 아내가 출산하던 중 죽게 되자 결혼 한 야스에. 유지가 사고가 나서 허리를 다치자 집에 쉬게 되고 이후 직장을 혼자 다니면서 살뜰히 돌보는 매우 가정적인 여자이다. 유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찾아 온 젊은 여자를 보고도 유지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야스에의 수동적인 자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돌이켜보니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파릇파릇함이 남아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로울 틈 없이 지내왔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서른의 여자들이 펼치는 삶이라는 향연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마치 봄날에 갑자기 내리는 함박눈에 당혹감이 드는 것처럼 서른 여자들의 이야기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시 웃음이 나게 되는 것은  서른까지 미혼이었다면 아마 나도 그랬을지도 몰라하는 연대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주인공들이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통속적이더라도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 공감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서른 여자의 다이어리를 몰래 훔쳐 본 기분처럼, 매우 은밀한 감정을 공유한 기분이 들기도 한, 알쏭달쏭, 알 듯 모를 듯한 서른 여자들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결혼관이 아닐까한다.

 

서른 여자의 생각 , 궁금해요? 궁금하면 ~~~ 오 백 원...이 아닌 함박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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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공부 - 창의성의 천재들에 대한 30년간의 연구보고서
켄 베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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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해서도 아니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계속 성장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글쎄, 공부가 대체 뭘까? 힐링이 대세였던 작년과 달리 요즈음 출판업계는 다시 공부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유가 뭐 길래 공부와 담쌓고 지내는 일반인들에게조차 공부하라 강요하는 것인지, 참 의외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암기하듯 외워서 시험 보던 교육제도 덕분으로 늘 틀에 박힌 공부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부와 관련된 책들의 붐은 나와는 상관없는 책이라 여겼었다. 최근 공부와 관련된 책들 중 <공부하는 인간><공부하는 삶><최고의 공부>를 호기심에 사서 읽었는데 그중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을 통해 마음 수양을 하고 있었다. 마음 수양이라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다. 앙토냉은 가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유명한데 <공부하는 삶>에서 말하는 공부란 진리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소명임을 밝히고 있다.  공부하는 삶은 공부의 본질에 다다르는 방법론과 같은 것이라면 《최고의 공부》는 공부의 실천편이다. 이 책은 소위 ‘천재’들이라 불리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리는 창의적인 능력에 대해서 30년간 연구한 보고서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들은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우리에게는 없는  2%의 그 무엇'에 대한 공부 스킬들이 실려있다.

 

 

책을 읽기 전 질문이 필요하다. 그럼 우린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왜 천재들은 끊임없이 공부할까? 그리고 우리들은 왜 공부해야 할까?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우선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성공의 척도에 대한 일반적인 사고를 바꿔야 한다.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던 '각 나라별 중산층 기준'을 떠올려 보면 일반적 기준이라는 것이 현재 생활문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주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기준과 잣대로 세상을 보게 되어 있다. 조금 비약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산층 기준은 ‘물질’이 우선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중산층 기준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치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나조차도 그런 수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또한 우리나라가 ‘무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에 얼마나 심하게 물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공부하는 삶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의 사고부터 변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성공의 척도가 물질이 되어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세상이 자신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게 되돌려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 라고 했듯이 성공은 절대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척도는 개인마다 다 다르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척도에 따라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 또한 달라지게 된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천재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것’ 이다.

 

창조하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기록하고 스스로와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찾고, 낡고 케케묵은 것을 버리고, 독특하고 아름답고 유용한 자질을 발전시키고 활용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개인들이 자기들만의 의사와 견해를 지니고 그 의사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개개인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정치적 존재가 된다.’ 라고 하였다. 공부는 이렇게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과도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걸쳐야 할 단계가 있다. 첫째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해 배워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을 흥분시키는 창의적인 정신 활동을 발견해야 한다. 그 일의 면면을 파헤쳐 내적 본질을 찾고, 그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열정적으로 매진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최고의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이 탁월하였다. 항상 자기 자신과 귀중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배경 지식을 탐구하고,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고 틀린 것을 바로잡으며, 정신의 역동적인 힘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기에 인생의 번잡함과 그 중대한 문제들, 그리고 결론 도출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었으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저자는 창의적인 인물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읽고 썼기에 정신을 성장시키고 세상에 큰 기여를 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는지 고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이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쌓아놓고 자신이 만들어 낸 패러다임안에서만 주위의 모든 감각을 이해하게 된다.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서만 사고를 하다보면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지 못할 뿐아니라 고인물이 썩는 이치처럼 사고도 고이게 되는 것이다. 천재들은 공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쌓은 견고한 벽을 뚫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예리한 칼을 갈듯이 감각의 날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기존 생각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새로운 깨달음의 순간을 ‘기대 실패’라고 하는데 이러한 기대실패의 순간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감각의 날을 세우는 것이 인생에 필요한 공부이다. 역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공부를 하다보면 다보면 자연적으로 손실이라는 것이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자존감에 의지하다 보면 능력, 인간관계, 자율성 같은 기본 자질을 키우는 데 소홀해지고, 자기 조절 능력이 떨어지며,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나빠지기 때문에 자존감이 주는 딜레마에 빠졌을 때는 세 가지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자기 친절.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을 스스로를 가혹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둘째,인간의 공통적인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셋째, 전념 상태를 연습하라.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인정하되 지나치게 몰입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크리스틴은 이 세가지를 묶어 ‘자기 연민’이라고 불렀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공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가끔 형식과 문법에 치우치는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공부에 그런 형식적인 부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최고의 공부》에는 진정한 공부의 자세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면에 간직한 천재성을 깨우는 일이 바로 공부이다.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그 천재성을 누구나 타고 났다고 한다. 단지 자신안에 심어져 있는 '천재'라는 씨를 틔울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이다. 따라서, 최고의 공부란 자신 안에 품고 있는 씨앗을 틔우는 일이다. 내 안의 씨앗을 틔우기 위해 ' 다른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할 글을 쓰기 위해서 십년이 결렸다'는 한 천재의 고백을 따라 읊조려 본다. 내게 최고의 공부라는 씨앗은 그렇게 뿌려졌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창의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성공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창작하는지 이해하려면 자신과의 대화가 꼭 필요하다. 그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창의성을 바라는 욕심이나 자신의 감정이 아니다. 무엇을 배우고,보고,하고,바꾸고 싶은지, 어떤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열정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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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잘나가는 여자
아리카와 마유미 지음, 신지원 옮김 / 이지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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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잘 나가는 여자》제목과 표지가 왠지 가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자신감 넘치는 여자들이 야심만만하게 내놓는 자기계발서들은 사실, 속빈 강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땐 자기자랑만 하는 여자들의 책을 보며 돈 아깝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구요. 그런데 이 여자 자기자랑이 아니라, 마치 이렇게만 하면 당신도  잘나갈 수 있게 된다는 달콤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봄바람을 휘날립니다.

 

책의 띠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거쳐간 직업만 47개,

나는 ‘안 나가는 여자’였습니다.

 

잘나가는 여자의 잘 나가는 방법이란, 별거 아닌 요령이 있습니다. 잘나가는 여자는 47개의 직업을 거치면서, 일반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산전 수전 공중전 까지 수십 번을 겪어오면서 일하는 법과 살아가는 법의 요령이 같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잘 풀리지 않는 일도 점점 요령을 터득해 나가다 보면,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우린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것들을 배워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잘나가지 않았던 여자였던 저자가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쌓인 요령 덕으로 점점 잘나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책이 바로 이 책 《지금부터, 잘나가는 여자》인 것이지요. 이 책에는 그녀가 삶에서 터득한 25가지의 요령이 들어 있습니다. 굳이 잘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알려주는 행운의 열쇠를 통해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행운의 주인공이 되는 ‘럭키문’과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게 가장 귀감이 되는 문구는 잘나가는 여자는 쉽게 불행해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입니다. 행복한 여자는 ‘불행한 자신,’‘비참하고 불쌍한 나’는 절대 싫어요. 인정하지 않습니다.‘행복한 나’로 있고 싶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생각하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행복해집니다.

저는 잘나가는 여자는 아닙니다만, 젊은 날부터 항상 ‘행복한 나’를 꿈꾸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마법의 문구가 오랫동안 제 가슴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슬펐던 적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심리학에는 ‘리프레이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여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애쓰다보면 삶이 전혀 다르게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주변환경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생각에 달려있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인생이라는 프레임 안에 ‘행복한 나’를 그리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사과하라’ , ‘칭찬하라’,‘스스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어라,’등의 긍정마인드로 가득채우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저도 작년에 직업을 바꿨습니다. 오랜 기간 개인사업을 하다가 지인의 청으로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리숙하여 실수를 연발하면서 제가 제 자신에게 짜증이 많이 나더라구요. 하지만 제게는 처음이라는 것이 무척 익숙했습니다. 항상 서투름과 낯섦으로 시작을 했던지라 당장의 서투름과 바보같음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위로 삼아 견뎠습니다. 저 역시 저자처럼 47개의 직업정도는 아니지만 무척 다양한 일들을 해 본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전 다양한 경험이 지금 제 삶에 가장 값진 보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우선 다양한 일을 해보았다는 것은 편협적인 시각을 차단시켜주고 서로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게 해 주었으니까요. 전 젊었을 때도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 시간이나 남는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늘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하다 못해 출산 바로 전까지 평생 교육원에 미용을 배우러 다녔답니다. 시간여유만 허락된다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요.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였듯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면서 마음속에 어떤 요령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습니다. 어리숙하고 바보같기만 했던 첫 시작의 순간은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요. 잘나가는 여자가 말해주는 살아가는 지혜는 분명히 당신을 잘나가게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터득한 비밀이니까요. 그녀에게 건진 마지막 요령은 저를 위해 적어둡니다.

 

반드시 초심을 잊지 말 것.

때때로의 초심 역시 잊지 말 것.

나이 든 후의 초심을 잊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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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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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종파가 결정된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중 과학자들의 책들은 상당히 비약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책들이 많았다. 더욱이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이란, 비약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무신론자, 신이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련의 신무신론자들은 과학적 방법에 따른 이성적 무신론을 따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신무신론자들은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대니얼 데닛,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샘 해리스를  꼽고 있다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이런 것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는 싸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이 싸이코패스는 알다시피 도덕적인 감정이나 양심을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뇌의 한 부분이 고장 난 것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에게 마음의 아픔과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주인공(이병헌)은 싸이코패스(최민식)을 죽음 직전까지의 고통을 준 뒤 놓아주곤 하는데 정작 싸이코패스는 괴로워하기는커녕 그 순간들을 즐긴다. 좌절한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느끼라고 애원까지 하지만 정작 싸이코패스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도덕()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싸이코패스는 악하다. 싸이코패스에게는 선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싸이코패스를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무신론자들은 악조차 자연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태생적으로 싸이코패스로 태어난 사람을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신무신론자들은 싸이코패스를 인간의 다른 능력처럼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뇌의 단계에 불과한 자연적인 형질로 설명하는 동시에 우리의 집단적인 행복은 자연적인 습성에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싸이코 패스를 뇌신경과학으로서 치료 가능한 질병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는 없다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는 환상이며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우리의 경험에 의한 무의식에 뿌리를 둔 우리 마음의 역량일 뿐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뇌신경과학의 영향으로 도덕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의 영역으로 들여 놓았다. 과학은 존재와 사실에 대한 믿음의 영역이고, 도덕은 당위와 가치의 영역이라는 경계(오래된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골자이다.  이에 더불어 샘 해리스는 무의식이 우리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였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의식할 수 있는 '실재'의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에서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진리(眞理)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이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제, 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 혹은 참된 이치나 법칙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바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실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저자가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이해한다는 말은 가치의 보편적 판단에 대한 실제 근거를 제시한다는 뜻과도 같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이제까지 도덕적 진리의 몫을 담당하고 있던 종교가 그동안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삶의 의미와 도덕 지침의 원천이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라고 하며  논리적이고도 실제 근거인 과학적인 믿음으로서 종교를 이해할 수 있을 때만이 종교가 가르치는 도덕적 진리로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도덕과 행복의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이 무의미하며 뇌는 틀림없이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 도덕 , 문화, 이 세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 나는 합당하게 가치를 둘 만한 유일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 존재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어떤 지점에서는 반드시 뇌와 관련된 사실이나 혹은 뇌와 세계 전체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실로 설명될 것이다.

둘째, ‘객관적 지식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우선적으로 가치를 두어야 하는 원칙에 따라 사실을 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실과 가치 양쪽 영역에서 인간의 뇌는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시스템을 분명 공유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왜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답이다. 이론과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또 그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기에 믿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의 거짓을 증명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강령의 핵심이자, 인지의 규범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관한한 가치 없는 사실은 없다.’-p261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에서 달라이 라마는 현대의 종교가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의 가치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샘 해리스가 도덕과 행복의 과학적 연구가 왜 필요한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종교를 이성적으로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샘 해리스가  종교를 가진 동료 과학자에게  삼위일체에 대한 과학적 논리가 부족하다며 과학적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종교적 믿음은 아무 의미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불성설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영혼'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근거'로 증명할 수 있을 때에라야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 사이에 영혼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영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태이다. 분명히 종교에는 영적인 부분이 있다.  애초부터 무신론자들의   신이 없다'는 전제하에 시작되는 과학자들의 비약적인 논리는 샘 해리스에게서도 보여지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믿음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것을 증명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이르는 '본질'이나 '보편적 진리'에 다다르기에는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인과 과학자들의 믿음이라는 '보편적 진리'가 같아져야 과학적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종교가 담당하던 몫을 이제는 과학이 그 자리를 메우려고 하는 시도는 오래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은 종교의 종말을 예고할 정도로 민감하게 종교를 자극한다. 과거 감성이 넘치던 시대에는 종교의 도덕적 진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그 가치의 보편적 판단에 대한 실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이 점점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현상은  현대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일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뇌과학자들에게는 도덕과 과학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 줄 책이지만 종교인들에게는 더욱 이성적으로 무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서로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원치 않으면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를 포괄하고 무신론과 유신론의 믿음과 의심을 모두 고려하며, 더 넓은 자유 원칙이 과학과 이성과 합리성이 의식을 고양시켜야 한다. 자유를 위한다는 과학과 이성과 합리성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_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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