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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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빵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시대가 있었다. 음식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기에 우리가 이루는 모든 문화의 얼굴을 담고 있다.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성스러울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다는 위대한 증거이다. 그렇다면 먹는 행위로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은 아니다. 문학이 현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에 문학은 음식과 더욱 긴밀한 관계가 형성 된다. 우리의 모든 삶에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통해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연상하듯이 음식과 개인의 기억은 긴요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나를 위해 만든 과자가 오로지 내 기억속에서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과도 같이 음식은 개인의 역사와 함께 하며 오롯이 나만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음식을 통해 보는 러시아 문학 읽기 이다. 저자는 <뇌를 훔친 소설가>를 통해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문학에서 뇌가 작용된 순간들을 포착하여 색다른 문학읽기를 선보였던 저자의 첫 만남은 한마디로 써프라이즈였다. 문학에 대한 깊이는 물론이거니와 색다른 시각으로의 문학 읽기는 문학에 대한 외연을 넓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문학의 비밀을 공유하는 기분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또한 저자가 문학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 야심차게 내놓는 또 하나의 시도이며 저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학 세계이다. 저자는 음식이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문화를 읽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코드라고 한다. 러시아 작가들은 문학 작품들에서 음식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그렇기에 러시아문학에서 음식이라는 코드는 문화적인 기호로서 작품과 작가를 배출한 시대 상황을 조망하기에 탁월하다. 음식은 러시아 문학뿐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등 인간의 모든 삶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인 고찰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음식은 인간을 읽고 사회를 읽는 데 필요한 코드, 그리고 인간과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작품을 읽는데 필요한 코드이다.

 

저자는 러시아 문학에 나타나는 음식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는 고도로 정교한 문학에서 일상 행위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모든 차원에서 ‘남의 것’과 ‘나의 것’의 대립을 유발했다. 이것은 음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요리는 토종 러시아요리와 대립하는 가운데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표출을 위한 창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표트르의 개혁은 러시아 식문화에 화려한 족적을 남긴다.  ‘남의 것’은 프랑스 요리로 서구의 문화영향을 말하며 ‘나의 것’은 러시아요리이다.  푸슈킨은 ‘간이 딱 맞게 끓인 양배추국’과 같은 소박한 음식을 좋아했다. 푸슈킨의 문학은 정확하고 간결한 문체로 써 내려간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소박함의 결정체로 응고되어 있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프랑스 가정 교사와 러시아 유모는 푸슈킨에게 서구적인 것과 러시아적인 것을 차곡차곡 쌓이게 했고 이것은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푸슈킨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서유럽의 문학적 전통을 받아들여 완벽하게 독창적인 러시아 문학으로 재창조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앞에서 언급했던 러시아 문화의 특징, 즉 ‘남의 것’과 ‘나의 것’의 충돌과 융합을 대변해 주는 아이콘이라 할수 있다.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푸슈킨은 18세기 귀족들이 프랑스 음식을 먹고 프랑스로 대화를 나누고 프랑스 문화에 매료되어 비프스테이크와 푸아그라와 샴페인을 즐겨 마시는 음식문화를 형성한 것에 대하여 이러한 것들은 “지루하고 번잡한 삶,내일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삶‘이라 여겼다. (이 표현만으로도 푸슈킨의 문학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곤차로프는 [오블로모프]에서 부동과 정체와 불변의 상징인 ‘고기파이’를 통해 ‘정체된 삶’을 문학에서 다루고 있다. 정체된 삶은 그 자체가 일종의 ‘죽음’이다. 죽음에 이르는 요리에 대한 문학에 대한 탐구는 식도락가 곤차로프의 지극히 비관적인 철학을 전달하고 있다. 결국 곤차로프는 비참하게 생을 맞이한다.

 

 

 

둘째, 988년에 러시아 토양에 이식된 동방 그리스도교는 모순적인 러시아적 정신을 탄생시켰다.

 

 

러시아 정교의 영향으로 일 년 중 반이 넘는 기간을 금식의 날로 지켜야 했던 러시아인들은 금식과 폭식을 번갈아가며 위장을 혹사시켰다. 이러한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소설가는 고골이었다. 고골은 러시아 문학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유명한 대식가이자 식도락가였다. 그러나, 고골은 자신의 식욕을 ‘악마’라고 부를 정도로 음식에 대해 냉혹하였는데 타고나길 대식가이자 미식가이자 식도락가였던 고골은 결국 영혼의 양식을 위해 육체의 양식을 끊어버리면서 문자 그대로 굶어 죽었다. 고골과 체호프에게는 음식이 범속한 현실을 전달하는 언어였다면 톨스토이에게서는 도덕을 설교하는 언어로 작용한다.

 

톨스토이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로 톨스토이의 모든 작품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영위하는 소망을 읽을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의 삶을 위해 음식을 절제했고, 쾌락으로서의 식사를 중단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영향은 톨스토이 뿐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같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에게 빵이란 성체성사 때의 ‘그리스도의 몸‘처럼 삶과 죽음을 연결해 주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하나로 묶어주는 개념이다.

 

 

 

 

 

셋째, 1917년 혁명은 ‘옛 음식’과 ‘새 음식’의 대립을 파생시켰다.


소비에트 시대 음식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식량부족과 식생활의 집단화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식량 부족은 소비에트 시대 전체에 걸쳐 나타난 아주 끈질긴 특성이었다. 혁명기 러시아에서는 더 이상 음식은 영혼의 양식이나 육체의 양식, 또는 절제의 미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굶주림 앞에서 음식은 그 어떤 이념도 설명도 관념도 다 사치가 된다. 존재의 근원을 지지해 주는 일종의 생명의 양식‘과도 같은 개념이다.

 

 

 

음식은 -한조각의 빵이건, 아니면 진수성찬이건-소비에트 문학에서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과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인간의 근본적인 가치들을 상징하는 가운데 ‘영혼의 양식’으로 승화된다. 요컨대 소비에트 시대의 음식은 그 원래의 기능, 즉 ‘일용할 양식’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오히려 고도로 정신적인 차원으로 올라간다. 불가코프에서 파스테르나크와 솔제니친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문인들에게 당장의 허기를 채워줄 한 끼 식사와 예술적인 영감은 동의어였다.

 

음식으로 문학 읽기는 문학이라는 스펙트럼의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이 느낌은 뇌과학으로 읽었던 문학읽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문학이 삶의 본질을 추구하며 삶의 모든 것에 의미를 담아 두었다면  그 모든 것 중의 하나인 음식을 쏘옥 빼내어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작가의 생과 음식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그 부분에서는 음식은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는 아주 작은 개인의 문화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미치게 했다. 한편으로는  문학을 뇌과학의 작용으로 보든 음식으로 문화의 코드를 읽어내든 그러한 작업들조차 문학이라는 거대한 스펙트럼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문학' 그자체에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문학의 외연을 넓혀주며 다양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주는 저자의 다음 시도는 무엇일까를 기대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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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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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인간의 욕망은 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손 안 가득 모래를 쥐면 모래는 절대 잡혀있지 않는다. 손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눈치 못하는 사이에 어느 새 다 사라져버린다. 모래를 쥘 때마다 욕망을 쥐고 있는 것이란 아마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생명을 갉아먹고 빠져나가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 결국 손 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는 이미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이다. 궁극의 아이에는  인간 욕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있다. 욕망을 손에 가득 쥐고 있지만, 죽음에 이르렀을 때야 아무 것도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사랑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세계 각 국의 사람들에게 십 년 전 죽은 한 남자 신가야의 편지가 배달되는 것이 시발점이다. 911테러가 일어난 지 꼭 십년이 된 날, 편지를 받은 사이먼에게 911테러사건은 기억하고 싶지 않는 날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내 모니카가 내연의 남자를 만나러 갔다가 죽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모니카의 무덤에서 원망과 미움으로 사랑을 추억하던 남자에게 배달 된 신가야의 편지는 사이먼을 다시 911테러가 일어나던 날 밤으로 돌려놓는다.

 

이 편지가 배달되는 날부터 오일 동안 매일 한 명씩 사람이 죽게 될 것입니다..”

 

편지는 FBI 요원 사이먼 켄에게도 배달되었고, 정신병자의 장난이라 치부하였던 사이먼 켄은 자신의 눈앞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자,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편지를 보낸 신가야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엘리스의 집에서 사이먼은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되는데, 신가야는 엘리스 눈앞에서 십 년 전 자살하였다는 것.

 

 

엘리스는 십 년 전 신가야를 만난 뒤로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없다. 168kg라는 비대한 몸으로는 움직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인기피증과 같은 두려움, 그리고 신가야가 남겨준 사랑의 상처는 엘리스를 과거 속에만 존재하게 한다. 십 년 전 단 5일의 사랑으로 남은 딸 미셸이 엘리스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전부이다. 그리고 엘리스가 밖을 나가지 않는 또 한가지의 이유는 과잉 기억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망각 능력이 상실되어 기억을 통제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엘리스는 일곱 살 이후의 모든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엘리스와 신가야의 5일이라는 짧은 만남은 십년 후에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의 실마리가 담겨 있는 중요한 단서의 기억들이다.

 

세계적인 곡물 기업의 총수 나다니엘 밀스타인을 필두로 하여 두 번째 희생자는 방산 업체의 대부 안톤 쉬프 이어 체임벌린, 킨데마이어, 순서로 암살 당한다. 이들의 교집합은 카이헨동 연구소와 세계적인 거물들이라는 것이다. 카이헨동 연구소에 소속된 이들은 악마개구리로 불리며 세계의 모든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 할 만큼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는미국대통령도 하수인에 불과하다. 악마 개구리들을 조여가는 신가야의 살해 계획은 악마개구리의 우두머리 오귀스트 벨몽을 남겨두고 미궁속을 헤매던 중, 오귀스트 벨몽에게 엘리스의 딸 미셸이 납치되면서 엘리스는 처음으로 집을 나서는 모험을 감행한다.

 

십 년전의 과거로 돌아가 신가야와 함께 한 시간들에는 십 년 후를 위한 철저한 계획이 있다. 한국에서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았던 신가야는 췌장암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위해 은행을 털었다가 아담의 유치원이라는 지문 프로그램에 의해 악마개구리들에게 발견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궁극의 아이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지문과 생김새가 똑같기 때문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아이들은 열 살 전후로 징후가 포착되며, 검은 색과 초록색 눈동자 오드 아이가 특징으로 나타난다. 고대이집트에서는 궁극의 아이가 어린 신관으로 추앙 받았던 것처럼 악마개구리들은 궁극의 아이들이 보는 미래로 세계를 재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수술비와 치료비와 맞바꾸어 카이헹돈 연구소에서 미래를 읽어주던 신가야는 911테러를 예견하고 사망자 명단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며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악마개구리들은 모른 척 한다. 거대한 테러앞에서 악마개구리들은 생명에 관심은 없었고 오히려 테러 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경제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을 보며 신가야는 탈출을 감행 한 뒤 운명의 여인, 엘리스를 만나게 되며 십 년후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주말을 앞두고 이 소설을 손에 들지 말았어야 했다. 굳이 스토리 공모전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수식이 없어도 이 책의 시놉시스는 탁월함 그 자체이다. 전 세계인이 겪었던 911테러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해내며 문학에 리얼리즘을 더하며 미래를 보는 초능력자라는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한국인이라는 설정부터 강하게 몰입된다. 게다가 미국, 중국과 일본, 한국의 숨가쁘게 진행되는 전쟁의 징후와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현자 달라이 라마의 위태로운 행보를 지켜보는 긴장감과 일촉즉발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는 애절함이 더해져 손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방대한 스케일임에도 지루할 틈 없는 전개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애잔한 사랑은 잠시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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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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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들자마자 밤을 꼬박 새웠다. 소설로 밤을 새워본지가 얼마만인지,아마도 제노사이드이후로 두번째 ? 작가의 파워풀한 스토리전개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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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 - 불안과 콤플렉스에서 탈출하는 자신감의 심리학
한덕현 지음 / 청림출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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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하면 항상 우는 영화가 있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선수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스포츠영화이다.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퍼펙트 게임>, < 페이스 메이커>,<국가대표> 정도로 기억 된다. 스포츠 영화는 감동 전달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지난한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길고 긴 인생 레이스를 고통이 아닌, 행복으로 완주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흔히들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 스포츠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내 나이 불혹이 되어서야 마주하게 된 삶의 속살이다. 스포츠와 인생이 쌍둥이처럼 닮아있기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모지 상태인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의가 펴낸 책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불안감, 콤플렉스, 우울증, 공포증, 강박증 과 같은 마음속의 괴물을 이겨내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 바로 《마음속에는 괴물이 산다》이다. 저자는 성적순으로 평가 받는 스포츠인들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현대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일반인들의 심리 치료에 매우 유용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히려 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스포츠맨들의 불안심리는 일반인들의 불안 심리를 대조하기 좋은 단초를 제공하여 준다.

 

 

“스포츠는 육체적 노력의 총화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인간 삶의 리허설 혹은 압축 버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선 1장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의 괴물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인생 경주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에 거주하는 감정적 관념의 ‘콤플렉스’ 는 스포츠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스포츠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콤플렉스’를 정해놓고 선수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즐기는 스포츠의 양면성을 예로 들며 콤플렉스는 극복해야 할 무엇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라고 한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원초적 에너지를 제공하는 정서적 모체인정체성’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선수는 외부 변수가 발생하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도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로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며 인생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주관적 핵심‘을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현실감이 있어야 자아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으며 실재하는 자아상과 이상적 자아상의 괴리감에서 오는 정체성 혼미’ 의 상태를 겪지 않는다고 한다.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는 심리상태 수행불안과 같은 심리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들은 이미 수행불안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수행불안을 떨치는 세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첫째, 일관성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둘째, 긴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이외에도 다른 사람의 불행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는 절대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낙관 편견’ 의사결정 방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극대화자’,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에 비해 신체적,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개념의 ‘에이지즘’, ‘하나를 실패하면 다른 것들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실무율적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다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실패란 경력이나 노력의 종말이 아니라 성공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걸쳐야 할 과정이며 열심히 실패하면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자기몰입 상태에 놓인 ‘자폐시기’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서적 피로를 호소하며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에 빠지는 ‘번아웃 신드롬과 같은 심리적 불안상태는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겪어본 일이기도 하며 주변에서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어느 심리학자가 '인간의 사회적 심리에 대한 기본 패턴만 알면 인생은 오히려 살기 쉽고 더 재미있다' 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과거 나 역시도 이러한 불안 심리를 겪으며 성장해 왔다. 젊었을 때 원 없이 방황했었고 아파했던 덕에 지금의 나는 그러한 것들을 밑거름으로 안정적이고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심리학자의 말처럼 이제는 삶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고 괴롭지 않다. 저자가 말하듯 ‘불안하기 때문에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흔들리기 때문에 불안한 것’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알고 남을 이해하는 과정은 스포츠나 인생에서나 공통과제이다. 여전히 마음 속의 괴물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면, 인생 레이스에 꼭 필요한 동반자로서 이 책을 추천한다.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자기신뢰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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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남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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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래적으로 외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누구도 외로움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외로움의 끝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외로운 남자의 주인공은 그렇지가 않다. 외로움에 몸을 맡긴다. 외로움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 궁금하다면, 이 남자를 만나면 된다. 이 남자는 권태의 극치이며, 스스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이 있다. 누구처럼 금수저를 타고 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먼 친척으로부터 거대한 유산을 상속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권태로운 남자에게는 재앙이었다.

 

예기치 못했던 유산을 물려받지 않았더라면 난 권태와 우울증으로 죽고야 말았으리라.

 

부모도 없이 가난하게 살았던 남자는 뜻밖의 횡재로 허름한 아파트에서 깨끗한 주택으로 거처도 옮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갑자기 여유로워진 그는 가난했던 어머님과 가난했던 과거로 깊은 심연에 빠지듯 회한에 잠긴다. 가진 것이 없어 자기를 떠난 여자의 얼굴을 보며, 가난해서 여러가지 노동으로 자신을 키웠던 어머니를 기억하며, 존재의 불안과 권태에 빠져 허우적 댄다. 그런 개인적인 고통에서 더 나아가 남자는  우주와 존재의 의미, 사물의 형성, 인생, 철학등  형이상학적 관념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특히 남자는 인간의 한계성과 무한에 집착하게 되며 더욱 심오한 정신 세계에 집착한다. 

 

 

내가 나 자신의 창조자이자 신이며 환영들의 주인인 듯 우주적으로 홀로임을 느낄 때,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느낀다. 대체로 사람들은 고독속에서도 홀로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나머지들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격리는 홀로 떨어져 있으나 우주적인 고독이 아니며 다른 고독, 작은 고독, 사회적인 고독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고독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 당신을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것은 타인의 추억과 이미지와 존재이다.

절대 고독을 느낄 때에만 편안함을 느끼는 남자는 형이상학적 관념에 머무르게 되면서 스스로 사회에서 고립되어 가며 사회에서 존재의 의미조차  잃어버린다. 영혼이 암에 걸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남자는 병원에서 약도 처방 받고, 술도 마셔보고 산책도 하며 사회에서 유대감을 느껴보려 하지만 번번히 어긋나고 만다. 자주 가던 술집 여종업원과 동거도 하지만 남자의 권태에 여자도 떠나가 버린다. 

 

 ‘세상에 던져진 것 자체가 고뇌이다.’ 

 

남자에게는 전투가 일어나거나, 내란에 빠지거나, 혁명도 아무것도 아니다. 남자는 오로지 아파트에서  무엇인지 모를 것에 대한 기다림으로 고립되었을 때만 안락함과 평안함을 느끼며 늙어가는 것이 전부인 삶을 산다. 남자의 아파트는 번잡한 세상에서 그를 구해주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 외로운 남자의 마지막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삶 자체의 고뇌를 말하는 것인지, 자신의 아파트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 성장을 의미하는 것인지, 작가는 주인공의 마지막을 비밀에 부침으로써 외로운 남자의 삶에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외로운 남자는 피로와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그와 반대로 남자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세계는 무기력과는 반대되는 철학적인 사유들이 쉼 없이 꿈틀댄다. 그는 끊임없이 인간 존재에 대해서 , 죽음에 대해서, 앎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니체처럼  우주를 생각하고 철학자처럼 인간을 본다.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마치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외로운 남자는 시종일관 인간은 처음부터 우주에서 무-즉, 존재하지 않았다.를 외친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감각적인 언어가 빛나는 매우 독특한 책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심오한  존재론을 들을 수 있다. 소설이 아니라 한 명의 철학자를 만난 기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외젠 이오네스코가 그리는  외로움에 대한 짙은 노스텔지어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 깊은 운율이 느껴진다.  무엇이든지 과잉화 된  시대,  뼛속까지 외로운 남자가 바로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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