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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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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Downsizing Democracy)를 본 순간 도망자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 가 연상 되어졌다. 최근 읽은 《정치가 떠난 자리》에서 월린이 제시한 도망자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원래 민주주의가 의도했던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의 함의이며 민주주의의 본질인 참여 자체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도망자가 되었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이지만 , 이 책은 fugitive democracy 가 아닌, personal democracy 를 말한다. 그동안의 민주주의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참여 민주주의로 대중의 참여가 근간을 이루며 시민이 그 주체가 되는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 였다면 지금의 민주주의는 대중에서 ‘다운사이징‘ 된 개인 personal 데모크라시(Downsizing Democracy)의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민주주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나라, 2세기가 넘는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포괄하고 있다.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지하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하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정치 엘리트들은 대중의 정치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유권자 대중을 주변화했고, 점차 법원과 관료들에 의존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와 구분해 ‘개인 민주주의’(personal democracy)라고 부른다. 대중민주주의는 엘리트들이 정치의 장을 장악하기 위해 비엘리트들을 동원해야 했던 방식이었다. 반면 현재의 경향이 ‘개인적’인 이유는 통치의 새로운 기술들이 대중을 사적 시민들의 집합으로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경험은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점점 개인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현 미국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조차  잃어버린 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개인주의자들로 넘치고 있다. 어쩌면 그 이면에는 시장지상주의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민을 ‘고객’이라고 칭하였던 미국의 전 부통령 엘 고어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는데 국민의 호칭이  시민에서 고객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 시민이란  정부와 대등한 위치에서 정부를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대표되어 왔다.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정부였다면, 고객은 정부에게 서비스를 받는 입장일 뿐이다.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것을 구매하고 제공받는 위치라면 고객은 한 단계 강등한 말 그대로 ‘다운사이징’ 된 입장이다. 이런 시민의  ‘고객만들기’  작업은 최근에 국영기업들이 속속들이 민영화되는 것과 아웃소싱제도, 바우처등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작업들이다. 미국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제도들이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국영기업들이 속속들이 민영화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세기의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시민계급이 변질되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30년도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미국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시민들에게 고민과 반성이라는 과제를 남겨준다.  과거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 또한 일부 엘리트들이 정치 동원 political mobilization 된 정치 행위였다. 정치 동원은 ,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다수를 얻고 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입법과 정책과 예산의 보상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다양한 정치 활동에 참여를 ‘이끌어내는 ’ 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의 핵심 기제 역할을 했던 시민의 정치 참여는 미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가상의 존재(virtual citizen)’가 되어 버린 것이 미국의 정치현실이다. 우리나라는 다행이도 ‘시민’이 ‘고객’이라는 개념이 될 정도로 변질되지 않은 것이 차라리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하지만, 국영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민영화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에게도 시민이 아닌 ‘고객’으로 다운사이징 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것은 정치엘리트가 아닌 시민이어야 하며 시민이 형성되지 않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있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우리나라의 정치 거울이기도 하다. 정치이론가인 김만권은 《정치가 떠난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목격한 것들을 스스로 말하고 해석하고, 그런 자신의 말과 해석을 다른 시민들의 말과 해석과 공유하고, 나아가 그런 공유 속에서 권력을 찾아내는 시민의 형성'이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가는 첫 걸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로운 시민 게릴라'라고 부른다. 시민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오래지 않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일침을 꽂아주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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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심리 카페 - 온 국민 멘붕 방지 고민 상담소
김현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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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만 6,000만명 (인구의 20퍼센트)의 사람들이 고질적인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타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응답한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있다.

 

생래적으로 사회적인 인간은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이 대인관계에서 기인한다. 모든 병이 마음의 병에서 시작 되었다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외로운 사람일수록 감기나 각종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많다는 말을 들었을때 반신반의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확실히 몸이 아픈 사람이 마음도 병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만성적인 우울증이라든지, 유독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심리학책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 경험상 심리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틀에 불과하지만, 그 틀에서도 벗어나지 못해 아둥바둥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사회의 이러한 현상, 점점 외로운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심리학이 주목받고 있는 분위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을 통해 위로받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 김현철 원장이 그간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청취자들의 다양한 고민들을 상담한 사연들을 엮은 책이다. 저자는 온 국민 멘붕 방지를 외치며 울랄라 심리 카페》를 통해 고통스러운 고민 혹은 증상의 이면을  바라보며 삶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몇 분 동안 그와 이야기를 해 보고는 그를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의 유형에 끼워 맞추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지 말자고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머릿속에서는 예전의 그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에 겹쳐지고 맙니다. 과거의 사람을 기준으로 현재의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게 영향을 줬던 과거의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재의 사람과 다르다는 걸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은 인격이 성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

어장관리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잡다하게 문어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애인이 될 거 아니면 아예 관계를 끊어 버리는 편입니다. 이런 저를 두고 주변에선 까칠하다, 성급하다는 말을 많이 하고, 심지어는 멍청이라고까지 합니다. 사실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문제인가요?

상처 받지 않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은 공짜를 바라는 심리.

몸이 좋지 않아 병가를 내고 쉬었다가 회사에 복귀했는데 상사 한 분이 더 이상 나올 필요 없다며 저를 마구 내쫓는 꿈이었습니다. 심지어 평소 저와 친했던 동기들도 제 편을 들어 주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꿈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 마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착한 사람이 악몽을 꾸기 마련. 낮에 만났던 다소 무례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에 밤에는 도리어 내가 그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벌을 받음으로써 심리적 밸런스를 나름대로  유지하는 것.

처음엔 남자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얼굴이 빨개지고 매우 불안한 감정을 느낍니다. 결벽증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은둔형 인간이 될까봐 겁이 납니다.

나는 적어도 내 몸과 마음의 왕이라는 사실자각하면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꽤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도 인정을 받는 편인데, 유독 인간관계는 젬병이어서 억울한 감정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시종 일관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무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언제나 집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도보다 결과만 보고판단합니다. 그게 사람이란 존재의 본성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환멸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받을 때 치유됩니다. 세상을 향한 적절한 환멸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가 됩니다.

자주 의기소침해지고, 한 번 기분이 침체되면 당분간 헤어나지 못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면어떨까 싶다가도, 막상 관련 정보를 찾다 보면 제가 혹시 미친 사람 취급받을까봐 겁이 나서 포기하고는 했습니다. 정신과는 정말 미친 사람만 가는 곳인가요?

정신과적 증상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도 있듯이 그저 뇌 기능의 일시적 이상입니다. 다른 진료과의 마찬가리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불안하거나우울하면 비용 고려하지 않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위의 질문과 답은 책에서 발췌한 것인데 , 평소 궁금하였던 질문만을 발췌하였지만, 책은 더욱 자세하고 상세한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한 번 쯤은 겪어 보았을 법한 고민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이유없이 미워진다' 던지,'남자를 사귀면 사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의 질문, '스킨쉽과 섹스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심한 남자'이야기라든지,  한번 쯤 고민해 보았을 법한 이야기와 주변에서 흔히 하고 있는 고민들이다. 어떤 고민은 매우 공감가면서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의 이야기까지 책에 실려 있다.  이러한 고민들이 도착하는 종착역은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진정한 나' '눈치 보지 않고 질질 끌려가지 않고, 내 뜻대로 사는 법'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외로 사소한 일에 굉장한 스트레스와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인간은 생래적으로 타고나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스트레스나 컴플렉스의 원인은 대부분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사회적 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울랄라 심리 카페를 통해서 스트레스와 컴플렉스를 줄이는 것도 하나의 치유방법이 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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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심리 카페 - 온 국민 멘붕 방지 고민 상담소
김현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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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심리를 통해 살펴보는 책, 실제 라디오에 접수 된 사연들이라 공감만땅의 심리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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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책 읽기 - 뚜루와 함께 고고씽~ 베스트컬렉션 39 카페에서 책 읽기 1
뚜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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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 나는 엉뚱하게도 눈으로 커피를 마신다. 눈으로 커피를 꿀꺽꿀꺽 마시는 상상은 실제로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의 포만감이 있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커피를 마실 기운조차 없을 때이다. 전혀 다른 비유지만, 《카페에서 책읽기》는 눈으로 마시는 책같다. 책에 실려있는 39편의 책을 마시고 나니 39편의 책을 읽은 느낌과 똑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커피를 마시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말보다,  화려한 미사여구의 말보다 서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 독자와 얼마만큼 교감을 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평은 독자에게  책의 감동을 대신 전달해주는 존재와도 같다.

 

사실 처음 국내 최초의 카툰 서평이라는 책 소개를 보았을 때는 딱히 읽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하였다.나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만화책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한편에는 만화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보던 단골만화방의 내가 늘 떠올려 질 정도로 만화 매니아였다. 그럼에도 카툰 서평집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 가벼운 책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채널예스에서 뚜루의 고고씽을 볼 때마다 웃음과 덤으로  좋은 책을 알게 되어 부러 찾아 읽고는 하였다.  뚜루가 책을 내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름의 인기를 짐작정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것조차  좋은 현상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점점 책을 읽는 인구는 줄어들고 있고 서평조차 카툰으로 보려한다는 것이 몸에 좋은 한식을 두고  영양가 하나 없는 인스턴트 식품을 선호하는 젊은 이들 취향과 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염려 반 호기심 반으로 읽게 된 카툰서평은 그런 편견을 무참히 깨뜨려주었다.

 

 

 

이 책은 뚜루가 예스블로그에 카툰으로 올린 서평들이다. 주제별로 장르구분없이 실어놓은 총39편의 서평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내가 모르는 책이 많았다는 것 !!!!  그동안  꽤나 책 좀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39편중 내가 읽은 책은 5편에 불과하다. <1Q8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애도하는 사람><영원의 아이><모래의여자>가 전부이다.  첫 시작부터 나의 오만함을 꾸짖으며 읽어나간 책은 빨려들 듯이 심취해서 읽었다.

 

 

가끔 나는 독서와 서평은 일란성 쌍둥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은 서평을 통해 문장으로 다시 재생산 된다.  감동이 문자화 되면서 삶을 통찰하는 무수한 단어들이 익어간다. 막연하였던 감동이 글로 만들어지고 나서야 문학의 옷을 입고 눈앞에 실체를 드러내고는 하였다. 나는 그래서 독서와 서평은 같은 박자로 같은 걸음을 걸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카툰 서평집을 보면서 반가웠던 것은 평소 내가 느끼던 그대로의 서평집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그대로 펼쳐지는 카툰을 보면서 뚜루라는 작가 또한 카툰에 문학의 옷을 입히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모습이 충분히 짐작되었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의 주인공이 희귀병을 앓으며 아름다운 눈결정체가 곧 사라질 아름다움이라는 장면만으로도 '두근두근 내인생'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일지 느껴졌다.  뚜루의 서평은 전체적으로 책의 감동을 잘 포착하고 있었고 김애란 작가의 간결함과 천명관 작가를 닮은 질펀한 해학과 능청스러운 입심으로 서평의 깨알같은 재미를 준다. 가족과 사랑,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찰과 인간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늙음에 대한 철학등 저자는 문학과 철학, 인문을 넘나들며 재미있고 즐거운 자신만의 카툰 서평을 쓰고 있다.  뚜루의 서평 챕터 중 가장 재미있고 재치있고 즐거웠던 장은 개인적으로 3부 '미스터리와 판타지와 호러가 뒤섞인 곳'을 꼽고 싶다.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하지만, 미스터리의 성격상 스포일러도 살짝 깔아주면서 호기심에 꼭 한번 책을 읽고 싶어질 정도의 감칠맛이 나는 부분이다. 나의 독서취향 중  미스터리와 판타지 호러장르는  일년에 손에 꼽히게 읽는 , 정말 가뭄에 콩 날 정도로 읽는 장르인데 뚜루의 서평을 보니 우타나 쇼고나 미쓰다 신조,미야베 미유키,마키 사쓰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타나 쇼고외에는 모두 낯설은, 만나보지 못한 작가들이다. (정말 좌절했다 ㅠㅠ) 게다가  밀리언셀러 클럽이라든지 블랙팬클럽 시리즈등은 듣보잡의 시리즈물이였다. 아 ~ 정말 세상은 인생도처유상수로도다.....

 

 

 

 

누쿠이 도쿠로의 <난반사>는 참고로 적어놓는다. 가끔은 융통성없이 돌아갈 줄 모르는 부분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사진도 첨부하는데, 이런 사람은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한 ‘한번쯤’이 운명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어쩌다 땡땡이 한 번 치면 걸리는 것이 ‘나’였다 )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는 주체인 '나'와 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서로 만나 문학이라는 가상공간을 체험하게 해주는 행위이다. 오랫동안 책을 읽어오면서 나는 한 번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수많은 삶을 대신 경험해왔다. 그 경험은 서평으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독서와 서평이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것은 이 책 <카페에서 책읽기>를 읽으면서도 깨닫게 되었다. 서평은 책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주체인 '나'와 문학이라는 '가상공간'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뚜루의 다리로 건너가 본 39편의 문학공간은 눈으로 커피를 마시듯 편안하고 즐거운 상상공간이었다. 《카페에서 책읽기》를 읽기 전까지 내 몸 상태는 봄이면 찾아오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재채기로 피로한 나날이었다. 비염으로 눈이 침침하고 눈물이 나는 상태에서 만난 뚜루의 카툰 서평을 읽으면서 돌기 시작한 엔돌핀으로 잠시나마 피로함을 덜고 눈으로 책을 마셨다. 후루루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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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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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한 여자가 청소기로 청소를 하다가 하늘에 걸린 구름을 빨아들였다. 오늘 출근길에 잠시 눈에 들어 온 영상이었다.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잔뜩 낀 먹구름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싶은 날이다. 맑은 하늘에 낀 먹구름은 봄에 낀 황사가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것처럼 불청객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때론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같은 암울함을 풍긴다. 삶은 때론 투명하고 밝은 듯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듯이 먹구름이 하늘의 일부인 것처럼 삶은 어두움과 공존한다.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의 시에 그러한 현실세계가 잘 표현되어진 기분이다.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눈꺼풀에 대한 함민복 시인의 깊은 사유는 세상을 보는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눈꺼풀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이 시에서는 혼탁한 세상에서 육체와 영혼의 경계, 또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는 눈꺼풀이다. 랑시에르가 ‘본다(viewing'는 행위가 ’앎‘이라는 지식과 연결되어 행동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는 보는 것으로 무지를 깨닫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거친다. 무엇인가를 보는 행위는 처음에 수동적인 자세에 불과하지만 본다는 것은 곧 능동적인 형태가 되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과정이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이상사이 존재하는 함민복 시인의 눈꺼풀은 그래서 ’단호하고 깊고 뜨겁다‘ . 세상을 볼 때 시인의 내면은 단호하고 깊고 뜨겁지만, 현실의 시인은 그렇지 못하기에 서글프다. 현대인들 대부분이 체험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으로 인해 고독을 채집하는 순례자의 모습을 하고 있듯이 함민복 시인의 현실은 죽음이 몰고 가는 양 고독함이 묻어난다. 시인의 시는 이렇게 보는 것에서 나아가 행동하는 시로의 귀결이다. 시인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현실생활을 체험한 그대로의 삶을 사유토록 한다.

 

 

함민복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인간과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시에 의해 우리의 삶, 사회, 문명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보이지 않는 것, 애써 보지 않으려는 것들이 그의 시에서 재탄생한다.

 

 

 

 

 낮 달

 

너도 궤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흐르고 싶은 것이냐

구름빛 낮달

 

 

 

넘쳐나는 소비사회에서 버려진 쓸모 없는 것(줄자,죽은시계,앉은뱅이저울,폐타이어)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며 현실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더불어 자연과 공생하는 삶을 노래함에 주저함이 없다. 삶이라는 척박한 땅에 뿌려진 시의 언어들은 현실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낚아 올려져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으며 존재하게 된다. 실존하게 된 뒤에라야  꽃망울을 터트리고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의 봄의 모습처럼, 생동감 넘치는 생명의 시가 되었다.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연상되어진 먹구름을 빨아들이는 청소기를 보는 기분처럼  함민복 시인은 사물이라는 본질을 빨아들여 다시 내뱉아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된' 사물 고유의 본성을 감지하게 한다. 함민복 시인의 시는 그렇게 시와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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