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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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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것은 나인가? 이것은 내가 아닌가? 내 주변의 세계에 내가 남기는 흔적, 이 고고학적 발자국은 나인가. 아니면 어떤 2차적인 것인가? 내가 사용하고 소유하는 대상은 나를 구성하는 일부인가, 아니면 그저 내가 사용하는 물건인가? 나는 어디서 끝나고 세상은 어디서 시작되며, 한 개인으로서 나는 사회 문화적 네트워크에 어떤 식으로 흩어져 있는가? -p242

 

18세기부터 시작된 이런 고전적인 질문들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역사가 인문과 과학이라는 분야를 철저히 분리하여 역사를 써오는 것에 그쳤지만, 이제는 인문과 과학이 마치 한 몸인 듯 묶으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 것처럼,최근에는 과학과 인문을 같이 묶어 ‘인간’을 다시 보려는 의지처럼 보인다.  최근 브뤼노 라투르의《과학인문학 편지》에서도 ‘과학이 없는 인문학은 이전에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 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과학인문학이라는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

 

《사이언스 이즈 컬처(Science is Culture)》는 금세기 최고의 지성,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최근에 엣지 재단의 탄생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방식 같다. 이러한 서술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어떤 하나의 대상을 채취하여 수집한 연유에 진한 ‘농축액’을 만들어내는 효과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 지성인들을 한 방에 몰아넣은 다음 서로에게 질문을 하게 하는 엣지 방식으로  ‘과학’을 수집한 후, ‘과학 인문학’이라는 진한 농축액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엣지 방식은 과학을 탐구하는 것에 그치치 않고 진화철학이나 의식의 문제, 시간, 설계, 기후, 전쟁과 기만, 꿈, 음악 , 형상, 인공물, 건축, 윤리 , 자유의지, 진화, 창의력, 미래. 소셜 네트워크, 물리학, 인프라 등 인간의 생생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살아있는 학문인 문화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과학이라는 바탕위에 문화라는 키워드의 절묘한 조화는 생물학자와 철학자가 만나 진화, 인류, 종교의 기원을 말하고, 심리학자와 소설가가 만나 인간의식의 문제를, 환경운동가와 기후학자가 만나 사진과 객관성, 진실의 시학에 대하여, 우주학자와 소설가가 만나 진실이라는 주제에 다가가는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들이 말하는 과학이라는 ‘레알 사전’ 속으로 들어가보면,

철학자 대니얼 데넷에게 과학이란 ?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서서 밧줄로 서로를 묶으려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서로 상대편 배에 밧줄을 던지기는 했지만 배는 아직도 서로 삐걱거리며 부딪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밧줄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하고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일 것입니다. 두 분야가 워낙 오랫동안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해온 터라 상호간에 불안감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죠. 일단 서로 단단히 묶이기만 하면 괜찮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두 척의 배는 심하게 흔들리면서 서로 부딪힐 것이고, 지금 우리가 이 과정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레베카 골드스타인에게 도덕성이란?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눈뜨고. 여기에 뛰어들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눈뜨고 뛰어들고 공감하는 것, 이것이 도덕성이죠.’

 다른 사람들도 나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바탕이 되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는 도덕 감정이 현대에는 인간 정신에 내재하는 공감능력이 문학이나 역사, 리얼리즘 픽션으로 인해 확장되었으며 이러한 확장은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끔찍한 고통에 관한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어떤 감정을 일으키거나 하는 것은 윤리와 직결되는 않으나 윤리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남의 삶을 느끼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무용수이자 교육자이자 안무가인 앨런 라이트먼에게 시간과 예술이란?

“예술이란 대부분 이처럼 문제 자체에 관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답보다 의문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예술가들이 불확실성과 함께 사는 데 더 익숙한가 봅니다.

과학과 예술 사이의 큰 차이 중 하나는 과학은 답이 있는 의문, 그러니까 확실성을 다루는 반면, 예술에서는 답이 없는 의문을 다루는 경우가 더 많죠.

 

 

고고학자 섕크스에게 과학이란 ?

 오늘날 존재하는 요소 중 우리가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한 것들이 미래에 재작업되고 재혼합될 수 있는 있습니다. 역사상의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고 승리자나 권력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아닌 것들 말이죠. 삶을 삶이도록 해주는 일상의 이야기,이런 것들이 대단한 것이죠.

 

물리학자 트라우스가 말하는 과학은 ?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사실은, 과학은 어떤 것이 진실임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그저 어떤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그것이 과학이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혁은 인간 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과학에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능력이죠. “그건 쓰레기야. 이제 더 이상 그 얘기를 하지마."

 

저술가이자 풍자 작가인 셸프에게 인간이란?

“일단 걷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간단히 말해 걷기 시작하면 누구나 수렵채취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수학자 망델브로가 말하는 건축이란?

 “현대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 가지죠. 한쪽에는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건축가의 욕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건물을 완성하여는 시공업체가 있습니다.”

 

저술가이자 언론인인 톰 울프가 말하는 자유의지란 ?

“인간의 뇌는 워낙 복잡해서 이해는커녕 상상하기도 어렵다. 인간은 이 분야의 연구에서 몇 킬로미터를 전진한 것이 아니다. 몇 센티미터를 움직였을 뿐이다. 나머지는 다 허구다.”

 

역사학자 피터 갤리슨에게 현대의 과학이란 ?

이제 과거에는 알 수조차 없던 일들이 갑자기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과학 외부와 내부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서 지금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열대 생물학자 러브 조이는 과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과학은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

 

이들의 대화는 과학과 문화에 대하여 모두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고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면모들은 아마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과학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해왔고 멀기만 한 분야라고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이들이 말하는 과학은 우리의 일상과 다름없는 생생한 삶속에 스며들어 있는 과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진 모든 것들은 이제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어쩌면 학문으로만 존재했던 과학은 일상에 파고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우 재미있고 즐거운 과학자들의 레알사전은 지금까지의 과학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르쳐 줄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과학자처럼 볼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한번쯤은 우리의 삶에 '왜?'라는 질문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 '과학인문학'을 체험하는 순간이라는 것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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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
실뱅 들루베 지음, 문신원 옮김, 니콜라스 베디 그림 / 지식채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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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라는 말에는 사회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나와 당신이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관계를 맺어야 우리라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을 인간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인간관계속에서의 사회적 심리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학문이 바로 사회심리학이다. 며칠 전 읽은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와 같은 맥락의 사회심리학 책이지만 다른 접근의 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이다. 《눈치보는 나,착각하는 너는 개인의 사회생활이라는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의 성향과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의 인문학에 가까운 접근을 보여주고 있고 이 책 당신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그럴듯한 착각들은 광범위한 사회를 연구하여 20여가지의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사회 속에서의 개인에 대한 연구이다. 그런 사회속의 개인이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를 확인하게 되는 다소 충격적인 실험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까?

사회현상과 규범화

무엇이 사람들을 패닉에 빠지게 하는가?

군중과 히스테리

유언비어는 어떻게 널리 퍼지는가?

유언비어의 확산

틀릴 줄 알면서도 왜 다수의 의견에 따를까?

사회적 영향과 체제 순응주의

우리그들은 언제 하나가 될까

사회 범주화의 효과

왜 우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할까?

맹목적 믿음과 인지 부조화

무엇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가?

권위에 대한 복종

완벽해 보이는 그들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

집단 극화와 사고

그들은 왜 피해자를 외면했을까?

무감각과 방관자효과

왜 사람들은 권력에 쉽게 눈이 머는 걸까?

스탠퍼드 감옥 실험

이타심은 타고나는 것일까?

착한 사마리아인의 우화

무엇이 진정 군중을 움직이는가?

사회적 사유와 연관성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런 정의는 사회적 관계 맺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런 사회적 관계에서 부수적으로 파생되는 문제는 실로 많다. 사회적 관계가 삶을 규정하듯이 사회적 관계를 잘 하느냐에 대한 판단이 인생의 성공여부를 결정짓기도 한다. 그러나 , 한편으로는 사회적 관계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가령, 남들이 모두 하지만 나는 아니오할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사회에 맞추어지는 일반적인 교육을 통해 획일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대부분의 실험을 통해 고정적인 관념들이 지배적이며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사회적 범주에 길들여진 개인의 판단들은 결국 자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들을 보여준다.

 

 

책에서 나오는 20가지 다양한 실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실험은  규범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는 셰리프의 실험이다. 셰리프는 집단 안에서 규범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며 이 과정을 규범화라고 명명한다.  셰리프의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장방형 암실에서 불빛을 깜박이는 횟수와 불빛의 이동을 말하는 실험을 한다. 불빛을 깜박이는 횟수가 늘수록 피 실험자들은 자신의 대답과 상대의 대답 사이의 편차를 빠르게 줄여나가며 나름대로의 규범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있게 되면 참여자들의 규범과 편차가 다른 이들의 평가에 따라 점차적으로 보편적인 규범과 편차를 향해 조율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이런 결과를 보며 셰리프는 심리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행동으로 설명한다. 상황이 애매모호할수록 개개인은 타인의 답을 따라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이유가 바로 사회적 규범화에 길들여진 탓이다.

 

사회심리학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사회 규범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모르겠다.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그 안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규범은 때론 사람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책에 나오는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규범화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 수록 이성판단이 아닌 감정에 따라 그른 판단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나'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게 되는데, 사회심리로 다가가는 과학적인 인간분석들을 보며 인간의 비이성적이 비합리적인 부분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어쩌면 인간이란 이토록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동물이기에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을 계속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한번 다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사회심리학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사회를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인 셈이다.

 

네 삶의 모든 부분을 공부의 과정과 일치시켜라. 세상 모든 일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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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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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데미안을 만났을 때, 사실 난 반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간혹 보게 되는 데미안의 그 유명한 문구 ‘새가 힘겹게 투쟁하여 한 세계를 깨뜨리는’ 것조차 그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제 다시 데미안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녹록치 않았던 세월 속에서 깨어진  ‘나’를 만나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허무주의자로 이름 높은 허연 시인의 시집을 통해 마흔이란 나이를 '세상의 모든 악을 이해하는 나이’ 라고 했을 때 매우 공감했던 적이 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간결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 한 마디가 더 가슴을 울리는 법이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이 말은 어쩌면  내가 사는 세계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에서 벌어지는 살인이나 잔인한 일들이 일어나는 세계의  공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이라는 말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존재하는 두 가지의 세계는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기도 하는 것 같다. 마치 어린 싱클레어가 한 세계는 ‘곧은 선과 길’ 인 밝은 세계와 ‘무섭고 사납고 잔인한 일들’이 일어지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고 믿으면서 언제나 밝은 세계만을 가고 싶어하는 소망을 꾸는 모습이 젊을 때 누구나 꾸는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싱클레어를 통해 젊은 날의 자화상을 다시 펼쳐보는 기분으로 데미안을 손에 들었다.  

 

가족과 평안한 ‘곧은 선과 길’의 싱클레어의 세계에 최초의 균열의 시작은 크러머라는 친구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열 살의 치기로 시작된  거짓말로 크러머에게 협박과 괴롭힘을 당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 싱클레어 앞에 ‘자의식이 분명하고 단호한’ 그러나 ‘자신의 본질’을 잘 알고 있던 ‘막스 데미안’과의 만남은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문이 되어준다. 그 문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로 들어갈 수 있는 ‘문’과도 같았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번 쯤 인생에서 흔들리는 지점이 있다. 어떤 이는 사춘기시절에 겪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나이가 들어서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기도 하고, 사람마다 삶이 다르듯이 이렇게 자신의 세계가 흔들리는 지점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헤세는 ‘자신의 세계가 물러지면서 천천히 붕괴하는 삶의 과정’을 겪을 때 ‘죽음과 재탄생’의 과정을 겪어야만 자신에게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서면서 자신의 삶을 붕괴하는 과정은 이렇게 ‘힘차게 투쟁하여 한 세계를 깨뜨리는 과정’ 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에게 존재했던 첫 번째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이어주는 문으로서 데미안을 만났고 데미안은 싱클레어 안에 잠들어 있던 내면의 ‘자아’였다. 데미안이 던져 주는 삶의 의미들로 같이 고민하고 데미안이 주는 철학적인 말들이 모두 싱클레어의 가슴에 뿌려져 싱클레어는 끊임없이 번뇌하고 고민하며 성장한다. 

 

여전히 두 세계에서 고민하던 싱클레어는 교회에서 주는 의미가 전부였던 시대에 전혀 다른 각도로 데미안에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우리가 숭배한 하느님이란 멋대로 나누어놓은 세계의 절반만을 나타낸다.’ 는 말로 인해 두 개의 세계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싱클레어의 고민은 우리의 청춘을 반추한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가간 질문과도 같다. 데미안이 말하는 카인의 세계와 아벨의 세계는 싱클레어에게 마치 선과 악의 세계로 구분되어지기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자신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밝은 세계만이 아닌 카인의 세계인 어두운 세계 또한 끌어안아야 한다는 새로운 신 ‘아프락사스’에 대한 물음이 싱클레어를 따라다닌다.

 

이후 싱클레어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사춘기 시절의 성적인 욕망을 ‘희열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가장 거룩한 것과 추한 것이 서로 뒤엉킨, 깊은 죄가 가장 사랑스러운 무죄를 번개처럼 관통하는 사랑의 꿈’꾸기도 하고 괴짜 어른이지만 친구 같은 피스토리우스를 사귀지만,  피스토리우스는 자신을 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깨달음은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직분’이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가 있으며 자신만의 ‘아프락사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언제나 존재하는 ‘오직 나와 결합되어' 있는 존재였기에 싱클레어가 아프락사스를 찾고자 하는 열망은 잠들어있던 데미안을 다시 깨운다,  데미안과 만나면서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우게 되고 시대의 운명인 전쟁에 참여하며 싱클레어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진짜 ‘나’의 모습이었던 싱클레어이자 데미안이었던 ‘참 나’를 만난다. 싱클레어의 아프락사스를 만나는 모습이다.

 

젊었을 때는 아프락사스가 무척 어렵게 느껴졌었다. 아프락사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막연하게 아프락사스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싱클레어가 보여주는 삶의 여정중 카인과 아벨의 세계를 이해하는 단계에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처음 세계가 나누어지던 ,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 든 그때에 읽었던 데미안과는 사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데미안의 첫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곳에 헤세는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중략) 우리는 모두 같은 심연에서 나왔다. 하지만 깊은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하나의 시도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 라고 쓰여 있었다. 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이어진 충격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데미안》의 데미안이 결국 싱클레어가 자기 자신을 해석한 글이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살아온 세계가 반쪽 짜리 세계이니 세계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헤세의 피상적인 주문이 싱클레어가 데미안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비추어주는 갈등과 고뇌는 바로 내 안의 아프락사스를 만나야 한다는 본질적인 주문이 되는 순간이다. 싱클레어가 십대에 태어나면서 주어진 밝은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를 첫 대면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과 두 번째 세계에서 다시 첫 번째 세계의 사랑을 하고 , 다시 방황을 하면서 두 번째 세계를 만난 후 ,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우리들의 성장하는 모습과 똑같이 닮아있다. 그 속에 어디에나 아프락사스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런 아프락사스를 만나는 것과 만나지 못하는 삶은 극명한 차이를 가져온다. 마치 두 세계가 공존하지만 섞여지지 않듯이 두 세계의 중심에는 바로 아프락사스가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데미안은 내 청춘의 여정을 반추해주며 다시 한번 아프락사스를 찾게 해주고 있다. 과거 불안했던 청춘의 한자락 같은 데미안은 이제 나의 아프락사스를 위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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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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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는 인간관계의 비밀을 사회심리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심리학이라는 접근만으로 볼 때는 무척 고리타분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다. 사회심리학이란 저자의 말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자존감, 정체성, 자기통제력 같은 자아 관련 문제들뿐 아니라, 사회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외로움, 소외감, 매력/호감 및 다양한 사회적 기술들 예컨대 마음 읽기, 눈치 보기, 이미지 관리 등) 친구관계, 연인관계, 상화관계 등 구체적인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슈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언제나 발생하는 각종 사회문제(고정관념, 차별, 계층 간 문제) 등을 주로 다룬다고 한다. 저자의 아주 길고 복잡한 표현이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사회관계속의 인간 심리를 파악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인간은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자식이라는 자연스럽게 1차 사회적 관계를 맺고 점점 친구에서 수많은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런 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전제된다. 최근들어, 인터넷에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들이 많아졌지만, 의외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만 6,000만명 (인구의 20퍼센트)의 사람들이 고질적인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타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응답한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있다.

 

 

그런 거보면 저자의 말대로 인간은 그냥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 굉장히 ‘하드코어’한 사회적 동물이다. 책에 실려 있는 실험자료들을 통해 인간관계가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의외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병에 잘 걸리고 외로움을 자주 호소하며 감기에 자주 걸린다고 한다. 반면 좋은 인간관계를 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저자는 이렇게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각 장마다 관계설명과 함께 실용적인 팁tip 또한 제안하고 있었는데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면 할 수록 어긋나는 이유로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자원과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사랑받으려 하다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어도 진정으로 깊은 관계는 하나도 맺지 못 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깊은 관계가 형성될 때 느끼는 기쁨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왜? 인간은 하드코어적인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즉, 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한 뒤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저자는 사회심리학 용어를 매우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친근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대부분 타인에 대한 시선에 자유롭지 않은 이유 ,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은 이럴거야’ 라고 상상하는 것을 심리학 용어로 ‘일반화된 타자 generalized others'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 일반화된 타자는 내 머릿속에서 상상해낸 가상의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타인의 시선으로 자유로워졌다면 인간관계를 잘하는 비결로 사회적 교환이 형성되어야 한다. 서로 주고받는 정도에 균형이 유지되어야 그 관계가 지속되는 현상을 ‘사회적교환social exchang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단 연인관계뿐 아니라 친구관계 및 기타 다양한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중요한 법칙이다.

 

 

*성격의 5요인 이론에 대한 간단 정리

성격

특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

모험, 여행, 새로운 경험 등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뛰어난 예술적인 감각과 관련된 특성. 창의성, 호기심, 높은 지능과도 관련됨.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낯선 음식을 먹는 것도 꺼리지 않음.

성실성

꼼꼼하고 깔끔하고 철두철미한 특성. 빅파이브 성격 요소중 한눈에 파악하기 쉬운 특성. 의지력이 높아 건강과 관련된 귀찮은 규칙들도 잘 준수하기 때문에 건강하고 장수할 확률이 높은 . 하지만 성실성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완벽주의이거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통제하는 성향이 있음.

외향성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시끌벅적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특성. 사회생활을 잘하는 편이고 즐거운 일을 찾아나서는 것이 핵심 특성. 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면과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어 독불장군이라는 말을 듣거나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음.

원만성

착하고 갈등을 싫어하고 남을 돕기 좋아하는 특성.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음, 하지만 거절을 잘 못하기에 보증을 서거나 사기당할 위험이 있음.

신경증

걱정이 많고 위험 지각이 빠르며 예민한 특성. 쉽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건강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음 .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수 있고 이혼율 또한 높음.

 

 

 

 

책은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계로서의 관계를 잘하기 위한 것으로 나아가는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태어나면서 씌워지게 된 사회적 관계의 모습의 ‘나’가 아닌 진정한 맨얼굴의 나를 발견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된 과제이다. 한 번도 진정한 나의 모습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회심리학으로 낱낱이 보고되는 인간관계의 실험과 보고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에 대한 진단을 한 뒤,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 각각의 사람들이 처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가 형성될 때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결국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타이레놀을 먹고 외로움이 잠시 감소한다는 흥미로운 실험결과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며 사회속에서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타이레놀이 없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위의 표에서 보면 사람의 성격은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안에서 자신의 특성을 떠올려볼 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먼저 파악을 해본 연유에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여겨진다. 매우 쉽고도 재미있는 사회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사회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적용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은 현대에도 명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사회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지혜가 뭐냐고 묻는다면

 사랑하고 사랑받지 않으면 인생을 잘 살기 어려워진다는 사실과

 짧은 인생을 그나마 풍성하게 살려면

 돈이나 명예보다도 사람에게 가장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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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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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끝없이 내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어 방황했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찾아오는 존재에 대한 고뇌로 인해 늘 깊은 심연 속에 잠기어 살았던 그때, 불멸의 고전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미모사처럼 예민한 나를 고민하게 했다. 제목에서 주는 수레바퀴가 거대한 삶의 무게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한스의 죽음이후 나는 오히려 방황을 멈추었고 더욱 삶을 주시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한스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내 기억속의 한스는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 , 한치도 자라지 않은 채로 멈추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스는 소심하고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한스는 천재나 재능 있는 인물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오래된 작은 마을에 저 위에서 신비로운 불꽃 하나가 뚝 떨어진 듯 태어난 아이가 바로 한스였다.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에게 늘 그렇듯이 한스의 아버지 요제프 기벤라트는 한스가 마을을 대표하는 유명한 관리가 되어주기를 바랬다. 그때보다 백년이 지난 지금의 부모들이 아이들이 커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한스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었다. 한스가 살던 그때는 산업혁명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고  작은 돈벌이로 가난했던 수공업자들이 공장주로 변하게 되면서 갑자기 부유해지는 소상공인들이 많았다. 그렇게 갑자기 부유해진 시민들은 자신들이 많이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처럼 더욱 공부에 집착하게 되었다. 부유해진 소시민들은 더 이상 관리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지만, 부유해진 이들 모두가 자식들은 공부해서 관리가 되길 바라는 이율 배반적인 소망이 싹트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뼈빠지게 일하고 자식들은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직업을 꿈꾸는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이율 배반적인 형태는 변하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다.

 

다행이도 그때 나는 한스 처럼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부유한 아버지를 가지지도 못했기에 한스처럼 깊은 번뇌와 방황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스와 같이 무언가에 억눌려 있는 느낌을 가진 친구는 많이 있었다. 한스는 늘 말이 없었고 조용했지만, 또래와 같은 천진난만함이나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줄 몰랐다. 게다가 또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얼토당토 않은 말장난조차 알지 못했다. 아이답지 않은 아이 한스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친구란,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이지만, 그저 어쩌다가 충고나 조언같은 말한마디 해주는 것이 다인 사이였다. 어쩌면 지금 나는 한스보다는 플라이크의 시선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한스를 만난 이후 나는 이미 많이 자랐고, 한스는 여전히 자라지 않은 채 그곳에 머물러 있기에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 그저 걱정해주는 한 어른에 불과한 거리감과 시차로 한스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때의 한스는 부모가 만들어준 틀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순종적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뜻이 바로 자기의 뜻이었고 교장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의 기대에 긴장하며 하라는 대로 따라가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 한스를 선생님들만 좋아했다. 규정화 된 아이,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사회 규범에 적합한 아이로서 한스는 정말 완벽한 아이였기에...

 

한스가 수재들만 가는 수도원에 합격하자,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은 더욱 기뻐했다. 수도원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좋아하는 낚시를 뒤로 하고 교장선생님과 선행학습을 하면서도 한스는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수도원에서 보내는 몇 해 사이 한스는 많이 변해있었다. 어쩌면 그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하일너를 만난 것이 한스에게는 운명이라면 운명과도 같은 만남인지도 모르겠다. 하일너는 자신만의 생각과 말을 가지고 있었고, 남들보다 더 뜨겁고 더 자유롭게 사는 친구였다. 한눈에 봐도 수도원에서 두꺼운 안경을 쓰고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들과는 다른 차원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수도원의 규율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하일너는 반항하기 좋아하였고 혼자 무언가 고민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이곤 하였다. 하일너가 다른 아이들과 더욱 달랐던 다른 하나는 자연을 사랑하며 예찬할 줄 아는 감성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없던 한스가 보는 하일너는 마치 소중한 보물을 간직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기분 좋은 무언가가 스며있는 그런 친구였다. 하일너를 만나게 되면서 한스에게는 행복한 시간이 늘었지만, 대신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이후 한스는 선생들에게 장래가 촉망되던 아이에서 문제아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하일너는 수도원의 엄한 규율에 끊임없이 반항하며 자유를 찾아 일탈을 꿈꾸고  그런 하일러와 단지 친했다는 이유로 한스는 선생들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르자, 신경쇠약과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

 

 

조용히 떨어지는 낙엽,

갈색으로 변하는 풀밭,

짙은 아침안개,

기력이 다해 죽어가는 식물들.

그런 것들을 보면서

그는 모든 병자가 그렇듯 무겁고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슬퍼졌다.

그는 그것들과 같이 스러지고,

같이 잠들고,

함께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젊음이 그것을 거부하고 조용하고 끈질기게

삶에 매달려서 마음이 괴로웠다.

 

수도원 생활에서 신경쇠약으로 돌아온 한스에게 펼쳐진 절망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한스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젊음이란 녀석이 매달리고 또 매달려서 바퀴를 돌릴 수 밖에없는 삶의 연속으로 한스는 겨우 겨우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그 사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여인 애마와의 잠깐의 황홀함이 있었고 공장에서 톱니바퀴의 이를 맞추는 노동이 주는 찰나의 기쁨도 잠시 맛보지만, 결국 한스는 모든 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과 말을 가지고 있던 하일너와 단 한번도 자신의 생각과 말을 표현한 적이 없던 한스와 가장 대조적인 부분이다. 하일너는 비록 수도원에서 쫓겨났지만, 자신의 삶을 살았고, 한스는 한번도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보지 못하였기에 결국 삶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버린다.  

 

  나는 지금도 한스를 생각하면 강한 연민에 사로잡힌다. 한순간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던 친구 한스. 아버지에게 강요된 삶과 학교가 주는 틀에서 규범화되는 학교의 비극을 재현한 수도원에서 그런 억압적인 것들에 길들여진채 살아가야 했던 한스의 모습은 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는 이 사회의 이율 배반적인 모습이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것들을  위해서  그리고 계속 이어질 이 땅의 수많은 '한스'를 위해 《수레바퀴 아래서》를 집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기 위해서 매일 돌려야 하는 이  거대한 삶의 바퀴'가 여전히 계속되는 한 우리 곁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은 '한스'는 언제나 존재한다.  과거에는 친구로서 지금은 한스를 지켜보는 어른으로서 삶의 수레를 매일 끌어야하는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내 안에 잠들어있던 한스를 다시 한번 깨웠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인지를 ...  

 

그럼, 그래야지. 친구, 아무튼 지치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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