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 - 예술의 부활, 인간의 발견 시공아트 58
피터 머레이.린다 머레이 지음, 김숙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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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르네상스를 ‘재생’이라는 뜻으로만 이해 해왔다. 통상적으로 14,15,16세기의 유럽의 문화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라고 하여 ‘재생’이라는 통용된 이미지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심도 깊이 다가가 르네상스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의미를 두고 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이후로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르네상스, 문화의 재생은 그리스 로마 문화로의 귀향과도 같은 것이었다. 쉽게 말해 인류에서 가장 우월한 유전자였던 종족이 일종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된 운동이 아마도 르네상스 운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렇게 이탈리아로부터 시작된 운동이며, 기본적으로 문화와 미술에서 시작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르네상스(Renaissance), 재생운동은 고전주의의 부활, 인문주의(humanism), 자연의 재발견, 개인의 창조성 등을 특징으로 하며 이 세기의 문학과 미술, 천문학은 완벽한 수준을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이런 르네상스 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은 무엇보다 미술 분야였다. 이때의 미술은 과학의 차원으로까지 간주되었으며, 자연을 탐구하는 수단인 동시에 발견의 기록이었다. 르네상스의 특징 중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문주의(humanism)이다. 르네상스에서 인문주의란 인간의 존엄한 가치라 할 ‘인간다움’에 관한 연구를 의미한다.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스코틀랜드 대학에서 라틴문학 또는 그리스문학을 뜻한다고 한다.)

 

 

15세기 초 피렌체 미술

15세기 피렌체 미술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하나가 아닌 두 가지 화가와 조가가들에 의해서 기존의 옛양식 인상주의 미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작픔으로 도나텔로의 <다윗>이 있다. 다윗은 고전고대 이래 최초로 등장한 청동 누드상이다. <다윗>의 출현은 과거 고전의 부흥을 알리는 증거이자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정신이 마침내 출현했다는 증거로서 의의를 갖는다. 이때 건축이 가장 위대한 예술분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다윗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사상과 감정이라는 상호관계성에 대한 고도의 이해가 결정적으로 르네상스 정신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험과 별견은 건축물을 하나의 유기적 존재로 보는 르네상스 개념의 초석을 놓게 된다. 대표적인 화가로 베르티, 마사초, 도나텔로가 있다.

 

 

네덜란드와 보헤미아

르네상스 운동은 네덜란드와 보헤미아에서도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와 보헤미아에서는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인 사실주의를 엿볼 수 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수학적 원칙에 따라 원근법이 실행되었다. 이 책의 표지인 얀 판 에이크<아르놀리피니의 결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변 사물과 인물에게서 놀랄 정도의 섬세함이 보여진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 얀 판 에이크가 결혼식을 참여한 현실이라는 것을 유츄할 수 있다. 이런 순수한 경험에 의지해 완벽하게 실재를 재현해놓는 것이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대표적인 화가는 얀 판 에이크와 페트뤼스 크리스튀스가 있다.

 

15세기 후반

15세기 후반에는 인문주의적 태도에 따라 자연에 접근하는 에이크식 묘사법이 널리 확산되기 시작하는데 알버르트 판 아우바터르, 헤이르트헌 토트 신트 안스와 같은 미술가들의 작품에서 보여진다.(책에 실려 있음)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의 영향력을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아라곤 왕 알폰소 치세에 스페인이 나폴리를 통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사항으로 적어둠)

 

 

 

 

 

밀라노 르네상스에서 초기 고전주의 미술까지

르네상스 미술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거장들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미켈란젤로로 이들은 동시대인들에게조차 거장대우를 받았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따라오는 수식어 -가장 위대한 미술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해부학자이자 식물학,지질학,심지어 항공학의 태동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한 자연과학자라는 명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으로 인해 레오나르도 사후 이탈리아는 찬란한 예술의 절정에 다다르는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책은 이렇게 전성기 르네상스까지의 르네상스 미술을 인문주의의 재발견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간 미술서이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르네상스 미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기꺼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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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 마흔에 다시 읽는 동양고전 에세이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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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어도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면..... 흔들림을 잠시 멈추고 마음을 다듬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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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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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고, 별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등을 대고 누워서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별은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것일까.“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중

 

 

우리 곁에는 언제나 하늘과 별과 달이 있다. 나 같은 일반인은 하늘과 별과 달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만 물리학자들은 하늘과 별과 달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밝히려 노력한다는 점에서부터 차별되는 것 같다. 물리학자처럼 생각하기.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수학을 싫어했고 자연과학과 친하지 않았던 내가 최근 자연과학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느낀 점이 바로 이 사고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었다. 창의적인 사고의 시작이 남과는 다른 사고에서 출발하는 why?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물리학자들의 이런 원초적인 질문은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비밀을 밝혀낸 뉴튼이나 낙하하는 물체를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깨달았던 갈릴레오, 일정한 속도로 상대운동을 하는 모든 관측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특수상대성이론으로 현대과학의 새로운 장을 연 아인슈타인의 공통점은 바로 물리학자들이 물질을 바라보는 특별한 사고 메커니즘의 결과이다. 그것은 바로 why? 의 발단이다. 

 

 

이 책은 그런 ‘물리학자처럼 생각하기’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기존의 다른 자연과학책과 차별된 점은 우주를 의인화하여 접근하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시작은 무척 낯설게 시작된다. 스스로 우주와 한 몸이 되어 우주를 탐구하는 것 자체가 매우 독특하고 신선하다. 또한 저자는 우주를 멀리서 관찰하는 관찰자 입장으로서 우주를 만나도록 안내해주며 물리학자처럼 생각하는 사고로 이끌어주고 있는데 이런 독특한 서술의 중심에는 ‘모든 것의 시작’에 대한 호기심의 원천이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멀어져가는 은하들은 우주가 더 작고, 뜨겁고, 조밀했던 시절을 가리키고 있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모든 사람들, 모든 행성들, 모든 별들, 모든 은하들-은 빅뱅에서 만난다.

 

 

 

저자는 지구의 탄생에서부터 '우리'에게로 향하는 45억년의 여행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 시간 동안의 여행이 아니라 그 전의 역사, 즉 수많은 별들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격렬한 핵반응을 통해 융합된 수많은 원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우주 안에 있는 수천억 개의 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우리의 몸 역시도 무수히 많은 원자들의 배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조차도 별의 중심에서 만들어져 수 세대의 별들을 거쳐 온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여행을 거쳐 온 원자들이 지구가 만들어진 우주 공간에 모였고, 우리는 그 원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우리의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은 무한히 작은 곳에서 다른 모든 원자들과 함께 있었고, 이 창조의 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137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마디로 우리의 기원을 알기 위해선 137억년 전, 즉 빅뱅의 순간으로 날아가야 한다. 빅뱅의 순간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우주 공간에서 빅뱅의 증거들을 찾아내었고, 결국 137억년 전에 빅뱅이 일어났음을 확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우리가 시작한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순간이다.“-T.S엘리엇-

 

 

우주생물학자이자 천문학과 교수인 저자 크리스 임피는 ‘과학 대중화에 가장 공이 큰 학자’로 선정되었으며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매우 독특하게 우주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강의라면 모르겠지만) 다소 산발적으로 쓰여 진 느낌이라 상상력에 한계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우주를 색다르게 바라보게 하고 태초의 우주와 우리의 시작을 말하는 저자의 독특하고도 철학적인 우주세계관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우리의 기원을 찾기 위해 구구절절 자연과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진짜 우주를 보여주려 하는 시도는 무척 신선하기도 했다. 단지 내가 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읽어나가야 했다는 것이 매우 독특했던 시간여행이었다.

 

 

일부 끈이론가들은 끈이론의 복수 해법 하나하나가 실존하는 각각의 다른 우주를 대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수학적 계산에 의하면 다중우주들을 여행할 경우, 우리는 우리 우주와 똑같은 우주도 발견할 수 있다.

 

저자의 시간여행으로 빅뱅과 만나지만 빅뱅이론의 탄생과 함께 단 하나의 우주라는 패러다임을 버림으로써 우주는 새롭게 다중우주의 가능성이 펼쳐지고 있다. 며칠 전 나로호 성공발사로 우리나라도 우주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만약 다중우주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들이 존재하고 우주의 한 곳에서 지구와 유사한 행성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어쩌면 우주비행선을 타고 여행을 다니는 시대가 될 날도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시작일 뿐이다. 오늘의 진리가 내일은 진리가 아닐 수 있듯이 다중우주론 또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물리학자처럼 생각하는 why? 로 시작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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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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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복수하기 위해 보낸 판도라의 상자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불행은 바로 ‘시간’이다. 이후 인간들이 시간의 가치를 전혀 모르게 되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을 의미하듯, ‘시간’의 소중함을 자주 잊고 살기에 불행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야말로 얼마나 정직한가.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집착하고 싶고 가질 수 없기에 더 욕망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시간만 되면 가슴이 콩닥거렸던 기억이 난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 왔으면 모르겠지만, 시험공부를 한다며 책을 펴놓고 잠이 들었을 때는 더욱 시험이 두려워진다. 그때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타임머신 기계를 타고 하루 전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은 한 번 쯤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시험지가 돌려질 때 그런 간절함은 더욱 커진다. 컨닝페이퍼라도 만들걸 하는 생각도 들고 친구의 답을 몰래 컨닝하고 싶을 정도의 떨리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시험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시험볼때마다 왜그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그때 아마 시간가게가 있다면, 나 역시 윤아처럼 시간을 사고 싶었을까?

 

시간과 행복한 기억을 바꿀 수 있다면?

 학교만 그만두면 시험 같은 것은 안볼 줄 알았다. 그러나 , 숱한 시험을 거쳐 지금이라는 시간에 다다르며 인생의 반을 지나왔어도 인생은 마치 평생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경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끊임없이 시험경쟁을 달고 사는 것보면 어른들의 삶도 아이들 못지 않게 팍팍한 것 같다.  더우기 지금처럼 치열한 입시 경쟁위주의 교육 세태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학부모들까지도 경쟁태세로 몰아 붙이기에 숨쉴 틈이 없다. 학교수업보다 학원 과외수업이 더 중요한 수업이 되어 있는 학교 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시간가게》의 살풍경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지금 내가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충분히 어림짐작 되었다. 아마도 지금 아이들에게 시험이란, 미래의 목표를 위한 경력의 일부분으로서 강압적으로 강요되는 의미일 뿐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윤아의 가정 또한 그런 현실의 팍팍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더욱 억척스럽게 변한 엄마에게 유일한 행복이란  윤아가 국제중학교에 입학하는 것뿐인 것도 어쩌면 팍팍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하루 종일 신발이 닳도록 발품을 팔고 집에 들어와서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오로지 윤아의 성적이라고 해도  윤아엄마를 탓할 수만은 없다. 현실의 팍팍함 속에 아이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이야말로 윤아엄마에겐 전부이다. 비록 엄마와 윤아가  '성적지상주의'에 빠져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산다고 해도 사회적 약자로서의 선택은 결국 성적밖에 남지 않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결국 행복은 성적순이 되었다. 엄마의 그런 보상심리를 이해하는 속깊은 아이 윤아가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전교 1등이라는 성적에 집착하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달리  늘 2등에 머무는 윤아의 성적. 그런 윤아 앞에  나타난 시간가게 할아버지는 마치 달콤한 솜사탕과도 같은 유혹이었을 것이다.

 

“이 시계가 하루에 십 분의 시간을 내 줄 거야. 시간을 사는 방법은 아주 쉬워.

돈은 필요 없다. 넌 행복한 기억을 하나씩 주면 돼. 어때, 나와 거래를 하겠니?”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덜컥 시간가게 할아버지와 거래를 한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하나씩 주어야 한다는 의미를  이해 못한 채 십분의 시간을 유예하는 것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주어진 십분과 맞바꾼 행복한 기억은 윤아에게 전교 1등이라는 행운을 준다. 1등만 하면 엄마가 기뻐할 거라 여겼던 윤아는 엄마의 기쁨이 잠시일뿐 이어진 엄마의 욕심으로 인해 영어 인증시험 준비를 채근당하고 더 잘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강박증에 빠지고 만다. 친구의 답을 베껴서 전교 1등을 하고 학교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다현이와의 행복했던 기억조차  잃어버렸건만 엄마는 행복해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준비물을 내 것으로 만들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누었던  비밀의 추억조차 시간과 바꾸어버린다. 

 

이렇게 기억을 지운 윤아는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시계가 작동하지 않자, 시간가게 할아버지를 찾아가는데 할아버지로 부터 진정으로 행복한 기억이 아닐 때는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보려 애쓰지만, 자신의 행복이 자신을 위한 행복이 아닌 바로 '남'을 향한 행복, 즉 만들어진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남'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윤아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기억들은 이미 시간과 바꾸었고 시간과 바꾼 처음의 기억들이야말로 진짜 '나'의 기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시간가게를 다시 찾는다.  이번에는 '행복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 그러나, 시간과 맞바꾼 기억은 이제 더이상 자신의 기억이 아닌 타인의 기억이었다. 기억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들어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누구의 기억인지도 모를 기억들로 윤아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머리로 만들어 낸 행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어야지. 행복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시간만 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과거도 현재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엄마 말처럼 미래에 해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타인의 기억에 믹스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윤아는 처음으로 '자아찾기'에 몰입하게 된다. 한번도 '나'인 적이 없었던 아이, 공부는 잘하지만 매력없는 아이, '오로지 1등만'을 위해 달려오느라 친구하나 사귀지도 못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행복찾기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시간이다. 이런 고민은 아이들에게 진정한 '자아찾기'의 시간을 만들어준다. 선생도 부모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찾아야 하는 '시간'과 '행복'이 알려주는 삶의 진정한 가치이다.

 

나는 이 책이 무엇보다 소중한 , 그러나 쉽게 잊혀지는 '시간'과 '행복'의 진정한 가치를 떠올리게 해주고 있음에 감사하다.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체제에 내몰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게 한 것은 누구탓도 아닌 바로 우리 어른들 탓이다. 그 안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란 바늘 구멍에 낙타 들어가는 것처럼  힘이 드는 문제이다. 윤아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는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윤아의 보여진 이미지 그대로 '공부만 잘하지 매력은 없는 아이'가 바로 지금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윤아가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행복'을 떠올리며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이 두가지의 가치들을 일깨워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수 있겠다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도 똑같은 입시지옥을 겪었지만, 지금과 같이 무한경쟁체제는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의 교육정책으로 인해 아이들이 벼랑끝에 몰리고 있지만, 딱히 대안이 없다는 것도 가장 큰 문제이다.  그래도 우리 세대에는 감성이 살아있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인간적인 감성들을  배울 수 있는 윗 어른들과 친밀한 소통이 가능했던 세대였다. 그런 사회적인 관계로 인해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많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세대의 팍팍한 삶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도 모자라 시간을 사고 싶을 정도로 시험성적에 내몰리는 수많은 윤아들을 생산해냈다. 시간가게의 윤아가 그래서 더 애잔하고 애틋한 이유이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어른인 우리들은 무엇을 , 어떻게, 어디서부터 가르쳐주어야 할까? 어른으로서 많은 반성과 고민을 불러 일으키며 진정한 교육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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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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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상이 점점 복잡 다단해짐에 따라 그에 따른 구성원인 사람들도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점점 타인을 이해하는 폭은 좁아지고 타인과의 벽은 점점 두꺼워진다. 착한 사람들도 많지만 악한 사람은 더  많은 세상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일단은 의심부터 해야 하는 세상이니 앞으로는 더욱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듯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타인이 착하든 나쁘든 높은 벽을 쌓는 편이다. 처음부터 타인에게 벽을 쌓지는 않았지만, 워낙 세상이 다면적이고 사회 생활을 하면 할수록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증명은  그런 인간이란 존재자체에 대한  다면적이며 본성에 대한 세밀한 탐구를 보여준다. 

 

 

 

 

무네스에 고이치로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미워한다. 인간이란 동물은 누구나 파헤쳐보면 '추악'이란 원소로 환원된다. 아무리 고매한 도덕가, 성숙하고 덕망 있는 성인의 가면을 쓰고 우정이나 자기희생을 역설하는 자라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기 보신의 주판을 튕기고 있다.

 

<인간의 증명> 이야기의 시작은 한 흑인이 비지니스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다. 어느 사건에도 동기가 필요한 법. 사건을 맡은 무에스네 형사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과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살해당한 흑인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단서는 오로지 낡은 밀짚 모자 하나뿐이었다. 사건을 맡은 무에스네 형사는 네 살때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면서 인간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미군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보았던 무에스네에게 인간이란 악한 존재이다. 무에스네의 이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품과 본능은 사건을 해결하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완벽한 한 가정의 한 여인이 있다. 젋고 아름다우며 여성 평론가로 명성과 부를 얻었을 뿐아니라 남편의 정치적인 지지대 역할까지 하여 완벽한 현대여성의 대명사가 된 야스기 쿄코는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일 정도로 완벽한 여인이다. 이런 아내의 유명세로 더욱 잘나가는 정치인 남편 효헤이와의 사이에 모범생아들 쿄헤이와 착한 딸 요코가 있다. 화목한 가정일 것만 같은 이 가정은 보여지는 모습과는 반대이다. 현대 사회는 부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소설속의 야스기 쿄코는 성공이라는 미명아래 물질에 물들어있으며 물질이 중심인 삶을 사는 가정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야스키 교코와 대비되는 불행한 가정의 한 여인이 있다. 남편의 병수발로 호스트일을 했던 후미에가 돌아오지 않자 남편 오야마다는 후미에를 찾아 나선다. 실종된 후미에게 내연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실종되는 마지막 장소에서 곰인형을 발견하게 된다. 곰인형에 묻은 후미에의 혈흔으로 내연남과 남편은 적이지만 동지로 연인이자 아내인 후미에를 찾아 나선다.

 

서로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진행되지만, 무네스에의 집요한 추리와 직감으로 인해 세 가지의 사건은 한 개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 병든 사회의 한 단면을 담아 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하나 같이 비정할 뿐만아니라 잔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사회에 서서히 번져나가면서 생기는 사회의 다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역시도 정이 사라지고 물질(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돈 때문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사회가 되었다. 비록 이 소설이 1970년대 쓰여졌지만, 인간의 비정함과 현실의 잔혹함을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밀짚 모자를 가슴에 품고 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오는 흑인 아들 조니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마음이야말로 조니가 인간이라는 증명과 마찬가지인 정情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세상을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무네스에의 냉혹한 시선처럼 인간 본성에 대한 냉혹한 시선이야말로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다면적인 인간이지만 인간을 증명할 수 있는 단 하나, 인간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정情 이란 것은 이런 비정한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존재한다. 비록 인간의 증명에서 보여주는 현대사회가 비정할지라도 그런 일그러진 면들 또한 세상의 한 부분임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볼때 비로소 희망이라는 것이 생긴다는 것을 형사 무네스에에게 느낀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증명은 , 즉 정이란 있는 그대로의 비정한 세상을 이해하게 될때  더욱 가치있고 소중해지는 이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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