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 500년 미술사와 미술 시장의 은밀한 뒷이야기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외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아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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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읽다가 그림값에 억 ~! 소리가 절로 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과 기수> 같은 그림들은 솔직히 누군가의 낙서 같았고 라파엘로의 <뮤즈의 두상> 은 색다를 바 없는 종이위에 그린 흔한 목탄화 같았다. 너무 평범해 보이는 그림들이 수십억은 호가하는 예술품이라는 데 호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품은 괴테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단은 그런 호기를 접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모아놓은 가상의 미술관이라는 타이틀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이 책안에 담아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기준점은 최고가의 작품 순차순은  아니다. 진짜 최고가의 작품에는 피카소의 작품만 무려 17점이 되기에  한 예술가의 한 작품을 뽑아 시대순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개괄 정리하여  각 시대에 유행하는 풍토와 화풍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돋보이는 미술책이다. 그런 시대 개괄적인 배치는 그림이 가진 가치와 미래를  반추하고 있어  책에 실린 고가의 그림값이 수치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시대의 유물인 동시에  유장한 역사의 증언자로서의 값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근세미술(16세기)

근세미술은 매우 절제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미술품들이 많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갈수록 색은 점점 원색적으로 변화되고 생동감 넘치며 구도에서도 변화가 보여진다. 자연을 그대로 옮기던 작품들이 르네상스시대로 접어들면서 원근법의 사용이 많아지고 있다.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를 꼽을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과 기수>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그리기 전의 습작이다. 얼핏보면 미완성의 그림으로 보이지만 이 그림으로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과 과학을 접목시켜 그린 밑그림의 과정과 의도를 추측할 수 있다는 데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습작은 레오나르도의 데생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경매가는 12억.  처음에 이 그림이 지나치게 평범해 보인 이유도 그림을 완성하기 전의 습작이었기 때문인데 이 책의 가치는 완성과 미완성의 기준이 아니었다.

 

 

 

<복음서 저자 성 요한>에서 도메니키노는 새로운 감수성에 대한 관심과 취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우선 대각선 구도는 역동적이고 운동감이 있으며 불균형적이다. 기존의 미술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구도이다.  이 작품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18세기 미술과 반종교개혁을 동시에 예고하는 작품이다. 경매 최고가는 17억정도 ^^

 

인상주의 미술 (19세기)

인상파의 대표 화가로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르누아르,드가, 사전트, 모네, 로댕, 세잔, 고흐, 고갱 등을 지칭한다인상주의의 아버지 마네의 그림부터 시작하여 고갱의 그림까지 근세미술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데 19세기의 그림들은 매우 원색적이다. 자연을 그대로 옮긴 근세미술과는 달리 생동감과 순간의 영원성과 같은 찰나의 표정들이 그림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책에는 강렬한 색과 붓끝으로 살려내는 사물의 내적 생명을 표출한 고흐의 <의사 가셰의 초상> 과 현재라는 순간의 독특함을 표현하는 데에 탁월하였던 사전트의 그림<시에스타>,세잔의 <커튼 , 물병, 그릇>등의 그림들이 근세 미술과는 더욱 다채롭고 원색적인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기존 미술이 추구하던 것들을 서서히 깨면서 서양 미술사에 대변혁을 가져 올 것을 예견하는 그림들이라는 것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인상주의 미술에서 기록적인 경매기록을 남기는데 한 몫을 하였다.

 

 

근대 미술(20세기)

근대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는 뭉크, 칸딘스키,클림트, 말레비치, 실레, 피카소 등이 있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인상주의와는 달리 내적인 풍경이자 영혼에 관한 것들이다. 이것은 시대적으로 전쟁을 겪고 난 후의 충돌의 세계의 표현과  실패와 죽음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세계, 곧 무의식의 세계의 발견을 의미한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 <피에트의 결혼>,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베를린의 거리 풍경>이나 피카소의 <고양이와 함께 있는 도라 마르의 초상>,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등에서 이런 세상의 대혼란이 인간 삶의 고독과 부서진 운명이나 무너진 삶의 표현들을 극적인 대조법으로 잘 표현하였다.

 

 

현대미술(20세기 후반)

인간의 삶의 본질(내적인 삶)에 다가가려 하였던 20세기의 노력은 20세기에 새로운 운동으로 나타난다.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등을 앞세워 현대인의 막막한 공허감이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은 새롭게 대두되는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이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몸짓으로 설명되지 않을까한다.  현대 미술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모든 경계선을 허무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내가 본 현대 미술의 특성이다. 현대미술중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데미언 허스트의 <황금송아지>인데  피카소의 경매가를 누르고 당당히 215억원에 낙찰이 되었을 때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작품이다. 최근 데미안 허스트는 동물학대라는 비난도 받고 있지만 현대를 표현함에 있어 허스트만큼 현대라는 본질을 꿰뚫고 있는 예술가는 드문 듯하다.   

 

 이렇게 시대순으로 작품들을 묶어 시대의 특징과 화풍을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시대를 읽는데 가장 큰 유물이다. 그림을 통해 화가는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꿰뚫어보는 시선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은 이런 세계를 꿰뚫어보는 시선에 탁월함이 보인다.

 

 

 

 

점점 허물어가는 육신, 한정된 시간 동안만 움직이게 되어 있는 썩은 고깃덩어리인 우리 육체의 동물적인 실체를 보게 하는 것이다.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가득 채운 거대한 수조 안에 잘린 채로 들어가 있는 동물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보여주고 , 그 허무함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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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걸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0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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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 모옌의 <열세걸음>의  첫장을 펼쳤을때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연상되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혔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을 읽을 때의 느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수 많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혼몽처럼 피어나 읽는내내 몽환 속을 거니는 착각이 드는 그런 느낌. 모옌의 판도라 상자를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인류 문명의 역사가 이야기와 함께 삶을 만들어왔듯이 모옌은 <열세걸음>에서 이야기와 역사가 융합된 스토리텔링 형식의 하이브리드 문학을 선보이고 있다.  러시아 민담중에  참새가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지는데 그 걸음을 볼 때마다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행운이 주어진다고 한다. 건강, 명성,아름다운 외모등 열 두가지 행운을 안겨주지만  열 세 번 째 걸음을 보게 되는 순간 앞서의 모든 행운이  곱절의 '악운'으로 바뀐다는 열세걸음의 민담을 바탕으로 분필을 씹어먹는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한 걸음의 시작이다. 

 

리교사 팡푸구이가 수업중에 교단에서 쓰러진다. 팡푸구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하였지만  교장은 팡푸구이를 과로사로 처리한다. 열악했던 물리교사들의 인권을 위해  한 개인의 죽음을 인도주의로 승화시킨 것이다. 팡푸구이는 평범한 교사에서  인민의 영웅이 되고 사회에 중년 교사들의 건강기금설립을 위한 운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선구자가 된다. 살았지만 죽은 자로 장례식장 아름다운 세상시체 냉동실에 놓이게 된 그는 정신이 돌아오자 살아있는 자로 세상에  돌아가지만 그곳에서 그는 다시 죽어야만 하는 자가 된다.

 

너는 몹시 슬펐다.

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너는 동료 교사의 집 문을 두드렸다. 

 

팡푸구이와 벽 하나 사이의 이웃이자 같은 학교의 물리교사 장츠추에게는 시의 모범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로 일하는 아내 리위찬이 있다. 그러나, 늘 그녀에게서 나는 죽음의 냄새는 그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좁디좁은 집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름다운 장모가 부엌의 반을 차지하고 누워있고 아이 둘은 벽장에서 지내고 좁은 침대에 살며 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무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도 아름다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모가 늙어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은 장츠추에게 어떤 인생의 무상함 같은 것이라, 장츠추는 언제나 장모를 풍류미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장모를 보며 장츠추도 대변이 새는 병을 앓고 있는데 아마도 장츠추의 이런 병은 아내를 거부하는 좋은 방어막이 되어준다. 어쩌면 모든 것에서 장츠추는 이미 삶의 모든 부분을 상실한 잉여인간이다. (1980년대 중국에서 교사는 사회적으로 반동분자의 기질로 분류되어 사회에서 '아홉번째 계급'이라는 취급을 받았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 장츠추는 당시 지식인 계층을 상징한다)

 

  그런 장츠추에게 아내이자 모범노동자이며 장의사의 특급 장례미용사 리위찬은 장츠추에게는 벅찬 아내이다. 아내는 불의와 타협하는 일이 능했으며, 시체를 성형하여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전애인이였던 왕시장의 입안에서 금니를 빼서 팔고, 지방을 빼내 맹수의 먹이로 사육사에게 판다. 리위찬은 자신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멀리하는 장츠추를 대신해 자신에게서 냄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요구를 하는 모든 남자들을 품는다. 소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나면 '아름다운 세상'에 잠들길 소원하지만 그곳은 '인민의 영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례식장이다. 그곳에서는 리위찬이 최고의 권력자이며 혁명의 상징이자 공산주의 정신의 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혁명의 간부들에게만 주어지는 죽음의 특권이기에  살아서도 지난한 삶을 면치못하는 인민들에게는 죽음도 녹록치가 않다.  

 

 다시 살아 돌아온 팡푸구이에게 리위찬은 장츠추로 성형하여 예전의 물리교사로 만들고 자신의 남편 장츠추에게는 장사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인민의 계급과 신임이 두터웠던 리위찬은 사회의 요구를 대변하여 이들을 개조시키는데 이들의 모든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첫 걸음이다. 

 

팡푸구이의 아내 투샤오잉은 러시아인의 피가 절반은 흐르는 혼열2세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사이가 좋았을 때는 이런 혼열이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 다른 노선으로 등을 돌리자 투샤오잉의 출신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게 된다. 사범대학의 우등생으로 러시아어를 전공한 그녀는 중국에서 토끼 가죽 벗기기 담당 일을 하고 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 팡푸구이가 장츠추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자 투샤오잉은 옛날 속담처럼 자신을 시험하러 온 귀신이라 생각하고 쫓아 보낸다. 아내를 위해 장츠추의 얼굴을 하였던 팡푸구이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리위찬에게 예전의 얼굴로 돌려놓길 바라지만 ,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러시아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들킬까봐 늘 불안하였던 투샤오잉은 살아남기 위해 인민간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 예정된 비극의 수순을 밟아 간다.

 

이렇듯 이들이  한 발 한 발 디 딛는 발걸음은 러시아의 민담처럼 차근차근 예정된 비극적 파국으로 치닫는다. 중국의 지식층들의 불우한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소설의 배경은 중국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전이다. 마오쪄둥 시대에 지식인들을 반동계급이라 칭하여 변방으로 내몰았던 것처럼 한 칸짜리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물리교사의 삶은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실제 모습이다. 서술자를 통해 보여주는 마오쩌둥에 대한 체제에 반발심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시험지에 4인방의 이름을 쓰는 시험지, 계급사회에서 살아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인민들은 죽어서도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장례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으로서 중국의 이원적 체제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체제가 혼합된 사회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의 불안은 어느 쪽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여 기형적인 삶의 형태로 변형되어 간다.  

 

 이들의 이야기 중간 중간 삽입된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이고 엽기적인 이야기들인데 바로 이런 중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보여주는 데에 탁월한 연상 작용을 한다.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삶의 본질에 파고들어 현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기묘묘한 이야기처럼 등장인물들 모두가 이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선이 없이 몽환적인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고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서사는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몽환의 느낌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는 중국 현실속에서 인민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지난한 삶의 맛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인민의 존재만이 사회에서 가치가 있으며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돈을 버는 일(상업)이 더 중시되자 개인은 사라지고 사회체제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서 이들은 서서히 '개인'이라는 독립성과 주체성을 상실해간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나'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페르소나를 쓰게 된 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의 복잡한 시점처럼 '나'가 사라지고 모두  '너'나 '우리'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게 된다. 팡푸구이가 자신이 아닌 장츠추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장츠추가 도시의 떠돌이로 내몰리고  혁명의 꽃인 리위찬이 돈에 의해 타락해가는 모습이나  투샤오잉이 몸속에 흐르는 러시아의 피를 부정하고 중국 인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들은 하나같이 '나'라는 '자아'를  잃어버린 후 겪게 되는 비극의 몸부림들이다.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페르소나를 쓴 뒤의 삶은 모두 예정된 수순처럼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자아를 상실한 이들의 삶은 비단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비극을 보여주는 묘파이다.<열 세 걸음>은  기존에 접해 본 적이 없는 색다르고 독특한 느낌의 문학이었고 첫장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모옌의 판타스틱한 이야기들은 마치 인간에게 금지된 판도라 상자를 열어본 기분이다.  희망이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닫혀 버린 판도라상자 안의 온갖 불행들이 우리의 삶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고 있음을 본다.

 

혁명의 시대에는 선혈이 흐르다 못해 강물을 이루었기 때문에 눈물 따위는 아무 가치도 없었다.-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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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타임POP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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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글쓰기 책들도 가끔씩 찾아 보게 된다. 요즘은 말보다 글로 쓰는 것이 더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글은 이제 곧 대화가 된 것 같다. 내가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책>을 구입한 것은 물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 이 책을 다 베껴 쓰고 나서 느끼는 것은 내 습성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8할은 책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방향을 잡지 못했을 때, 삶이 불안할 때, 부족함에 허덕일 때, 인생의 첫순간에 항상 책에 의지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책읽기가 졸업 후 직장에서 살아남는 비법의 책읽기가 되어 각종 자기계발서에 심취했었고 첫아기의 탄생의 경이로움과 연결하여 바로 각종 육아서적에 탐닉하였다가 이제는 다양한 세상을 책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그런 인생의 나침반 같았던 책읽기를 늦깎이 수업이라도 되는 양 읽기에서 쓰기로 전환된 책읽기를 하고 있다. 책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책읽기의 완성이 글쓰기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나 역시도 책을 읽다보면 잘 이해가지 않았던 부분이 글쓰기를 하면서 이해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오히려 글쓰기가 책을 더 잘 읽게 도와주고 있기에 책읽기와 글쓰기는 연결 지어서 하는 것이 독서향상에는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글쓰기를 하다보면 자신 스스로의 벽에 부딪힐 때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이 눈에 띄었을 때는 솔직한 심정으로 깊이 없는 책이라 생각하고 무심히 보아 넘겼던 것 같다. 아마도 오만이었겠지만, 사람이 절박해지면 생각이 달라지는 법인가보다. 글쓰기에 대한 무언가 알 수 없는 절박함이 느껴지자 이 책이 새로 보이는 것이다.

 

시의 앞날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어쩌다 눈에 번쩍 띄는 시를 한 편 만났을 때, 짝사랑하고 싶은 시인이 생겼을 때, 당신은 꼭 베껴 쓰는 일을 주저하지 마라. 그러면 시집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당신의 가슴 한 쪽으로 날아올 것이다.-안도현 시인-

 

 

저자는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1,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

2,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은 사람

3,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그런 이유에 선택하게 되었는데 베껴 쓴다는 것은 확실히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작가처럼 되기 위해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의 편린들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처럼 다가온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느낀 베껴 쓰기의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저자 명로진은 현재 심산 스쿨에서 ‘인디라이터반’을 맡아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몇해동안 글쓰기를 강의하면서 아쉬움 점들이나 느껴왔던 점들을 정리하여 책에 실었는데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라 글쓰기의 기초를 다지기에는 무척 훌륭한 책이라 생각된다.

 

 훌륭한 작가들의 글(김용택,김탁환,공지영,김연수,한비야,장영희,성석제, 신영복 등)을 30장으로 나누어 베껴 쓰기 교본으로 실어 놓았는데 하루에 한 장씩 한 달 분량으로 조금씩 연습하고 보니 글쓰기에 관한 열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베껴 쓰기 한권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쭉 필사를 해보고 싶다. 그래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필사해보기로  하였는데 역시나 좋은 느낌이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잘 읽는 것도 중요하다. 베껴 쓰기는 이 두가지 모두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누구라도 이런 소망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하지만 읽기만 해서는 안되고 꼭 베껴 써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신영복의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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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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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광기는 곧 정신병으로 간주된다. 수많은 범죄자들의 원초적인 문제를 이 광기의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수 많은 병명이 탄생했고 수 많은 약물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인류가 오랫동안 정신병을 연구하고 치료되고 있다고 믿는 이 정신병이 근래에 들어서 더욱 기하학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이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에는 가짜 환자 맥머피가 등장한다. 노동자였던 그는 편한 생활을 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택하여 들어갔지만, 거기서 그는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자행되는 전기충격과  뇌 전두엽 절제술로 망가져간다.  <광기>의 저자 대니언 리더는 이것이 비단 문학에서 존재하는 상황이 아닌 현실의 정신의학의 치료법이라는 사실과  다양한 실험사례와 연구를 통해  광기(정신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현대의 정신치료법이  의료기관이 믿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개념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각 개인의 내면과 신념을 진지하게 여겨야 하며 일반적인 세계관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식의 치료는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사는 세상의 이해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 이래로 광기는 창조성과의 관계에 중요시되어 왔다. 플라톤은 신에 의해서 주어진 것 중에서 광기는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개인의 특성과 가치가 한 가지의 통일된 행동규범의 교육을 주입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규범을 벗어난 행위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탈개인화로 인지되어 평범하지 않은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정신병으로 내몰고 있게 된 것이다. 개인이 사라지게 된 현상은 정신영역에 큰 영향을 주어 정신의학계가 내놓은 치료법이란 미리 결정된 결과와 겉보기 행동, 소위 정상화(normalizaion) 에 집착하며 환자들이 가진 개개인의 가치관과 규범을 침범하고 환자가 속한 문화와 역사를 깡그리 무시한 채 진행되는 치료법이 정착한 것이다.

 

정신의학 초기의 치료법은 대체로 뇌의 상위 기능(higher function)’을 파괴하거나 심각하게 손상하는 치료법이었는데 이것은 뇌를 때려 눕히고, 기억을 망가뜨리는 것이 당시 치료의 목표였다. 이런 약물 치료법은 초기에 의사들에 의해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으나, 아이러니 한 것은 오늘날 정신병치료를 받게 되는 환자들은 5배나 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에 대해 데이비드 로젠한의 연구를 살펴보고 있는데 가짜 환자 8명이 정신병으로 입원을 요청하여 의사들로부터 정신분열증진단을 받고 일주일을 입원한 후 분열병 완화판정을 받은 뒤 퇴원하였다. 이들에게 처방된 알약은 무려 2,100.

 이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과 정신병과 정상인의 기준자체가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책에서 다룬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저자는 미친 사람을 진단하려면 겉보기나 정상화된 행동으로 진단해서는 안 되고 그가 가진 생활사를 들여다 보는 것만이 유일한 진단방법이라고 한다.

 

라캉에 따르면 몸, 언어, 시각적 이미지는 세 가지 차원으로서 함께 삶에 안정감을 주고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세 가지 차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 각 차원이 삶에 간섭하고 삶을 파괴할 수 있다. 라캉은 이 영역들을 상징계”,“상상계”,“실재계라고 불렀다. 상징계는 언어와 법의 세계이며, 상상계는 몸 이미지의 세계이고, 실재계는 몸의 리비도 흐름으로서 소름끼치는 흥분과 자극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그러면 세 가지 차원이 어떻게 연결될까? 세 가지 차원과 정신병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43p 

 

저자는 라캉의 세 가지 차원의 개념(상징,상상,실재)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서 나타나는 종류 -편집증, 분열증,우울-의 원인과 증상을 살펴보는데 리비도의 흐름에 따라 병의 종류가 나누어진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증상 신경증과도 구별되는데, 저자는 책에서 신경증과 정신병을 구분하여 치료하는 방법이 가장 시급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본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외국공포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배경은 정신병원이다. 수많은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고 수술대를 둘러싸고 뇌수술을 당한 후 충격으로 살인마가 된다는 설정 또한 공포영화의 흔한 소재이다. 이 책에 나온 실험사례들이나, 정신병자를 면담하면서 나눈 대화들이 바로 이런 정신병원에서 받은 인권 침해로 인해 정신병이 더 심화된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또한 대부분이 심리적인 요인이 발단이 되어 정신병이 표출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심리적 요인의 정신병을 뇌수술로 치료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 끼워진 단추인지 모르겠다.  이렇듯  정신의학에서는 소위 '광기'를  정신병과 동일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광기는 곧 정신병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온 것이다. 이 부분은 정신과학부분에서 인류가 처음부터  발을 잘못 들여놓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생학을 내세우며 자행된 나치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떠올려보면 현재 정신병자들에게 자행되는 치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광기는 인간의 창조성과 개인이라는 특별한 존엄성에서 출발한다는 믿음으로 출발하며 광기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신병의 잣대로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임을 명시하고 있다. 나 역시도 정신병하면 사회의 범죄자를 떠올리곤 하였는데 이 책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누구에게나 조용한 광기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그 광기가 어떤 식으로 표출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정신병과 신경증으로 나누어지며 그에 따른 치료법도 달라져야 한다. 대니얼 리더는 이런 정신병에 대한 탐구가 없이 하나의 '병病'으로만 치부되어 천편일률적으로 치료되는 것을 하나의 인권침해로 보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치료가 처방이 아닌 인간 내면의 고유성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치료로서 정신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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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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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작가의 글은 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운 향수처럼 아련해진다.

작년 박완서작가의 타계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 것이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농담>,<그여자네집>,<너무도 쓸쓸한 당신>,<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미망>,<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 등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박완서 작가의 글 전체에 흐르는 주체적인 여성성 때문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로 박완서 작가를 꼽고 있지만, 나는 박완서 작가의 글에 담긴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냄새가 좋다. 박완서 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보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어머니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하면 어머니가 가장 먼저 연상되곤 한다. 《세상에 가장 예쁜 것》이 책은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직접 체험하며 그 안에서 삶의 혜안을 얻어 써내려간 글들이다. 이 글들을 읽다보면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여성성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모성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원초적인 본성임을 자각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글은 어머니이다.

 

 시골 깡촌 에서 살면서 무지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 자식들에게는 무지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 도시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공부를 시켰던 어머니처럼 내 어머니도 배움에 악착 같으셨는데 안그래도 없던 집안 형편이 자식 넷이 대학에 들어가자 더욱 빈궁해졌다. 대학등록금이 감당할 수 없었음에도 어머니는 김밥장사를 하시고 급식소에 빵을 대주기도 하시고 어떤 날은 떡 장사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으셨다. 끼니를 굶으시면 서도 학교는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늘 가슴 한켠에 머물러 가슴을 아리게 한다. 세상의 어머니들의 마음이란 자식을 향한 영원한 짝사랑처럼 홀로 내리는 사랑이다.

 

 

어머니는 말씀도 무척 잘하신다. 달변가이시고 재미있으신 분이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재치와 지혜 가득한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는데 박완서 작가는 <이야기의 힘>에서 80세가 되어도 젊다고 생각한 이유를 ‘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한다. 이제 70이 다되어가는 어머니가 한번도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이유가 아마도 이런 이야기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만난 어머니는 더이상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마도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하여 젊음도 사라지신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쩌면 나도  어머니가 항상 젊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야기의 힘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어머니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봐야겠다.

 

이 책에는 박완서 작가의 젊은 날의 고뇌와 고통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전쟁으로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난 젊음을 ‘막 베틀에 올라앉아 나만의 무늬를 짜기 시작하려는데 어떤 날카롭고도 잔인한 칼이 내 인생의 피륙을 싹둑 잘라버렸다면 어떻게 그 사실을 승복할 수 있겠는가’ 라며 전쟁의 비극을 말하고 사별의 고통을 시간으로 치유되는 순간을 경험하며 시간이야말로 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가장 박완서 작가다운 삶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관록의 문체가 아닐까한다.

 

책의 제목《세상에 예쁜 것》을 본 순간 아기를 떠올렸다. 세상에 예쁜 것! 이라는 찬사와 감탄은 아이를 본순간 터져나오는 함성이다. 세상에 예쁜 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찬사이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느낌이 있다. 위에 말한 대로 어머니라는 상(像)이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어머니라는 오브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명해지며 여성의 권리로, 양성 평등으로 그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모성을 가진 여성상 즉, 어머니로서 부각되어 다가온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미젖을 찾는  새끼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아기의 생명력은 임종의 자리에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찬탄이 절로 나왔다.-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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