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 김말봉 애정소설
김말봉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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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가장 인기를 끈 대중소설.

한국 근대 여류소설가 김말봉의 대표작.

  

30년대 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 궁금하였던 소설이다. 문학으로 따지면 거의 고전문학이 아닌가. 게다가 애정소설이라는 타이틀 또한 궁금하였다.  30년대는 아무래도 자유연애 사상이 퍼지기 전이었고 이데올로기가 공존하는 시대였으며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복잡한 시대였기에 그 시대의 사랑이야기는 그야말로 미증유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유정의 <봄봄>이라든지, 이상의 <날개>, 현진건의 <빈처>에 나오는 시대로 접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전혀 이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의 시대분위기가 그려지는 이유는 30년대 삶의 양상을 비춰주는 대중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찔레꽃》은 얼핏 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30년대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를 형성한 소위 부르주아 계급의 지주 조만호와 조만호의 아들 경구와 딸 경애는 경성유학을 갔다 온 재원들이다. 경구와 경애는 신문물의 혜택 속에서 일반인들과는 다른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고, 그 외 다른 등장인물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서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임금 노동자이다.

 

민수 역시 경성대학을 다녔지만, 풍수해로 인해 농작물이 피해를 입게 되자, 순식간에 땅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서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게 된다. 민수의 집에 불어닥친 우환은 민수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유치원에 다니던 정순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정순은 가정부로 조만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들의 갈등이 시작된다.

 

 

 

 

 

 

저 불 하나하나 아래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슬프고 기쁘고 방금 숨이 넘어가는 사람, 그리고 새로 나오는 생명들! 지금 눈 한 번 깜짝할 사이, 아니 저 바쁘게 돌아가는 일루미네이션. 한 번 깜짝할 동안에 지나는 가지가지의 범죄와 덕행과 미신과 질병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p45

 

 

정순은 사람이란 진실로 소동파의 시와 같이 하나의 부유처럼 힘없고

 슬픈 존재로 생각이 되었다.

 

소설의 축을 이루는 민수와 정순의 사랑은 주변인들에게  일종의 실험을 거치게 된다. 민수를 사랑하는 경애와 정순을 사랑하는 경구, 그리고 청순하고 아름다운 처녀 정순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조만호의 욕심이 갈등을 고조시키고 또 다른 갈등의 축은 조만호와 옥란, 최근호의 갈등이다. 기생 옥란과 근호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였던 연인이었지만, 생활고 앞에서 사랑을 저버리며 조만호의 첩으로 돌아가 근호의 순정을 짓밟는다. 그러나 옥란이 돌아왔을 때 조만호는 이미 정순에게 마음이 있던 상태였다.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속에 오로지 정순만이 찔레꽃처럼 고귀하게 피어있다.

 

30년대 소설이라 그런지 간혹 등장하는 낯선 언어들이 무척 생경한 느낌을 주지만, 어떤 면에서는 토속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분명히 주인공 민수가 남자인데 민수언니라고 부를 때 , 손기정 선수를 손기정 언니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마치 한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연기자의 입모양과 성우의 더빙이 어색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그 시대의 사고와 언어 습관이 풍부하고도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삶의 양상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며 일종의 통속적이기도 하지만 시대고발적인 세태소설로서도 무척 독보적인 작품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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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2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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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다. 첫 만나는 부부들도 있어 서먹한 분위기를 좀 바꿔볼까 싶어 부부의 첫만남에 대하여 대화를 이끌어갔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첫사랑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부부들의 첫만남은 첫사랑과 같은 기대심리를 갖게 한다. 그래서인지 어색했던 분위기가 점차 화기애애해졌다. 서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둥, 솔직히 살아보니 별로라는 둥 하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어떤 이는 자기는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결혼한 것이 억울하다고 하니 다른 친구가 이그 병신, 난 뽀뽀는 하고 결혼했다.” 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보다 한 세대 어린 친구들은 결혼 전 손도 안잡아보고 결혼하는 사람은 아마 듣보잡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시대의 사람이다. 이 책  그레이를 읽으면서 내가 구닥다리 사고를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세상이 온통 젠더화 되고 있다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 최고의 섹슈얼리티이자 핫이슈의 영화는 나인하프워크였다. 이 영화가 보고 싶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왠지 그 영화를 보면 사랑의 느낌을 알 것만 같은 순진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비디오가게에 가서 나인하프워크를 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다른 것은 다 기억이 안나고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장면..이 기억난다. 무척 달콤하게 느껴졌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 그리고 같은 해에 원초적 본능최고의 섹슈얼리티영화의 자리를 탈환할 때는 보무도 당당하게 성인으로서 영화관람을 하였다. 그것도 멋모르고 남자친구랑.. (물론 지금의 남편)..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들어갔다가 남자랑 이 영화를 보러 온 것이 미친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민망과 화끈, 그리고 충격적인 베.....

 

그리고... ..

로맨스소설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내가 읽은 19금 로맨스소설을 통틀어 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그레이다

 

먼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성문화에 대해서 몇가지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내  친구들 중에는 벌써 사춘기 자녀를 둔 학부모가 있다. 친구들이 성교육에 대한 사고는 우리 자랄 때와 비슷하다. 우리가 자랄 때 아무도 피임과 피임주기에 대해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개념은 지금의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들도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이런 피임에 대한 교육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들은 마치 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무슨 금기사항을 말하듯이 한다. 솔직히 나는 왜 성에 대해서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사회면에 늘 대문짝만하게 나는 성 폭행사건이나 성 스캔들은 남의 나라이야기가 아니다.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말하였듯 여배우의 포르노 사건이 터지면 언론에서 앞다투어 비난의 화살을 꽂지만통계적으로 밝혀지는 진실은 대부분의 성인남녀가 그 여배우의  포르노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성이란 드러낼 수 없는 억압된 성이다. 그리고 이 억압된 성은 결국에는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외국문화에서 성이란 밥 세끼 먹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의 하나로 인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성은 욕구되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이다.

 

 

 

 

<그레이>의 남녀주인공들의 사랑은 다소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느낌이 들지만, 이런 엽기와 변태 사이에 그나마 여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희석되어 아름다운 로맨스를 만들어 내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쏙 뺀 갑부 그레이와 가난하지만, 밝고 명랑한 서민층의 로맨스는 그동안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의 구성이다. 그러나, 그레이가 대단한 화제가 되는 것은 아마도 포르노를 방불케하는 성적인 묘사가 아닐까 한다. 읽으면서도 나는 작가가 대체 어떻게 이런 것들을 상상이 가능할 정도로 세세하게 글을 썼을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 경험이 아닐까하는 의심까지도^^;;) 

 

다른 사람의 숨겨진 야심을 잘 찾아내는 사람은 대개 그 자신이 동일한 야심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유난히 남의 욕망이 눈에 잘 들어올 때는 먼저 자기 내면을 조용히 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욕망해도 괜찮아 中에서-

 

 

 나는 비난보다는 성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조금은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성 문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50가지 빛깔의 그레이 같은 음울함이 아닌, 50가지빛깔의 밝고 건전한 성문화가 현사회에 더 필요한 듯하다. 그런 면에서 그레이는 드러내놓고 읽을 수 있는 대중소설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레이 또한 많은 사람들이 혹평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기록들을 갱신하고 있는 것들도 그런 50가지 빛깔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찬사보다는 비난이 많지만, 잘 팔리는 소설.  둘의 사랑은 지나치게 엽기를 동반하고 있지만, 오히려 다른 면에서는 지극히 아름다운 커플이라는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주인공 아나스타샤는 가난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려하는 독립적인 모습이고, 그레이가 지나치게 변태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아나스타샤가 사랑이란 감정을 가르쳐주기 위해 진실된 모습을 보이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 아파하는 부분도 그렇고, 가족과 반목하는 모습이 아니라 화목하고 절제된 가정의 모습을 보이는 부분도 아주 정상범주로서  둘의 사랑을 아름답게 희석시켜 주는 것 같다.  그런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편 <심연>에 기대를  ^^ 1권까지는 거의 황당함에 읽었는데 2권이 끝나니 서운함이 ㅋㅋ 여튼 그레이는 그런 소설이다. 당혹과 에로를 넘나드는 환상적인 에로틱시즘. 최고의 섹슈얼리티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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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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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수식어 엄마들의 포르노라고 했을 때, 설마라는 생각을 했었다. 과거 로맨스매니아로서 웬만한 로맨스는 거의 다 읽어봤기에 고까이거~ 했던 것 같다. ~ ! 그런데 이거 정말 .... 읽어보면 왜 그런 수식어가 붙었는지 알게 된다는 거...관능적이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놀라운 점은 마치 성sex 백과사전 같다. 게다가 이 책은 석 달만에 3천만부가 판매된 경이로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여성들이 광분하는 책이라는 것. 하지만 남자는 읽으면 안 된다는 것. (남자가 읽으면 화낼지도 모르는 로맨스 ^^) 한편으로는 이런 현상들이 여성들에게 오랜 세월 강요되어 왔던 도덕성과 억압된 젠더화 된 성적인 체계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른 자율적인 젠더화로서의 사회 변화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책에 등장하는 남자 '그레이는 모든 것이 완벽한 남자다. 그리스 조각상처럼 완벽한 몸매와 매력적인 이목구비에 피아노도 멋들어지게 친다. 존재 그 자체로 자체발광이다. 게다가 돈도 겁나게 많다. 말끝마다 나 돈 많아를 입에 달고 산다. 이것만으로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기에 부족하다면, 보다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바로 여성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슬픈 구석까지 겸비하고 있다.

 

반면에 여주인공 아나스타샤는 순수한 문학소녀이다. 문학 속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며 스물 하나가 되도록 남자라고는 만나본 적 없으나, 그레이를 본 순간 하트뽕뽕, 가슴콩닥으로 바로 한 번에 가버린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나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단 2초라고 ... 아나스타샤가 딱 그짝이다. 그레이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정신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려 몸과 정신이 분리되기 일쑤이니, 그레이 앞에서 아나스타샤는 맹수 앞에서 움찔거리는 초식동물이었다.

 

그레이에 반한 아나스타샤는 그레이를 만날수록 깊이 빠져들게 되고 그레이는 그런 아나스타샤에게 계약서를 건네주는데, 계약의 내용은 둘의 관계는 절대 비밀이라는 것,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는 관계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괜... 부수적인 항목들에 머리를 도끼로 맞는 충격이 온다. (상상초월 섹스요구사항들이 적혀있다.) 그레이가 이런 이상한 성적취향에 빠지게 된 이유가 1권에서 딱히 밝혀진 것이 없으나, 어렸을 적 성학대를 받았다는 것과 굶주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입양아라는 것등이 아나스타샤가 알고 있는 전부이다.

 

 

 

 

그레이가 요구하는 관계는 주인과 하인이라는 종속관계로 서브미시브(하인)는 도미넌트(주인)가 내린 지시에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즉시 신속하게 복종한다는 것이다.

 

처음 둘의 시작이 워낙 평범하게 진행되길래 속으로는 뭐 이 까짓거 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둘이 계약서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면서부터 시작되는 로맨스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어이상실로 이어지다가 한글자라도 놓칠까 싶어 눈을 크게 뜨고 보게 되는 에로틱시즘이다. 1권은 둘의 밀당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2권으로 들어가는데 궁금한 것은 계약서에 나열된 행위들을 하게 되는지..그게 너무 궁금 ^^(2권에 계속)

 

※경고 :이 책은 19금이 맞습니다. 호기심에 읽어서도 아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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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새로운 조건들 - 사건, 진리, 장소
이정우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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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는 반드시 그때마다 차이가 동반된다. 따라서 영원회귀는 새로운 차이와 함께 되돌아오는 반복이다.‘진보는 이런 영원회귀,즉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성을 그 선험적 조건으로 가진다. 달리 말해 진보는 늘 어떤 귀환, 실재의 귀환이며, 이 실재는 곧 소수자들의 존재=생성이다. 그래서 실재의 귀환이란 지배적인 물적 체제에 구멍을 내면서 도래하는 소수자=되기의 운동인 것이다. 진보란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

 

진보란 무엇일까?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 점차 발달하는 것또는 사물이 점차 나아지는 일을 의미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진보가 적극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부터이다. <진보의 새로운 조건들>에서는 이런 진보의 철학적 사유체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난해하다. 저자는 진보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서 시간과 장소 , 진리의 체계가 이루어졌을 때 역사의 진보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시간으로서의 진보는 역사속에서 반복되면서 특징지어진다. 마치 우리의 삶이 반복으로 이루어지며 그 반복을 통해 시간의 마디의 층위들이 생성되는 것처럼이런 반복의 시대가 복잡한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시간의 반복은 곧 시대의 반복을 말한다. 이제껏 역사속에서 진보가 수많은 사건의 주역이 되었듯이 차이와 반복, 진보와 퇴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 바로 시대라 부를 수 있다. 이런 반복가운데 도래한 차이는 우리 사회를 통제사회/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 전환시켰다.

 

이런 관리사회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자면, 몇 년 전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데자뷰>로 설명된다.  데자뷰에서는 시간의 창이라는 우주에 떠 있는 7개의 인공위성으로 작동되는 관측 스크린이 등장한다. 우주 상공의 인공위성들이 테러 같은 사고나 사건이 발생한 곳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며 사건 당시의 정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계다. 실시간 뿐만아니라 시간의 창은 정확하게 지구 시간으로 4일하고도 6시간 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지구에 위치한 시간의 창 연구소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인공위성의 전송자료들은 분명 실시간인데 그 시점은 바로 46시간 전의 모습들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인공위성에 녹화된 화면들만이 아닌 지난 과거일지라도 연구소에서는 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인공위성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는 바로 관리사회 , 머지 않을 미래 유비쿼터스 관리의 실현이다. 비슷한 맥락의 윌 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마찬가지 사회의 모습이다. 평범한 시민에서 졸지에 범죄용의자가 되자 순식간에 정부로부터 표적이 되어 쫓기는 윌스미스는 자신의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신용카드, 위성, 자동차, 신분증 이런 것들은 윌 스미스가 이미 관리사회 체제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반복 가운데서 도래한 차이는 우리를 통제사회/훈육사회에서 관리사회로 데려가고 있다.

(들뢰즈가 말한 우리들은 관리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관리사회는 감금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리와 실시간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움직여진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사회는 관리사회이다. 영화는 대부분이 현실 사회의 반영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작위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미 몇 년전에 만들어진 영화가 현실이 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렇게 관리사회에서 자연적으로 훈육의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우리는 사실 훈육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현대의 관리사회는 이 복잡한 양상을 , 추상적 파놉티콘(모두 다 본다)을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리사회에서는 타자에 대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소수자되기로부터 사회를 방어하려는 전략과 전술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관리사회에서 소수자란 다수(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력을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저항세력(시민주체)을 일종의 귀환이라는 성격을 가진 소수자로 표현한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란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는 소수자들의 생성/운동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한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진보 개념의 위기는 곧 소수자 운동의 위기이다.

 

진리란 곧 실재의 귀환이다. 실재의 귀환이란 신체와 화폐와 기호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권력의 힘에 맞선 생명과 노동 그리고 주체의 귀환이다. 이 귀환을 통해서 역사는 파생적 반복의 영원회귀에 참여한다. ‘역사적 사건은 맹목적 급류가 아니라 진리와 의미가 깃든 시간, 인간과 역사의 시간, 삶을 이끌어가는 힘으로써의 반복의 강도가 실재의 귀환일 수 있을 때, 진리를 담을 수 있을 때, 역사는 구원과 해방의 뜻을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촘스키는 사회적 변화의 새로운 주역들은 농민들이나, 바아캄페시나, 또는 세계 농민들, 노동자 공동체들이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는 국민이 원하고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일에 투자하는 경영을 한다면 진정한 사회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진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수자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세계를 변화시킨 주역들은 소수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소수자들은 바로 생명과 노동 그리고 주체의 귀환, 즉 진정한 진보라 할 수 있다.

 

위에 말했듯이 이 책은 진보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체계이다. 조금 아쉬움이 남는 점은 지나치게 학술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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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맞선 이성 - 지식인은 왜 이성이라는 무기로 싸우지 않는가
노엄 촘스키 & 장 브릭몽 지음, 강주헌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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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언제부턴가 친숙해진 이름이다. 며칠 전에는 MIT대학생이 찍은 강남스타일 동영상에 등장하여 화제가 될 정도로 일반인들에게도 주목을 받게 된 촘스키 스타일도 있었다.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자 인류 역사상 자주 인용되는 여덟 번째 인물이기 때문인지 촘스키의 저서를 읽어보지 않았어도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름이다. 이 책은 물리학 교수 장 브릭몽과 촘스키의 인터뷰로 장 브릭몽이 질문을 하고 촘스키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장 브릭몽의 질문이 무척 예리하고 날카롭다. 질문은 세 가지 장으로 나누어 권력인간 본성과 이성’, ‘과학과 철학에 대한 촘스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에 대한 시선들은 불안하다.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든지, 사회 변혁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 세계적인 지성인들-석학들은 여러 시스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전혀 다른 대안을 촘스키에게서 볼 수 있었다. 바로 사회주의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면 지금의 혼란을 바로 잡을 주역은 국민밖에 없다.

 

서구 세계의 프로파간다 시스템은 사회주의를 헐뜯을 목적에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동유럽의 프로파간다 시스템은 진정한 사회주의의 매력을 이용해 민중의 지원을 끌어낼 목적에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암묵적인 협조가 빚어낸 족쇄에서 아직도 많은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p53

 

최근에 <코뮤니스트>를 읽고 나서부터 사회주의에 대해 무척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산주의는 어쩌면 매우 혁신적이고 매혹적인 사회 변혁의 이상을 반영한 사회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을지 모르나 , 결국은 실패라는 이름을 남겨준 체제이다. 하지만, 촘스키는 그런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음을 지적한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하여 촘스키는 생산을 비롯해 삶의 여러 부분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제도가 사회주의라고 한다. 이런 사회주의는 이제껏 시도되지 않은 사회주의이다. 미래는 노동자와 일반 시민이 이끌어 가는 사회가 되어야 희망이 있다. 이제껏 모든 체제의 실패는 인간본성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치체제 역시 없었다는 것이 촘스키의 설명이다.

 

 “역사의 어떤 시기에 발달한 특정한 사회제도가 인간 본성의 필연적인 반영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역사와 과학,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특별한 형태로 나타난 심각한 병리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책의 제목 권력에 맞선 이성》 처럼 세 장의 짧다면 짧은 인터뷰를 통해 촘스키의 사상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대담들은 무척이나 무척이나 수준높은 지적인 사유들이다. 그리고 그런 지적인 이성의 바탕은 노학자의 겸허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노벨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겸허함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촘스키 또한 세상의 모든 이치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성을 가지고 있는 세계의 역사와 문명을 짧은 학문에서 말하고자 한다는 것자체가 어쩌면 인류 최고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역사를 살펴보고 더 나은 대안으로서의 미래에 촘스키는 어떤 프로파간다에도 휘둘리지 않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인권과 자유가 꾸준히 확대되어 왔고, 고통과 억압은 꾸준히 감소해왔듯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라는 길목은 유토피아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한 장애물일 뿐이다. 우리가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거나 비관할 필요없이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 상황은 개선(5p)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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