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과학 - 위대한 석학 16인이 말하는 뇌, 기억, 성격, 그리고 행복의 비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1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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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최전선에 닿는 방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정교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한 방에 몰아놓은 다음,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질문들을 서로 주고 받게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바로 엣지다.” 

최근에 엣지가 유행인 듯 하다. 유행도 엣지t스타일을 만들어내더니 이제는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엣지로 다시 쓰고 있는 듯 하다. 사람,대화,모임이 있는 곳을 엣지라 한다면 최근에 읽은 <16인의 반란자들>이나<지식의 탄생>도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 <16인의 반란자>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과 문학사를 탐구하는 책이었고 <지식의 탄생>은 노벨경제학 수상자들의 경제에 관한 엣지탐구이다. 다른 책들과 차별되는 점은 이들에게는 지적 활동의 중심지가 있다는 것인데  온라인 살롱 엣지(edge.org)에서 시작되어  과학평론가이자 편집자인 존 브록만이 꾸려가고 있는 세계석학들의 모임이 이  엣지재단의 탄생 배경이다. 이들은 모두  온라인 엣지에서 다양한 주제로 모임을 가지며 다가오는 미래를 무엇보다도 생물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공식 선언된 자리였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한다.

 

이들은 비범한 일을 하려면 비범한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며 엣지모임의 일원들을 이런 비범함이 넘치는 사람들로 채웠는데 대부분이 세계적인 석학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들이다. 하버드 심리학자 스키븐 핑커,진화이론가 프랭크 설로웨이,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생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뉴멕시코대학 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영국 신경생물학자 스티븐 로즈, 펠실베니아대학교 심리학자 마틴 샐리그먼등,이외 여러 석학들이 마음에 관한 엣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 마음은 엣지의 첫 성과물이며 이후 문화,생명,우주,생각 등 다섯 분야로 엣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스티븐 핑커는 컴퓨터가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들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이런 마음의 작동 원리를 외면하는 한 컴퓨터 기술에는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핑커는 사람의 마음이 대단히 복잡한 정보처리 장치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며 이 극도로 완벽하고 복잡한 기관으로서의 마음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때라고 한다.

 

거울 뉴런의 발견으로 신경과학계의 마르코폴로라고 불리우는 라마찬드란은 거울뉴런이 뇌진화와 연관이 있으며 기존의 생물학에서 하였던 일을 이제는 심리학이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거울뉴런의 발견은 이제까지 실험도 할 수 없었던 마음의 수많은 능력들을 설명하는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인간의 습성을 동양에서는 성선설성악설로 설명되곤 하는데 스탠포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통하여 인간의 습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성선설과 성악설과 같은 맥락이라기 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불가피한 습성의 변화 같은 것인데 평화주의자이자 인권활동가이며 반전 운동가인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와 건강한 학생들을 교도관 역할을 시키면서 바뀌어지는 변화를 보게 된다. 교도관이 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들은 모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성질 더러운 교도관으로 변신하였다. 여러 가지 실험들을 통해 루시퍼는 선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며 악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뿌리깊은 인식을 뽑아내라고 조언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익명성이 보장되며 공격이 허용된 상황에서 대다수가 야수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기존의 문학이라든지 영화에서 가설로 다루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현실세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야수성'은 절대 가설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도 이런 익명성의 보장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야수성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을 보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는데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을 이해한다면 안전불감증에 사로잡혀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듯 한 실험이었다. 루시퍼의 실험들은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폭력성이라든지, 남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는 대부분의 선하고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더욱 쉽게 유혹당하거나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을 역설하며 정신의학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석학은 스탠포드대학교 신경생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이다. 최근에 <연가시>라는 영화를 보며 연가시라는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죽음에 이르게한다는 한국형 재난블록버스터 영화였는데 연가시와 비슷한 기생생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생생물은 포유동물 세계에 살면서 포유동물의 행동을 바꾸는 기이한 특징을 보이는데 로버트는 기생생물 톡소플라즈마라는 원생생물에 관한 실험을 통해 이 기생생물이 정신의학과의 연관관계를 밝힌다. 고양이의 창자에서만 유성생식을 하는 톡소는 고양이의 배설물을 통해 배출되는데 쥐같은 설치류가 배설물을 먹게 되면서  톡소에 지배를 당하게 된다.(이것은 상상만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가져다준다.) 톡소에 감염된 쥐는 무의식적으로 고양이의 오줌냄새에 끌리게 되며 다시 고양이의 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톡소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톡소에 대한 연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톡소에 감염된 사람은 임신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재앙을, 일반사람에게는 뇌에 낭종이 생기게 되며 성격이 충동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일례로 과속으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많으며 오토바이로 사망한 사람에게는 많은 톡소가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톡소의 감염과 정신분열증 사이에 통계적 연관성이 있다는 문헌 또한 있다고 하니, 아마 정신분열 증상이 보이면 톡소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할 듯하다.

 

이렇게 마음에 관한 여러 가지 접근, 기억이라든지, 성격형성이라든지, 행복, 환경요인에 의한 생물학 분야의 접근과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는 다양한 실험, 경험과학의 연구 방법으로 인간의 자아에 접근하며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넘나드는 세계적인 지성인들의 마음의 이론은 다채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하여 무엇보다 지루하지 않다. 그동안 모르고 있던 마음에 관한  지적 호기심을 무한 충족시켜주고 있어 흡족함이 든다.  EBS에서 하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다큐 시리즈 역시 세계 석학들이 자본주의에 관한 토론을 한다. 이런 다큐는 이야기가 지루할 틈이 없이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정의와 관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엣지다큐'라고 명명하여도 될 것 같다.  물론 엣지재단에서 엣지의 정의를 규정한 것이겠지만, 아마도 엣지란 한 가지 공통된 주제를 여러 사람에게 묻고 다양한 답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대답, 엣지재단이 말하는 마음은 무척 여러 각도의 접근이라 즐겁고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엣지의 다음편도 기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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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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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다니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이고 해외에 유학가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난 여적 바쁘다는 핑계로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해외여행에 대한 유익한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을 때에는 더욱 해외여행이 간절해진다. 2001년 9월 16일.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9.11테러로 모든 해외여행이 올스탑되자, 겨우겨우 여행사에서 마련해준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해외여행책들을 볼 때마다 늘 가고 싶은 곳이 유럽쪽이었는데 책으로나마  유럽의 문화를 접할 수 있음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은 클래식 전문매장인 풍월당의 대표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박종호가 유럽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들을 직접 경험한 것을  꾸민 여행책이다. 기존의 해외 여행 책들과 틀린 점은 '음악 페스티벌' 여행기라는 것이다. 2005년 첫 출간하여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에 실린 페스티벌을 18개에서 27개로 추가하여 개정되어 출간한 책이다.

 

 

 

저자는 초판 서문에 해외여행을 다니며 만난 한국인들이 유럽의 도시를 돌아보며 그 유럽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가치나 유서를 잘 알지 못한 채 풍경만을 보고 다니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유럽여행 패키지로 나오는 상품들로는 유럽인들의 높은 문화유산과 지적인 유희 환경을 접하기 힘들며 그런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끼려면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례로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가하면 바이로이트가 페스티벌로 얼마나 유명한 곳이며 세계의 유명한 음악팬들이 죽기 전에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고장인지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해외의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그곳에서 느끼는 이러한 입체적인 감각들과 경험들을 이 책안에 쏟아부었다. 페스티벌의 멋진 무대와 배경, 공연에서의 에피소드들과 곳곳에 배여 있는 유럽 고유의 문화와 유산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8개의 페스티벌을 소개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페스티벌은 <장크트 마르가르텐 오페라 페스티벌>로 페스티벌 도중 지휘자 안톤 과다뇨가 숙소에서 사망하자 아들이 아버지의 지휘봉을 잡고 아버지가 하던 작품 <오델로>를 연주하자 관객들이 모두 감동하였다는 곳 장크트 마르가르텐을 지도 한장만 달랑 들고 찾아가는 저자의 열성또한 감동이다. 

 

 

 

책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스위스 루체른이다. 바그너에게 많은 행운을 주었던 도시 루체른은 음악과 예술의 도시로 호수를 압도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지만, 저자는 루체른이  4개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사이에서 문화적 강소국으로서의 루체른을 말한다. 바그너가 창작의 황금기를 보낸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는 그림처럼 이쁜 집이기도 하고 바그너가 실제 살았던 집인 <리하르트 바그너 박물관>이 있다. 문화강국들 사이에서 약소국이 아닌 강소국의 문화중심인 루체른에 들리면 꼭 이곳 루체른의 호숫가와 바그너가 살던 곳에 가보고 싶다. 이어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에도 들리고 싶다. 이 오페라하우스가 세계적인 극장이 된 이유가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스위스 대통령이 어느 날 얼굴이 빨갛게 되는 난치병을 앓게 되자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오페라 하우스의 극장장으로 자원했다고 한다. 정치로 넒어진 인맥과 식견으로 극장은 전 세계의 일류가 모이게 되면서 세계 최고의 오페라 하우스가 되었고 대통령의 난치병 또한 완치되었다. 삶이란 이렇게 한가지를 포기하면 또 하나의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더불어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열리는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발퀴레>를 듣는다는 상상만으로도 페스티벌의 맛은 천국의 맛일 듯 ~ ^^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왜 유럽 고유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페스티벌에 참가해야 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유럽은 일상 깊숙한 곳까지 음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유럽을 이해하려면 음악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가끔씩 유럽인들의 그런 문화적인 지적 풍요가 부러울 때가 있다. 유럽이라는 커다란 틀속에서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화의 첫걸음이다.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중심에 페스티벌을 놓고 펼쳐지는 저자의 이야기는 흥미를 넘어 즐거움과 여행이 가진 또 하나의 목적인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매력이 넘친다. 음악과 함께하는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는 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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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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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가 딱 그러했다. 제목만 보고는 피아노 치는 여자가 주는 우아함이나 고결한  하이클래스의 이미지는 고사하고 여성으로서의 성장이 멈춰버린 유아기적 사고의 에리카 코후트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상징이다. 이 책은 가학증과 피학증에 대한  탐구로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디즘과 마조히즘 성향의 주인공의 심리변화가 탁월하다.  오스트리아의 여성 작가 엘프리데 엘리네크는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문학가이지만 그녀의 작품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처음 접하는 작가이지만, 작품 전체에 흐르는 언어 유희들은  알듯 모를 듯 ,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 피아노 소나타가 흐르듯이  , 표표히 건반위를  떠다닌다. 이런  언어의 유희는 즐거우나, 묘사가 잘 되지는 않는 묘한 경험을 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노골적인 성의 묘사도 노골적인 건 맞지만 정확한 이해는 불가능한 언어표현들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마조히즘(피학증)을 가진 사람은 유아처럼 다루어지길 원하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묶이고 , 맞고, 더럽혀지고 , 무시당하는 복종을 갖는 환상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이런 마조히즘을 가진 사람은 가학증(사디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마조히즘과 사디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뜬금없이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 책의 주인공 에리카가 가진 성향이기 때문이다. 마흔이 되어서도 엄마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에리카는 여전히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반경 50미터조차 엄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죽는 순간, 아버지의 역할의 바통을 이어 에리카는 엄마에게 남성의 역할을 하게 된다. 에리카는 딸이자 부양자라는 짐과 더불어 엄마에게 남성의 위치까지 떠맡게 된 것이다. 엄마는 에리카를 천재라는 독단적인 이유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였으며 여자로서 꾸미는 일조차 천박한 일로 가르쳐왔다. 이쁜 여자가 꾸미고 다녀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는 엄마의 독선적인 논리로 에리카를 대중속에서 철저히 외톨이로 훈육시킨다. 이런 엄마의 지나친 간섭과 지배는 에리카에게 비뚤어진 욕망의 표현인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성향을 갖게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욕망을 억제시키고 적절한 또는 적당한 욕망표출이 되지 않자,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는 듯 하다.  에리카는 이유없이 학생들에게 가혹하게 하고, 학생들의 물건을 훔쳐다 부시거나, 의도적으로 학생을 모욕하는 것을 만족해하고 점점 가혹함에 익숙해지자  어느 날, 아버지의 면도칼로 자신의 몸을 그으며 자해를 한다. 이런 행위가 주는 자신 스스로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것을 즐긴다. 이것은 달리 말해 자해를 할때는 지배적인 남성의 발현이 되지만 학대를 당할 때에는 엄마의 종속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에리카는 자해를 할때 자신의 지배적이자 종속적인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며, 희열을 느낀다. 

 

 세상에 무언가 도저히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에리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에리카를 보고 제자 클래머는 일종의 도전의식을 가진다. 자신보다 더 늙은 에리카를 , 어딘가 개성있어 보이면서도 모순덩어리인 에리카를 보며 젊은 남성이 가진  패기만만하고 자신감 넘쳤던 클래머는  에리카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리카와 벌이는 성적행위에서 번번히 남성으로서의 우월감이 좌절되며 에리카가 요구하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상처를 받는다. 에리카가 성행위에서 남성적인 역할,즉 주도권을 잡으려하는 것에 대한 반항감과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에리카는 성행위조차 자신이 규정해 놓은 틀 안에서 하길 원했으며 항상 편지로 요구사항을 전하는데 피가 나도록 채찍질 해달라거나 학대해달라는 요구들이었다. 클래머는 번번히 좌절되는 성적관계에서 에리카가 요구하는 비정상적인 요구들에 남성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모욕감을 엄마앞에서 에리카를 폭행과 학대를 하는 것으로 복수한다. 다음 날, 눈을 뜬 에리카는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들고 클래머의 학교를 찾아가지만,  군중속에서 에리카는 자신의 어깨를 찌를 뿐이다. 유행이 지난 미니스커트를 입고 어깨에 피흘리는 여자, 그런 에리카를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는다. 에리카는 어깨에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어리숙한 여인의 사랑의 완성은 다시 엄마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대표작. 2001년, 칸 영화제 사상 최초로 그랑프리와 남녀 주연상을 모두 석권한 영화, '피아니스트(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원작소설이다. (참고로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와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 유능한 피아니스트인 에리카 앞에 나타난 금발의 공대생 클레메. 아름다운 제자를 사랑하는 여자 선생님의 이야기가 충격적인 영상으로 그려졌으며, 국내 개봉 당시, 화장실 바닥에 앉아 키스하는 남녀의 사진이 실린 영화 포스터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참 묘하다. 작가는 감정이입을 하지 않은 채 무척 냉정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 에리카에게도 어떠한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 에리카 자체가 감정을 배제한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시종일관 차분하고 무언가 알듯 모를 듯한 심연속에 잠겨있는 기분이 든다. 여자로서의 욕망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에리카는 옷에 집착하지만 착용하지는 못한 채, 늘 옷장에 쑤셔박는다. 자신의 성을 옷장안에 가두는 모습은 에리카의 성을 대변한다. 이렇듯 방치된 옷은 지나치게 강요된 엄마의 지배는 여성인 에리카를 옷장에 가두고 거세당한 채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에리카의 여성성이다. 클래머에게 당한 폭행에 한번도 입어본 적 없는 미니스커트를 꺼내 입고 칼을 들고 찾아가는 에리카의 모습은 다소 엽기적면서도 한편으로는 복합적인 모습이다. 폭행에 복수하고 싶으면서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이중적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모습의 에리카는 위에 말하였듯이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지배와 종속에 길들여진 모습이지만 내면에서는 사랑을 갈구하는 거세당한 여자가 보여줄 수 있는 자신만의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이렇듯 사람과의 모든 관계,심지어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도 지배와 종속적인 관계는 적용된다. 태어나면서 자연적으로 맺게 되는 사회의 일차적인 관계에서 어긋난 사랑은 이렇게 비뚤어진 욕망의 표출로 자라지 못한채 유아기에 머물러 있게 한다.대부분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원인은 이런 1차적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억눌러진 욕망위로 표출되는 에리카의 비뚤어진 욕망에 진한 연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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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계화
도미니크 볼통 지음, 김주노 옮김 / 살림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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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페이스북, 스마트폰, 모든 것이 아날로그를 압도하고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며 세계는 빠르게 지구촌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는 불통의 시대라고 하며 대부분인들의 사람들이 소통의 단절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우만은 현대를 온라인의 영역이 오프라인의 영역까지 확대되어 가는 것은 지극히 공적인 영역들조차 사적인 영역으로 확대되어감으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적인 고유의 개념들이 변화되는 시기라고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이 사라지며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이어주는 의사소통'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통이 아닌 '정보'를 나누는 개념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이다.

 

정보는 일방적인 수용을 전제로 한 메시지인 반면에 소통은 상호 이해를 중시한다. 이것이 소통이 정보보다 어렵고 복잡한 이유다.

 

 이 책 《또 다른 세계화》에서는 보다 쉬운 예로 일본의 후쿠시마 참사를 예를 들고 있다.  지질학적으로 일본 열도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으며 일본인들은 그런 자연적 재해에 대비하고 있어 왔다. 일본의 후쿠시마의 재앙은 기존의 자연재해에 대비해온 일본인들의 침착성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기술적 진보가 지구물리학과 지질학적인 일본의 자연적인 특성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기존에 자연적 재해에 많은 영향을 받아온 일본인들은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기술적 발전이 후쿠시마의 재앙-자연재해에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국민 모두가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기술과 인간의 진보는 동일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계화는 모두 3단계에 걸쳐 일어났다.

첫째가 정치 세계화,둘째가 경제 세계화, 셋째가 문화세계화이다.

저자 세계적인 석학 도미니크 볼통은 정치와 경제의 세계화는 일어났으나 문화 세계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 문화세계화이다. 도미니크 볼통은 문화 세계화가 인류의 문화적 차이와 종교적 특수성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눈에 띄게 하고 서로 간의 이해를 심화시킨다고 한다. 이것은 21세기의 가장 큰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세계가 기술적인 관점에서 하나의 거대한 마을인 '지구촌'이 되었지만 정치적, 사회적,문화적 분절이 더욱 커진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 기존에는 기술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가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관계 향상을 불러오고, 문화적 혁명에 기여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가 서로 간의 차이를 확인시키며 몰이해와 두려움, 거부를 불러온다. 기술적 진보와 함께 소통은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소통에 대한 철학을 재고한다. 저자는  문화 세계화가 긴장과 증오, 충돌의 원인이 되지 않기 위해 세계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거대한 다국적 문화 산업이 지배하는 틀에서 벗어나 '문화 공존'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차이점들을 용인하고,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공존을 구축하는 ‘또 다른 세계화’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가 큰 만큼 서로 간의 대화는 매우 어렵고 복잡할 것이다. 따라서 그럴수록 우리는 소통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오늘날 기술과 경제적 혁신은 이루어졌지만 사회적,문화적 혁신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정보의 세계화를 상호적인 소통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두가지 세계화 정치와 경제의 세계화는 '서구 사회의 정체성을 위협하지 않는 ' 선에서의 세계화였다면 문화의 세계화는 서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해줄 때 이루어지는 문화의 세계화다. 따라서, 저자는 진정한 소통이란 서로의 문화적 정체성이 존재할 때 비로서 가능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회나 문화가 다른 사회와 문화에 비해 더 민주적이라거나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와 경제의 세계화는 서구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화의 세계화가 이제까지 이루어졌던 서구 중심의 세계화가 되면 이는 곧 전쟁의 원인일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슬람여성들에게 그들의 문화를 무시하고 미관상 보기 안좋으니 히잡을 무조건 쓰지말라고 요구를 한다고 치자. 기존의 기술적 경제적 세계화는 이런식의 요구로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충돌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이슬람인들은 히잡을 쓰지 말라고 강요하자 그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충돌이 빚어내고 있는 소통의 부재이다. 극단적인 예 같지만, 이런 문화적 충돌은 9.11 테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저자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며, 또다른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소통하는 것은 모든 차이점을 수용하는 것이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능한 많이 그것들과 공존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문화 공존의 사고이다. 이런 문화 공존이 가능해질 때 세계는 정치,경제, 문화라는 세가지 기둥을 가진 '또다른 세계화'로 하나가 될 것이다.

 

*참고로 책에 한국의 소통과 세계화에 관한 저자의 지적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의 현재를 돌아보게 해주는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는 세계속의 한국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와 더불어 향후 한국의 세계화를 위한 방향과 대안까지 한국을 진단하는 데에 무척이나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저자는 한국이 고수하고 있는 영어 제일주의에 가장 큰 우려를 표명하는데 현 정부의 지극한 영어사랑으로 이제는 유치원생조차 영어를 배우고 있지만, 이것은 언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래에 오히려 한국이 다른 나라와의 소통을 제한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과 세계적인 IT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문화적 정체성을 잘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무척 공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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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브
알렉스 모렐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가족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인데 맨몸으로 정글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며 보게 됩니다. 메인인 김병만을 제외하면 고생하나 모르고 살았을 법한 아이돌이 자연에 귀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삶의 의미를 체득해가는 과정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제법 집도 잘 짓고 야생에 익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처음 프로를 시작했을 당시 출연진들이 배고파 우는 모습이나, 아이돌 중에는 넘쳐나는 시간 속에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자 시간이 주는 공허함을 달래지 못해 괴로워 눈물을 흘리곤 하였였죠.  하루종일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점점 말라가고 몰골이 처참해져 가는 그들이 한 말이 있어요. 자신들의 삶 가운데 이렇게 생에 간절함과 감사함이 드는 적은 처음이라고요. 궁핍과 문명의 결핍이  그들에게 준 것은 생존의 진정한 의미이자 삶의 본질이였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뱀도 잡아먹고 굼벵이로 배를 채우며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을 보며 극한의 상황에서 깨우친 삶의 소중함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몸짓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듯 생의 의미는 부족할 때, 무언가가 결핍되었을 때, 간절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서바이브>이 책은 방황하는 청소년들에 무척이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런 부족함과 결핍이 주는 생의 의미를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풍요에 익숙하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나가거나 이겨내려하지 않고 포기부터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한번쯤 큰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빠르게 오기도 하고 느리게 오기도 하죠.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제인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자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습니다. 제인에게는 죽음이 평안이고 위로이죠. 아버지가 자살해서 죽은 이후로 계속된 우울증세와 자살시도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떤 것으로도 소녀의 마음을 바꾸어놓지 못합니다. 그냥 죽고 나면 지금의 괴로움과 죄책감이 모두 사라질 거라는 믿음때문이죠.  아버지가 자살한 후 아버지의 죽음과 달리 딸로서 살아있다는 것이 제인에게는 죄책감이 되어 괴로움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엄마가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면 할 수록 자신이 살아있음으로 인해 엄마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제인의 죽음을 정당화시키지요.

 

일년 만에 집에 돌아가는 제인은 아무에게도 눈치채지 않게 비행기안에서 자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어요. 죽으면 모든 괴로움이 끝이 난다는 즐거움에 오히려 마음은 홀가분하죠. 그러나, 비행기 화장실에서 약을 입에 털어넣는 순간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면서 비행기가 추락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눈덮인 설원에서 홀로 깨어난 제인은 자신이 죽으려고 화장실에 갔기 때문에 살아남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합니다. 그런 제인을 깨운 것은 살아남은 또 한명의 생존자 폴의 목소리였구요. 제인과 폴은 극심한 추위와 고립무원의 세상속에서 생존의 사투를 겪게 됩니다. 갈증과 배고픔,눈보라를 헤치며  밤이 되면 저체온증과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속에서 제인과 폴은 서로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생을 고백하게 되며 그동안 자신들이 미처 깨우치지 못하였던 삶의 의미를 깨달아갑니다. 결핍이 이들에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거죠. 폴은 형 윌이 죽은 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채 반항으로 자신을 표현해왔지만,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제인은 아버지의 죽음이후로 살아있다는 죄책감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아버지를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생의 애착을 느끼게 되요. 그런 사이 둘의 가슴에는 사랑이라는 온기가 가득 차 오릅니다. 이런 사랑의 온기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힘을 주지만, 로키 산맥은 이들에게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극한 상황속에서 제인과 폴이 벌이는 생존기는 매순간의 간절함과 삶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소설입니다.

 

살아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알기에 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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