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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한참 자라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나중에는 꼭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달라고 조른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하나씩 하고 나서 아이에게 동화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이런 이야기를 만든다. 감자탕과 아이스크림이 서로 사랑을 하는데 이들을 방해하는 마녀 이름은 슬러시이다. 슬러시의 방해에도 자탕과 아이스크림은 사랑을 이룬다는 뻔한 동화같은 결말이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모습은 꽤나 진지하다. 그리고 아이가 동화속에 숨겨진 , 사랑은 어떤 어려움과 고난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때 완성된다는 진리가 내포 되어 있음을 아이가 알고 있는 듯하여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마음 깊은 곳의 감성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야기의 힘은 최근 교육, 정치, 외교, 홍보, 사업, 경영 등 각종 방면에서 주목하고 있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나, 수업을 할 때, 제품을 설명할 때나, 이야기(스토리)와 함께 하면 상대방의 기억 속에 더 잘 각인된다. 이야기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 ,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전설을 믿고 신화를 말하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고 남기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삶만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위대한 손이다.
변화경영사상가인 구본형의 <깊은 인생>을 읽으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었는데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신화경영의 첫 결실인 <구본형의 신화를 읽는 시간>은 기존에 깊은 인생의 경영철학과 더불어 철학, 심리학, 문학, 미술 등 다채로운 시각으로 더욱 깊어진 인생을 사유토록 안내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장점 '감성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최대한 잘 살려내었고 그리스 신화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 인간은 무엇인가?' 에 대한 성찰로 이끌어주고 있다.
저자는 신화라는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가려면 그 세계를 여는 열쇠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신화를 읽는 기초적인 독법(열쇠)로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 들어가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를 독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신화는 은유이기 때문이며, 자연과 우주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신화는 갖가지 문화에 의해 왜곡되기 전 인류의 원형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원시적인 신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이므로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의 미덕과 삶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모든 신화에는 과거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진정한 변화의 정수가 숨겨져 있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 속의 불행과 악덕을 이겨내고 진정한 나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과정이 이 책 안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화가 난 신들은 여자 판도라를 만들고 제우스는 판도라와 함께 작은 상자를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낸다. 제우스가 주는 것은 아무것도 받지 말라는 프로메테우스의 경고를 저버리고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와 결혼까지 한다. 에피메테우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제우스가 보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판도라는 상자속에서 튀어나온 가지가지의 불행과 악들에 놀라서 뚜껑을 닫는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희망만은 그 상자에서 나오지 못하였다.
여기서 저자는 판도라는 여자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고 한다. 판도라부터 시작된 인간의 삶, 신들의 선물꾸러미인 인간 선물상자인 판도라는 삶이라는 시련을 말한다. 세계와 자신, 삶과 여인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면서부터 고난과 시련을 느끼게 되고 삶 속에 수많이 내포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미해결 수수께끼들이 우리가 인생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모험들인 것이다. 
판도라 마음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것은 바로 ‘시간’이다. 두 번째 악덕은 ‘욕정’이다.우라노스의 잘려진 성기로부터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프로디테 '애욕'이 생겨났다. 시간의 흘러감에 따라 애욕도 속절없이 사라져가지만, 시간과 애욕이 영혼의 사랑과 합일하게 될 때, 인간은 시간을 넘어 대를 잇게 된다.
필멸의 육체로 상징되는 거품, 바로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될 때 시간을 결코 우리를 절멸시키지 못하리니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자. 불임이니 시간에 의해 절멸될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게 되고, 그 사랑을 이어감으로써 우리는 시간에 대항할 수 있게 된다. 육체가 죽어도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남아 있는 한,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 불멸이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남는 존재들이다.
세 번째 악덕은 바로 변화다. 그리스 신화속에서 변화의 신은 없다고 한다. 변화와 변신은 모든 신들의 공통된 속성이기에 특별히 변화의 신은 없다. 그러나, 신화속에서 제우스는 변신의 귀재이다. 자신의 애욕을 채우기위해 끊임없이 변신을 하였던 제우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는 영웅이란 주어진 변화에 창조적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인물들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평범한 인간안에는 신의 위대함이 씨앗처럼 들어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 단, 자신안에 잠들어 있는 자아를 깨울수만 있다면 이라는 전재가 붙는다는 것!
네 번째 악덕은 ‘자아에 대한 무지’ 이다. 폴리페모스에게 ‘아무도 아닌’ 자로 말했다가 '도시의 파괴자‘라는 이름으로 결국에는 ’귀항하는 바다의 항해자‘로 진화를 거듭한 오디세우스에게서 이름이 가진 상징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모험을 시작할 때 자기 혁명이 시작되듯이 , ’아무도 아닌‘ 이름일때 오디세우스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도시의 파괴자를 뜻을 외쳤을 때, 그는 그 이름처럼 도시의 파괴자가 된다. 그러나 10년의 고난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통해 이름을 통해 상징이 된 사람만이 진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는 삶으로밖에는 보여줄 수 없다. 인생없이는 진짜 이름도 없다. 인생이 곧 이름이다.
삶이란 결국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기나긴 모험인 것이다.
삶의 모험이 없는 자, 아무도 아닌 자로 살 수밖에 없다.
나르키소스를 통해 다섯 번째 불행인 '자기애'를 에이직튼을 통해 '배고픔'이라는 저주에 걸린 인간의 삶과 아킬레우스가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헥토르의 시신을 모독하고 트로이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분노'를 통해 분노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좋은 에너지로 바꿔내어 성장시키는 힘으로 정화시키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진실일 수 밖에 없다.
배고픔의 상징성 중 하나는 자신을 몰아쳐 끊임없이 성공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듯 , 성공과 승리를 먹어치운다.
여성을 혐오하였던 젊은 조각가 피그말리온을 통해 '혐오'라는 불행을, 무익하고도 희망이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통해 자신에게 배당된 삶의 바닥을 반항과 자유와 열정으로 맨 밑바닥이 드러날 때 까지 퍼올리며 사는 것이 바로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익하고 희망없는 일에서 기쁨을 보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이외 판도라 상자에서 튀어나온 불행은 스무가지가 넘는다. 허영,거짓말,과도함,집착,오만,탐욕,비뚤어진 웃음, 골육상쟁의 피,잔혹함, 폭력, 운명,불복종, 나도 모르는 나.사유 불능 ,이별, 복수, 마지막으로는 신들의 종합상자인 판도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불균형이다. 이렇게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들을 채집하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 떠나는 흥미로운 모험이《구본형의 신화를 읽는 시간》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저자는 이런 무수한 악덕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 매번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하는 시시포스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비극 속에서도 깨어 있는 것이 인간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화를 통해 보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본성과 철학, 심리학, 문학, 미술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하고도 다채로운 시각은 깊은 인생으로 들어가는 자기경영법을 선사해준다.
오직 불행속에만 희망이 있다. 지금 아픈 사람은 낫기를 희망한다. 지금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한다. 지금 감옥에 갇힌 사람은 풀려나기를 희망한다. 희망은 결핍과 불행과 고통 속에서만 자라나는 환각이다. 그러니,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든 불행, 모든 악덕, 모든 결핍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