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3 - 시공인문교양만화 시공인문교양만화 사기 3
요코야마 미츠테루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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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연,한,위,조,제,초,진)만이 남아 중국은 바야흐로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제나라에 2년간 지배를 받았던 연나라는 제나라를 상대로 전투를 시작하는데 이를 돕기 위해 조,초,한,위,진이 5개 연합군으로 제나라로 진군한다. 이때 연나라에는 유능한 장수 악의장군이 있었다. 악의의 선전으로 제나라가 열세에 몰리자, 제나라의 전단이 악의가 제나라 왕이 되려한다는 헛소문을 내어 연나라로 소왕의 명예를 위해 조나라로 망명한다. 혜왕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자신이 섬기던 소왕의 명예를 위한 선택이었는데 후에 혜왕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악의를 조나라로 보낸 후회의 편지를 보낸다. 이에 악의는 자신을 미워했던  혜왕에게 자신의 충심을 알리는 절절한 편지를 보내는데 이 편지는 훗날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특히 제갈공명은 그를 존경하여 인생의 모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제나라는 일개 하급관리였던 전단의 탁월한 심리전술(기모궤책)으로 멸망을 면한다. 사기에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빛을 못 본 위인들이 많으나 전단의 이야기는 몇 안되는 성공한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2권의 마지막에 처참한 죽음을 당한 상앙의 강국책이 결실을 맺어 진은 천하를 바라보며 다른 나라들을 침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권은 막강해진 진을 상대로 여섯 나라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동시에 전국시대 활약한 사공자의 이야기가 주이다. 사공자는 조趙의 평원군, 제齊의 맹상군,위魏의 신릉군, 초楚의 춘신군으로 저마다 식객을 수천 명씩 거느리고 있기로 유명했다. 3권에서는 맹장군의 이야기인데 맹장군은 삼천명의 식객을 거느리며 인재를 가까이에 두었는데 식객들에게 얻는 정보와 재주를 귀하게 여겼다. 게다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식객들의 잔재주(도둑질,동물흉내내기,등 ) 를 귀하게 여겨 위기를 넘기게 되어 비굴하게 남을 속이는 하찮은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인 ‘계명구도鷄鳴狗盜’ 라는 유명한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초나라에 천하의 보물이라 일컫는 ‘화씨의 벽’ 을 빼앗기 위해 진나라에서 열다섯개 성읍과 바꾸자고 초나라에 제의한다. 진나라에서 초나라의 보물을 빼앗기 위한 거짓말을 간파해낸 초나라의 인상여도 무척 인상깊은 이야기중의 하나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현대에는 완전무결함을 일컬어 ‘완벽’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벽을 온전히 가지고 돌아온다’ 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값어치가 높은 물건을 두고 연성지치라 하게 되었다. 또한 인상여를 시기한 염파장군과의 사이를 두고 ‘문경지교’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이 둘,  인상여와 염파장군이 있는 한 진은 조나라를 침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시대의 최고의 전투로 펼쳐지는 <장평전투> 는 진나라의 백기장군이 조나라 40만 병사를 생매장시킨 후, 잠 못 이루는 날을 보내다 결국은 자결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과응보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기도 한다. 십자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 광기를 그리고 있지만, 더욱 잔인한 것은 조나라 병사들이 굶주림에 지쳐 동료를 죽여 먹고, 아이를 바꾸어 먹는 모습은 전쟁의 잔인함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유독 사기에는 잔인한 장면이 많은 것 같다. 중국인들이 독한 건지 인간이 원래 독한 종자인지 모르지만, 정말 원한을 살 정도의 잔인함을 보인다. 그리고 그 원한은 복수로 대물림되고, 죽고 죽이는 역사속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보는 기분이다. 사공자 중 3권은 맹상군의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4권에서는 이제 4권에서는 춘신군의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며, 위나라 범저의 뿌리깊은 원한이 그려질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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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 - 시공인문교양만화 시공인문교양만화 사기 2
요코야마 미츠테루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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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은 춘추시대로 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이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시대는 지방분권적인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진(秦), 한(韓)의 중앙집권적인 군현제가 실시되어가는 과도적인 시기로 존왕양이(尊王洋夷)의 정신을 숭상하며 지방 분권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와서 존왕양이의 정신이 쇠퇴하고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 살아남음으로써 7개의 강국 진(秦)ㆍ초(楚)ㆍ연(燕)ㆍ제(濟)ㆍ한(韓)ㆍ위(魏)ㆍ조(趙)의 전국칠웅만이 남았다.

 

춘추시대의 군주가 후(候)라고 칭했던 반면, 전국시대의 군주는 왕(王)이라 칭하는 등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춘추시대에의 경제는 사회구조에 변화를 가져와 은(殷)ㆍ주(周)로 대표되는 씨족 사회가 사라졌고 가문의 배경이 없더라도 본인 자신의 재능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며 평민, 귀족, 왕족에 상관없이 군주들은 나라의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이러한 사회 흐름에 따라 다양한 사상을 주장하는 제자백가(?子百家)도 등장하였다.( 1권은 춘추시대였고 2권은 전국시대로 넘어간다.)

 

사기를 읽으면서  참 의아했던 부분이 이 전국칠웅의 나라가 서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우선시했던 것이 인재등용이었다. 초나라에서 버림받아 오나라로 간 오자서, 위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노나라의 관리가 되어 병법으로는 손자와 어깨를 겨루는 병법가 오기, 위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제나라에서 관리가 된 손자의 후손인 손빈,위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진秦의 국정 개혁의 기초를 다진 상앙 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인재라는 것이다. 관중이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 )"라고 하였듯이 춘추전국시대는 사람을 얻는 것이 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루는 초석이나 마찬가지였고, 지혜로운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는 각 나라의 제후들은 지금말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후에 조조가 삼국통일을 하기 위해서도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천리를 멀다하고 갔으며, 죽을 때까지 인재를 찾아다녔다고 하는 것 보면, 어디에서나 사람이 중심이 되야한다는 것을 새삼 떠올려본다.

 

 

 

2권은 이렇게 오자서,오기 ,손빈,상앙의 이야기가 주인데 오자서와  손빈, 상앙의 두번째 공통점은 오기를 빼고는 말로가 무참하다는 것이다. (손빈은 복수를 한 뒤에 병법편찬을 위해 말로를 스스로 조용히 살았다.) 사마천이 진언으로 인해 궁형의 비극을 당하였듯이, 오자서와 손빈,오기,상앙은 자신의 명예와 정의, 대의에 강하였던 반면에 오나라와 왕 협려나, 부차, 진의 혜문왕은 진언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왕인 자신에게 쓴소리만 하는 이들을 미워하고 달콤한 말만 내뱉는 간신들을 더 등용한다는 것이 문제다. 역사는 정의가 패배한 기록이라고 했듯이 사마천은 아마도 역사에게 기록하고자 했던 부분이 정의가 패배한 역사를 말하고자 했음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대업을 완성하고도 진정 하늘의 뜻은 무엇입니까? 를  물어본 것을 보면, 그러나 , 역사속의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상앙이 세운 법으로 진은 강력한 법치국가가 되어 진시황제를 낳지만, 상앙의 말로는 처참한 거열형에 처해 진 것을 보고 '자신이 만든 법에 자신이 걸려 죽는다는 작법자폐(作法自斃)'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듯이 , 사람의 일은 한치앞도 모르는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사기만화, 3권의 이야기로 숨가쁘게 넘어간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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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1 - 시공인문교양만화 시공인문교양만화 사기 1
요코야마 미츠테루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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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2개월을 잡고 있었는데 아직 반 밖에 읽지 못하였다. 맘 잡고 이번 주 안에 사기열전을 완독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시공사에서 인문교양만화 <사기史記>가 출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소설책을 읽으면서 자꾸 눈에 띄는 사기 때문에 소설책을 읽다말고는 붙잡자마자 정말 말 그대로 쭉쭉 읽었다. 기실 사기열전은 쭉쭉 읽힐 수가 없는 책이다. 책에 몰입하려면 등장인물을 외워야하고, 게다가 나라이름도 너무 많아 도식화하여 읽어야 하는 책이다. 만화로 읽는 사기는 조금 사실성과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더 사실적이고 삼국지 만화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고대사 최고의 역사서이다. 사마천의 출생을 시작으로 하여 성장 배경 , 말단 관직에 있으면서도 청렴한 아버지를 둔 사마천, 공직에 있으면서 아버지를 존경하였던 사마천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역사를 기록하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오랫동안 말단 관직에 있던 사마천에게도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지지만,  전투에 패한  이릉장군의 편을 들었다는 ( 단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 뿐인데) 이유로 옥에 갇힌다.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는 사마천에게 선택은 단 두가지, 돈을 많이 내든지, 궁형을 받고 나오든지. 가난했던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해서 감옥을 나가는 것을 선택하지만, 그렇게라도 살고 싶냐는 주위의 조롱을 받는다. ( 책에는 그냥 궁형이라고 설명되어지는데 만화는 궁형의 처참함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말 잔인하다는 ... 실제로 궁형은 생존 가능성이 별로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형이었다고 한다. ) 사람 목숨을 걸 정도의 일이 아닌데 죽다 살아난 사마천에게 괜히 미안해진 한무제는 사마천에게 중서령이라는 직함을 주고 사마천은 이 관직에 있으면서 사기를 완성해나간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역사기술의 관점이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사기를 실존 역사가 아닌 개인의 상상으로 기술한 문학에 가깝다고도 말하지만 )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사마천의 평은 다소 냉정하다. ( 기존 역사서와는 차별적인 시각이다.) 제나라 환공이 패자임에도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에서도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승자 중심의 역사기술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냉철하고 흥미롭다. 경국지색이라 하였듯이 여희에게 흠뻑 빠져  세 아들을 모두 죽이려 했던 진나라 헌공의 이야기에서도 역사 속에서 한 여인의 야망이 정치를 뒤흔들고 다른 나라에 까지 파문을 일으킨 예는 허다하다며 헌공의 흥망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초나라에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무참히 죽인 초나라 평양에게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하며 오나라에 망명한 오자서의 이야기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죽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포숙이 관중의 뛰어남을 말하자(관포지교 管鮑之交 )   관중을 인재로 등용하여 그로 인해 패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귀감이 많이 되는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두 사람의 우정보다는 환공이 패자가 되었지만, 관중의 유언을 듣지 않는 우를 범하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환공이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관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에  관중의 언중유골을 듣지 않은  환공의 최후는 너무 초라하고 처참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역사를 보며  사소한 오해와 오만이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패하게도 하는 것을 보면, 역사는 사람과 사람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잘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나라의 성패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만화가의 약력을 펼쳐보니 일본에서는 거의 만화계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작가이다. 역사에도 일가견이 있는지  『삼국지,수호지,항우와 유방,사기,석가모니,칭기즈칸등 중국 고전작품을 극화하고 야마오카 소하치 원작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요토미 히데요시,오다 노부나가등을 극화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만화라 조금 가볍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 만화로 읽으니 오히려 더 생동감 있고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만큼 만화작가가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은 것 같다. 고전은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하기에 따라 전달하는 부분이 많이 차이가 있는데 쉽고 정확하고 재미있다. 한편으로는 만화는 역시 일본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인정을 해야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앞으로도 계속 읽을 생각이다.  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과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비해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역사의 실패자는 지금 태어나도 어쩌면 실패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오류를 발견하지 않으면  역사 속에 늘 실패자가 존재하듯이 현재도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역사를 쓰고 읽고 현재의 오류를 재수정하는 것이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기를 읽다보면 사마천의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과 더불어  역사관과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궁형이라는 개인적인 비극때문인지 사마천의 사기는 더욱 사람을 통찰하는 심미안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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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전성철 지음 / 아이지엠세계경영연구원(IGMbooks)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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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꿈이 있었다. 그러나, 밥벌이라는 생활의 이름에 발목을 붙잡혀 꿈은 그냥 늘 그 자리에 있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어서 가끔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를 생각해보면 그냥 울적해진다. 젊은 날의 “꿈”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쓰러져도 툴툴 털고 일어나도 젊음이라는 이유 하나로 꿈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묘약이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쑥쓰러울 뿐 아니라, 두려움을 동반한다. 넘어지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꿈을 꾼다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젊은 날에 나는 이런 성공에세이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어떤 꿈이든 이루어질 것 같아서였다. 방황과 상실감, 삶에서 계속된 좌절과 고난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공한 이들의 스토리는 감동을 넘어 내 삶도 희망이 가득찰 것 같은 기분 좋은 정신적 연대감이자 향락이었다. 오랜 만에 읽는 성공에세이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슬며시 미소가 피어나는 이유가 아마 오랜만에 빠져보는 희망의 느낌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남편과 내가 만났을 때, 우린 정말 비슷한 것이 많았다. 지독히 가난했던 것도 같았고 등록금을 위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도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못할 땐 장학금을 받기 위해 피터지게 공부해야 했다. 자취방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월 이만원, 단칸방이었던 것도 같았다. 겨울이면 냉방에서 자야했고 여름이면 선풍기 하나 없이 지냈던 날들은 꿈이 있었기에 언제나 행복했다. 그땐 가난하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젊은 날에 “내일을 꿈꾼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아도, 미래가 주는 그런 불확실성을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가 야채장수와 빵공장 직공을 하며, 택시기사를 하며, 야적장 수위를 하며 로스쿨 공부의 열망을 꿈꾸었던 것처럼, 젊은 날의 “꿈”은 어떤 힘든 일도 가능하게 하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는 것 같다. 저자의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 그리고 좌절 속에서도 법조계에 발을 디딛는 과정, 이방인으로서 미국인들조차 부러워하는 뉴욕 로펌에 입사하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여정은 힘들고 험난하지만 저자는 꿈이 있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가장 중요하게 조국(한국)을 잘 타고났다.

둘째, 열심히 했다.

셋째, 나는 꿈꾸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넷째, 나는 적성에 맞는 길을 택했다.

다섯째, 나에게는 인생의 여정 굽이굽이마다 항상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저자는 " 자기다움“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자기다움이라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과 동의어라고 말한다. 문득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꿈이라는 것에 무덤덤하게 지내왔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지 못해 괴로웠고, 그저 시간을 버려가며 살던 날들이었다. 자고나면 어김없이 아침은 돌아왔고 어김없이 밤은 찾아오는 그러나, 삶의 의욕은 없었던, 목적 없이 지내던 나날들이었다. 피드 드러커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위기는 , 결국 우둔함과 나태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듯이, 꿈이 없는 삶은 그저 무의미한 삶이었다. 어느 날 찾아온 책 한권이 내게 도끼로 내려치는 충격으로 다가와 시작된 책읽기가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리고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이 내게 다시 꿈을 꾸게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나이들어서도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진정 나다운 삶을 살아보라고 , 아주 아주 오래전 꿈이 있어 행복했던 젊은 날을 기억하게 해주어 고요한 수면에 잠들어 있던 꿈을 일깨워준다. 꿈이 결코 청춘들만의 소유가 아니며 나이가 들어도 꿈을 꿀 수 있음을, 진정 나 다워지고 싶다는 꿈을 꾼다.

*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꿈을 꾸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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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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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텍스트를 읽고, 책을 읽고, 쓴다. 벌써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이다. 처음에는 ‘지知’ 의 호기심 충족으로 시작되었던 책읽기가 이제는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깊은 심연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책 읽지 말 것을 권유한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책 읽기의 끝에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가 자신과의 싸움이 되는 순간부터는 더욱더 외롭고 괴로워진다는 것, 따라서 책읽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일본의 니체라고 불리우는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는 이런 책을 읽고 쓰는 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사사키는 책을 읽고 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비평가와 전문가들에게 다소 냉소적인 자신의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책의 부제는 “책과 혁명에 대한 닷새 밤의 기록” 으로 책읽기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자신감도 넘치고 나름 타당한 느낌도 든다.  

 

 

우선 저자는 비평가와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류 - 한 가지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책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말하려는 ’비평가‘와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려는 ’전문가‘는 ’모든 것‘을 둘러싼 ’향락‘에 취해 있음으로 이런 것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사실 자신만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평범하고 꼴불견인게 어디 있겠습니까? (19쪽) 비록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무지한 상태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이 “현재를 좇는 자는 언젠가 현재에 따라잡힌다.” 라고 말했듯이 현재에 따라가다 보면 그 초조함으로 오히려 현재를 망치게 된다고 한다.

 

문학이야 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난다.

 

 

저자는 혁명이란 폭력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한다. 읽는 것과 쓰는 것, 그 자체가 혁명이라는 것이다. 루터의 대혁명은 성서를 읽는 것으로 비롯되었고, 대천사에게서 ‘읽어라’는 계시를 받았던 무함마드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거부했지만 신에게 선택되어 '읽으라'는 절대 명령을 받은 무함마드는  읽을 수 없는 것을 읽고 , 잉태한 것이 ‘코란’이다. 그리고 그 코란으로 이슬람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이것이 무함마드의 혁명이다. 

 

텍스트를 , 책을, 읽고 , 다시 읽고, 쓰고, 다시 쓰고, 그리고 어쩌면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 이것이 혁명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이렇게 됩니다. 문학이야 말로 혁명의 근원이다. 라고....

 

저자는 이러한 혁명의 개념과 가장 근접하고도 현대와 연결되는 혁명을 12세기의 ‘중세 해석자 혁명’이라고 명명하는데 11세기 말 피사의 도서관 구석에서 유스티아누스의 법전의 발견으로 6세기부터 600년 가까이 묻혀있던 로마법을 바탕으로 로마법을 교회법으로 바꾸는 전재미문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라티아누스의 교령집이 성립하게 된다. 이 새로운 법의 탄생과정인 읽고 쓰고 , 고치고 , 다시 읽고 쓰는 작업을 하는 것을 저자는 ‘혁명의 본체’라고 하는 것이다.

  

종말 환상의 긴 역사

  

저자는 흔히들 말하는 종말론적 사고 , ‘현재’에서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병든 사고라고 한다. 가끔 우리가 접하는 말들 , 문학은 죽었다라든지, 예술이 끝났다라고든지 하는 사고의 발상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특권적인 시작이나 끝이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안 역사상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야 하는다는 병든 사고의 한 형태로 보았다. 그리고 이 말은 고래부터 한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책을 읽는 한 그리고 책을 계속 읽어왔기 때문에 결코  문학에 종말은 오지 않으며, 이 행위자체가 혁명을 계속 불러왔음을 역설한다. 결국  문학은 살아남았고, 예술도 살아남았으며, 혁명은 계속되었으며 이렇게  인류는 살아남는다. 그럼으로 읽고 쓰는 한, 인류에게 종말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절대 !

 

제목을 본 순간 니체가 떠올랐다. “ 신은 죽었다” 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이상하게 신의 존재를 더 강하게 부연설명해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달콤한 말보다도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말이기에 나는 오히려 신은 죽었다는 말에서 신의 존재를 느낀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엉뚱하게 학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는데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라 의외였다. 니체의 말처럼  이 책 역시 역설적이게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르라는 말이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가 인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책에 관한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통쾌하다. 가끔 지인들에게 책 읽지마 ! 라고 하는 내 마음과 같다고 할까. 책읽기는 내게 한편으로는 강한 애증이다. 책에 갇힌 내 모습이 싫으면서도 책 읽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학을 위해 , 예술을 위해, 혁명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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