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2
토머스 하디 지음, 유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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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를 여고시절에 읽었었기에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들어 다시 읽게 되니 테스가 보여주고 있는 여성성이라는 아이덴티티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테스에 대해서 너무도 얕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현대에도 여전히 순결한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토머스 하디가 붙인 부제 역시도 a pure women 이다.)  

 

1단계 처녀 

말롯의 처녀들이 춤추는 날, 동네를 지나가는 여행객이었던 에인젤과 스쳐가며 만난 인연이 테스와의 첫 만남이다.  순수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테스는 짧은 만남에도 에인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이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과거 귀족 가문이었다는 자만과 도취심에 젖어 있던 아버지와 낙천적이나 생활력은 없는 엄마의 장녀로 태어난 테스는 아래로 동생 셋이 더 있다.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자  트랜트리지 부잣집 친척  더버빌 가에 양계일을 하러 떠나게 된다,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데다 얼굴이 예쁜 테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 알렉 더버빌은 이후 테스를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2단계 처녀이후

체이스 숲에서 알렉에게 처녀성을 잃은 후 4개월이 지난 뒤, 테스는 집으로 되돌아온다. (4개월동안 알렉의 애인으로 지냈던 것 같다.)  4개월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집으로 되돌아 온 이유는 알렉이 집안에 보내주는 물건이나 말과 같은 물질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에 알렉이 주는 선물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고 번번히 테스를 좌절케 하였으며 반항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알렉과의 마지막 이별장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계속 받기로 들면 당신 여자로 살아야 하는데 그거 안 할래요!“ 라는 것으로 봐서는 사회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농촌 처녀에 불과했던 테스는 남자가 주는 댓가성의 물건들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듯하다. (남자에 대하여 무지와 교육을 받지 못해 한탄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자의식이 강하였고 속물적 근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테스는 알렉의 옆에 있어야 여성으로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회 통념상 순결을 잃은 남성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아이까지 뱃속에 있었으니말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랑한다고 거짓말 하면서도 충분히 알렉과 여느 여인들처럼 호위호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테스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 부분 역시도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부분과 많이 다른 부분이었다. 알렉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로 버림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테스는 선택을 한 것이다알렉은 자신이 테스의 집에 말을 주었고 동생들을 보살펴 주었다는 말을 하며 테스에게 거절하지 못할 빌미를 제공하며 성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과 가난은 테스를 항상 따라다니는 약점이자 가장 큰 짐이었다. 가난과 궁핍의 생활이 계속되어 갓난 아이를 데리고 들판에 일을 하러 나가면서도 테스는 알렉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귀족의 아이로 키울 수 있는  알렉의 아내가 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테스는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과 규범에 자유로왔던 테스는 스스로 규범이나 인습에 얽매이는 속물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것은 당시 시대에서 목사나 신부만이 세례를 줄 수 있다는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죽어가는 아이(사회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몰염치한 자연이 선물한 사생아였던 소로) 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

 

3단계 회복

토마스 하디는 테스를 이렇게 규범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와 자연 일부의 여성으로서 체화한다.  사회적 규범에서 테스는 처녀가 아니었고 순결을 잃은 여성이지만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부분에서 더욱 순결한 여성으로서 변모해 간다. 영혼을 믿었으며 단순한 처녀에서 성숙한 여인만이 지닐 수 있는 사색의 아름다움이 테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를 무시한다면 그녀가 겪은 일을 인문교육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아이가 죽은 후, 더욱 가난해진 집안 살림으로 남쪽으로 떨어진 목장에서 소젖 짜는 일을 하게 된 테스는 새 삶을 시작한다는 희망으로 길을 나선다. 그곳에서 오래 전 말롯의 춤판에서 보았던 에인젤을 만나게 된다.  테스가 만난 두 남자, 에인젤과 엘릭은 서로 상반되는 캐릭터로  둘 다 귀족 계급으로  엘릭은 욕망과 욕정에 충실한 육의 사람이라면 에인젤은 욕망과 욕정과는 다른 자연 그대로의 순수를 사랑한 영적인 사람에 해당된다, 엘릭은 방탕하게 살며 삶을 탕진하지만 에인젤은 사회의 규범과 위선에 맞서며 삶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성인의 삶을 꿈꾼다.  그런 그의 눈에는 목장의 다른 여성들보다 언제나 사려 깊고 영혼과 별의 존재를 믿는 테스는 정말 순수하고 순결한 자연의 딸이었고 그에게 그녀는 더 이상 소젖 짜는 처녀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의 정수, 곧 여성성이 응축된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잡아 간다.  

 

4단계 결과

계속된 에인젤의 구애에 자신의 과거에 대한 고백을 할 용기를 내었지만 번번히 고백하지 못한 테스의 내면은 첨예한 갈등의 고통이 시작된다. 목장에서 에인젤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하루 꿈과 같은 나날이었고  테스는 사랑보다 더한 숭배에 가까운 헌신으로 에인젤을 사모한다.  목장 처녀들이 에인젤을 짝사랑하면서도 테스에게 사랑을 양보할 정도로 테스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숭고함이었다. 애초에 속물적인 위선과는 거리가 멀었던 직설적이고 너그러운 성품의 테스는 결국 결혼식 당일에야 고백을 하게 되고 지적이며 사회적 편견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에인젤은 결국 자신 스스로의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채 테스를 떠나간다. 테스가 말했던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진짜 내가 아니라 내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될 수도 있었을 여자랍니다.” 것처럼 말이다.

 

5단계 여자, 대가를 치르다

브라질로 떠난 에인젤을 기다리던 테스 앞에 남겨진 것은 다시 또, 가족과 가난이었다. 가난한 아름다운 여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고 이혼을 하지 않은 이상 높은 신분의 며느리가 험한 일을 한다고 알려지게 되는 것이 두려워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테스의 궁핍은 더욱 극심해져만 간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눈썹을 반으로 자르고 치통을 앓는 것처럼 얼굴을 동여 매어 얻는 순무 캐는 일자리를 얻어 오전에는 서리를 오후에는 비를 맞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에인젤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마지막 장은 가엽고 안쓰러워 어떻게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품의 가장 백미는 에인젤과 테스의 대화였다. 1편에서 자기 변호에 서툴렀던 테스는 에인젤에게서 받은 인문적 지식들을 동원하여 에인젤을 설득하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지녔던 편견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 게다가 테스에게 남겨진 짐덩이였던 가난과 가족에 대한 의무는 결국 테스를 벼랑끝에 서게 한다.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는 노동이라는 민중의 삶을 제르베즈로 대신하면서  '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환경 때문에 망가진 ' 민중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더버빌가의 테스》는  배움이 부족하고 거친 노동과 비참함이 남은 농촌 계급, 특히 여성의 삶에서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되는 '처녀성'에 대한 사회적 고찰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목차에서 여성의 처녀성이 테스의 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틀은 몰락해 가는 귀족 집안의 여성이 농촌 계급의 여성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인생유전으로 사회규범과 관습의 파편들에 희생되는 한 여성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지만 세부적인 틀은 여성의 '처녀성'이 사회통념의 잣대에 속수무책으로 짓밟혀지는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테스로서는 비극적 삶이었기에) 테스의 가슴 절이는 편지들로 눈시울을 붉혀가며 그녀의 불행 이면에 수면처럼 잠겨있는 사회의 편견에 가슴 아파하며 , 고혹의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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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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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일 없는 하루를 산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하루가 나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미시적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이 별 볼일 없는 하루에서 특별한 순간을 포착한다.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거대한 허리케인을 몰고 오듯 역사는 미시와 거시의 두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시대의 삶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삶은 그야말로 예측불허이며 어떤 변수를 가져올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예측불허의 삶을 예측가능한 삶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통로라는 함의이다. 따라서, 다각도의 채널로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역사서는 사고의 지평뿐 아니라 고착되어 있는 이론에 유연성까지 더해주며 시대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선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연코 최고라 할 수 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역사저널 그날을 한번 보고는 계속해서 챙겨보게 되었다.  역사를 잘 알아서 챙겨본 건 아니고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널들이 흥미로왔던 이유다. 실은 류근 시인을 시집으로만 볼 때는 조금 시니컬하고 심하게는 니할리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보니 많이 달랐다. 게다가 정말 좋아했던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의 작사가라는 것도 의외였다. (이제까지 김광석 작가인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논리정연하면서도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류근 시인과 쌍벽을 이루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용 감독과의 만담 같은 대화도 시종일관 웃음을 주는 요소였다.  

 

KBS역사저널 그날 제작팀은 삶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를 ' 만남'이라 하며 한 시대를 운명지었던 '그날'에 주목한 역사보따리를 꾸렸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만남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자 운명이다. 500년이라는 거시적 역사의 흐름에서 주목한 미시적 만남의 순간들은 조선 역사안에서 숨겨져 있던 나비의 수많은 날개짓이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은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창조를 가져왔다. 정도전은 조선의 정신적 지주로  이성계는 실질적 지주로서 실리에 입각한 '합리'라는 개념으로 세워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당시 시대상으로는 최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조선의 정신이라 할 수 있지만 반면 정도전과 이방원의 만남은 조선을 당쟁과 역모의 시작을 보여주는 작은 날개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도전을 죽인 후 왕이 되자 죽을 때까지 태조 이성계의 미움을 받으며 살았던 이방원이 적장자였던 양녕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면서 시작된 왕권다툼은 세종이후 조선 역사를 권력과 대립의 나라로 물들어 갔으니 지나친 비약도 아닐 것이다. 양녕과 어리의 어긋난 만남은 양녕을 왕세자에서 폐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조선 역사에 세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집현전을 부활시키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위로는 4군 6진을 설치하고 아래로는 대마도를 정벌하며 조선 최초로 국민투표가 열리고 한글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은 이렇게 아주 작은 사건들이 모여서 이룩해 낸 허리케인인 것이다.

 

작년 민음사에서 나온  민음한국사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에서는 태조, 태종, 세종,성종에 이르는 전근대를 그 어떤 시대보다 중요하게 보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이 책을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기존 한국사에서 부정적인 측면만 보아오던 것과 달리 '역사저널 그날'은 정도전과 이성계가 꿈꾸었던 이상의 나라위에 세워진 조선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살아있는 역사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새롭게 회자 되고 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고 말한 처칠의 유명한 문장처럼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조선의 그날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역사에 있다. 다행이도  2017년 부터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선정 되었다. 역사가 아닌 영어가 필수과목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순된 교육현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이제라도 시작한다는 것자체를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책과 프로그램을 같이 보다보니 서평이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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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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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나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린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그림이 떠올랐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외형적 프레임은 다 알다시피 모자이다.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를 삼킨 뱀을 그린 어린왕자의 그림은 모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그 전에도 이 그림을 떠올린 적이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엽기적인 사진 가운데 전갈을 삼킨 채로 죽어 있는 뱀의 사체를 보면서도 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떠올렸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 유명해진 것은 모자로만 보여지는 단순한 그림프레임 안에 담긴 본질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사고의 확장(창의성)에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코끼리와 같이 자신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삼키다가 배가 터져 죽은 뱀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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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춘삼월, 경남은 진보와 보수의 접전이 가장 치열한 곳이 되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거창은 한 차례 법조타운 건립으로 진보와 보수간의 한 차례 전쟁을 치른 후라 약간의 소강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무상급식에 대한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은채 소리없는 전쟁중이다. 무상급식 중단이 전국적 이슈가 된 것은 선별적 복지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보수진영에서 차기대선 주자인 도지사가 기존 무분별한 교육 예산에 대하여 감사를 받을 것을 제안하자 진보 진영의 교육감이 이를 거부하게 되면서 사안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이들 밥그릇을 가지고 정치적 논리로 어른들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복지라는 커다란 프레임으로 볼 때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할 충돌이라 보여진다. 이렇게 보수와 진보의 마찰은 미국만의 문제뿐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정치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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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저명한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이러한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프레임의 문제로 해석한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형상을 한 모자라 할 수 있다. 뱀이 코끼리를 먹어도 뱀이라는 형상은 변하지 않는다. , 내용에 상관없이 프레임은 고정불변인 것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커다란 틀로서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따라서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말은 곧 사회 변혁을 의미한다.

 

 

 

 

  프레임은 직접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프레임은 우리 인지과학자들이 인지적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부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뇌 안에 있는 구조물로서, 의식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물을 통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이른바 상식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추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추론은 우리의 무의식적 프레임에서 나온다. -p11

  

저자는 책 제목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듣는 즉시 머릿속에서는 코끼리라는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것에 착안하여 프레임을 정의한다. 우리가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반대로 그 프레임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프레임의 재구성은 정직성과 도덕성에 기초하고 있다, 프레임 재구성은 의견이 상반되는 이들을 이해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책에서는 '이중개념주의'라는 전문용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쉽게 말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중개념주의는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유권자는 이해시키기 위한 대상자인 불특정 다수를 뜻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원리를 바탕으로 한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진보주의자들은 자상한 부모 유형의 도덕성으로 보살핌과 배려의 도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구별되며 저자는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과 '중간층'인 유권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방법을 인지과학분야와 미국 정치상황의 사례를 통해 비교 설명하여 주며 기존의 고착화되어 있는 프레임을 새롭게 재구성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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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진보가 흔히 믿는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진보의 헛된 희망일 뿐이라 한다. 인간의 뇌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지과학에서 밝히고자 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보가 보수를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이나 한국의 현실에서 진보는 '중간층'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그 점에서는 참 안타깝다) 저자는 진보가 보수를 설득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진보가 수용해야 할 문제점이라 본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프레임은 모자였지만 현실의 보아뱀은 무리한 시도로 배터져 죽은 뱀의 형상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 현재의 무상급식까지 진보와 보수가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소위 '중간층'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무리하게 코끼리를 삼키다가는 이내 배가 터지는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과학적인 토대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진보와 보수의 싸움 사이에 낀 새우들만 등터지는 격이니 말이다.

   

# 당신이 진보라면 읽어볼 만한 구절

-여러분이 응대하는 보수주의자에게 반드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라. 상대방에게 존중을 표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라. 그들의 말에 단 한 마디도 동의할 수 없더라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진심으로 대하라. 비열한 언행을 삼가라. 그쪽에서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악을 악으로 갚아봤자 좋을 것이 없다. 어쨌든 상대방을 존중하고 다른 뺨도 돌려대라. 여기에는 남다른 품성과 긍지가 필요하다. 품성과 긍지를 보여주어라.

-소리 지르면서 싸우지 마라. 급진... 우익은 문화 전쟁을 필요로 한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러한 문화 전쟁의 담론 형식이고, 교양 있는 담론은 '보살핌 도덕'의 담론 형식이다. 토론이 예의를 갖추기 시작하면 우리가 이긴다. 우리를 소리 지르게 만들면 그들이 이긴다.

-하지만 정당한 분노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정당한 분노는 품을 줄 알아야 하지만 표출은 절제된 방식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절제력을 잃으면 그들이 이긴다.

-정상적인 보수주의자와 역겨운 이념가를 구분하라.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사람됨과 친절함과 호의의 감정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침착하라. 침착함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표시다.

-유머 감각을 발휘하라. 선량한 유머 감각은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표시다.

-세상에는 맣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화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품위 있고 존중받는 위치를 확보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을 개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상대방의 주장을 부인하는 흔한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대신에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프레임으로 구성되지 않은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사실을 진술하고 그 사실이 상대편의 주장과 모순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프레임이 사실 이긴다. 프레임은 유지되고 사실은 튕겨나간다.

-상대편의 진짜 목적이 그가 말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예의바르게 그의 진짜 목적을 지적해주고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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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2015-04-07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아요^^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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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책이 주는 감흥이 좋아 더디게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마치 밀어를 나눈 사이처럼 깊고 내밀한 사이로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책이 가진 힘이다. 항상  아까워 단한번에 읽어 내지 못하는 책이 있다면 지체없이 나는 장석주의 책을 꼽는다. 마치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많은 부분을 공감케 하는 능력자. 장석주,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걷는 즐거움을 같이 누리곤 하였다. 치열하게 읽고 사색하고 쓰는 삶이 전부인 삶, 동경해 마지 않는 삶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호사스러운 취미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외롭고 힘겨운 일이다. 책이라는 물성이 지닌 특성이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확장해 가는 지평들은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데다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절대 객관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외로운 일이다. 오르한 파묵이 자신의 상상력을 작동시키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하였던 것처럼 책을 읽고 쓰는 삶은 외로움이 동반해야 가능한 삶이다. 그렇게 책을 읽는 것은 몽상과 고독한 상상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고, 결국 긴 우회로를 거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다라고 한 것처럼 책의 길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길이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르게 천천히 흐르는 시골에서 조급성과 가속화로 몸살을 앓는 시대에는 천천히 들길을 걸으며 제 존재 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밤하늘의 별들을 우러르며 삶의 의미를 숙고하던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숙고는 고요의 침잠에 가깝다, 숙고는 들뜸과 소란스러움에 깃들지 않는다. 차라리 숙고는 고요의 잉태이고, 그것의 출산이다.

 

책은 기억의 접착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잊으면 안 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발한다. 살면서 생긴 가혹한 생채기에서 나오는 피를 멎게 한다.”

   

오늘날같이 지적 생산이 풍요롭게 이루어지는 문명세계에서는 철저하고 깊이 있게 책들을 읽지 않는다면 그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다.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제 의지대로 방향을 잡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좌충우돌하거나 시행착오를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피상적이고 밀도는 성기고, 그리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독서인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책 읽기의 최종 목적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를 하는 것! 책 읽기를 통해 지식의 전체상에 접근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식을 통섭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의 총량을 키워야 한다. 읽는 행위의 능동성은 뇌 회로를 새롭게 여는 수단이 되고 궁극적으로 사유의 복잡성을 견뎌 낼 수 있게 한다. 책 속의 지식과 지식들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사유의 불꽃들과 함께 타오르며, 즉 책 읽기의 열락을 사유의 향연으로 바굴 때, 그리하여 독서의 총량을 지렛대 삼아 지식 생산자로 나설 때 비로소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독서인만이 자기를 넘어서서 초인류가 될 수 있다. -p114

   

디지털 세상에서도 행복은 광속이 아니라 아날로그이 속도로 온다. 그러니 인터넷을 끄고, 스마트폰도 놓아라! 멈추고, 깊이 호흡하고,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 ! 나를 감싼 세상을 돌아보라!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추구하고 집중함으로써 돌연 얻어지는 기쁨으로 온다, 행복의 유예만이 행복을 발견하게 한다! 행복은 그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행복의 부조리함이다, 삶이 그렇듯이 행복도 부조리하다 

 

여전히 인생에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책을 읽어 내 삶이 달라지거나 변한 것은 없지만 인생의 고비마다 책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매 삶을 축복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책 읽기의 힘이었다. 책을 읽으며 사는 삶, 그 안에는 상상하지 못하였던 세계의 지평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배우는 지혜의 열락은 상상이상의 즐거움을 상쇄시킨다.생동하는 봄기운 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랭이조차 희망이라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불면의 밤은 깊어가고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속에서 책 하나만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장석주 시인의 책이야기를 꼭 들어야 한다. 

육체는 슬프도다, 오호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

La chair est triste, helas! et j'ai lu tous les liv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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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4-0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독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요새들어 `책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서요.

외로울때도 힘들때도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드림모노로그 2015-04-24 13:2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조심하세요.. ㅎㅎ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외로워지거든요...
가끔은 외로움에 깔려버릴까 두려워질 때도 있더이다...

치료탑 2015-04-22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책을 천천히 읽는게 힘드네요. so many books. so little times. 일단 한번 읽은 책은 다음에 읽으려니 하고 책장에 꽂아둡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날이 올까하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구요. 욕심이려니 싶고 나쁜 버릇이려니 싶으면서도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사고 마네요.

드림모노로그 2015-04-24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고
새로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지만
시간이 없다는 거....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읽던 읽지 못했던 , 백년안에 우리 인생에 책의 역사는 끝이날텐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
 

신경숙의 서늘한 고백에 따르면
˝사랑은 점점 그리움이 되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것, 손만 뻗으면 닿는 것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것,금지된 것, 이제는 지나가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향해 그리움은 솟아나는 법이다..... 그리움과 친해지다보니 이제 그리움이 사랑 같다...... 사랑이 와서,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그 마지막 문장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슬프다. ˝사랑이 와서, 그리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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