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심리정치

우리는 오늘날 디지털 심리정치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대중은 이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입고 싶은 것을 입고, 소비하고 싶은 것을 소비하도록 방임되고 권장된다.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한병철에 따르면, 그 자유는 자본이 제공한 착취 가능한 자유, 상업화된 자유, 자본이 만들어준 ‘레디메이드 옵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더 많은 성과는 더 많은 돈을, 더 많은 돈은 더 많은 자유를 약속한다. 우리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함으로써 다시 자본에 봉사한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 종속된다. -출판사 서평 발췌-

 

작년 신간 평가단에서 투명사회가 선정된 이후 이분의 칼럼을 챙겨보게 되었다.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현대를 진단하는 그의 예리한 판단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책 역시도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그의 심도 깊은 통찰을 기대한다. 

 

2, 마크 로스코

 철학자 강신주는 마크 로스코의 전 생애를, 즉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로서 척박하게 살아야 했던 유년 시절, 학업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 시절, 예술가로서 발돋움하며 시대와 맞서 싸운 전성기, 인생의 위기를 맞닥뜨리기 시작한 벽화 시대와 비극적 자살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고증으로 되살려 냈다. 한편 저자는 마크 로스코가 심취했던 니체, 키르케고르, 고대 그리스 비극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를 시도하며 오직 철학자만이 해낼 수 있는 ‘마크 로스코론(論)’을 완성했다. 우리는 왜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울게 되는가, 그는 왜 소통을 강조했는가, 또 그는 어째서 양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처럼 철학자 강신주는 지금 우리가 왜 마크 로스코와 대면해야 하는지 설파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그의 작품이 품은 심오한 의미와 당대적 가치에 대해 명쾌한 분석을 제시한다.-출판사 서평 발췌-

 

강신주의 색다른 면모다. 마크 로스코를 인문학으로 읽게 되다니.. @@

 

3,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은 말한다. “미학자에게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새로 발견된 고분의 문을 따는 고고학자의 마음처럼 흥분되는 일이다.” 활자와 도판의 세계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러 나온 미학자의 담담하지만 강단 있는 소회다. 그러나 이 흥분은 비단 미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테다. 진중권이라는 미학자의 새로운 탐험에 동참하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예술과 예술가에게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체험을 선사할 것이다.

 


4,이중텐 국가를 말하다.

한국에도 마니아 독자를 가진 중국 학자 이중톈의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개정판이다. 이 책은 현 중국 정부의 뇌관을 건드려 출간이 보류되었으며, 이중톈 본인이 최고의 역작으로 꼽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중톈의 역사관, 정치관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진나라를 시작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중국의 제국을 중심으로 정치이념, 관료제도, 법률에 이르기까지 정치 시스템을 전방위로 분석함으로써 국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의 안위와 복지가 보장되는 국가, 자유와 법치, 인권이 확립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과 지금 당장 멈춰야 할 것들에 대한 혜안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정치 시스템을 개혁해나갈 방향성에 대해서도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중국 제국의 역사가 이중톈이라는 석학의 입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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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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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지를 쓰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아니  편지지 가득 넘쳐나는 감정의 편린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 더 진솔한 표현이겠지요. 그러나,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바로 이 책 《작가란 무엇인가 》라는 책 때문입니다. 읽는 동안 벅차오르는 감동을 누르기가 힘들었습니다.  행간 가득히 넘쳐나는 작가들의 인터뷰는 인고의 고통으로 태어나는 진주처럼 고귀함으로 반짝거립니다. 작가들의 삶과 생각, 세상을 관통하며 읽어내는 진리의 파편들이 날아와 가슴에 돋을 새김으로 새겨집니다. 작가들의 언어는 제 심장에 타투를 새기는 것처럼 강렬했습니다. 이어 온몸에 퍼지는 문장의 온도는 작가의 마음이 전이되듯 뜨거웠습니다

 

 페르시안 문학과 서구문명과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문화적 갈등을 문학에서 보여주고 있는 오르한 파묵이 국내에서 위험한 정치인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었던 터키의 정세를 들으면서 문학이 파생하는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하며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키치의 세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가지고 있던 긍지나 일상이 빛나 보이고 필립 로스가 문학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삶의 틈새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문학의 틈새를 작가들의 눈과 입을 통해 메꾸어 주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사랑의 행위라고 하는 움베르토 에코,  포크너의 책을 읽고 삶이 달라졌다는 오르한 파묵, 일본의 삶을 그리고 싶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글쓰기라는 폴 오스터, 인간 본성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악이었다는 심리 스릴러의 대가 이언 매큐언, 도덕적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필립 로스 등,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에 스며들어와 또 한번의 파란을 일으킵니다. 소설처럼 진지하고 시처럼 아름답고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합니다.

 

작가의 삶을 같이 느끼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무척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도 절대 만나지 못할 이들을 이 한권으로 만났다는 것만으로 즐거웠습니다. 호수의 수면 같이 깊고 아름다운 작가의 내면에 침잠되어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보며 작가는 자신을 태워 삶을 잉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장에 타투를 새기듯 작가의 삶을 읽겠습니다. 닿지 않을지라도 쓰겠습니다. 사랑과 존경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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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4-03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려는 큰딸에게 택배하고 나는 아직 못 읽었는데... 님 덕분에 꼭 읽어봐야지 다짐하네요!^^
 

토지를 읽기 시작한지 오래임에도
서문도 아닌 작가의 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다.
문장마다 온도를 지닌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박경리 선생의 언어는 작가로서는 너무 뜨거워.괴로운 온도다.선생의 글을 읽을 때 나는 너무 괴롭고
문장의 온도에 데일 듯 하여 천천히 곱씹어 삼키지만
이내 괴로워져서는 솜털이 다 일어서는
고통을 맞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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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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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리스로마 신화 가운데 판도라상자 이야기가 있다. 인간에게 재앙이 도래한 이유가 제우스가 금기시한 마음상자를 판도라가 열어보게 되면서 파생된 스무가지의 악덕(자기애, 무지, 슬픔, 허영,거짓말,과도함,집착,오만,탐욕,비뚤어진 웃음,골육상쟁의 피,잔혹함, 폭력, 운명, 불복종, 불능,이별, 복수)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수많은 악덕 가운데 첫 번째로 튀어나온 것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악덕이다? 당시 나는 시간을 악덕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무척 의아했다. 악덕의 사전적 의미는 ‘도덕에 어긋나 나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덕이라는 기준은 분명히 인간의 기준일 뿐이다. 도덕이라는 규범자체는 인간이 만들어낸 테두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덕의 잣대로 악덕처럼  애매모호한 구분은  없는듯 하다. 그렇다면 인간 악덕의 기준에 다른 무엇 아닌 시간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야기가 현대 우주론의 끝자락으로 우리를 이끈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생활에서 경험하는 시간의 역사인 시간의 사회사를 다룬다. 여기에는 깜짝 놀랄 만한 진실이 숨어있다. 우주론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화하면, 인간의 시간도 함께 변화한다는 것이다.-p15 

 

시간에 대한 이야기 시간 연대기는 우주의 역사와 인간의 시간을 하나로 엮는다.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일상생활과 연결하여 과학적 우주론의 탄생까지 궤어나간다.  저자는 시간과 우주의 변천사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만년 전의 수렵과 채집의 생활과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과학의 시대인 현대라는 시간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이만년 전의 하루는 오늘의 일분이나 단 몇초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바로 과학이라는 혁명으로 인해 생활의 모든 패턴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문화의 혁명은 곧 도구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고 신석기 시대의 쟁기의 사용이 혁명의 시작이라면 현재 디지털 문화까지 수많은 우주론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우주와 문화의 변천사는  '물질'이라는 프리즘으로 과학의 스펙트럼을 펼친다. 

 

물질의 개입, 문화, 우주사이의 수수께끼 같이 복잡한 관계는 순환 고리를 이루며 열려 있었다, 문화적 변동은 새로운 종류의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기술은 다시 인간에게 새로운 형식의 체험을 하게 만들며, 이런 새로운 체험은 다시 새로운 형식의 문화 변동을 낳는 것이다.-P73

 

그렇다면 시간은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일까? 저자는 중세 수도원에서 시간에 맞추어 의례를 행했던 것, 즉 하루가 여러 차례의 기도 시간으로 나누어졌던 것을 오늘날 시간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어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 가져온 우주론적 개념은 시계장치 우주’ (시계가 보급되기 이전)으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결코 넘치지도 않으며, 여름에도 겨울에도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시계장치(오렘)’라며 우주를 표현했다. 행성들의 운동을 정밀한 시계장치를 움직이는 균형잡힌 시소와 비슷하게 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수백년 후의 뉴턴역학으로 이어졌고 산업혁명시대 발명된 가스등의 사용은 과학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과학과 문화의 변화에 박차를 가하며 문화와 우주론은 더욱 긴밀해지고 복잡해져 간다. 아인슈타인의 '시간조정장치'로 인해 전 세계가 전자기적 동시성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러한 시간의 동시성은 상대성이론의 기준틀을 마련해 주었다.

 

세탁기와 라디오의 등장은 팽창하는 우주론과 빅뱅이론을 정립해 주는데 저자는 문화에서 사용하는 도구들이 시간과 공간을 다시 정의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 디지털 과학기술이 생활양식을 지배하게 되면서 빅뱅이론의 모순을 모두 해결해주는 인플레이션이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 이것은 빅뱅(폭발)이전의 우주에 대한 설명에는 부족함이 있고, 빅뱅이후의 우주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미완상태에 있다저자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과학과 그 과학이 속해 있는 우주가 다시 한 번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이어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 우주가 산산조각이 나 잿더미가 되고 난 후에 끝없이 부활한다는 주기적 우주론과 우주가 고차원 브레인 세계일 것이라는 가정을 제시하는 끈이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양자역학과 우주의 시작이나 끝이 없는 다중우주까지 문화의 변천사와 함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시간이란 단순히 시계를 보고 읽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인 시간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규정될 수 있다.-P315

 

멀티 유니버스의 브라이언 그린이  단 하나의 우주라는 패러다임을 버리고 ‘9가지 다중우주(누벼 이은 다중우주,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브레인 다중우주, 주기적 다중우주, 랜드스케이프 다중우주, 양자 다중우주, 홀로그램 다중우주,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궁극의 다중우주)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우주론을 펼쳤을 때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가 하나가 아닌 수많은 우주라는 가설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었더랬다. SF영화도 진일보하여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여행다는 일이 상상만이 아닌 먼 미래일 것만 같은 상상을 주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다변화되고 있는 우주론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주며 새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책이다. 리처드 파넥이 《4퍼센트 우주》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겨우 4퍼센트이며 나머지 96퍼센트 우주의 베일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우주론이 변화함에 따라 우주의 시간과 그 기원 역시 달라졌다고 한다. 브레인 우주론, 영원한 인플레이션이론, 다중우주론, 끈이론의 풍경, 루프양자우주론등, 문화의 변천에 따라  몇몇이론은  다른 이론들보다 더 완전하게 발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주라는 무대에 특이하고 새로운 역할을 할 뭔가를 더해져야 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돈이자 권력이 되는 세상, 영화 <인타임>을 보면 시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소중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고 살지 못하는 시간에 대한 영화는 시간이 권력이자 힘이 되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시간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한다. 시간과 우주의 긴밀성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의 우주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어쩌면 판도라 상자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시간은 베일에 가려진 우주의 문을 열어주는 제우스의 열쇠 일런지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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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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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외우는 것이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쓰는 표음문자이지만 한자는 각 글자가 고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자의 음과 뜻이 사물의 형상을 본 뜬 문자라 하기에는 어불성설이다. 세월의 풍화에 의해서 자연의 지형이 바뀌듯 한자의 뜻 역시도 수많은 변천을 겪으며 변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자가 생기기 이전에 사용하던 그림과 낙서는 한자의 변천을 유추할 수 있는 주요한 단초가 된다.

 

 

한자의 탄생의 저자 탕누어는 대만 출신으로 대만 최고의 문화비평가이자 학자이며 작가이다. 저자는 창일이라는 개인이 한자를 창제했다고 주장하는 창일제자설이 허무맹랑한 신화와 전설에 불과한 것이라며 문자 형성은 하나의 시간대에 한 지역에서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며 문자의 기원은 오로지 문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문자 또는 아직 문자로 형성되지 않은 유사 문자를 바탕으로 추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저자는 중국에서 발견한 최초의 문자인 갑골문자에서 한자의 형성과 기원을 추론해 간다. 갑골문자는 저자의 전방위적인 지식을 총동원한 풍부한 상상놀이터이다. 글자 만들기 시작인 상형문자로 시작하여 형성자의 조합이 다시 지사문자에서 가차와 전주가 되면서 새로운 글자가 아닌 기존 문자의 폐물로 이용되는 과정을 다양한 설명과 사유의 확장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친 한자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글자의 제대로 된 의미가 잘 전달되지 못한 채 문자의 중복 전주하는 굴레에 빠지거나 단순한 가차로 도약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자의 전유와 공동의 기억 사이의 의존 관계를 권력과 정보의 상호 의존과 공생관계를 맺으며 파생되는 글자를 비천한 글자와 성애의 문자, 무서운 문자로 구분하여 추론할 뿐아니라 문학과 비평, 발터 벤야민, 마르케스와 보르헤스와 같은 문학가들의 언어와 대비하여 전방위적 사고를 궤하기도 하며 문자의 출현이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닌 사회적 습속의 흔적임을 확인시켜 준다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을 불러낸 것처럼 서로의 기억 속에 잠재돼 있는 공동의 무언가를 불러낼 수 있는 모종의 주문이 필요하다. 문자가 바로 이런 기억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문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해답을 유추하게 만드는 수수께끼다. 문자는 정보에 접속한 사람을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비유이기도 하다, 문자는 서리가 내리면 얼음이 얼 것을 아는 것과 같다. -p78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구명보트에 홀로 살아남은 소년 파이의 이야기이다.  망망대해에서 파이가 호랑이와 구명보트에 남겨지자, 절망과 고독감에 정신 불안 증세까지 보이던 파이를 위로해 준 것은 다름아닌 글이었다.  연필이 몽땅 연필이 되고 폭풍우에 노트가 날라가기 전까지 파이를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었던 것은 말보다도 글이었다. 노트가 날라가자 배에 날짜를 표기하며 버티는 파이의 모습은 어쩌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행위는 언어보다 문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도 같은 장면이 나온다.  무인도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로 표현하는 방식은 로빈슨이 벽이든 모래사장이든 나무든 닥치는 대로 자신에 대한 표기를 남기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가 파산할 때 같이 떠내려온 배구공에 사람 얼굴을 그려 이름을 부르는 것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나 진배없다.  이렇게 홀로 남겨졌을 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이 쓰는 행위인 것처럼 문자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수단이기 이전에 생래生來이다.

  

 

 

 

     

그렇기에 갑골문자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문자의 변천만이 아닌 수세기를 살아오며 변모를 거듭해 온 문화의 기억을 불러오는 작업이다.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는 일은 언어(말)로 하는 것이지만   알라딘의 존재를 기억하고 전승하는 것은 문자이기 때문이다. 파이와 로빈슨의 이야기가 전세계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었던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문자의 힘이 자리하고 있다.  문자는 언어가 담지 못하는 흔적을 담고 기억을 불러오는 거수기 역할을 한다.  한자에 담겨진 함의들을 저자와 같이 풀어가는 재미도 재미지만 세월의 풍화로 변해 버린 글자 본연의 민낯을 보는 학업적 소득도 있는 책이다. 역사학과 문화비평에 해박한 저자이기에 가능했던 문자의 상상놀이터이자  포스트모던 비평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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