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분석한 춘추전국의 제자백가
신동준 지음 / 인간사랑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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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릇 치국평천하의 길은 반드시 우선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는 것이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  

 

한비자가 한 말은 현재에도 한치의 틀림이 없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난세로 꼽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 한 제자백가는 다름아닌 한비자의 법치사상이었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한비의 법치술이 있어서였다. 중국역사에서 삼황오제의 전설시대로부터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루기까지의 시대를 춘추전국시대 또는 선진시대라 부른다. 말이 좋아 춘추전국시대였지 무려 550년을 전쟁과 살육으로 보내면서 등장하게 된 제자백가’들의 사상은 고통과 상처로 신음하던 백성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철학자들의 고육지책으로 탄생한 고민과 분투의 산물이었다. 제자백가들은 저마다  새로운 삶의 규칙과 논리로 등장하며 백성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하였다.  현대에서 여전히 제자백가들의 사상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자백가가 단순히 사상 또는 철학으로 머물러있지 않고, 지금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했던 모든 사상들의 집합체를 일러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부른다. 백가쟁명은 치국평천하의 근본목적인 치도와 그 방법론인 치술을 둘러싼 논쟁을 지칭한 말이다. 이 백가쟁명의 내막을 제대로 파악키 위해서는 먼저 제자백가의 면면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제자백가의 종류를 두고 사마천은 유가와 묵가, 도가, 음양가, 명가,6부류로 나누었고, 후한 초 반고는 종횡가와 병가, 잡가 , 농가 등 4가지를 추가했다. 이를 통칭해 세상의 모든 학문과 사상을 총망라 했다는 910라 불렀다고 한다.

 

 

 

  주목할 것은 제자백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세상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도가를 포함해 유가와 묵가는 선진시대라는 난세의 배경에서 출현했지만 난세 자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했다  

 

고전연구가 신동준은 《고전으로 분석한 춘추전국의 제자백가》에서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새롭게 재정립하고 있다. 저자는 제자백가 가운데 통상적으로 유가, 법가, 도가, 묵가를 선진4先秦四家로 묶지만, 묵가를 빼고 상가를 선진4가 넣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유가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유가가 역설한 왕도의 이상을 추구한 유가좌파에 해당하며 맹자 역시도 외양상 묵가를 비판했지만, 내막은 묵가의 사상적 제자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맹자를 묵가로 분류하면서 공자사상의 정맥이 유가우파순자에게 흘러갔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유가와 법가 및 도가 등 이른바 선진3만이 제자백가의 중핵으로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최근 중국 학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상가商家선진 4先秦四家로 다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1부 호리지성을 적극 활용하라 - 상가商家 45

2부 극기복례로 천하에 임하라 - 유가儒家 235

3부 겸애교리로 공존을 꾀하라 - 묵가墨家 699

4부 무위자연의 자유를 즐겨라 - 도가道家 887

5부 엄법으로 천하를 평정하라 - 법가法家 1109

6부 지피지기로 승리를 취하라 - 병가兵家 1315

7부 상대의 속마음을 공략하라 - 세가說家 1411 

 

저자는 화이트 헤드가 서양의 사상사는 플라톤 저작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한 것처럼 동양의 사상학문은 선진시대에 쏟아져 나온 제자백가서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제자백가는 동양철학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철학이 기계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과학과 신의 섭리에 심취해 있을 때 전쟁과 혼란으로 아비규환에 빠져 있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제자백가들은 위기 가운데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공자와 노자, 장자, 한비자, 관중과 같은 사상가들의 탄생배경이다. 이들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유하여 최선의 방법을 찾음으로써 새로운 규칙과 방법을 세우고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따라 사상사를 나누며 발전해갔다. 만물의 순환이치를 깨우치며 천지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인간학의 관점은 제자백가들의 공통된 중심사상이었다. 동양철학은  인간 본연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제자백가들의 사유에서 비롯된 삶의 모든 고통과 번민과 분투의 철학이었기에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사유가 통通한다. 신동준의 제자백가는  사상적 분류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동양철학의 계보학이나 다름없다. 동양철학의 처음과 끝은 단연코 제자백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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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홀 - 우리 마음을 흔든 고은 시 100편을 다시 읽다
고은 지음, 김형수 엮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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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를 마시며 구름을 쫓는 일이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바삐 움직이고 있는 운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보이고, 생명의 신비에 동참하게 하는 듯 경이로움의 나날이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친 나무 아래 소담스럽게 핀 버섯에게서조차 친근함과 생명의 경이를 느끼곤 한다. 자연과 벗한다는 것, 그 말은 어쩌면 시인으로 가는 새벽열차에 오르는 일인지도 ...... 고은 시인의 시의 황홀》을 만나면서 그런 느낌은 더해갔다.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영감의 세계를 그대로 담아내어 극한의 경지에 이르는 황홀경은 바람이 사람이 되고 구름이 벗이 되고 파도가 님이 되는 시詩 세계에 퐁당 빠지면서 시작된다.

 

 

 

 

삶이란 그다지 숭엄하지 않고

또 삶이란 그다지 비천하지 않다

하늘에는 거미줄이 자라고

때때로 별빛이 거기 걸리며 내려온다

아무리 큰 소리를 가진 사람도

별을 아무리 아무리 부를 수 없다

<을파소> 일부

 

 

 

 

시의 황홀은 기존의 고은 시와 달리 시인 김형수의 해설로 엮어 고은의 시 가운데 명구 100선을 엄선하여 실었다. 김형수의 시 해설로 고은 시의 함축적인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시의 진수眞髓를 맛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고은의 시를 사모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고은의 시의 정수를 뽑아놓은 시들을 읽으니 고은의 시세계가 더욱 뚜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은의 시는 생명의 원점에서 출발한다. 만물의 무상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밑그림으로 그린 후 삶이라는 본그림을 그리기 위해 채색되는 스케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 한가운데를 뚫고 섬광과 같은 깨달음을 준다.  이렇게 살아있는 자연과 함께 공생한다는 중용의 시각은 고은 시인이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동양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방증함이다.

 

 

 

 

 

갓난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 먹는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억울한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서 울음 울때 그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을 시인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 했다. (엮은 이의 말)

 

 

 

이번 시집은 마치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듯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짧은 운율의 하이쿠가 지닌 장점 그대로 생의 응축과 자연의 아름다운 대비들을 통해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하고 있다. 누군가 좋은 시는 화려한 수사가 필요없이 삶을 깊이 있게 느끼게 하는 시라고 한다. 고은의 시는 그런 면에서 좋은 시다. 이해하기 이전에 감동이 먼저 와 있다. 삶은 곧 아픔이자, 슬픔, 그리고 기쁨이다. 나의 경우에 좋은 시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있는 시라 여겨진다. 희로애락 가운데 한가지라도 비어버리면 삶은 균형을 잃어버린다.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날도 있고 즐거운 날이 있으면 아픈 날도 있다. 이 반복되는 삶의 희로애락에서 섬광과 같은 진리의 찰나를 낚아올리는 것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고은 시집이 황홀한 이유이다. 이제 곧 누구라도 시인이 되는 계절이 돌아온다. 고은의 시詩 열차에 올라 계절의 정수를 누릴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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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

 

이 세상은 부서지는 세상인 것을

 

<어느 기념비>일부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순간의 꽃> 한 토막

 

 

 

 

 

시인의 소쩍새가 온몸으로 울고 시인의 별들이 온몸으로 빛나는 저 위대한 찰나야말로 고은 식 주술의 순간일 것이다.

 

 

 

가을장마는 미친년 볼기짝이지

 

욕먹을 데도 없이

 

집중호우로 쏟아지기도 하고

 

뚝딱 시침 떼기도 하지

 

<하늘> 일부

 

 

 

 

 

1980년 이래 나는 절대로 구름하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운 사람 하나 없이

 

하루하루 견디는 일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구름에 대하여> 일부

 

 

 

 

 

고은에게 세상이란 문명보다 우선시하는 생명들의 정원 같은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절간에 울려퍼지는 풍경소리, 집중호우로 쏟아지고 있는 가을장마,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여수 158>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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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7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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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7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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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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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난바다로 자꾸 떠밀려가는 중년의 나이가 되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부표浮漂가 되어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이때 '나는 왜 여기있는가' 라는 질문은 실존의 문제가 된다. 인생이라는 바다는 처음에는 블루오션인 것 같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치열한 생존경쟁의 레드오션으로 변해간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사상과 중심이 바르게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인생 후반전을 부침속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공자가 불혹不惑이라 한 중년의 나이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유혹이 그 어느때보다 많아지는 나이임을 함의하고 있다. 2006년 인문학의 위기설 이후로 인문학은 줄곧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삶이 더욱 곤궁해지고 피폐해져 가는 가운데 이제 인문학이 어떤 위로도 되지 않는 사회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절망적이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행복'과 '희망'이 더욱 낯설어지는 사회, 보여지지 않는 이 위대한 가치들이 한 없이 쓰잘데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사회에서 도정일 교수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떠올려보게 하고 있다.

 

산길 옆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은 실은 어미애벌레가 도토리안에 알을 깐 도토리열매들이다. 땅위에서 충분히 도토리의 영양분을 먹고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미 애벌레가 온몸으로 나뭇잎을 떨어뜨린 것이다. 어미애벌레의 이러한 희생에 의해 도토리 안의 새끼는 새와 다른 벌레들의 위협을 받지 않고 도토리의 양분만으로 성충이 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지평속에서 자신들만의 생존법칙으로 고귀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도정일의 인문학은 삶에서 성충이 되기 위한 양분養分을 공급해주며 인문학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앎'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고 했듯이, 삶은 나의 무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의 내가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 새로운 무지에 대한 자각, 그것이 참된 지식(지성)의 출발점이다. 저자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쓰잘데없는 일들을 모조리 고귀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사의 손길처럼 삶에서의 무지를 한꺼풀 벗겨 주고 있다. 인문학이 우리의 삶을 안전한 항로로 인도해주는 등대역할을 하는 것처럼 도정일 교수의 글에는 무지의 앎을 참된 인문학적 통찰로 바꾸어주는 마법의 힘이있다. 철학은 나를 앎에서 출발하지만 인문학은 너와 나라는 관계를 넘어서 공동체의 화합을 이끌어낼 줄 알게 하는 쌍방향 이해의 장을 마련하며 철학과 정치와 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거짓과 허위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껴안고 상식과 건전한 판단에 의해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불혹의 학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도정일 교수는 인문학이 정말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삶이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를 스스로 묻고 그 질문의 거울 앞에 서게 하는 것, 그게 우선 인문학의 가치라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한 번 밖에 없는 삶을 가치있게 살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절망이 아닌 희망의 인문학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보름달이 왜 뜨는지 생각해보며 혼자 실실 웃는 것도 쓰잘데없이 재미있는 일이다. 바닷물을 섬으로 이끌 듯 한국인을 고향으로 이끌기 위해 보름달은 뜨는 것 아니던가? 그 고향에서 1년에 하루만이라도 돈 되지 않는 것들만 골라 생각해보는 일은 고귀하다. 보름달 뜨는 날이 그런 바보의 날일 수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 정말로 문화적 경이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을 방법은 인간의 체온을 가진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그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자본, 주주, 투자자들을 함께 고려하자는 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고객, 노동자, 투자자, 하청업체와 대리점, 사회 공동체, 환경이 그 여섯 가지 가치다.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한국인의 집단적 신년 소망은 천사처럼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의 불안한 짐승처럼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신년작심-

 

고통과 불행은 그 자체로는 결코 예찬할 것이 못 된다. 많은 경우 고통은 무의미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삶이 고통과 불행을 수반한다는 것 역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세계의 현실이다, 만약 행복의 추구가 불행의 완벽한 제거와 고통의 완벽한 회피에 목표를 둔다면 그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통의 기원이 된다. 완벽한 행복의 추구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삶의 진실이 아니며, 인간 사회의 도덕적 이상도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절망의 사회다. -행복 방정식-

   

 

남들의 시선이 너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하라. 영혼이 병들면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보기에, 공자의 가르침이고 [논어]의 중요한 행복론이며 또 동양 담론이 수양이라는 말에 담고자 한 핵심적 의미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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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6 07: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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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6 1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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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간통문학으로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에피 브리스트>를 꼽는다. 간통은 사회에서 터부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간통죄폐지를 앞두고 반대보다 찬성 여론이 많은 것을 볼 때 결혼관 자체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세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져 19세기의 결혼관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시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또한 공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나 바람은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한 책임을 떠안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는 수도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배웠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문학이라는 안경으로 사회를 인지하였던 그녀는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채 결혼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던져진 생의 잔인함은 엠마를 보바리즘이라는 ‘과대망상’의 대명사로 만든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서 더 잔인하였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은 명백하다. 당시 사회적 지위와 명예로 수행되었던 결혼제도는 여성들에게 잔인한 굴레였다. 물론 그러한 굴레에서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멋진 어머니상으로 남겨진 여성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표현한다면 희생없이 살아가기 힘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제도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는가이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통해 허영과 비속한 부르주아의 단면들을 보바리 부인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면면들을 통해 보여주며 통렬하게 시대를 비틀었지만, 엠마는 결국 시대에 허물어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막을 내렸다, 엠마의 불행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불행과 같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의 톨스토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마담 보바리>와 차별된다. 안나는 엠마와 달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안나는 19세기 여성차별에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였고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 그런 주체성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여성상으로 나타난다.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주변 여성들이 자신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여기면서도 결혼제도에 갇혀 슬픔과 불행을 감수하는 것과는 반대로 안나는 자신의 사랑과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러나, 안나 역시도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사랑 역시 현실의 차가운 장벽 앞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피 브리스트》에서의 에피는 엠마와 안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에피는 여성이라는 아이덴티티의 자각을 깨닫기도 이전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피해자이자 희생양일 뿐이다.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에피는 낙엽 구르는 모양새만 봐도 웃음보를 터트리는 천진난만한 소녀에 불과했다.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녀는  브리스트 가문의 외동딸로 가문의 명예에 순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는 것이다.  결혼 역시도 에피는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 상대자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케신의 군수인 인슈테텐 남작과의 결혼은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 나이뻘인  인슈테텐의 나이를 비웃는 친구들이 오히려 에피의 입장에서는 불순종이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그녀의 의식 저변에는 사랑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셈이다. 그녀는 인슈테텐의 교육자적인 태도, 신혼인데도 무감각한 표현들, 매사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육적인 태도들을 묵묵히 감수해 나가지만, 어린 나이에 헤쳐가야 할 귀족사회와 나이 많은 부인들네들의 가십거리가 되자 서서히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귀족사회에서 소외당하기 시작하면서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 에피에게 구원자처럼 나타난 젊디젊은 소령 크람파스 소령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젊은 피 크람파스와 외도를 하지만, 늘 한결같고 정중한 그러면서도 친절한 남편 인슈테텐을 향한 죄책감은 에피를 괴롭힌다. 그러던 중 베를린으로 승진 발령이 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크람파스와 헤어지게 된다. 이후, 7년이 지날 때까지 인슈테텐과 에피는 평온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에피가 여행간 사이 꽁꽁 숨겨둔 크람파스와의 연애 편지로 인슈테텐은 부하직원과 에피의 간통사실을 알게 되고,  인슈테텐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크람파스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결국 크람파스는 인슈테텐의 총에 맞아 죽는다.(당시 공증인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결투는 누가 죽던간에 정당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전까지 에피가 말하듯 ‘사랑해야 할 점이 전혀 없지 않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자,  ‘사회적 고결함’ 그 자체였던 인슈테텐은 질투에 눈이 멀어 부하를 죽이고 에피를 사회에게 매장시키는 잔인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인슈테텐에게 버림받은 후,  에피는 사회적 명망이 높았던 브리스트 가문에서조차도 외면당하고 홀로 쓸쓸한 생을 이어가다 병사한다. 가난을 죄의 값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며 병으로 죽었을 때의 그녀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였다는 거.

  

“그애가 너무 어렸던 건 아닐까요?”

“엄마, 그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병이 들어서 여기서 지낸 나날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예요. 또 그가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았다는 것도요. 불쌍한 크람파스의 일, 그래요. 그 사람이 달리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겠어요? ”

 

 

에피 브리스트는 안나처럼 자기 주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엠마처럼 허황된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회에서 파문당했다. 결혼이 주는 책임감이나 사회적 의무를 떠나 여인들에게 주어진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 유일했던 사랑의 댓가로는 너무 잔인한 결과가 아닐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사회적 제도안에서의 여성은 여전히 약자에 머물러 있다. 세계 간통문학의 주인공 에피와 안나, 엠마의 삶은 모두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다. 사랑과 결혼 그 치명적 경계에서 꿈과 현실의 비극적 간극은 불행을 잉태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의 불행은 결코 간통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말인데.. 사랑이라는 환등상의 불꽃을 현실의 냉혹함으로 깨워준다는 의미로  '여성 3대 문학'으로 바꾸어 불렀으면 한다.......(간통문학 어감이 ..ㅋㅋ)  간통죄도 이제 없어진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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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8-2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요즘 보바리 부인을 읽고 있던 차라 들어왔습니다.^^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아직 에피 브리스트는 안 읽었는데, 이 참에 읽어봐야겠어요~~

누군가는 결혼문학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보통 다른 문제들-가정폭력조차도- 그 집안 사정이라고 쉬쉬하고 모른 체 하는데 간통은 국가가 나서서 벌을 주니.. 요상합니다. 그래도 요즘 점점 생각이 바뀌어가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드림모노로그 2014-08-25 12:00   좋아요 0 | URL
앗 ~ ! 안녕하세요 ~ 꼬마요정님 .. ㅎㅎㅎ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우선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실 전 간통죄 폐지를 찬성하는 입장도 반대하는 입장도 아닙니다 ㅎㅎ
다만,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이해하는 입장 '에서
간통 문학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ㅎㅎㅎ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

비로그인 2015-10-15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글 정말 좋아요........ 제 블로그에 공유하려고 했더니 공유하기에 트위터와 페이스북밖에 안 되네요 ㅠㅠ 네이버 블로그에 옮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네요.ㅠㅠㅠ 퍼가고 출처를 밝혀도 될까요~?

드림모노로그 2015-10-15 13:2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복사를 막아두지 않아서 복사로 네이버 블로그에 옮기시면 될 것 같아요.
대신 주소복사로 알라딘 링크를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 멋진 하루 보내시길 ㅎ~~~!!
 
물방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2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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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상잔의 비극으로는 6.25만한 고통은 없을진대 새로 태어나는 생명과 같이 하여 과거의 전쟁은 죽음처럼 망각 되어 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도 다른 나라에서조차 꺼려하는 욱일승천기를 디자인이 이쁘다며 사진 찍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환한 웃음 사이에는 전쟁의 고통쯤이야 잊혀진지 오래이다. 사실 이 책을 손에 들면서 일본작가가 쓴 전쟁이야기 따위는 읽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인 메도루마 슌이라 해야 바른 표현일 듯 하다. 이 책 역시도 일본의 삶이 아닌 오키나와인의 삶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일본에 속해 있지만, 일본인이 아닌 오키나와인. 이들에게 드리워진 전쟁이라는 상처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지금은 아름다운 섬으로 관광명소로도 이름 높은 오키나와는 우리나라 보다 더 큰 비극을 품고 있는 섬이다. 작지만 찬란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 독립국가 ‘류큐왕국’이 일본의 메이지 왕국시대에 일본의 여러 섬들을 강제로 편입하게 되면서 류큐왕국도 일본에 편입되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미군과 오키나와의 전투는 당시 철의 폭풍(鐵の爆風)’이라 불릴 정도로 태평양전쟁 중 일본 영내에서 벌어진 최대 지상전이었다. 이후, 미군의 군정하에 놓이게 된 오키나와는 1972년, 일본과 미국 정상들의 회담으로 오키나와를 미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하지만, 지금까지도 일본 내 미군시설 면적의 약 75퍼센트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 일본과 미국, 다시 일본에 속하는 와중에 오키나와에 거주하고 있던 오키나와인들은 미군 수용소에 지내며 헐벗고 가난한 삶을 계속해야 했고 일본인들을 위해 가미가제 특공대에 젊은 영혼들을 자살부대로 보내야 했으며 이들은 오랜 세월을 삶의 한가운데 전쟁의 상흔을 늘 옆에 끼고 살아야 했다.

 

#물방울

낮잠을 자다가 다리 한 쪽이 동과(호박 비슷한 타원형 열매) 만하게 부어오르게 된 도쿠소의 이야기《물방울》은 오키나와인들이 겪고 있던 삶의 애환과 전쟁의 상흔으로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살아남은 이들의 아픔을 작가만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도쿠소의 부풀어 오른 엄지 발가락사이 터진 상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동네에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이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과 동과만한 다리가 궁금하여 찾아온 사람도 있고 학교마다 돌아다니면서 전쟁이야기를 하곤 하였던 도쿠소인지라 위문을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리가 부어오르며 의식도 가물가물해지는 가운데 밤마다 군인의 무리들이 엄지 발가락을 빨아주는 환상을 보게 되는 도쿠소는 전쟁 당시 물 한모금으로 다친 동료 이시미네를 방공호에 두고 온 기억을 상기시키며 과거와 현재의 혼몽속에 지낸다. 이시미네를 버려두고 혼자만 살아남은 도쿠소는 가슴 한 켠에 남겨진 이시미네를 향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이시미네 역시 군인의 무리들과 함께 나타나 자신의 엄지발가락 사이난 물방울을 맛있게 빨아먹고 간다. 죽어가던 잿빛의 군인들과 회색빛의 이시미네은 물방울을 마시고 나면 얼굴색이 화사하게 변하고 생생함을 띠게 되는 것을 보며 도쿠소는 알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밤마나 만나게 되는 전쟁의 환영들, 군인들이 엄지발가락을 빨아 물방울을 마실 때마다 도쿠소는 전쟁 한 가운데서 부르짓던 원망과 분노로 뒤덮인 동료들의 울음소리를 기억속에서 재생시키며 울부짖는 밤을 보낸다. 도쿠소의 이러한 고통으로 태어난 물방울은 생명수가 된다. 매일 밤 재생 되는 전쟁의 상흔을 통해 생성된 물방울을 밤마다 전쟁의 망령들이 마시러 오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인 군인들과 이시미네는 도쿠소의 엄지발가락을 빨아마시며 생명과 자연의 서사를 번복하는 것이다. 도쿠소가 이러한 환영 가운데에 있을 때 사촌 세이유는 물방울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도쿠소의 물방울을 민머리에 바르자 털이 나기 시작하고, 마시자마자 힘이 솟는 기분을 느낀다. 세이유는 물방울을 병에 담아 ‘생명수’라 하며 이웃에게 팔기 시작한다. 도쿠소의 상처에서 나온 물방울의 인기는 삽시간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떼돈을 벌게 되는데 도쿠소의 물방울의 양이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붓기가 빠지고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면서 물방울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다. 물방울을 ‘생명수’로 받아 마시던 이들은 물방울이 더 이상 공급이 되지 않자, 상처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세이유는 생명수로 인해 군중들에게 몰매를 맞는다. 도쿠소의 상처는 치유 되지만, 가슴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도쿠소 가슴 안에서 슬픔의 웅어리를 만든다.

 

#바람의 소리

‘전몰자 위령의 날’을 맞아 8월 15일 종전기념일을 맞춰 ‘구슬피 우는 운가미(두개골)을 취재하러 나온 방송국프로그램의 기자인 후지이는 과거 가미가제 특공대원이었다. 젊다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친구들이 모두 태평양 전쟁 당시 자살 특공대원으로 죽었지만, 출격을 앞두고 절벽에서 떨어져 치료를 받게 되면서 후지이만 살아남게 되었다. 일본을 위해서 , 천황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는 말을 끔찍히 싫어했던 후지이는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친구들의 환영으로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과거 전쟁이 남겨준 기억들을 되살리며 오키나와 강에서 전우들의 살을 파먹고 살아왔을 틸라피아 떼를 바라보는 후지이는 자신의 온몸 구석구석에 남겨져 있는 친구들의 기억들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피 우는 운가미의 소리를 마치 가노의 목소리로 착각하면서 자신이 죽기 전에는 절대 이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단지 살아남아,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가노의 환영을 좇고 있었던 거다.”

마지막 단편 <오키나와 북리뷰>편은 가상의 책에 대한 서평집이다. 조금은 생뚱맞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오키나와의 지성인들을 비꼰 서평집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문학가들이 전쟁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하며 오키나와 역사의 상흔을 끄집어내는 식의 서평집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서평집만으로도 오키나와 문학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세 편의 단편집은 서로 다른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고 있다. 《물방울》은 전쟁의 후유증을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면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환상의 리얼리즘 문학으로 펼쳐보이고 있고 《바람의 소리》는 앞바다에 장렬하게 전사한 어린 친구들의 환영을 잊지 못한 채 살아남은 자의 고독과 애닮픔을 담담한 필체로 그리고 있다. 《오키나와 북리뷰》는 오키나와인들이 이러한 전쟁의 상흔을 외면해가며 현실 도피성의 문학과 풍자만을 일삼는 것을 꼬집으며 지성인들의 자각을 일깨우는 여러 편의 서평들을 선보인다. 오키나와를 통해 전쟁이 남긴 역사의 상흔을 되새김질 해보며 우리나라 역시도 기억해야 할 역사의 상흔을 애써 모른 척 하며 외면하는 역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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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2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8-22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