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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사이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커뮤니케이션 강의 ㅣ 지식여행자 12
요네하라 마리 지음, 홍성민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그런 책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하나 놓치지 않고, 정독하지는 않지만, 곁에 두고 생각 날 때마다 들추는 책. 그리고 요네하라 마리의 책이 그런 축에 속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보통의 책들은 아무리 재밌어 봤자, 한번 읽힘을 다하면, 재독되지 않는다. 다시 읽지 않는 이유는 일단 두번째 읽었을 때는 처음 만났을 때의 짜릿함이 덜하니까. 그리고 세상에는 그 책 말고도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책이 많으며, 세상에는 독서 말고도 처분을 기다리는 잡다한 일들이 많으니까.
마리는 낮은 시선과 넓은 시야, 그리고 왕성한 유머 서비스 정신과 산뜻한 고결함을 갖춘 동시 통역사이자, 저술가이자, 독서가이다.
내가 마리의 책을 읽고 그녀가 내 식으로 따졌을 때, 보기 드물게 위대한 여자다, 라고 여겨졌던 것은 <대단한 책>에서였다. 자신의 난소암 발병 후, 수술하고 회복의 시간, 그리고 재발되어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읽은 책들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자신의 심각한 병을 기록할 때조차 냉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니, 이 책 뒤에 붙은 일본인 평론가의 추천사에도 나오지만, 마리의 만년 수필 세계는, 작가로서의 긍지가 병에 대한 절망감을 한계치 직전에 앞지르는 일종의 스릴 있는 독서 기록이랄까.
제 1장 <사랑의 법칙>은 남녀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세상의 모든 남자는 A 꼭 자고 싶은 남자, B 자도 괜찮을 것 같은 남자, C 거금을 줘도 절대 자고 싶지 않은 남자, 이렇게 셋으로 나눠고, 자신의 경우는 90퍼센트 이상이 C라는 어마어마한 말. 이렇게 분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자신은 대부분의 경우가 뭐다 하고, 하는 말...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다시 얼굴을 쳐다봤겠지만, 오십살이 넘은 여성 마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우아..!
여자 험담을 남자가 하면 불쾌감을 주지만, 남자 험담을 여자가 하면 특히 마리의 입에서 다시 나오는 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뛰어난 재주처럼으로만 여겨지는 것은 유감스럽긴 하지만 사실인 거 같다. ^^; 그래서 김어준은 그녀의 글을 '드물게 귀여운 지적 앙탈'이라고 했는지도.
제 2장 <이해와 오해 사이>는 언어는 기호로서 약속의 의미를 갖지만, 그 기호가 의미하는 것은 국가? 국가가 다 뭐야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 의사소통 이론을 펼치고 있다. 말은 오해를 낳게 마련이라는 설명을 들기 위해 인용한 예. 정말 마리의 성적 농담은 마리만 할 수 있다.
"5년 전쯤 뉴욕 빈민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 한 흑인 부랑자 앞에 갑자기 신이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는 주저없이 "하얘지고 싶다" "여자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고 싶다" "늘 여자의 가랑이 사이에 있고 싶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남자는 사라지고 길바닥에 탐폰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신과의 교신을 할 때도 이러한데 하물며....
3장 그리고 4장에서는 프라하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통역사가 되기까지의 다른 책에서도 많이 다뤄진 자전적 내용으로, 이 글은 어학 실력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방법론으로 읽힐 수 있고, 인간이 오만함을 버리면 구사하는 말에서도 오만함이 사라질테고, 그 말을 쓰는 국가의 오만함도 사라질 것임을 역설하면서 영어에 목을 매는 정서에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조금 모순이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소통의 차이를 최소화해서 아들들과 유머코드를 일치시키고, 같이 웃을 수 있는 기쁨을 많이 누리고 살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