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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 운명조차 빼앗아가지 못한 '영혼의 기록'
위지안 지음, 이현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주어진 내 시간들 속에 언제 죽음이 온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미진함이 없이 담담하기를. "
은 내 예전 블로그의 대문글이다.
마음은 이런데, 현실 속 나의 삶의 모습은 그 간극이 상당하다.
죽음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 글쎄 몇이나 될까. 누구나 이런 질문에는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지 싶다. 아니 툭 터놓고 말하자면, '죽음'에 대해서 현재 건강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죽음'이 가장 실감나게 다가올 때는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의 병을 알았을 때, 그리고 죽음이 뚜벅뚜벅 하며 정면에서 마주 걸어 올 때.
“인생에 있어 즐거움은 한순간에,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사건만으로도 맛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변이 급할 때 화장실만 찾으면 금세 즐거워지는 것처럼 즐거움은 쉽게 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 바꾸어 생각을 해보지 못하는 것은, 살면서 마음에 관심을 덜 쓰고, 힘을 빼야 할 때도 힘을 주고 살아서 그런 것 같다.”
10년전 사망일기라는 책을 읽고 쓴 서평의 일부이다.
지금은 힘 조절을 잘 하며 살고 있나,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진정 이 경지를 이해하는 것일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밥을 먹어도 이것이 밥알인지 모래알인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며, 좌중을 까르르하게 만들고 있는 동료의 농담도 이해를 못한다. 잠을 못자고 걱정을 하고 당장 해결하지 못해 동동거린다.
건강검진 초음파에서 유방암 의심 진단 소견서를 받은 적이 있어서(정밀 검사 후 단순 낭종으로 확인됐지만 그 이후로 1년에 한번씩 추적 초음파 검사를 하고 있다.)인지 그런 일이 없기 전이라면 모를까, 암 투병기라거나 그것이 유방암 관련 글이라거나 하면, 지나치지 않고 보게 된다. 나도 잠재적 환자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유방암의 원인 혹은 투병 과정에 관한 글은 흔하지 않다. 있다면 대부분의 글은 당사자가 아닌 관련 전문의가 쓴 글이거나, 당사자 주변인의 글이 많다.
이 책에서는 위지안은 암의 발명 원인이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나 주변 사람의 분석으로만 종합되어 나오는 이유는 암에 걸린 당사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할 능력이 없고, 한편으로는 그럴 만한 의욕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또 그렇기도 하다. 정서상으로 암 환자에게 “어쩌다가 암에 걸리신 거예요?” 라고 묻는 것은 치명적으로 상처가 되어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어버리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왜 하필 나인가요?”라는 새삼 억울한 마음에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 되버릴 것 같다. 위지안이 있던 암병동의 대다수 유방암 환자들이 갖은 고생을 하고 이제 휴식을 취할 찰나, 발병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보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벌을 받느냐고 원망이 들 것이다. 백이면 백, 모두. 이 가슴 아픈 주제를 직시할 수 있는 환자란 너무도 드물 것이다.
한동안 그녀도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어차피 병에 걸렸고 아무리 땅을 치며 원망한들, 이미 그녀에게 찾아온 암이란 운명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을테니까. 라는 마음과
"누가 되었든, 설령 내가 가장 만나기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암에만은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라고 위지안은 말했다.
그리고 나서 병동 안의 한사람, 한사람씩 만나면서(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수많은 조사와 통계 작업을 해야 했는데, 환자가 되고 나서조차 직업 정신을 발휘함) 샘플을 분류하고 표본을 만들어 살펴본 결과, 유방암 환자의 성격에 대한 그녀만의 추론을 얼추 완성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부분은, 유방암 환자 중에는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유방암 환자 중에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반면 명예욕과 승부욕이 강하고, 매사에 통제력을 발휘할 정도로 권력욕이 있으며 성격이 급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많았다.
암의 정확한 원인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단 한가지 원인만으로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습관이나 오염된 환경에 수년간 노출되다 보면, 언젠가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암이란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자양분을 얻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봐도 그렇고, 주변을 봐도 그렇고 자신을 위한 휴식을 취하는 것과 잘 먹는 것이 암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관건인가.
‘나를 위한 한끼 만찬’ 그것은 곧 나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일이었다. 나를 위한 만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먹는 것’이 삶의 출발점이라는 겸허한 수용과 둘째 먹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덧붙임. 이 글의 위지안이 정말 안타까운 이유는 그녀가 세계 100위 안에 드는 푸단 대학 최연소 대학교수이고, 이제 막 국가로부터 지원을 얻어낸 친환경 에너지 개발의 프로젝트 리더라서가 아니다. 15개월의 어린 아들과 다정한 남편을 두었고, 앞만 보고 달려온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때문이다. 온몸의 뼈를 깎고,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통증과 먹은 것은 다 토해내는 항암치료 과정에서도 발병 사실을 알기 전에는 자신도 몰랐던 유머의 극치를 보여 주며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한다. 과거와 현재를 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