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인 훈육을 하지 않아도 될 집안 환경을 조성하라고 온갖 양육서들에는 나오지만, 사람 사는 환경이라는 게 그렇게 심플하지가 않다. 어제 둘째를 차갑게 혼내고 다그쳤던 게 오늘 계속 걸린다.
형이 예민한 기질에 속한다면, 둘째는 순하고 무던한 편이다. 조바심 내며 첫째를 키우고, 좀더 여유를 갖게 되어 둘째를 대하니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첫째와는 기질이 많이 다른 둘째인데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만들어 내 속앓이를 시킨 적은 없었다.
물론 사고를 좀더 치긴 한다. 구입한지 10년 되었지만, 새것 같았던 비디오데크였는데, 비디오 테이프 넣는 곳에다가 온갖 것을 쑤셔 넣어서 요절을 내버리거나 수건을 물에 흠뻑 적셔 노트북을 닦으려 하는 둥... 하마터면 기기 파손에 손해막심 할 뻔, 휴~ 라고 가슴 쓸어내리는 순간의 빈도가 큰애보다 높았다만, 그때마다 심하게 혼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어렸고, 돌보면서 좀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어른들 탓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제는 그게 쌓이고 쌓여 폭발했나?
둘째가 “티모시 유치원 보여 달라” 고 내 뒤를 따라다니며 옷자락을 붙잡는데, 건성으로 대꾸했다. 마침 엄마가 일일연속극을 보고 계시던 참이었고. 연속극 끝나고 보여 주려고 디비디 플레이어에서 앞서 들어가 있던 시디를 꺼내려는데, “득득득” 긁히는 소리만 나고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정황을 보아 하니, 둘째 녀석이 플레이어의 전원 버튼을 누른 다음 자기가 보고 싶었던 티모시 유치원의 시디를 넣었는데, 잘 들어갈 리가 있나. 원래 들어 있는 시디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억지로 꾹꾹 밀어 넣었나 보다. 그리고 세모 모양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 모양인데, 잘 나오지 않자 나를 따라다니며, 티모시 유치원 보여 달라고 한 거였다.
가는 핀셋으로 이것저것 동원에서 시디를 빼보려고 했지만, 꺼냄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딘가 걸리는 지점이 있어서 나오지 않는 모양이고 꺼냄 버튼을 누르면 ‘득득득’ 하는 긁힘 소리의 강도가 점점 세져서 뭔 사단이 나겠다 싶어 얼른 전원 버튼을 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이 디비디와 플레이어의 가격을 생각하고, 새로 장만하려 했을 때의 비용을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뜯고는 ‘못살아!, 죽겠네!, 짜증나!’ 같은 소리를 연발하며 히스테릭해졌고, 첫째는 도와주겠다며 공구상자를 꺼내와서 송곳과 드라이버 같은 것으로 쑤시려 든다.
둘째는 옆에서 서서 낮고, 길게, 참 구슬프게도 운다. 여느때 같으면 그렇게 울면 동정지수 100%였을 테니만,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화 지수만 증폭시킨다.
“너는 저리 비켜!”
도와주겠다며 송곳과 드라이버를 들고 설치던 큰애는 엄마가 점점 야수처럼 변해 가자, 곧 자러 들어갔는데, 둘째는 여전히 엄마 반경 1.5미터 내에서 낮은 울음을 울며 이 사태가 어떤 파국을 맞을 것인지 끝까지 지켜볼 참인가 보다.
30분여를 붙잡고, 핀셋질을 해댄 끝에 살짝 내민 혀마냥 지름의 0.5센티쯤 끌어내는데 성공! 그런데 다시 핀셋으로 살짝 끄잡아낸다는게 그만 “스르륵 부드럽게 다시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이거 사람 불러야 하나?’ 라고 포기하.....지 않았고, 아예 뒤판 연결선 같은 것을 다 뽑아내고 나중에 다시 연결할 때 제구멍 찾아 끼워야 하니까 잘 보고, 십여개쯤 되는 크고 작은 나사를 드라이버로 다 풀어서 플레이어의 덮개를 드러내고, 시디를 빼냈다.
두서 있고, 순발력 발휘해 착착... 해낸 게 아닌고로 빼내서 다시 나사 조이고, 코드 끼우고 플레이어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데까지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그날 밤을 디비디 플레이어 가지고 공구조립(?)한 시간, 애들한테 엄마의 숨기고 싶었던 짜증내며 머리 쥐어뜯는 모습 보여 주고 한 것 등에 크게 상심한 나머지... 냉장고를 들들들 뒤져 ... 이것저것 처묵처묵..배가 부르니 화 지수는 더 상승..
그때까지 둘째는 내 눈치를 살피며 내 주변을 배회했고, 엄마가 드디어 디비디플레이어를 고친 것 같으니까 안도하면서 조용히 있던 아이가 다시 재잘대기 시작했고, 와서 안기며 책보자, 뭐보자 이것저것 주문했지만, 야멸차게 밀어냈다. 황금어장 라스 보다가 그리고 불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들어와서 옆에 누웠다.
새벽에 두세번쯤 둘째가 자다가 느닷없이 잠꼬대를 한다. 소리를 지르고 억울하다는 듯 운다.